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추모하며 (上)

난 그 사람 얼굴을 몰라요. 마주친 적은 몇 번 되는데, 얼굴은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언제나 얼굴까지 다 가리는 새하얀 오토바이용 헬멧을 쓰고 있었거든요.

 

 

그래 내가 좀 도움을 받긴 했소. 뭐 씨발, 내가 그 사람 없었다고 못 살아 남았을까 봐? 아니, 내가 결핵만 안 앓았으면 해병대 70기로 갔을 사람이야!

아무튼 좀 이상한 놈이었소. 아니 8월에 다 벗고 있어도 더운 날씨에 헬멧을 안 벗더라고. 혹시나 싶어서 얼굴 좀 보자는 데도 못 들은 척 꿈쩍도 안하더라니까. 뭔가 뒤가 구린 게 분명해.

 

 

아…말하면 돼요?

그러니까……저는 살아남았어요. 많은 사람이 저처럼 운이 좋지는 못했죠. 그런 때였고, 그런 장소였으니까요. 제 친구 중 하나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일주일 동안 버티면서 좀비보다는 사람이 더 무서웠대요. 사태가 발생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그런 사람들이 득실거렸죠. 딱 그런 때였어요.

그런 시기에 남들을 도우러 다니다니, 참 이상하죠. 항상 우리 가족, 우리 공동체에서만 돕고 타인은 배척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그 분’은…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는지…….

저도 몇 번 도움을 받았죠. 아마 그 분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는. 그 분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까.

아니요. 그럴 리 없어요. 그 분은 분명 어딘가 살아 계실 거예요. 스스로 누구신지 밝히지 못할 사정이 있으신 거겠죠. 분명 지금도 좀비 사태 때 자신이 한 일을 알리지 않으신 채로, 어디서 남을 도우며 살아가고 계실 거예요.

절대로 그러실 리 없어요……. 아직 제대로 된 감사 인사조차 드리지 못했는 걸요…….

 

 

저는 학원에 갇혀있었어요!

친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점점 식량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던 대형마트로 식량을 구하러 갔는데, 그…… 다들 아시잖아요? 어쩌면 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걸…….

저희는 문 앞에서 열어 달라며 소리치는 일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좀비들이 가까워질수록 미친 듯이 울며 문을 두드리는데 갑자기 큰소리와 함께 좀비들이 반대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네, 그분이었어요……. 저희 대신 미끼가 되어 오토바이를 타고 반대로 달려가셨고 그래서 살 수 있었어요……. 정말 생명의 은인이세요. 누군지 알 수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 그 또라이?

당연히 또라이죠. 나 살기도 바쁜데 남 구하겠다고 설치고 다니니.

혹시 ‘미끼’ 알아요? 낚시할 때처럼 좀비들 유인하려고 사람 썼다는 얘기, 못 들어봤어요? 들어봤죠? 보통 노인들이나 애들 많이 썼잖아요.

한번은 마트에 물건 좀 가지러 갔다 나오는데 하필 딱 입구에 좀비들이 들이닥친 거예요. 바로 그럴 때를 대비해서 미끼가 필요한 거죠.

다행히 우리한테… 아니, 아무튼 누가 할배 하나를 그쪽에 투척하더라구요. 타이밍 한번 기가 막혔죠. 좀비들이 그쪽에 몰려드는 틈을 타서 도망쳐 나오는데 갑자기 그 또라이가 나타나더니 굳이 좀비 떼를 뚫고 들어가더라니까요?

당연히 할배는 못 구했죠. 그 인간이 멀쩡히 빠져나온 게 기적이지. 하도 황당해서 그 인간한테 미친 거 아니냐고 하니까 다짜고짜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데… 아 씨발, 지금 생각해도 열 받네. 왜 날 때렸냐구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또라이 생각을.

 

 

그런데 참 신기했어요. 초반에는 그룹을 꾸려서 생존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사람은 항상 혼자 다녔거든요.
왜 ‘초반에는’ 이라고 했냐니. 무리 지어 다니던 사람들부터 감염되어 좀비가 되었으니까요. 전염병이잖아요. 당연한 얘길 물으시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은 특이하기보단 똑똑한 사람이었을지도요.

 

 

감독 양반, 내가…… 올해로 나이 쉰 셋이요. 스물에 서울에 올라와서 30년 가까이 이곳 대림동에 살았소. 거기 대림 중앙시장 아시오? 응? 모른다고? 우리나라에서 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오.

아무튼, ‘그 사건’ 이후 모두 ‘그 지경’이 되었지만, 나는 대림동을 떠날 수가 없었지. 그곳에 내 모든 것이 있었으니까. 내 재산과 내 가족들…….

하지만 그렇게 악착같이 6개월을 버텼는데, 결국 그것들에게 가족을 잃었고, 재산은 쓸모 없어졌지. 그때 저기 정육점 골목에서 그것들이 보였고, 무작정 그곳으로 달렸소. 내 감정을 쏟아낼 곳이 필요했던 것 같기도…….

짐승 잡는 커다란 칼을 겨우 한 번 휘둘렀나? 힘이 빠져 이제 죽기를 기다릴 무렵 그가 나타났소.

그! 그, 그래, 오토바이용 헬멧을 쓴 사람! 저 멀리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와 내가 쥔 칼을 제 손에 옮겨 잡더니 그것들을 쓸어버리는 것이었소. 한 번에 한 놈의 머리씩! 헬멧을 쓰고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웃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오.

모든 상황이 끝나고 그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졌지. 한마디 말만 남기고 말이야.

“딱 육 개월만 더 버티세요.”

 

 

아 맞아. 그랬죠. 그 사람, 만날 때마다 제게 그렇게 말했어요. “11개월만 버티세요”, “반 년만 버티세요”, “2달만 더 버티면 됩니다”. 마치 그 지옥이 언제 끝나는지 미리 보고 온 사람 같았어요.

그게 진짜든 아니든, 그 확신에 찬 목소리가 절 살린 거나 다름없죠. 사실, 여러 번 차라리 죽어버릴까 고민했거든요.

 

 

해요? 해도 돼요? 그럼 나! 나부터 할래! 아, 자기소개 안 해도 돼요? 어 씨…… 뭐부터 말하지?

그으…… 아저씨는 진짜 또라이인 게 분명해요. 우리 아빠도 힘 엄청 세거든요? 도장도 운영하고 제자들도 새까만 띠인데, 한 명이 넘어지니까 진짜 영화처럼 모두 무너졌단 말이에요. 그때 존나 무서웠는데, 존나 병×같이 도와달라는 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넘어진 누나, 형들이 물리니까 표정이……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변하는데, 그걸 영화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려니까 진짜 미치겠더라고요.

몸도 맘대로 안 움직이는데 아빠가 물리기 직전이라 저도 모르게 뛰었거든요? 근데 누가 다짜고짜 저를 발로 차더라고요. 진짜 농담 안 하고 바닥에 붕 떴다가 매트 쌓인 곳에 처박혔어요.

그래도 매트가 쌓인 곳이어서 곧바로 정신을 차렸는데, 물리기 직전이었던 아빠가 바로 옆에 있는 거예요. 근데…… 그렇게 정신 빠진 아빠 얼굴은 처음 봤어요. 그게 이상해서 아빠가 바라보는 곳을 보니까 좀비가 된 형들 머리를 게임 하는 것처럼 배트로 쳐부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도장에서 하얀 헬멧을 쓴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확실히 기억해요.

좀비가 된 제자들이 전부 죽는 걸 눈앞에서 본 거잖아요. 도장에서는 죽어도 안 울겠다는 아빠가 그렇게 우시는 것도 처음 봤어요. 바로 5분 전만 해도 나랑 얘기하고 있던 사람들인데, 너무 현실감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야구 배트 들고 있던 그놈이 갑자기 아빠에게 배트를 주더니 고갤 숙이고는 그냥 가버렸어요. 좀비가 밑에 더 많았거든요? 맨손으로, 미쳤냐고…….

 

 

어… 이 배트가 그런 의미가 있었나요? 관장님이 좀 맡아 달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러면 여기, 이 기둥에 있는 얼룩이 다 핏자국이란 소리예요? 세상에……. 손잡이 부분이 반들반들한 건 전 주인이 많이 써서 그런 거겠죠? 소름…….

저는 그날 도장에 안 나갔어요. 맨날 지각한다고 한 소리 듣는 것도 싫었는데 그날 따라 유독 눈이 안 떠지는 거예요. 취미 반인데 뭘 그렇게 팍팍하게 구는지, 불만이 있기도 했고.

그런데 제가 누워서 미적대는 사이에 거기서 모두 죽어버린 거예요. 그때는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몰랐죠.

관장님이 이걸 왜 맡기셨나고요? 저야 모르죠. 원래 질문이 많은 타입도 아니고. 뭔가 심오한 뜻이 있었다면 관장님이 먼저 말씀해주지 않으셨을까요? 이거 가져가시겠다고요? 그러세요. 사람 죽인 거라니까 더 갖고 있고 싶지도 않네요. 아, 좀비죠, 그렇죠.

 

 

좀비들을 그렇게 스스럼없이 죽였다고요? 좀… 의외네요. 전 그 사람이 무기를 휘두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그는 좀, 뭐랄까, 필요할 때가 아니면 숨어 다니는 쪽에 가까웠죠.

도움이라는 것도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음식들을 주거나, 멀리 이동해야 할 때 좀비들이 적은 길로 안내해주거나, 그런 도움을 주로 받았어요.

아아, 그렇다고 무기를 안 들고 다닌 건 아니었네요. 기억난다. 처음 그랑 만났을 때 등에 야구 배트를 매고 있었어요. 운동선수냐고 물으니까 그건 또 아니랬어요. 두 번째 만났을 땐 그걸 안 가지고 있길래 어디서 잃어버렸나 했죠.

사태 발생 당시 어디에 있었냐고요? 전 종로에 있었어요. 나중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지만, 한동안은 거기서 살았죠. 물자도, 사람도 많아서 생존하기 좋았거든요.

사람이 많은 건 나중 가서는 마이너스 요인이었지만.

 

 

여성 분이셨어요. 그 부분은 확실해요. 아니……사실 확실하지는 않죠.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니까요. 그마저도 쓰고 다니시던 헬멧 때문인지 제대로 듣지도 못했지만요. 그래도 확신해요.

처음으로 뵈었을 때는…여름이었죠. 그렇게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자취방에 고립되어 있었는데, 식량이 떨어졌어요. 친구랑 교대로 먹을 걸 구하러 나갔는데, 친구 차례가 되었을 때 돌아오지 못했거든요. 아직도 연락이 없어요. 게다가 하필 집 근처에 좀비들이 늘어나서, 차마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분께서 창문을 두드렸고, 독특한 리듬감이 있는 노크여서 저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죠.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 손에 죽거나 그 사람을 죽여 잡아먹거나 하는 생각으로 문을 열었는데, 저에게 통조림과 건빵을 주셨어요. 간식으로 먹는 그런 건빵 말고요. 진짜, 옛날 사람이 먹었을 법한 그런 건빵이요.

세상에, 그런 걸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직접 만드셨을 까요? 하여튼 그 덕에 겨우 끼니를 떼울 수 있었어요. 그 분을 두 번째로 만날 때 까지는요.

 

 

뜯어 먹힐까봐 무서워서 그러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맞아요, 저도 만난 적 있어요. 하얀색 오토바이 헬멧 쓴 남자. 아니 얼굴을 본 건 아닌데…… 키가 꽤 컸으니까 그냥, 대충. 그 사람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었어요? 여자라고요? 아, 감독님도 모르시는구나.

그런데요 이 이야기 계속 해야 해요? 저는 그냥 좀비 다큐멘터리인 줄로만 알고 온 건데. 아니 그게…… 얘기 다 해야 해요? 뭐 나만 그러고 지냈던 건 아니니까 나는 당당한데. 아 그래도 이거 좀… 괜찮아요? 고소당하는 건 아니겠죠?

뉴스 보자마자 아는 형 공장으로 달려갔어요. 냉동 창고가 있거든요. 거기 고기랑 뭐랑 뭐 많단 말이에요. 아무도 안 오길래 거기서 한참 잘 지냈죠. 거기서 하얀 헬멧 그 사람, 만났는데. 좀 때렸어요. 아니 창고를 다 털어가려고 하니까. 정당방위였다고요. 오토바이요? 그런 거 없이 그냥 도망가던데.

 

 

꽤 여러 곳을 돌아다녔나 보죠, 그 사람?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서 그럴 수 있었던 걸까요?
아뇨. 실제로 타는 모습을 본 적은 없어요. 그냥 헬멧을 쓰고 다녔으니 막연히 오토바이도 있겠거니 짐작한 거예요.

 

 

글쎄요. 많은 곳에 돌아다니셔야 했으니까, 아마 온 동네를 걸어서 다니시진 않으셨겠죠.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계시니 오토바이를 탔겠지 싶으면서도, 사실 오토바이라는 게 소리가 상당히 요란하잖아요? 그런데 한밤중에 찾아오시는데도 그런 소리는 못 들었어요.

좀비 신음 소리가 아무리 컸다 해도, 오토바이 소리가 묻히지는 않을 텐데…….

 

 

솔직히 저는 그분 좀 무서웠어요.

좋은 분이신 건 알죠. 그분한테 도움도 받았었고. 좋은 분이라고 알긴 아는데 그냥 좀 흠칫 흠칫 하게 되는 거 있잖아요. 워낙 또 과묵하시기도 했고……. 가끔 그분이 말을 하시면 거기에 놀랐다가 조용하시면 괜히 눈치 보게 되고 그랬어요.

별로 키가 크신 편은 아니었는데 뭔가 그분 앞에 서면 제가 작아지는 것 같고 이상하게 올려다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그분을 무서워 하는 이유라고 해야 하나…… 그분이 쓰고 다니시던 오토바이 헬멧 있죠? 저는 그게 원래 빨간색인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그 사이로 흰색이 살짝 있는 걸 보고 알게 됐죠. 그 헬멧이 원래는 빨간색이 아니었다는 걸.

같이 다니면서 그게 사람 피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근데 제가 처음 그 헬멧에 대해 알고 나서 한동안 잠도 잘 못 잤거든요. 그 인상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계속 도와주시는 게 감사하면서 그 와중에 또 무섭더라고요.

 

 

남들은 제 몸 건사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는데 그 사람은 뭘 하러 그렇게 서울 전역을 신출귀몰하게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구한 건지.
단순히 착한 사람이었다기엔, 그, 제가 느끼기엔 뭔가…… 그런 게 있었어요. 설명하긴 좀 어려운데. 혼자 해결해야겠다는 책임감인 것인지, 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좀비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고요. 마치 좀비에게…… 그래요, 집착한다고 해야 할까? 단순한 정의감, 사명감이 아니었어요. ‘나만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어’ 라고 중얼거리던 게 생각나요.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요? 좀비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저는 그 분과 있을 때면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단순히 저를 지켜준다기 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사람은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분이셨죠.

아, 가끔씩은 노래를 흥얼거리시기도 했고요. 음, 음음, 이런 노래였는데, 잘 모르는 노래였어요. 노크를 할 때도 똑똑똑, 하는 게 아니라 똑 또독 똑똑 하는 식으로, 어떤 리듬감이 있었고요. 되게…… 느긋해 보였어요.

네, 그건 그렇죠. 저는 그냥 제 이야기, 제가 본 그 분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생존자들은 겁에 질려 있거나, 강박적으로 살아남으려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남에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들 뿐이었죠. 하지만 그 분은 달랐어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서울에서 유일하게 ‘살아있었던’ 분이셨죠.

그 분은 분명히, 삶을 이어가고 계셨어요.

 

 

그 사람이 한밤중에 돌아다녔다고요? 설마요. 미쳤다고 밤에 돌아다니나요. 어둠 속 어디서 좀비가 튀어나와 날 물어뜯을 지 모르건만.

내가 기억하기로 그는 낮에만 움직였어요. 그 뿐만 아니라 좀비 좀 안다 싶은 사람들은 다 그랬어요.

 

 

어떤 분들은 그 사람이 친절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제 기억으로는 친절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좀비를 때려잡기는 했어도, 마치 그것에만 몰두해 있는 사람 같았거든요. 오히려 무서워서 어물쩡거리면 방해된다는 듯 귀찮아 했죠.

제가 보기엔 다들 그 압도적인 힘과 집착을 가진 그 사람과, 그 사람을 보고 같이 영웅이 되려 한 보통 사람을 헷갈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헬멧을 쓰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저와 같이 있던 일행도 헬멧을 주워 쓰고 뛰쳐 나갔거든요. 그래서 신출귀몰하다고 느끼는 걸지도 몰라요. ……그럼 그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었냐구요? 그 사람에게선 특별한 냄새가 났어요. 병원 같은 데서 나는 소독약 냄새 있죠? 그게 진동을 했거든요.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라고 하죠? 저는…… 그 사람이 그렇게 느껴졌어요. 보통 사람들은 무서워서 좀비들을 피해 숨어 다니기 바쁜데, 그 사람은 좀비들을 찾아다녔잖아요.

예? 그건 알 수 없다고요? 아무튼 헬멧을 항상 쓰고 다니는 것도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좀비들의 시대가 도래해서 사람을 죽일 수 없게 되자, 좀비를 죽이는 것으로 대신 희열감을 느끼려고 한 거죠. 그렇지 않고서야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요.

제가 기억하는 한, 그 사람은 ‘분명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었어요. 아마, 얼굴도 훤칠하고 잘생겼을 거에요. 보통 사이코패스 이미지가 그렇잖아요?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그 사람, 천식이 있나 봐요? 스테로이드 흡입제라고 기관지 환자들이 쓰는 치료 기구가 있는데, 왜 영화에서 보셨을 거예요. 호루라기처럼 생겨 가지고 입에 물어서 직접 흡입하는…… 아무튼 그것을 주머니에서 떨어트려서 내가 주워줬거든요.

사이코패스가 천식이라, 정말 안 어울리지 않아요?

그런데, 그 사람 하얀색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다니잖아요. 애초에 천식 있는 사람이 호흡하기 힘든 헬멧을 계속 쓰고 다닌다는 것이 말이 안되잖아요. 그래서 생각해봤어요. 왜 저 사람이 스테로이드 흡입제를 들고 다니는 걸까?

그때, 예전에 봤던 기사 한 줄이 딱하고 생각나더군요. 스테로이드 흡입제를 이용해 마약 성분을 몸에 투여한 사내의 이야기가.

상황이 그렇잖아요. 좀비병 팬데믹 시대에 그들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려면 보통 강심장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각성 작용을 일으키는 중추신경 흥분제라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네? 실제로 확인했냐고요? 그건 아닌데…… 헤헤. 뭐 어때요. 아니면 말고.

어차피 그 사람이 누군지 아직 아무도 모르잖아요?

 

 

특이한 거면… 그분, 좀비를 한바탕 죽이고 나면 꼭 기도를 하시는 것처럼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계셨어요. 제가 평소에도 그분을 좀 겁내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요, 그러고 계실 때면 무슨 공기가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어서 가까이 가질 못했어요.

딴 얘길 수도 있는데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분이 울고 계셨을 지도 모르겠어요. 그때는 그분이 운다는 게 상상도 안 갔는데 사실 그때 상황은 누구든 울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잖아요?

좀비 사태가 끝나고 시간이 좀 지나니까 이제야 그분도 사람이지 싶고 그래요.

아직도 무섭긴 하지만.

 

 

그래요. 거짓말이에요. 때린 적 없어요. 키가 컸는지 어땠는지 뭐라고 분명 말하긴 했는데 목소리가 어땠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요.

통조림 창고를 열길래 욕을 했는데. 아니 기선 제압이라는 게 있잖아요. 보통 그러면 쫄게 되어 있거든. 그런데 아무 대꾸 없이 날 보더라고요.

헬멧 앞에 그거 있잖아요. 바이저? 그 시꺼먼 판이 꼭 무슨 칼날 같더라고. 날 뚫듯이 노려보는데 그 헬멧, 그 플라스틱이 무서워서 소리도 못 질렀어요. ‘기’ 라는 게 있어요. 제가 그런 거에 좀 예민하단 말이에요. 진짜 이건 과학적으로 진짜! 제가 대학교 가기 전에…… 아, 그만 해요?

하여튼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통조림 다 쓸어가면서도 저 얼마간 먹을 건 남겨두더라고요. 떠나기 전에 절 보더니 그걸 줬어요.

네, 야구방망이요. 관장님한테 받은 거 아니에요. 무서워서 저 그날 이후로 창고 밖으로 나간 적이 거의 없어요. 미안해요. 거짓말해서.

 

 

특이한 거? 음. 기억에 남는 걸 말하라는 거죠?

언젠가 알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려 달라 했던 적이 있어요, 그 사람. 종로서 두 번째로 만났을 때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요? 알았어요. 전 교보문고 생존자 그룹에서 활동했어요. 종로의 그룹들 중 가장 다른 우호적이었고, 그만큼 빨리 와해된 그룹이었죠.

초반에 우리는 광화문에 자주 나갔어요 생존자를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해서 포섭하려고요. 그런데 모든 생존자들이 그러지 않은 건 잘 알죠? 사태 내내 문을 아예 걸어 잠그고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한 호텔들도 많았고, 좀비를 오락거리처럼 사냥하거나 미끼로 쓸 노약자들을 잡으러 다닌 그룹도 있었어요.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딱 그런 사람들과 싸우고 있었어요. 애들 잡아가는 놈들이요.

아뇨. 사람을 팼다는 게 아니라요. 말했잖아요, 전 그 사람이 폭력을 휘두르는 거 못 봤다고. 그냥, 화 내며 따지고 있더군요. 그때 우리는 그냥 가운데 껴서 그와 사람들을 떼어냈죠.
그러고 며칠 뒤였나, 그가 교보문고로 찾아왔어요. 아기용 책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하고 싶다면서요. 고작 그걸 구하겠다고 좀비를 뚫고 온 게 놀라워서 기억해요.

 

 

창고 밖으로는 두 번 나갔어요. 한 번은 어떤 애가 밖에서 불러서. ‘형 여기 계속 있으면 죽어요!’ 하는데 괜히 나갔다가 죽을 뻔 했잖아요.

마침 먹을 게 똑 떨어졌는데 햇반이랑 물병 같은 게 흩어져 있어서 좀 주워서 돌아왔어요.

네…… 그걸 갖고 있던 사람들은 죽었지만 제가 나섰어도 똑같이 당했지 구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절 부른 애는 못 봤어요.

 

 

버릇이라…… 글쎄요. 특별한 건 없었어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가끔씩 노래를 흥얼거리시거나, 노크를 할 때도, 네. 음, 제가 노래에 관심이 많은 건 아니라서요. 90년대 유행했던 노래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런 노래들요. 네, 조금 옛날 노래들이죠. 그래도 희망 찬 노래들이었어요. 따뜻하기도 했고요.

그런 시대에 악기 같은 걸 들고 다닐 수는 없죠. 대신 때때로 휘파람을 부셨어요. 좀비를 불러들일까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며 바로 멈춰서 저를, 모두를 달래주셨죠.

그 분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셨다는 거, 말씀 드렸던가요? 많이는 아니었구요, 세 명 정도요. 네 다섯 살 정도…… 어디서 어떻게 만난 아이들인지는 모르죠. 그래도, 그 아이들도 그 분을 잘 따랐어요.

 

 

두 번째로 나간 건 정말로 먹을 것도, 물도 다 떨어졌을 때였어요.

중간에 피난 온 사람 한 명과 함께 있었던 적이 있어요. 얼마 안 가서 죽었어요. 그 사람이 한 말이 있어요. 하얀 사람을 찾아가면 살 수 있을 거라고.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그때는 흘려들었는데 이상하게 배가 고파 죽기 직전에 떠오르더라고요. 내가 아는 하얀 사람.

야구방망이 하나 들고 나갔어요. 그걸 휘두르니 어쩐지 나도 그 헬멧처럼 세진 것 같았어요. 하얀 헬멧을 쓰고 내 식량 창고를 거덜 낸 사람. 말 한마디 없이 나를 꼼짝 못 하게 했던 사람.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나갔어요.

창고 문을 막고 있던 좀비 두엇을 까고 한참 걸었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어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사촌 형이 명절에 기타 치면서 불렀던 노래 중 하나였어요.

홀린 듯이 따라갔더니 뒤집어진 트럭 아래 요만한 애가 앉아서 흥얼거리고 있더라고요. 아이라는 걸 인식하기도 전에 저는 걔가 녹여 먹고 있던 딱딱한 빵을 빼앗았어요. 그분이 급히 달려와 아이를 안아 드는 것을 보고도 현실감 없이 건빵만 씹어댔죠.

 

 

……미안합니다. 생각이 쉽게 정리가 안 되어서 말입니다. 난리통에 아내랑 헤어졌는데, 아직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사실 헤어진 당시에는 어쩔 수 없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내 한 몸 건사하기에도 어렵지 않느냐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사람을 만나고 나서는, 아내를 잃은 건 이 세상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하루에도 여러 번 옮겨 다니며 생활하는 것 같았어요. 전 운이 좋게 잠시 머무르던 곳에 닿았던 거죠. 그 기회를 잡아 놓고도 감사한 줄 몰랐던 거고.

그분이 나간 시간 동안 저는 아이들을 돌봤어요. 보통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항상 함께 다녔다고, 아이들이 말해줬어요. 헬멧 벗은 걸 봤냐고 물었더니 봤대요.

둘 중에 큰 애는 그분을 언니라고 해요. 작은 애는 아빠라고 하고요. 생긴 걸 제대로 묘사하지도 못하는데 ‘아픈 사람이다’ 라는 표현은 동일하더라고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것 같냐니까 또 말을 못 해.

저는 그들 모두가 수상했습니다. 시대가 그랬잖아요. 그 난리 통에 아무나 쉽게 믿었다가 좀비 밥이 되면 어떡해요? 몰래 식량을 조금씩 숨겼어요…….

그분과 직접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요. 사실 전… 그분 이야기를 하고 있을 자격도 없는 놈이에요. 아마 처음부터 파악했던 것 같아요, 저를.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했겠죠.

먹을 걸 구하러 간다고만 생각했는데. 뒤에 들어보니 그렇게 사람들을 구해주고 다녔다면서요? 아마 그 아이들도 어디선가 구해온 생존자였겠죠. 이제는 다 믿을 수 있어요.

 

 

애들은 좀비가 되지 않아요. 감염자에게 물리되 죽지 않아야 좀비가 되는 건데, 어른이라면 자길 공격하는 상대를 어떻게든 떨쳐냈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힘도 약한 아이들이 어디 그러기 쉽나요. 게다가 설사 아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대부분 주요 초기 증상인 40도 이상의 고열과 뇌 염증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애들을 미끼로 쓴 거죠.

 

 

정말 최선을 다했거든요. 그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진짜 너무 빨랐단 말이에요. 야구방망이 들고 바로 후려쳤지만 여자애가 물렸어요. 아…… 정말 그때 느꼈던 건 지금 말로 못해요. 아이의 종아리에 이빨을 찍은 놈은 처치했는데 그분이 돌아올 무렵에는 아이는 열이 너무 심해서 정신을 거의 잃었어요.

뭘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어요. 울면서 횡설수설하는데 작은 애가 그분께 낮의 일을 설명했어요. 그분은 가방에 모아둔 약을 아이에게 먹였어요. 물에 개서 조금씩 나눠서 먹이고 토하면 등을 쓸어주고 다시 조금씩 먹이고 삼키지 못하면 자세를 바꾸기도 하고…….

새벽녘에 아이가 조금 정신을 차리자 저도 그제야 정신이 들어 그분께 제안했어요. 앓는 애를 업고 좀비를 피해 다닐 수 없으니까요. 제가 지내던 창고로 가자고 했어요. 먹을 건 없지만 거긴 구급약도 담요도 있었어요. 재수 없게 물리면 그때는 그냥 끝이지, 하는 생각으로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다시 돌아간 거예요. 용기 내서 나왔던 곳으로. 아이가 죽으면 저도 죽을 생각이었어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믿고 맡긴 그분께도 미안하고…… 저는 쓸모가 없으니까요. 그런 생각들을 꺼내서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그분과 여전히 서로 오가는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모두 알고 있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이가 드디어 열이 떨어지고 음식을 넘길 수 있게 되었을 때, 저는 더 못하겠다고 했어요.

 

 

우리 그룹, 내 말은, 교보문고 그룹이요. 우리 그룹이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내분이 있었어요.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그룹 사람들도 주변 탐색을 나갈 때 미끼 역을 항상 뽑았거든요. 그래도 이전까진 자원자 중에서, 발이 빨라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나 아예 나이가 많거나 약해 감염되어도 남을 해치지 못할 사람으로 골랐는데. 그런데 아이들이 좀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퍼지자 몇몇 사람들이 우리도 탐사에 애들을 데려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 아니겠어요?

대부분은 그 사람들 보고 미쳤냐고 했어요. 양측의 입장이 좁혀질 기미가 없자 결국 애들을 희생시키자 한 사람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졌고, 투표까지 부쳤어요.

이미 마음이 상한 사람들은 투표 결과에 상관없이 떠났죠.

그날 밤 우리 그룹은 다른 그룹의 습격을 받았어요. 어느 그룹인지는 모르지만, 비겁한 새끼들이 건물 안에 좀비들을 밀어 넣었어요. 우리가 어디에 바리케이드를 쌓아뒀는지 다 알더군요. 추방자들에게 들었겠죠.

전 그날 밤 도망친 후 다시는 어떤 그룹에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우리가 보호하던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몰라요. 그가 구해주기라도 했으면 좋겠네요.

 

 

아이를 간호할 때요? 아…… 그렇네요, 헬멧을 벗었네요. 보고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소독약 냄새가 났던 것 같기도 하고.. 미치겠네. 왜 이게 기억이 안 나지. 분명히 말도 했던 것 같은데……. 정말 저는 이런 거 하나도 제대로 못 하네요. 역시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날 아이 셋을 더 데리고 오셨던 게 방금 생각났어요. 그런데 도저히 그분에 대한 건…… 미안합니다. 인터뷰도 하지 말 걸 그랬어요. 딱히 도움 되는 기억이 없는 것 같네요.

더 듣고 싶으세요? 그게…… 저도 묻고 싶은 게 있기는 한데.

 

 

아이들의 이름이요? 한 명은 기억나네요.

 

 

함께 싸울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어요. 저는 그런 놈이에요. 그런데 대통령도 장군도 다 똑같을 걸요? 그때는 모두가 미쳤었다고요. 너무 무서우니까.

지금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죄를 물어서는 안 돼요. 그분도……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떠나기 전에 저를 안아줬단 말이에요. 내가 아무리 못난 소리를 하고 도망쳐도, 그냥 안아주셨다고요.

창고에 있던 트럭을 넘겼어요. 뭐든 나가서 해볼 생각이 있던 초기에 아껴 놨던 거요. 숨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 놈보다는 그분께 필요할 테니 기꺼이 드렸어요. 저는… 더 못하겠다고, 그러고 남았고요.

짐 칸에 불안하게 실려서 떠나는 아이들을 그냥 보기만 했어요. 거기 좀비가 달려드는 것도…… 그저 멀리서 보다가 눈을 감아버렸어요.

 

 

가장 어리고 똘똘한 여자아이 이름이 유미였어요.

 

 

나는 아내조차 구하지 못했는데, 그 사람은 아이들까지 데리고 다녔습니다. 분명히 보았습니다. 열 살 정도 되었을까, 키가 한 요만한 어린 여자아이가, 자기보다 더 자그마한 남자아이 손을 꼭 쥐고, 그 헬멧을 쓴 그 사람을 따라다녔습니다. 그 사람은 썩 친절하진 않았지만, 아이들에게는 다정하게 대해주었는지 퍽 잘 따르는 것 같았습니다.

당연히, 처음에 크게 놀랐죠. 그리고는 곧 슬퍼졌습니다. 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저 사람은 아이들을 둘이나 보살피면서, 이제는 일면식도 없는 타인인 나까지 구해주는구나, 그런 주제에 세상 탓이나 하며 아내를 구하지 못한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나는 대체 무얼 하고 있었나.

그 사람은 저를 트럭 짐 칸에 태워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짐 칸 밖으로 자꾸 나가려 해서, 그러지 못하게 잡아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동시에 짐 칸으로 기어오르려는 좀비가 있다면 막아 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트럭을 구했는데 그런 이유로 이용하지도 못할 뻔했는데,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니었더라면 저를 구하지도 않았겠지만…… 구해준 것 만으로 감사해야겠죠. 아이들을 구하는 사람이니 사정이 있었을 테죠

 

 

종로서 그 일이 있고 난 후 강남은 좀비가 적다는 소문을 접하고 저 혼자 성수대교를 건너다 그와 세 번째로 만났어요.

그는 트럭을 몰고 제가 왔던 방향인 강북으로 올라가던 중이었는데, 혼자 있는 절 보고 종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더군요. 있는 그대로 말해줬어요.
아뇨. 애들은 없었고 짐 칸엔 웬 약병들 뿐이었어요. 무슨 약인지 물었는데 답은 못 들었어요.

 

 

아, 주고 가신 약이 있는데요.

아팠던 아이를 한 번 가리키고, 이걸 꺼내 주셨어요. 좀비를 고치는 약이구나,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봉투에 아무것도 안 쓰여 있는데 좀 특이해요.어디서 대충 떼서 굳힌 것처럼 생겼죠? 공장에서 나온 건 아닌 것 같아요. 색도 까매서 더 이상해요.

싸우지 않았으니 물릴 일도 없었죠. 저는 그때도 지금도 필요 없으니 가져가세요. 그걸 나를 위해 쓰라는 말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그분이 용서하셨으니 저는 괜찮아요. 예?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렇죠?

대답 좀 해주세요.

그분 살아있어요?

 

 

좀비병 치료제? 그래요. 그렇게 하니까 말이 되네요. 제가 전에 그 사람이 스테로이드 흡입제를 땅에 떨어트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잖아요? 사실 그것 말고도 다른 것도 보았습니다.

바이알(Vial)이라고 그래서 병원에서 쓰는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작은 병이 있어요. 거기다가 액상으로 된 의약품이나 알약 등을 보관하죠. 그중에 고무 마개가 달린 바이알은 주사 바늘을 찔러 약액을 뽑아 쓸 수 있게끔 되어 있어요.

그 사람이 앞으로 슬링백을 매고 있었는데, 그 바이알들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었는지 지퍼가 제대로 닫히지도 못하고 그것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분명 그때도 급하게 가던 중이었으니까, 그것을 운반하고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스테로이드 흡입제와 함께 말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좀비병 치료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저는 음……. 그가 사이코패스같이 느껴져, 어떠한 질문도 하지 못했지만, 분명 그것에 대해 물어본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네? 저번에는 마약을 흡입하는 사이코패스 같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말이 다르다고요?

감독님. 저는 지금 어떻게 보이세요?

하하하, 농담이에요. 사실 저는 좀비병 치료제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 처음 들었거든요. 그래서 좀비병 치료제를 연관지어 그때 상황을 생각해보니 다른 관점에서 그가 보인 겁니다.

아무튼 대단한 사람이네요. 그 와중에도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겠다고 약까지 가지고 다녔다니 말입니다.

 

 

누구요? 흠. 그 친구도 만나셨다고요? 운동 나오는 내내 뻰질거리기만 하더니, 거짓말은 안 하던가요? 그래도 그날 땡땡이 친 덕에 죽지는 않았군요. 다행입니다. 한 놈이라도 건져서.

그날 도장이 완전히 뒤집어지고 저는 한동안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눈 앞에서 제자들이 전멸하는 걸 봤으니, 가만히 들어앉아 막기만 하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분을 찾아다녔어요. 항상 헬멧을 쓰고 있던 게 이상하기는 했죠. 그런데 더 이상하게도, 그때는 그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찾기 쉬워서 좋더군요.

아들을 데리고 한강을 따라 강남으로 내려가던 중에 만났어요. 아이들을 공격하는 좀비들과 싸우고 있더군요. 당장 도왔지요. 그분이 주고 간 배트를 들고요. 아이를 미끼로 좀비를 유인하는 놈들이 있다고 소문만 들었는데 진짜였어요. 몇 명이 이미 물렸어요.

한 아이는 숨이 넘어가고 있었는데,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분이 팔을 베어 자신의 피를 먹이더군요. 은신처로 옮겨 아이들을 치료하는데, 다른 애들에게는 가방에서 어떤 약을 꺼내서 물에 개어줬어요.

결론을 말하면, 모두 살았습니다.

 

 

뭘 듣고 싶은 겁니까! 그러니까 할 얘기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젠장, 하여간 방송국 놈들. 이런 세상에서까지 독한 게 무슨 거머리마냥.

그 헬멧 쓴 미친놈이 뭐가 어쨌다는 겁니까? 다들 그러더군요. 은혜를 입었다. 하! 그러셨겠지. 대단하신 영웅 나셨어, 아주.

그 미친놈을 처음 만났을 때 두들겨 맞은 걸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립니다.

전 병원에 있었습니다. 어느 병원인지는 당신이 알 바가 아닙니다.

그날도 당직을 서고 있었습니다. 예, 그 날이요. 세상이 요 꼴 난 그 날. 원래는 그 날 제 당직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선배가 당직을 바꿔 달라고 해서요. 하여튼 평소에도 그러더니. 기어코 지 뒈지는 날까지.

아무튼 숙직실에서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버텼습니다. 병원이라 거동 불편한 환자들이 많았거든요. 좀비가 됐을 때는 그런 게 장애가 되지는 않았지만.

수돗물 말고는 아무것도 못 먹어서 이대로 죽나 하고 있었는데 놈이 들어왔습니다. 야구 배트로 머리부터 날려버리던데. 그렇게 두들겨 패다가 갑자기 갸웃거리더니 제 멱살을 잡고 묻는 겁니다.

“―― 는 어디 있지?”

그 선배를 왜 나한테 찾아.

아는 사이였는지는 모릅니다. 보아하니 다른 사람인 걸 알았어도 딱히 우호적일 생각은 없었을 겁니다.

그가 원하는 건 약품이었습니다. 약품이랑, 교수실.

그 후에도 몇 번 찾아와서 약품을 가져갔고요. 병원 안에 있는 사람은 저 뿐이었고, 좀비들은 죄다 골통이 박살나서 지금까지 버틴 겁니다.

이제 됐습니까? ……그게 어디인지는 당신이 알 바가 아니라니까!

호스트 코멘트

저의 어이없는 실수 탓에 [그를 추모하며] 1부가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2부 스레드를 세우겠습니다. 2부도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댓글로 진행 방식과 관련한 피드백도 받겠습니다. 의견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

참여자


후원자

익명의 후원자 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