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친절한 노부부인 줄 알았다. 뒷마당에서 시신이 잇따라 등장하기 전까지는.
내 옆집에 사는 노부부는 무척 선량하다며 동네에서 인심이 좋다고 소문이 난 부부였다. 남편인 노신사는 작은 교회의 목사고, 아내인 노부인은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노부부는 몹시 인자하고 소탈한 사람들이라서 그들의 집 뒷마당에서 시신이 잇달아 등장하는 사건이 발생해도 사람들은 친절한 노부부가 시신을 암매장할 것이라 믿지 않았다.
공영 방송사의 기자들은 물론 요즘 유행하는 유튜버들이 들러붙으며 ‘노부부 시신 암매장 사건’에 대해서 취재를 한답시고 주민들을 들볶았다. 주민들은 짜고 친 것처럼 “노부부는 그런 짓을 할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여 호소했다.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다면 노부부의 뒷마당에 시신들을 암매장할 것 같은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노부인이 운영하는 보육원의 아이들은 어느 날 사라진대도 찾는 이가 없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국과수 조사결과를 기다리며 노부인을 관찰했다. 노신사의 교회에 다니는 주민들도. 주민들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근거 없는 믿음은 종교를 향한 믿음과 같았다.
한 유학생이 노부부와 잠깐 나누었던 대화를 제보한 것은 그로부터 2주 뒤였다. 그는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노부부가 운영하는 보육원에 갔었고,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네. 저희는 아이를 무척 좋아한답니다.”
노부부는 그렇게 말하고 웃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노부부는 체포되지 않았다. 노부부는 둘 다 몇 년 전부터 관절염과 당뇨 등의 질환으로 제 몸 가누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어느 시신이 매장된 시점에는 두 달 동안 유럽 여행 중이었다.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고 평판이 어땠는가에 관계없이 이런 범행을 장기간 벌이기에는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들어오시지요.”
“아, 실례합니다.”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와 유튜버들을 헤치고 온 나를 노신사가 무덤덤하게 맞이했다. 유명한 신문 잡지 기자나 유튜버들을 두고 굳이 조회 수 5천도 될까 말까 하는 변두리 유튜버인 나와 인터뷰를 하겠다고 한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옆집 사는 유튜버라 흥미를 끌었던 걸까. 나는 노신사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간 수많은 추측이 오갔다. 시사 취재 프로그램부터 시작해서 SNS에 올라온 추측 글까지 다들 한마디씩 말을 얹었다. 수상한 존재의 개입이나 정부의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부터 어리숙한 노부부는 이용당하기만 했을 뿐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노부부가 범인이 아니라는 수사 기관의 공식 발표를 믿지 못하고 여전히 그들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노부부가 모든 인터뷰를 거부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터였다.
나는 인터뷰 할 내용을 적어 온 노트와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옆집에 살았기에 사람들이 이 주변에 진을 치고 얼마나 지독하게 그들을 괴롭혔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먼저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아, 영상, 괜찮다고 하셨죠?”
명함을 내밀었고 노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휴대폰을 거치대에 고정하고 촬영 각도를 잡았다. 조명이 충분하지 않았다. 커튼을 젖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깥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노부부가 원치 않을 듯했다. 나는 녹화 시작 버튼을 눌렀다.
‘일단은 무죄 추정의 원칙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단도직입적?’
나는 노트의 질문 목록들을 살피며 잠시 생각했다. 질문들 사이에는 화살표들이 어지러이 연결되어 다양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키며 말했다.
“뒷마당은…… 뒷마당은 자주 가시나요?”
한심한 첫 질문이었다.
“일요일마다 저는 교회 신도들과 함께 예배를 마치고 뒷마당에서 티타임을 가집니다.”
노신사가 어렵게 입을 열어 말했다. 노부인이 이어서 말하였다.
“페퍼민트, 캐모마일, 블루 멜로우, 로즈마리, 레몬그라스 같은 그런 허브티를 우려서 마셨어요. 저희 집 뒷마당에선 조촐한 차담만 나눌 뿐이어요.”
무죄 추정의 원칙. 나는 노부부의 말을 믿기로 했다. 노부부가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노부부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가 없다고 밝혀졌다. 강력계 형사들과 수사관들이 20시간 넘게 조사하면서도 시신들과 아무런 관련성을 찾지 못했다면, 노부부의 말은 진실할 것이다.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지만요.”
노신사가 뒷마당 쪽으로 고개를 약간 돌리며 덧붙였다. 하긴, 그 끔찍한 곳에서 어떻게 티타임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떠돌이 개가 뒷마당에서 뭔가를 파낸 그날부터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는데.
“그러고 보니…… 뒷마당에서 시신을 파냈다던 개 있지요? 그 누구도 그 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더라고요. 당신은 혹시 그 개에 대해 아는 게 있을까요?”
노부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의아해졌다. 마을에 갑자기 웬 개가 나타나 이웃집 뒷마당을 파헤쳤는데도 마을 사람들 모두가 여상히 넘겼다. 친절한 노부부의 뒷마당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으니 떠돌이 개 정도는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넘긴 것이겠지. 그렇지만 떠돌이 개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기이한 행동이 미심쩍었다. 물론 인간보다 예민한 개의 후각으로 땅속 시체의 냄새를 맡아 우연히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그게 저도 궁금…….”
“큰일 났습니다! 모두 나와보세요!”
내가 뭔가 말하려고 했을 때 한 남자가 밖에서 소리쳤다. 그 소리에 인터뷰는 중단됐고 우린 집 밖으로 나갔다.
그건 뭐라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초현실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주술적이라고 해야 할까. 현실감각을 마비시키는 듯한 기이한 장면이 문을 열자마자 눈 안으로 펄쩍 뛰어 들어왔다. 문 앞에 잘린 개의 목이 놓여있었다.
“누가 던졌어요!”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사람 중 누군가가 외쳤다. 술렁임이 인파 사이로 퍼져나갔다. 던진 사람이 누구인지 찾고 있는 것이리라. 그것이 거대한 슬라임의 물결처럼 느껴졌을 때, 노부인이 개의 주둥이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난 개 주둥이에 물려있는 쪽지를 볼 수 있었다. 둥글게 말린, 주홍빛으로 군데군데 물든 손바닥만 한 쪽지 한 장. 나는 그걸 조심스럽게 빼내어 펼쳤다.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마라.]
붉은 글씨로 적혀 있는 쪽지의 문구에 모두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무어라 말을 하려던 찰나 옆에 있던 청년 하나가 쪽지를 낚아챘다.
“이것 좀 봐요! 어떤 자식이야? 이따위 장난을 친 게.”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거친 게 남자 글씨 같은데? 아냐, 여자일 수도 있어. 저 시뻘건 거, 설마 피로 썼나? 그 와중에도 유튜버들은 신이 나서 이 광경을 방송하며 조회 수를 올리고 있었다. 저자들 가운데 하나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든 나는 개 머리를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았다. 아, 역시. 나는 노부부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거, 모형이네요.”
개 머리가 모형이란 걸 알자마자 유튜버들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노신사와 노부인은 안도하며 주님께 기도했다. 군중들의 집요한 관심을 받는 것은 몹시 괴로운 경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홍빛 쪽지에 적힌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마라”라는 글귀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가 쪽지를 반듯하게 접어서 바지 주머니 속에 넣었다.
다시 노부부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서며, 나는 방금 소동이 일어나서 이득을 볼 자가 누구일지 얕은 추론을 해보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장면으로 조회 수를 얻을 누군가의 조작 방송 행위…….’
하지만 뒷마당에서 시신을 발견한 개와 같은 모습이라는 게 어딘가 꺼림칙했다. 만약 그게 모형이라는 걸 몰랐다면…….
‘그 개가 죽었다고 생각하게 되겠지?’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마라”라는 쪽지의 내용이 떠올랐다. 개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개가 죽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뭘까?
노부부가 끙 소리를 내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나는 여전히 영상을 찍고 있는 핸드폰의 촬영 각도를 살피며 소파 반대편에 다시 앉았다.
“많이 놀라셨죠?”
내가 묻자 노부인이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다.
“아무리 가짜라고 해도 그건…….”
‘너무 진짜 같았죠.’
나는 속으로 노부인의 말을 대신 끝맺었다.
“인터뷰, 괜찮으실까요? 조금 쉴까요?”
노신사는 노부인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노부인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바로 이어서 하죠. 시작한 일은 끝내야 한다는 게 제 신념이거든요.”
신념이라, 꽤 흥미로운 단어 선택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아까 하던 얘기를 이어 가자면…….”
“크억!”
“괘, 괜찮으세요?”
노신사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신음하더니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모두 경황이 없을 때 한 남자가 문을 두드리며 경찰 배지를 보였다.
“실례하겠소. 누가 쓰러졌다던데?”
‘경찰?’
나는 경찰이라는 남성이 어떻게 타이밍 좋게 노신사가 쓰러지자마자 왔는지 궁금해할 겨를도 없이 그의 기세에 눌려 엉거주춤 옆으로 비켜섰다. 경찰이 노신사의 상의 단추를 푼 후 그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 핸드폰은 여전히 뜨겁게 발열하며 그 모든 광경을 빠짐없이 찍고 있었다.
노부인이 옆에서 손을 벌벌 떨며 쉰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노신사가 몸을 비틀며 가래가 끓는 소리를 냈다. 경찰은 나를 가리키며 구급차를 부르라고 했고, 당황한 나는 거치대에 둔 핸드폰을 잊고 허둥지둥하다가 집 밖으로 나가 몰려있던 사람들에게 구급차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난 봤다. 인파 저 너머에,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개 한 마리를. 목이 잘린 개 모형과 닮은 개였다. 아니, 똑같았다. 꼬랑지만 보았지만 분명했다. 검고 기다란 꼬리.
나는 황급히 집 안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집어 들고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은 조용했다. 이리로 개가 들어왔는데. 나는 개와 조우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펄펄 끓는 핸드폰을 내뻗었다. 강아지야. 개를 부르며 휘파람을 불고 입술을 모아 소릴 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조용했다. 내가 너무 개에 매몰된 걸까. 개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타이밍 좋게 나타난 경찰에게 관심을 더 가져야 했을까. 카메라를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손이 뜨끈뜨끈했다. 돌아가자.
뒤를 돈 순간 골목 한구석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반대쪽에선 사이렌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유튜버라면 모름지기 사건이 훨씬 더 많이 벌어질 장소를 택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이 많은 장소로, 소란스러운 장소로 가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내 발걸음을 골목 더 깊숙한 곳으로 이끈 것은 바깥의 유튜버들과는 다른 나만의 차별점을 만들겠다는 욕심이었다. 골목 밖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든 어차피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와 함께.
나는 개가 사라진 골목 사이를 헤매며 개를 찾아 나섰다. 골목은 좁고 복잡했다. 폭은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였고 빽빽한 회색 콘크리트 벽은 내 키보다 훨씬 높았다. 나는 벽을 더듬으며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안쪽으로…….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처럼 보일 때마다 끝까지 가서 고개를 돌리면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길로 향하는 검은 무언가를 항상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이 개라고 확신하며 계속해서 나아갔다. 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골목은 마치 미궁처럼 느껴졌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정신없이 개를 쫓은 지 5분쯤 되었을까. 나는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나는 어느새 어디인지도 모르는 골목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길을 잃어버렸다. 낭패였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내 앞의 골목길을 바라보았다. 정말 좁고, 긴 길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 개가 있었다. 나를 바라보며.
나는 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개는 다시 한번 골목의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나는 전속력으로 개를 따라갔지만 결코 개를 잡지 못하였다. 그러나 개가 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은 없었다. 개는 계속해서 잡힐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나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길을 잃어버린 이상, 나는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숨을 가다듬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 골목이 미궁이라면, 개는 나에게 주어진 아리아드네의 실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개를 쫓았다. 수많은 갈림길을 지나고, 수많은 벽을 더듬어…… 마침내, 나는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였다.
노부부의 뒷마당에서 발견된 여러 구의 시신 중에서 파란 원피스를 입은 아이, 그 아이가 개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너, 너, 어떻게 살아 있어?”
나는 귀신이라도 본 심정이었다. 뉴스에서 나온 사진과 눈앞의 아이는 같은 사람이었다.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마라.]
설마, 모두가 속고 있는 걸까. 여태껏 알고 있던, 안다고 생각했던 사실들이 사정없이 뒤엉켰다. 세상이 핑 도는 듯한 현기증에 비틀거리다가 벽을 짚었다.
아이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입을 오물거렸다.
“끝났어요? 인제 나가도 돼요?”
개의 머리는 모형이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혼자니?”
뒷마당에서 시신들이 연달아 나왔다고 했다.
“언니 오빠들도 있어요.”
그들도 모형이었다면.
나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노부부, 개, 경찰, 아이. 이 모든 것이 고작 오늘 하루 만에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인가? 나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 믿어야 할까?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마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을 시작한 지 겨우 1분, 배터리가 없어 카메라 앱이 자동 종료됐다.
“이런 젠장! 어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하는데…….”
“저를 따라오세요.”
그때, 아이가 내게 손짓하며 말했다. 나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아이를 쫓아갔다. 아이는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를 따르는 나는 숨이 턱턱 차오르도록 뛰어야 겨우 쫓아갈 수 있었다. 따라가면서 문득 머릿속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마라”라는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어린아이가 어찌도 이리 빠르게 걸을 수 있단 말인가? 과연 저 아이가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 걸까?’
아이의 고개가 서서히 내게로 향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아저씨, 아까까지 손에 들고 있던 그걸로 찍고 있지 않았어요?”
등은 여전히 내게 향한 채 목이 180도로 꺾인 아이가 손가락으로 내가 쥔 핸드폰을 가리켰다. 핸드폰은 여전히 핫팩처럼 뜨거운 상태라 켜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 맞아. 나는 유튜버거든.”
“유튜버? 그게 뭐예요?”
요즘 아이답지 않은 순수한 질문에 나는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과연 나는 무엇인가, 잠시 생각했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영상으로 찍어서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다.”
“으응, 그렇구나.”
아이는 내 답변에 수긍하면서도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지금 영상을 찍고 있어야 하지 않아요?”
“맞는 말이지만 그럴 수 없어. 배터리가 없어서. 핸드폰도 뜨거워졌고.”
“도와줄게요.”
갑자기 핸드폰이 켜졌다. 핸드폰 배터리는 순식간에 백 퍼센트가 되었고 뜨거웠던 핸드폰은 어찌 된 영문인지 적당하게 식어 있었다. 어리둥절할 틈도 없이 아이가 입을 열었다.
“이제 됐죠?”
“으, 응.”
그러고는 아이는 핸드폰을 가리켰다. 나는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고 카메라 앱을 켰다. 어정쩡한 자세로 핸드폰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부터 눈을 떼지 말아요.”
거센 바람이 불었다. 신기하게도 먼지 하나 날리지 않았다. 옷가지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나에게만 부는 듯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이 내가 아는 얼굴로 바뀌었다. 심장을 움켜쥐고 쓰러지던 노신사……. 나는 핸드폰을 보았다. 제대로 녹화되고 있는 거야? 내 눈에만 이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화면에는 레코드 타임 그리고…….
“멍!”
개가 짖었다.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야!”
누군가가 외쳤다. 잠시 후 무언가를 파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하늘이 보였다. 회색. 빗방울이 떨어졌다. 내 몸으로.
“이런 일이.”
내 몸을 파내는 사람이 보였다. 경찰복을 입고 있었다. 그가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흙투성이의 휴대폰. 그는 그 휴대폰을 내 얼굴 앞에 갖다 댔다. 휴대폰의 잠금이 해제되는 것이 보였다. 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주머니에서 또 다른 휴대폰을 꺼내서는 전화를 걸었다.
“나야! 그래, 응, 찾았어, 그런데 그 주인이…….”
그는 숨을 한 번 길게 쉬더니 덧붙였다.
“죽었어.”
나를 말하는 거구나.
“응. 그래, 그래, 그리고 더 놀랄 만한 게 있어. 아, 이거 참. 여기 목사님 댁 뒷마당이야.”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 그랬구나. 나는 죽었어.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영원히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끝날 거였지. 조금 전에 개가 내 휴대폰을 파내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 핸드폰 안에 내가 죽기 전의 일들이, 내가 죽은 후의 일들이 전부 다 담겨있다.
노부부는 처음부터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 사회에 공헌하는 종교인의 삶을 인터뷰하러 간 나에게 그들은 엉뚱하게도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일을 거리낌 없이 풀어놓았다. 녹화 중인 휴대폰 앞에서.
“가톨릭에서 고해성사하는 이유를 알겠군요.”
“그렇지요? 다 털어놓으니 정말 마음이 편해지네요.”
노부부는 모든 진술을 마친 뒤 미소 지으며 그렇게 주고받았다. 나는 굳어 있었다. 경악해서가 아니라 노부인이 준 차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나를……. 아,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본 그 아이. 목사는 무서워서 우는 아이를 꽉 붙잡고 있었다.
“어, 뭐지?”
내 몸 주변을 살펴보던 경관이 다시 땅을 파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경관이 소리쳤다.
“맙소사, 어린아이잖아!”
개가 끙끙거리며 아이 쪽으로 갔다.
“내가 다롱이를 불렀어요.”
뭐?
“개 말이에요. 보육원에서 같이 살던 개.”
아이, 아니, 아이의 영혼의 목소리다.
“왠지 여기를 떠날 수 없어서 여기로 불렀는데, 오래 걸렸지만 와줬네요.”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하나다. 노부부는 영혼이 필요했다. 주인을 부를 재료가 될 영혼들이.
“다롱이는 땅을 잘 파거든요. 아저씨를 묻을 때 휴대폰도 던져 넣는 걸 봤어요. 그걸 파서 경찰한테 갖다 주라고 했어요.”
“대단하구나.”
내가 꿈을 꾸기 시작한 건 다롱이가 내 휴대폰을 파냈을 때부터였나 보다. 기억과 바람과 두려움이 뒤섞여 뒤틀린 꿈을. 빗줄기가 내 몸을 적셨다. 신음과 탄식과 욕을 내뱉으며 경찰관은 뒷마당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이거 정말 보통 일이 아냐. 그래, 그래, 뒷마당 전체가 시체들로……. 그래, 교회로 간 조는 몇 명이야? 조심하라고 해. 노인들이지만 어떻게 나올지 몰라. 응, 감식반 더 불러. 며칠이 걸릴지 몰라. 이건 단순 사건이 아니야. 끝까지 밝혀야 해.”
경찰관의 전화 소리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렸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모양이다.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 후 노부부와 신도들이 줄줄이 입건되었다. 용의자로 체포된 노부부는 신념에 가득 차서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해주실 겁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어요. 우리 아이들을, 수많은 개, 나아가 이 땅의 수많은 생명을 구원해주실 겁니다. 아아, 주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친절한 노부부인 줄 알았다. 뒷마당에서 다롱이가 내 휴대폰을 파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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