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에서 장편으로’ 최종 선정작 「토마토 정원」 한소은 작가 인터뷰!

2025.1.14

결국은 캐릭터, 스토리가 지루하건 말건 하나의 이야기를 어쨌건 끝까지 보거나 읽도록 만드는 힘은 결국 잘 만든 캐릭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은 자주 하게 돼요.

2023년 진행된 제1회 ‘단편에서 장편으로’ 프로젝트를 기억하시나요? 접수된 수십 건의 장편화 시놉시스에서 1차 선정된 5편의 작품 중, 그 최종 선정작으로 피스오브마인드 / 한소은 작가님의 장편소설 「토마토 정원」(가제)이 출판 계약까지 완료되었더랬습니다. 이 소식을 브릿G 회원분들께도 함께 전하며, 한소은 작가님과 지난 일과를 돌아보며 소회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한소은 작가님께서는 그간 브릿G를 통해 발표한 단편 「은수」, 「치마」, 「나에게 있는 것 너에게 없는 것」, 「쥐」, 「이베리코 돼지의 맛」 등을 통해 인물 간의 관계 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는 심리 묘사와 더불어, 가족 등 공동체 관계 내 부조리와 현대인의 불안 등을 드러내며 고유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 활동을 꾸준히 선보여 왔는데요, 제1회 ‘단편에서 장편으로’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편집장의 시선에 선정되었던 단편 「은수」를 장편으로 개작하는 작업을 1년여간 편집부와 함께 진행하였더랬습니다.

출판에 앞서 장편으로 개작된 「토마토 정원」의 면모를 일부 엿볼 수 있는 질의응답도 짧게나마 담아 보았는데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꾸준히 집필을 이어 나가며 최종 출판 계약이라는 결실에 이르기까지 지난 시간의 감회를 전해 주신 한편, 2025년을 맞이해 새롭게 진행되는 제2회 ‘단편에서 장편으로’ 프로젝트 개최 소식과 더불어 이후의 시간을 건너올 작가님들께 건네는 응원의 메시지도 담긴 한소은 작가님의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Q. 브릿G에서 ‘단편에서 장편으로 프로젝트’ 진행 소식을 접했을 때 그동안 편집부 추천을 받았던 작가님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단편 「은수」를 선택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을지요. 원래부터도 「은수」의 장편화를 구상하셨던 부분이 있었는지, 아니면 프로젝트 공고를 보고 나서부터 고민을 하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A. 공고가 올라오자마자 제가 브릿G에 올렸던 작품목록에 들어가 제목을 쭉 살펴봤어요. 느낌이 오는 작품이 이 중 하나는 있겠지, 기대하면서 내려가는데 「은수」에 눈길이 팍 꽂히더라구요. 그래, 난 늘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지. 여기서 내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지. 단편 「은수」에 나온 인물들이나 주제를 다룬다면 장편으로도 재미있게 잘 쓸 수 있겠다, 싶었어요.

 

🔖나이는 삼십대 중반쯤, 똑 떨어지는 단발머리가 세련돼 보이는 여자였다. 큼지막한 흰색 남방 안으로 엿보이는 새하얀 목선이 퍽 청결한 인상을 주었다. ―단편 「은수」 중에서

 

Q. 단편 「은수」는 이름이 비슷하다는 우연한 접점이 있는 관계 내에서 육아라는 환경으로 인해 한 인물이 점차 다른 인물에게 의존하게 되는 상황 설정과, 그 과정에서 점차 비틀리는 관계에 대한 심리적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장편으로 개작한 「토마토 정원」에서는 2030년의 근미래로 설정이 되면서 시간적 배경도 달라졌지만 무엇보다 공동주택이라는 새로운 공간적 배경이 추가되었어요.

작가님께서 「토마토 정원」이라는 제목을 붙여 주신 것도 작중 심리적 지배자로 군림하는 은수의 텃밭에서 자라는 토마토가 자가수분을 하는 식물이라는 점에 빗대어 그녀가 꿈꾸는 폐쇄적인 가족 공동체를 상징하는 의미를 담아 주신 건데요, 장편에서는 이처럼 공동주택을 주요한 배경으로 설정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작중 인물들의 밀폐된 관계 설정에 더없이 적합한 설정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흔한 거주 형태가 아니어서인지 공동주택이라는 특유의 공간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자연스레 생겨났기 때문인데요.

A. 단편 「은수」에서와 마찬가지로 「토마토 정원」의 주인공 역시 타인에게 육아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공동체 주택의 실질적인 주인 역할을 하는 은수에 대한 불신이 자라나며 증폭되는 둘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은수와의 마찰을 겪으며 주인공은 혹시 어긋난 건 저 여자가 아니라 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키워 가는데, 여기에 일조하는 건 은수와 각을 세우는 그녀를 되레 이상하게 여기는 입주민들의 태도입니다.

서로 얽힌 일상의 매듭으로 인해 사소한 갈등이 수시로 빚어지고 또한 그런 상황을 회피하기도 힘들다 보니 결국 심리적으로 서로에게 길들이기 쉬운 공간이 공동주택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을 쓰면서 국내에 지어진 공동체 주택의 실제 사례들을 여럿 참조했어요. 건물 외관과 내부 구조, 그 안의 세대 구성원과 그들이 모여 살게 된 계기 등을 살펴보면서 작품 속 공동주택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려 내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Q. 은수와 지수의 관계나 캐릭터 설정도 달라진 부분이 있지만 장편으로 개작하는 과정에서 여러 인물들을 추가하고 관계성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꽤나 까다로웠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환경을 지닌 제각각의 인간군상이 드러나는 이야기인데요, 새로운 인물들을 직조할 때 주안점을 두고 고려했던 부분이 있었을까요.(이런 인물을 그려 보고 싶었다든지……) 처음 응모해 주신 시놉시스 이후로도 크고 작은 캐릭터 설정을 조금씩 바꿔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는데요.

A. 작품에 어떤 인물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 인물이 플롯의 전개나 작품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일 거예요. 저 또한 이런 목적으로 꽤나 다양한 인물들을 이야기 속에 끌어들이게 되었는데요. 굳이 구분하자면 버림받거나 소외된 존재들,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이들과 착취하는 이들,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눠 볼 수 있을 듯해요. 스토리가 부여한 이 큰 틀 안에서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인물들이 부대끼며 각기 다른 욕망과 욕구들이 서로 얽히도록 했고, 그 과정에서 취약계층 돌봄이나 노인 간병과 같이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숙제들을 자연스레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Q. 「토마토 정원」은 여러 사건과 범죄가 연달아 발생하며 인물들의 욕망과 이전투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범죄 스릴러로서의 면모도 많이 부각되었습니다. 실제로 사건들이 과감하게 전개되는 부분도 있고요.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에 능한 작가님의 개성과 장점도 여느 때처럼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범죄 미스터리 장르로도 확장을 시도해 보고자 했던 부분도 있었던 걸까요. 집필하시면서 참고가 됐거나 구상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나 영화, 드라마 등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쓰는 능력과는 별개로 저는 범죄 미스터리를 좋아합니다. 평소 강력 범죄에 관심이 많고, TV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는 거의 한 편도 빠짐없이 봤고요. 작품을 쓰던 중 등장인물이 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던 때가 있었어요. 처음엔 굳이 죽일 것까진 없지 않나, 싶었지만 결론은 역시 죽이는 것이 옳다, 였습니다. 근미래 쇠락한 도시 변두리라는 배경,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 상황의 끝에서 죽음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김빠지는 일이 아닌가 싶은 거예요. 클리셰일지언정 나 역시 그런 독서 경험을 원하니까, 이왕 쓸 거면 과감하게 두엇 죽여 보자(?)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는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는 편인데,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를 보면서 인물 간의 심리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려면 하나의 정해진 공간에서 풀어내는 게 용이할 거란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 밖에 초고령사회 일본의 도심 공동화 현상이나 노인 문제를 조명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근미래 한국 사회의 모습과 인물 묘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Q. 이상 심리를 지닌 안타고니스트로서 은수의 모습이 부각되었던 단편 「은수」와 달리 「토마토 정원」에서는 손쉽게 악인으로 치부될 수 있을 만한 인물들의 이면도 새롭게 조명되는 지점들이 있어서 더 풍부하고 확장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장편에서는 인물의 복잡한 다면성을 그리기 위해 보다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한데요.

A. 흔한 말로 악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하잖아요. 악한 행동 이면의 동기는 오히려 선할 수도 있고, 또 한 번 악인이 죽을 때까지 악인이란 법도 없고요. 작품 속 은수가 그런 대표적인 인물인데, 남을 돌보면서 또한 착취하기도 하는 존재거든요. 인물들의 행동뿐만 아니라 기저에 깔린 욕구와 동기를 함께 담아내 각각의 캐릭터를 창조하려 나름 애썼습니다.

결국은 캐릭터, 스토리가 지루하건 말건 하나의 이야기를 어쨌건 끝까지 보거나 읽도록 만드는 힘은 결국 잘 만든 캐릭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은 자주 하게 돼요.

 

Q. 처음으로 마무리된 ‘브릿G 단편에서 장편으로’ 프로젝트 자체가 꾸준히 같은 일과를 반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2023년 9월부터 2024년 4월까지 8개월 동안 매달 특정 분량 이상의 원고를 집필해 담당 편집자에게 보내야 했고, 이후 4개월간은 초고 완성고를 마무리하는 일정이었는데 매번 기한에 맞춰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주셨습니다. 혹시 이 같은 정기적인 일정 관리와 담당자의 피드백이 소설 집필에 도움이 된 부분이 있었다고 느끼셨는지요. 또는 그간 작업하면서 느끼셨던 어려움이나 고민 등 여러 소회를 편히 나눠 주시면 다음 프로젝트 진행 시 편집부에서도 감사히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A. 이전에 장편소설을 써 본 적은 없지만, 일정 관리를 해 주시는 편집자님의 존재가 없었다면 과연 프로젝트를 완주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매달 뻘글(?)을 꼼꼼히 읽어 주시는 정성이며 따뜻한 격려가 지친 글쓰기에 위로가 되었던 건 두말할 나위가 없고요, 마감 기한을 정해 두고 매달 정해진 분량을 제출하는 방식 또한 머릿속의 방대한 이야기를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배분해서 쓰는 데 도움이 됐어요.

다만 이렇게 하려면 이야기의 얼개가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짜여 있어야 하는데, 미리 치밀하게 구상하고 쓰는 저 같은 사람도 있는 반면 초고는 자유롭게 쓰고 재고에 오랜 시간 공을 들이는 작가님들도 있는지라 이런 방식이 반드시 모든 분들에게 통한다고는 볼 수 없을 듯해요.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건 그야말로 가뭄 속 단비와 같은 담당자님의 피드백입니다. 초고가 마무리된 뒤에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코멘트를 주셨는데, 독자의 시각을 전문가의 의견으로 미리 가늠해 보며 특정 인물의 비중이나 세부 내용을 수정해 작품의 대중성과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어요.

 

Q. 「토마토 정원」은 완성 초고 이후 또 한 번의 피드백을 반영해 수정고까지 집필되었고, 현재는 출판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그간 여러 단편들을 출간하셨지만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 집필과 출간에 대해 기대되는 점이나 브릿G 작가님들을 비롯한 회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이번 프로젝트로 출간의 결실을 맺게 되어 더없이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퇴고의 힘』이라는 책에 이런 문구가 있더라고요. 작품 하나를 쓴다는 건 여기저기 문을 열어보고 빈방의 문은 닫으면서 복도를 계속 걸어가는 과정이라고. 무수히 많은 빈방의 문을 닫으며 고통스런 걸음을 내딛다 보니 어느새 아쉬운 복도 끝에 이르렀네요. 다음 회에는 또 어떤 작가님이 복도를 완주하시게 될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제1회 단편에서 장편으로 프로젝트 선정작 결과 발표와 더불어, 브릿G 오픈 8주년을 기념하며 2025년도 제2회 ‘단편에서 장편으로’ 프로젝트 신규 접수를 진행합니다.

브릿G에 공개 등록된 단편 중 편집자의 추천을 받았거나(편집장의 시선 포함) 출판 계약 및 공모전 수상 등의 이력이 있는 단편에 대한 장편화 시놉시스 파일을 접수받습니다. 자세한 내용 살펴보시고 브릿G 작가님들의 많은 관심과 신청 부탁드리겠습니다.

제2회 단편에서 장편으로 프로젝트 공고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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