주류에서 소외된 인물들, 존재만으로 비정상이라 낙인찍히는 인물들, 실패하고 좌절한 변두리의 인물들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언제까지고 그런 사람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브릿G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특별 코너 ‘브릿G 숏터뷰’, 오랜만에 진행된 숏터뷰의 열 번째 게스트로 배일랑 (배예람)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호러, 추리, 미스터리, 좀비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며 『좀비즈 어웨이』, 『살인을 시작하겠습니다』,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 온 배예람 작가님께서는, 제9회 ZA 문학 공모전을 통해 브릿G에 발표한 단편 「엄마A 그리고 좀비」로 지난 제6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이야기 부문 본심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다시 한번 많은 독자님들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지난 12월 말 진행된 제6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시상식(스케치 보기↗)을 통해 작가님을 직접 모시고 수상 소감도 한데 나눠 들을 수 있었는데요, 수상작인 「엄마A 그리고 좀비」 안팎의 이야기와 더불어 작가님의 작품 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두루 궁금하여 인터뷰를 요청드리게 되었답니다. ‘이상하고 독특한 소재와 배경으로 보편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작가님의 앞으로를 더욱 고대하고 응원하며, 오랜만에 전해 드리는 이번 숏터뷰 매거진도 재미 있게 읽어 주시고 많은 격려와 응원을 담은 댓글 남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특별한 선물도 준비했으니, 숏터뷰 하단에 마련된 이벤트도 꼭 체크해 주세요!
Q. 지난 2024년 12월, 작가님의 단편 「엄마A 그리고 좀비」가 제6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이야기 부문 최종 선정작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분야에서 참여한 외부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선정이 되었는데요, 현장에서 소감으로도 간단히 전해 주긴 하셨지만 선정 소식을 처음 접하셨을 때 어떠셨는지요. 이후 공개된 심사위원들의 개별 심사평도 한데 살펴봐 주셨을까요.
A. 2024년은 여러모로 고민이 많은 해였습니다. 작년의 저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이야기를 쓰는 일에 재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언젠가 더 이상 이야기를 쓰지 못하게 되더라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더라도 너무 슬퍼하진 말자. 지금부터 슬퍼하지 않는 연습을 하자.’ 하지만 열심히 되뇌어도, 해소되지 않는 하나의 질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지?’
선정 소식을 처음 접했던 날 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하다가 고민에 빠져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중이었어요. 그러다 메일이 도착했고, 내용을 확인한 후 그 자리에서 가만히 굳은 채로 또 몇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절망과 체념에 빠져 있을 때 찾아오는, 이야기 속에서만 가능한 기적이 현실의 저에게 잠시 찾아온 것 같았습니다.
손꼽아 기다린 심사평은 읽고 또 읽었습니다. 존경하는 이경희 작가님께서 제 이야기를 읽어 주시다니, 너무 큰 영광이었어요. 윤영천 편집장님께서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졌다’라고 심사평을 남겨 주신 게 유독 마음에 남았고, 김시인 평론가님께서 남겨 주신 아름다운 심사평도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심사위원분들께는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Q. 2022년에 올려 주신 단편 「엔딩을 향하여」를 기점으로 브릿G에서 활동을 시작하셨는데요, 브릿G에는 어떤 경로로 처음 찾아와 주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저희는 이것이 언제고 궁금합니다…… )
A. 브릿G를 처음 알게 된 건 ZA 문학 공모전 덕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슬슬 졸업 후의 삶을 걱정하기 시작하던 대학생이었는데요. 이야기를 쓰는 삶을 살고 싶지만 제게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망설이던 중, 검색을 통해 ZA 문학 공모전과 브릿G를 알게 되었습니다. ‘좀비 아포칼립스를 주제로 하는 소설 공모전이 있다니!’ 하고 무작정 흥분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때도 지금처럼 좀비 아포칼립스를 사랑하다 못해 그 세계로 들어가기를 꿈꾸는 사람이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공모전에 지원해야겠다고 결심했었어요. 친구를 앞에 앉혀 놓고 구상하던 이야기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습니다만, 결국 죽도 밥도 쓰지 못해 공모전에 지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브릿G에 자주 들어가 소설을 읽으며, 언젠가 ZA 공모전에 꼭 지원할 거라는 큰 꿈을 키웠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에, 놀랍게도 이야기를 쓰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딘가에 지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제가 쓰고 싶어서 쓴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을 때 브릿G를 떠올렸어요. 브릿G에는 어떤 이야기를 올려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엔딩을 향하여」를 올렸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분이 읽어 주시고 좋아해 주셨어요. 용기를 얻어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독자님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롭고 즐거웠어요. 독자님들께서 남겨 주시는 댓글은 언제나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대학생 때 ZA 공모전에 지원하기 위해 구상했던 이야기는 현재 「피구왕 재인」이라는 제목으로 단편집 『좀비즈 어웨이』에 수록되어 있답니다.
Q. 「엄마A 그리고 좀비」는 2023년에 브릿G에서 진행된 제9회 ZA 문학 공모전 당선작이기도 한데요, 좀비 공모전에 모녀 이야기를 써 봐야겠다고 구상하게 되었던 계기가 있을지요. 그간에도 좀비 디스토피아로 인해 급변한 상황 속에서 맞이하게 된 가족 구성원들의 절망적인 관계를 그려 낸 작품은 많았지만, 이 작품은 복잡다단한 모녀 관계에서 오는 고유의 서정이 드러나는 동시에 차분하고 담담한 결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서 말씀해 주신 『좀비즈 어웨이』라는 작품집을 2022년에 출판하셨는데, 언뜻 「좀비즈 어웨이」의 모녀 버전을 쓰고 싶어서 본 단편을 구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보았거든요. 디스토피아에서만 보다 극적으로 전달이 가능한 이야기가 있는 걸까요.
A. 좀비 아포칼립스는 생존을 위해 살인과 폭력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이 좀비 아포칼립스에 열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저 역시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을 통해 보편적이고 평범한 감정을, 인간을 다루는 이야기에 끌렸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좀비랜드」는 좀비 아포칼립스가 아니었다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과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을 다룬 코미디인데요. 저도 좀비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살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이 멸망한 뒤에야 꺼낼 수 있는 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멸망한 뒤에야 돌아볼 수 있는 마음도요. 살기 바빠서, 피곤해서, 다음 기회가 있다고 믿어서…… 여러 이유로 미뤄 둔 것들이 멸망 후에는 부메랑처럼 되돌아옵니다. 뒤늦게 부메랑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지만 모든 게 죽어 버렸으므로, 밀린 답장을 보내거나 하지 못한 말을 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동시에 모든 게 죽었지만 죽지 않은 좀비가 되었으므로, 멸망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으로 밀린 답장을 보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좀비즈 어웨이」나 「엄마A 그리고 좀비」처럼, 죽었지만 죽지 못한 누군가를 가방에 넣은 채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제가 생각한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세상에는 상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산처럼 쌓여 있는 관계가 많습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 후에야 비로소 상대를 이해하게 될 때도 종종 있고요. 모녀 관계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이 모두 살아 있는 한 절대로 서로를 완벽히 용서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입니다. 많은 분이 이입하고 공감하는 관계인 만큼, 제가 사랑하는 좀비 아포칼립스를 통해 이 복잡한 관계의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묘사해 보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습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꼭 도전해야 할 이야기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 써야겠다는, 언젠가 쓸 거라는 열망을 품던 중 그 당시에 듣던 소설 강의에서 단편을 써서 제출하라는 과제를 받았고,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피곤한 대학생과 그의 등에 매달려 있는 조각난 엄마를 떠올렸어요. 2023년의 봄이었습니다.
Q. 「엄마A 그리고 좀비」에는 엄마와 나의 이름이 끝내 나오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엄마A는 세 개로 갈라진 사체 조각 중 하나를 가리키는 명칭이었고, 이름이 없더라도 주인공 역시 지극히 평범하게 고단한 인물로 여겨지는 삶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처럼 작중 모녀가 구체성이 없고 평범한 사람들의 서사를 공유한다는 점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길을 막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모순적인 관계를 쌓아 나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모녀 관계를 대변하는 객체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엄마와 나에게 이름이나 구체적인 서사를 일부러 부여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일지요.
A. 엄마와 나의 구체성은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이 두 사람이 모녀 관계라는 것, 그리고 딸이 뒤늦게 세 갈래로 조각난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한다는 것뿐이었어요. 그 설정 안에서 최대한 평범하고 진부한, 그렇지만 모두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모녀의 히스토리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레 엄마와 나의 이름도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엄마A 그리고 좀비」는 독자분들이 이야기 속 빈 공간에 자신의 이름을 대입해 볼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Q. 한편으론 「엄마A 그리고 좀비」는 좀비물답게(?) 동적인 장면들도 꽤 엿보였습니다. 또 운동에 재능이 있던 모녀에 대한 단서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설정해 둔 뒷이야기가 혹시 더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특히나 엄마 세대에게 깃든 역동적인 이미지가 이질감이 있으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졌는데요.
A. 좀비 아포칼립스가 퍼지고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은 세상에서 자유자재로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주인공에게 좀비를 만나도 버틸 수 있는 신체적인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자 좀비 아포칼립스하면 흔히 떠오르는, 피곤한 얼굴로 좀비를 향해 야구 방망이를 멋지게 휘두르는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삼고 싶어졌고, 자연스럽게 그 능력을 엄마로부터 물려받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엄마는 몸을 잘 쓰고 운동 능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아마 야구 배트로 공을 휘두르는 것 외에도 잘하는 운동이 있었을 테고, 특별히 꿈꾸는 운동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여러 이유로 그 꿈은 자연스럽게 잊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딸은, 똑같은 능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운동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자랐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야구 연습장에서 엄마에게 가르침을 받았을 때, 자신과 똑같은 재능을 가진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에서 슬픔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딸은 본능적으로 엄마의 슬픔을 흡수하고 그 길을 택하지 않기로 했을 겁니다. 엄마는 그런 딸을 알지만 모른 척했을 거고요. 그런 순간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두 사람 사이에 금기가 생기지 않았을까요. 딸은 엄마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엄마는 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절대 물어보지 않을 것. 누구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할 관계지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금기를 지켜야 합니다. 슬프지만 많은 분이 공감하실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Q. 최근 SNS에서 서울에 대한 한 표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하단 캡처 이미지) 지방 태생의 입장에서는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한 동경과 냉혹함에 깊이 공감이 되는 내용이었는데요, 작중에서도 엄마의 서울살이에 대한 소망이 압축된 표상인 ‘남산’이 모녀 여정의 종착지가 되기도 하여 작가님의 서울에 대한 감상이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또 작품 전반을 통틀어 주인공에겐 고행 같은 여정이 펼쳐지지만 주인공은 엄마를 끝끝내 포기하지 않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주인공이 내뱉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감사가 뒤죽박죽 섞인 혼잣말이 이 작품의 정점이라고 느껴졌는데요, 담담하게 슬픔을 자극하는 장면이었는데 작가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이 장면을 쓰셨을지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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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트위터 @d1cifk 님
A.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기억하는 순간부터 20살이 되기 전까지 지방에서 자랐습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내내 제 목표는 서울로 가는 것, 그것뿐이었어요. 그게 성공의 표상처럼 받아들여지던 때였거든요. 면접 준비를 위해 잠시 서울에 올라왔던 19살의 어느 날, 늦은 저녁 혼자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요. 그때 유행하던 「응답하라 1994」의 OST 가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ㅎㅎ)
앞만 보고 걷는 사람들, 너무 많은 승용차와 깜빡이는 불빛들, 정류장을 찾기도 힘들 정도로 복잡한 거리. 모두가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가는데, 혼자 뒤처져 사방을 멍청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이상하게 눈물이 났었어요. 성인이 된 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제게 서울은 아직도 그런 이미지입니다. SNS에서 저 트윗을 보고 굉장히 공감했던 기억이 나네요.
주인공의 혼잣말 장면을 쓸 때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제가 주인공의 감정에 취해 흔들리면, 과하게 감정이 쏟아질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차갑게 가라앉은 상태에서 그 장면을 썼고, 퇴고 후 마지막으로 글을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편한 마음으로 엄마와 주인공의 이별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혼잣말도 혼잣말이었지만, 주인공이 추측한 엄마의 마지막 인사에 유독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분이 「엄마A 그리고 좀비」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씀 주셨는데, 제 이야기를 통해 독자님들과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Q.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인 「탐정 김희영희」가 최근 제5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작품집 『당신이 보는 세계』에 수록되어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홀로 은둔하여 지내던 주인공 앞에 나타난 의문의 존재(!)와 함께 아파트의 미스터리를 파헤쳐 나가는 코지 미스터리 작품인데요, 작가님께서는 이처럼 주류에서 소외되거나 변두리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조명하는 데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작가님이 그리고 싶은 인물들의 특성이 있는지요? 어떤 인물들을 주로 소설에 담고 싶은지, 작가님이 만들어 내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A. 세상에는 너무 명확한 기준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배우고 학습한 대로 기준에 따라 인간을 분류하고, 기준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어요. 기준에 부합하는 정상인들은 세상의 주류가 되고, 앞으로 나서 모든 걸 지배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항상 기준에 부합하는 인간이 되지 못해 괴로웠던 것 같아요. ‘난 어째서 비정상일까?’ 그런 생각에 괴로울 때마다 힘이 되어 준 건 수많은 이야기였습니다.
현실에서는 언제나 세상이 말하는 정상인들이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이야기에서는 세상의 기준에 반하는 비정상인이 주인공일 때가 더 많습니다.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비정상이라 손가락질당할 때, 이야기 속에서 비정상인 주인공들은 모든 역경을 헤치고 승리를 거머쥡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현실보다는 책, 만화, 게임 속 이야기와 세상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현실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현실보다 이야기 속에서 더 안정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세상의 기준을 벗어나는 비정상 주인공들에게 애정을 품게 된 것 같아요. 주류에서 소외된 인물들, 존재만으로 비정상이라 낙인찍히는 인물들, 실패하고 좌절한 변두리의 인물들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언제까지고 그런 사람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말해 봅니다.
Q. 브릿G에 공개된 작가님의 작품 중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께 가장 추천하고 싶은 ‘나의 작품 BEST5’를 꼽아 줄 수 있으실지요. 작가님의 만족도와 취향대로 간단한 이유와 함께 추천을 부탁드려 봅니다. 또는 재밌게 봤던 브릿G 작품이나 눈여겨봤던 작가님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 에덴동산의 규칙
디스토피아 혹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자기가 있는 세계(혹은 공간)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 주인공이 결국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벽 너머로 향해 진실을 마주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에덴동산의 규칙」의 주인공, 이브는 말하는 뱀으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편지를 통해 에덴동산이란 공간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죠. 모두가 아는 창세기를 규칙 괴담의 형식으로 풀어내 보았습니다. 성경을 비트는 건 언제나 재미 있는 작업인 것 같아요.
- 탐정 김희영희
정통 추리 소설을 쓰는 건 저의 오랜 꿈이지만, 본격 미스터리를 쓰기에 내공이 매우 부족한 상태입니다. 추리 단편 소설을 100편 쓰면 장편에 도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탐정 김희영희」를 구상했습니다. 소소한 사건이 등장하는 코지 미스터리지만 그 안에는 추리물에 대한 저의 애정을 듬뿍 담았어요. 추리물을 좋아하신다면 ‘어라…… 이거?!’ 하게 되는 부분도 찾으실 수 있습니다. 거들먹거리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명대사를 읊는 탐정 김영희에게서도 매력을 느끼실 수 있고요.
그뿐만 아니라 「탐정 김희영희」는 제가 작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가진 가치관에 가장 부합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사랑할 것,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손을 내밀 것. 너무 당연한 것을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탐정 김희영희」가 탄생했습니다. 수다스러운 부녀회장, 괴팍한 경비원, 험상궂은 직원…… 캐릭터도 일부러 전형적인 이미지로 가져와, 그들이 이야기에 어우러지는 과정을 보여 드리려고 했어요. 참고로 「탐정 김희영희」에서는 사람이 죽지도 피가 튀지도 않는데요. 생각해 보니 제가 쓴 이야기 중에 그런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요.(ㅎㅎ) 그래서 유독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산타클로스 사망 사건
「산타클로스 사망 사건」 역시 본격 미스터리를 향한 내공을 쌓기 위해 구상한 이야기입니다. 묘사 없이 대사로만 진행되는, 저로서는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 본 글이었어요.
AI 루돌프와 수많은 산타가 사는 세상이 존재합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태어나고 눈감는 그 순간까지, 산타들은 산타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지녔습니다. 2024년 12월 25일, AI 루돌프들이 지배하는 산타 타운에서 산타64가 사망한 채로 발견됩니다. 용의자는 산타64와 같은 집에서 살고 있던 산타1328, 산타13, 산타571입니다.
산타 타운은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현실과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산타 타운이 거울처럼 현실을 비춘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고,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한 편으로 끝내기는 아쉽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작년에 추리 보드게임에 작가로 참여하게 되어,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산타 타운을 다시 배경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산타 타운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 엔딩을 향하여
브릿G에 처음 업로드했던 작품입니다. 사실, 업로드할 때만 해도 독자분들이 읽어 주실 거라 생각하지 못해 한동안 잊고 있던 글이었어요. 몇 주 만에 브릿G에 들어갔는데 추천작으로 선정이 되어 있었고, 독자분들도 반응을 남겨 주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명확히 그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저는 죄책감이란 감정에 언제나 큰 흥미를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제 이야기에는 죄책감을 가진 주인공이 자주 등장하는데, 「엔딩을 향하여」도 그중 하나입니다.
- 한국 전통 놀이 부흥회 – 제기차기 서바이벌
‘한국의 전통 놀이가 다시 인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방식이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시리즈입니다. 모든 전통 놀이를 섭렵하겠다는 위대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 후에 「오징어 게임」이 나오는 바람에 슬픈 마음으로 멈추게 되었습니다.
- 추리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브릿G에서 정말 좋아하는 작품은 「추리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입니다. 사신 탐정이라는 별명이 붙은 명탐정, 저택에서 벌어지는 가문의 참극, 동요 가사대로 살해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진짜 명탐정 레나 브라운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작품이었어요. 빙의물은 처음이었는데, 이 소설 덕분에 빙의물의 매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Q. 일과 중 작가님만의 글을 쓰는 루틴이 있는지요? 반대로 글을 쓰지 않을 때 하는 취미나 다른 일상의 루틴은 어떠한지도 궁금합니다.
A. 아주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소설을 써 오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출퇴근하는 직장을 다시 다니게 되었는데요. 짧은 시간 동안 이직도 하는 등 여러 일들이 있어서, 부끄럽지만 아직은 작업 루틴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중입니다.
취미는 너무 많아서…… 어떤 걸 소개해 드려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네요. 책이나 영화를 제외하고 말씀드리면 게임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공포 게임과 추리 게임을 정말 좋아합니다. PC 게임, 닌텐도 게임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방탈출 게임과 보드게임에도 관심이 많아요. 과거에 방탈출 기획자로 일하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엄청난 규모에 배우분들이 다수 등장하는 스토리 체험형 방탈출이 많아지고 있어 즐겁습니다. 작년에는 「범인은 이 안에 있다」라는 추리 보드게임에 외주 작가로 참여해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어요. 게임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계속 놓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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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트포비아 텀블벅 페이지
Q. 작년에 참가했던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 행사인 콘텐츠 IP마켓에서 여러 영상 제작자들과 미팅을 진행하던 중 작가님과 직접 미팅을 진행했었다던 업계 담당자의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어 신기하고 반가웠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청소년 소설, 한국적인 오컬트 판타지를 비롯해 다채로운 장르소설을 꾸준히 발표하고 계신데요,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싶은지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이상하고 독특한 소재와 배경으로 보편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무섭고, 기괴하고, 피가 쏟아지고 내장이 너덜거리는 와중에도 희한하게 눈물이 울컥 솟아오르는 이야기요. 호러, 크리처물, 스릴러 등 그동안 써 온 장르에 충실하고 싶고, 새로운 도전이라면 앞서 말씀드렸듯 정통 추리물일 것 같아요. 차곡차곡 내공을 쌓아 긴 호흡의 본격 미스터리를 언젠가 꼭 써 보고 싶습니다. 거대한 저택, 괴짜 탐정과 유언장 발표 전 사망한 대부호, 눈물을 훔치는 미망인과 복잡하게 얽힌 가계도, 전형적이고 익숙한 캐릭터들을 통해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작가라는 직업으로 절 소개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제게 그럴 능력과 자격이 있는 건지 한순간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습니다. 매번 읽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감사한 분들 덕분에 저에게는 아직 이야기를 쓸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영광스럽게도 브릿G에서 첫 인터뷰도 하게 되었고요. 더 이상 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 이야기를 읽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모든 분께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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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보릿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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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작: 엄마A 그리고 좀비 / 탐정 김희영희 / 괴담 – 방탈출 카페 제작 중에 생긴 일
이벤트 기간: 2025년 2월 3일(월) ~ 2025년 2월 16일(일) / 당첨자 발표: 2025년 2월 17일(월)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