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우리 학교는 오래된 학교고 그만큼 이상한 전설도 많아. 아니, 전설보단 괴담이 맞겠다. 이유도 없이 사람 사라지고 다치는 일이 많은데 학교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며 흐지부지 넘어가는게 괴담 아니면 뭐야?
여튼 네가 여기 온 이유는 그거 때문이지? 우리 학교에 떠도는 모든 동아리 괴담을 모으면 소원을 이뤄주는 귀신이 나타난다는 이유 말야. 그걸 아직도 믿는 사람이 있긴 하구나.
뭐, 좋아. 잘 찾아왔어, 내가 전교에서 유일하게 우리 학교 내 모든 괴담을 다 수집한 사람이거든. 그럼 어떤 동아리부터 말해볼까….
1.
그래, 처음은 미술부부터 얘기해보자. 아시다시피 미술부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동아리야.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여러 이야기가 오갈 수 밖에 없는 공간이지.
그런데 말야, 미술부원 중에 사람이 아닌 존재가 있다는 거 알아? 사건이 벌어진건 1990년대 초반이었어. 학교에서 처음으로 굿을 했던 년도 말야.
너 굿하는 거 봤니? 굉장해. 화려하고 시끄럽고 마음 속 어딘가가 울렁이는 감각. 그 울렁임을 넘어가면 인간세계의 경계에 놓이게 되어버려.
미술부의 그 아이도 그랬어. 그 굿을 보러 갔다가 그만 그 틈에 갇혀버린거야. 인간도 신도 아닌 그 감각 속에.
인간도 신도 아닌 감각에 갇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글쎄. 모르긴 해도 인간에게 썩 좋지는 않겠지. 특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잖아? 미술을 하는 사람은 감수성이 풍부하지. 이런 감각은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에겐 더 치명적이었던 거야.
자신도 모르게 감각에 홀려 영혼을 갈아 넣어 하나의 그림이 완성 되었어.
그 그림은 일종의 통로, 다리, 문지방이었어. 인간에게 신의 세계가 열린 거야. 그 여학생은 그림 속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그 세계에 갇혔던 누군가가 우리 학교로 넘어왔지.
그리하여 이 학교에는 학기와 학년이 바뀌어도 졸업식이 끝나도 언제나 미술부인 사람이 있어. 너도 나처럼 그 친구를 알아챌 수 있을까?
2.
다음은 과학실험부 이야기야. 미술부 다음으로 오래 된 동아리. 인기 많은 동아리니까 너도 알지? 방과후에 야자 대신 화학실습 할 수 있어서 애들이 많이 가입하잖아.
그런데 걔네가 매일 세 명 이상 밤에 과학실을 차지하고 있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 우리 학교는 사람이 있을 때 과학실이 비면 안되거든. 항상 누군가는 거길 지키고 있어야 해.
과학실에 보면 창가 쪽 벽에는 골격모형이, 문 쪽 벽에는 인체모형이 서있지? 과학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수납장을 열면 포르말린이 채워진 유리병에 내장들이 담겨 있고. 뇌 표본 본 적이 있지? 그런데 그 내장이 ‘무엇의’ 내장인지는 아무도 모른대.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학교에 사람이 있을 때 과학실이 비면, 어느샌가 그 세 부분이 조립되어 나타나서는…
무언가를 미친듯이 만들고 있다는 거야. 마치 옛날 만화에서 미치광이 과학자가 혼자서 큰 소리로 웃으며 실험하는 모습처럼. 상상이 돼? 처음엔 학교 선생님들도 애들이 퍼트리는 소문으로만 취급했었어. 어느 오래된 학교든 그럴싸한 소문들이 많잖아? 하지만 처음 수상함을 눈치챈 건 과학선생님이었어.
화학약품들이 어느샌가 조금씩 사라졌다는 걸 눈치채셨기 때문이야
염산을 비롯한 각종 강산, 중크롬산암모늄, 수산화나트륨…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약품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가니 약품 관리에 꼼꼼한 편이었던 선생님께선 범인을 잡아내고 싶어하셨지. 그래서 그날 밤 야간 당직을 서는 겸 과학실에서 그 범인의 정체를 찾으려 잠복하셨어.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문의 진상을 눈치챈 건 선생님만이 아니었던 거야.
함께 자재관리를 해왔던 교생선생님, 야간 순찰 중 과학실 인근에서 수상한 소리를 들었던 경비아저씨까지, 세사람이 범인을 잡으려 과학실 교탁 뒤편에 숨어있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야심한 시간이 됐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거야. 경비아저씨가 고개를 들어 보았고, 창가쪽에 무언가가 바깥을 보고 있는걸 보게됐대.
뭘 봤는 줄 아니? 인체모형이었대
인체모형은 문쪽 벽에 있었다고 말했지? 세 사람이 들어온 이후엔 누구도 과학실에 없었는데, 위화감을 느끼기 충분한 위치였는데도 그 누구도 그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대. 그럼 창가 근처에 놔두었던 해골 모형은 어디 있었을까?
제일 먼저 알게된 사람은 교생선생님이었어. 경비아저씨의 놀란 표정에 두번째로 인체모형을 목격하고 겁먹은 나머지 과학실을 뛰쳐나갔거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 아저씨도 황급히 도망치셨어. 그리고 남은 사람은 과학선생님이셨지.
아, 불쌍하신 분이셨어. 적어도 경비 아저씨나 교생 선생님이 나가실 때 나가셨어야 했는데.
특이하게도 그 날 이후로 과학선생님을 본 사람이 없어. 선생님들은 병가라 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지. 학생들도, 그 말을 하는 선생님조차도 말이야.
3.
후후.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는 쭉 오래된 동아리 괴담만 이야기 했네. 잠깐 쉬어가는 의미로 만들어진 2년 밖에 되지 않은 파릇파릇한 ‘코딩 동아리’ 에 대해서 말해볼까?
코딩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쪽에 흥미가 있는 아이들 끼리 모여서 만든 동아리로 크게 특별한 점이 없어. 꼭 특이한 점을 말해야 한다면 구성원 전부가 기숙사에서 지낸다는 점일까.
아! 그래, 우리 기숙사에 도움을 주는 유령이 있다는 거 아니? 전에 코딩동아리 회원인 친구한테서 들은 이야기야.
밤늦게 코딩을 하다 생각이 막히게 되면, 화장실 창문을 열고 세번째 칸에 들어가서 계속 생각을 하고 있으래. 그러면 스산한 바람소리가 목소리처럼 들리면서 힌트가 된다고 하더라고.
도움을 주는데 왜 귀신이냐고? 자주 찾아가면 벌로 감기를 주거든.
아, 그 사건은 겨울에 일어났어. 코딩 동아리 부원이 밤늦게 듣다가 화장실 창문 닫는걸 깜빡하고 간거야. 바람소리는 수도관을 얼려버렸어. 하루가 넘게 기숙사 전체가 단수되었지 뭐야. 코딩 동아리만 듣던 그 목소리를 그날 이후로 모든 기숙사생이 듣게 되었지.
나는 그 소리가 정확하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 단순한 바람 소리를 피곤한 학생들이 착각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들어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어떨 때는 다정하기도, 어떨 때는 쇠를 긁는 소리 같기도 하다더라고. 무엇이 진실인지는, 역시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거겠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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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 이야기는 별로였다고?
아아 알았어. 좀 귀여운 괴담을 좋아하는구나 너? 그럼 요리부 이야기를 해볼까?
너 우리 학교 요리부 애들이 도시락 봉사한다는 이야기 들어봤지? 맞아. 근처 산동네 독거노인 분들에게 매달 두 번 도시락 만들어서 가져다드리는 일.
그 활동 가면 애들이 종종 이상한 일을 겪는대. 다른 봉사단체는 그런 적 없다는데, 우리 학교만.
저번 봉사 때 일만 해도 그래. 그날도 평소처럼 두 명씩 조를 나눠서 각자 배정된 집을 찾아가 도시락을 전달하기로 했어. 보통 그렇게 하니까.
그런데 말이야. 한 조가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질 않는 거야. 통화도 문자도 다 불통. 결국 모두가 그 근방을 샅샅이 뒤진 끝에야 두 사람을 찾을 수 있었지. 바로 산꼭대기 근처 빨간 대문 집이었어.
이부분이 중요해. 아까도 말했지? 우리 학교 애들만 이상한 일을 겪는다고.
희한하게도 우리 학교 요리부가 도시락 봉사만 나가면 꼭 한 조는 사라지고, 매번 같은 집에서 발견이 된다는 거야. 아까 말한 산꼭대기 빨간 대문 집. 아무도 살지 않은 지 20년도 넘었다는데, 더 기가 막힌 건 도시락은 사라지고 없다는 거지.
발견된 애들 말에 따르면 그 집엔 키가 작고 마른 할머니 혼자 사는데 그 외에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난대. 거기서 겪는 일도 별거 없어. 그냥 차 한 잔 마시고 대화를 좀 오래 하는 거?
이상하게도 애들이 할머니 생김새는 잘 기억 못 해도 말이 엄청나게 길었다는 건 한결같이 기억하더라고. 웃기지?
6.
아, 괴담하면 우리학교 만화부도 유명하지.
만화부의 부장이 되는 조건을 알고 있니? 9월 셋째주 애니메이션 감상회에서 초대받지 않은 학생을 알아채면, 그 학생과 부장만 모여서 일종의 의식을 치룬대.
그런데 이번 부장은 그 의식을 치루지 않았고, 그렇게 9월 셋째주 감상회가 시작되었지.
듣기로는 다들 초대받지 않은 사람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대. 특별한 의식이라니 다들 궁금했겠지. 누구 한 명이 화장실을 가면 숫자를 다시 세고, 돌아오는지 눈 부릅 뜨고 기다리고. 그래서 감상회가 다소 엉망이 되었을 때 아이가 부장에게 물었지. 왜 부장은 그 의식을 치루지 않고도 부장이 될 수 있었느냐고. 부장이 뭐랬는줄 알아?
“그런 의식이 다 있었어? 난 그런 거 초대받은 적 없는데…?”
아아, 현대의 합리란 얼마나 미몽에 젖어있는 건지. 전 부장은 몰랐던 거지, 의식을 통해 초대받지 않은 것을 본 학생을 정화했어야했는데, 그냥 한학년 아래 차장에게 넘겨버린거야.
그 해 정화받지 못한 학생은 초대받지 않은 것과 하나가 되어, 밤이면 학교에 슬리퍼를 끌며 돌아다닌대. 마주치면 이미 늦었으니까, 부디 조심하길.
아, 그 차장은 어떻게 되었냐고? 너무 슬픈 이야기라 할 수는 없지만 그 친구도 꽤나 힘든 삶을 살고 있어. 친구들이 병문안을 가면 허공을 바라보며 ‘실패한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한다더라. 나중에 운 좋게 그 친구를 만나게 되면 위로 몇 마디 해줘. 통할진 모르겠지만.
7.
아! 방송부 이야기를 잊었네. 이번 이야기는 좀 애절해. 아직 놀토가 있던 시절, 토요일 12시만 되면 전교에 이런 방송이 울렸어.
학생 여러분은 반드시 반에 머물러주시기 바랍니다.
너도 알다시피 꼭 안 듣고 나가는 애들이 있잖아? 그럴 땐 학생들이 모두 돌아갈 때까지, 아니면 하교할 때까지 계속 울렸지. 방송실엔 아무도 없었는데 말야.
귀신이 방송을 했을 거라고? 맞아. 이제부터 이것과 관련된 안타까운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옛날에 지금도 유명한 방송부 커플이 있었어. 여학생은 겁이 엄청 많았어. 평범한 소음에도 깜짝놀라는 일이 잦았지. 하지만 남학생이 곁에 있으면 겁을 먹지 않았대. 흔히들 말하는 사랑의 힘이지.
안타깝게 사랑은 졸업까지 가지 못했어. 여학생이 계단에서 실족사 했거든
여학생의 빈자리가 너무 컸을까? 남학생은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도 않았어. 반 친구들은 돌아가며 남학생에게 찾아가길 반복했지. 혹여 나쁜 마음을 품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그런데 웬걸, 일주일만에 밝은 모습으로 나타난 남학생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했어.
이유가 뭔진 몰라도 전보다 밝아보이는 모습에 반 친구들은 안심했어. 다들 실족사한 여학생에 대해서는 쉬쉬하는 분위기였지. 그런데 그 남학생이랑 유난히 사이가 안 좋았던 학생 하나가 홧김에 그 얘기를 꺼낸거야. ‘이제 네 여친 일은 다 잊었나봐? 아니, 이제 전여친인가?’하고 말이야.
주변에 다른 친구들이 말릴 사이도 없이 터져나온 질문에 남학생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어. “여친? 무슨 여친, 놀리냐?” 물어본 친구나 주변 다른 친구들 모두 ‘얘가 머리가 어떻게 됐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 연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말이야. 남학생이 주변 분위기를 감지하고 물었어. “뭐야, 네들. 여친이라니? 나도 모르는 여친이 내게 있었어?”
정말로 의아한 듯이 묻는 남학생을 보고 반 친구들은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하지만 아무도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알 수가 없었지. 반 친구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던 중에 토요일이 됐어. 학교 가는 토요일. 아까 말했던가? 여학생이 죽은게 토요일이었다고.
그 토요일에 남학생은 방과후에 홀로 남아 교실에 앉아 있었어. 마치 무언가에 혼을 뺏긴 사람처럼 멍하니. 마침 당직 선생님이 반을 둘러보다가 혼자 남은 남학생을 본 거야. “하교 안 하고 뭐하나?” 선생님이 복도 창문에서 안쪽을 보며 물었는데, 남학생은 그 소리가 안 들리는지 선생님쪽을 쳐다도 안 보더래. 선생님이 몇 번 부르다가 이상해서 교실로 들어갔더니
선생님이 정확히 뭘 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교실에 들어가신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 남학생을 끌어냈어. 그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학생은 곧 전학을 갔지. 아마 그 이후부터 그 애절한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어. 언제 올지 모르는 남학생을 기다리는 방송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알 수 없는 법이지.
8.
방송실 여학생 귀신 괴담, 마음에 들었어? 고등학교답게 친구에 대한 괴담도 하나 있지. 음, 아니다, 친구보다는 라이벌에 가까울지도.
우리 학교 야구부 애들이 꼭 한 번 만나고 싶어하는 훈련장 빠따귀신 이야기야.
3년에 한 번씩, 이 귀신에 홀리는 애가 나타나거든.
이 귀신에 홀리게 되면 매 경기에 참가할 때마다 어디선가 조언이 들려온대. 주위에선 아무도 얘기를 안하는데 말야. 그리고 그 조언을 들으면 평소엔 못보던 월등한 실력이 나온다고 해. 참 고마운 귀신이지?
하지만 귀신들은 대가에 있어선 정직해. 자기가 도와준 만큼 홀린 아이에게서 무언가를 가져가지. 지금부터 그 사례들을 몇가지 얘기해줄게.
경기를 통해 나타나는 월등한 실력으로, 그 아이는 모두의 관심을 받게 돼. 그러나 그 관심이란 게 말야, 결코 좋은 게 아니야. 애들 입장에서는 운동하느라 공부도 안 하고, 게을러 보이던 애잖아. 갑자기 잘한다고 선생님들한테 사랑받으니까 열등감이 들고, 싫은 거지. 결국, 걔는 은따를 당하게 돼.겉으로는 잘해주는 척 하면서, 따돌리는 거 말이야.
경찰 조사에서는 실종 처리되는 바람에 널리 알려지진 못했지만, 심하면 자살하는 선배도 몇 명 있었다더라.
더 무서운 게, 한 번 옥상에 올라가면 다시 내려갈 수가 없다는 거야. 아무리 후회해도 말이야. 빠따귀신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고, 뒤에서 등을 떠밀거든.
그를 보고서도 살아남은 사람은 없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더욱 기묘한 일도 있었어.
9.
그래, 맞아. 아마 이 이야기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런 이야기일거야. 우리 학교에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
그건…[심의 규정에 의거한 검열삭제]. 놀랍지?
10.
이야기를 하다보니 배고픈걸? 어제 제과제빵부친구가 주고간 빵이 있어. 같이 먹을래?
우리 학교 제과제빵부 실력이 좋지? 그래, 먹으면서 아무 얘기도 안하는 건 심심하니까 제과제빵부에 전해지는 ‘마법의 가루’ 얘기를 해줄게. 그 가루는 가장 제빵실력이 좋은 친구들에게만 비밀리에 전해지는 재료야. 실력 부족한 예전 졸업생이 이걸 썼다가 사건을 낸 적이 있거든
그 학생은 부족한 실력을 키우려고 밤 늦게까지 부실에 남아 연습을 했는데, 우연히 그 가루를 발견한 거지. 그 학생은 아침이 될 때까지 쉬지 않고 빵을 만들었다더군. 부원들이 그를 발견했을 땐, 며칠이 걸려도 만들기 힘든 양의 빵이 부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고 해. 문제는 학교 어디에도 그만한 양의 빵을 만들 재료가 없었다는 거지.
빵에서는 어디서도 맡아보지 못한 향긋하고 맛있는 냄새가 났지만 부실의 누구도 빵에 손을 대지는 못했다고 하더군. 이미 숨을 거둔 학생의 영혼까지 빨려나간 듯한 모습과 잘려나간 팔을 보면서 군침 돌게 생긴 빵의 재료가 뭔지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이겠지. 세상은 참 잔인할 때가 있어. 그는 그저 맛있는 빵을 만들고 싶을 뿐이었을 텐데 말이야.
11.
이제 네가 흥미로워할 만한 괴담이 몇 개 안 남았어. 마저 들어 봐. 내가 말하기로 결정한 이상 넌 거절할 수 없을 거야.
3학년만 가입 가능한 경제 연구 동아리 이야기를 해줄게. 맞아, 사람들이 금수저 동아리라고 부르는 그 동아리. 집안 환경이 좋은 학생들끼리 뭉쳐 주식 모의투자-진짜 투자도 한다네?-하는 동아리.
그 동아리에 전설이 된 학생 이야기야.
그 학생은 학교에서 소문난 부잣집이었어. 질투받기 십상인 위치였지만 성격 좋은데다 가진걸 티내지 않아 1학년까진 평범한 집안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았지.
2학년 2학기 때, 그 친구의 성격이 뒤집어졌어. 남들과 다투는 게 일상에, 같은 경제동아리 부원들에게 뜬금없이 화내기도 했지. 물론 첨부터 그런건 아냐. 파산했단 소문을 듣고 주변사람들이 먼저 버렸거든.
점점 성격이 일그러져가는 그 친구를 견디다 못한 부원들은 결국 투표를 통하여 그 친구를 동아리에서 제명시키기로 결정했어. 동아리 공지방에서도 내보내고 명단에서 이름도 빼고… 처음에는 강하게 반발하며 동아리실에 억지로 들어오려 하던 그 친구도 시간이 지나자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발걸음이 뜸해졌지
하지만 그 이후로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부원 몇 명이 감기에 걸리는 그런 가벼운 정도였지만, 날이 지날수록 많은 부원들이 심한 교통사고를 당하고 심지어 어떤 학생은 옥상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했데.
이런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니까, 너무 이상한 거야. 게다가 다들 잘나가는 집안 아들딸들이잖아? 선생님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선생님들은 무언가 걸리는 부분이 있었기에 일단 그 학생을 호출하기로 했어. 동아리에서 제명된 그 학생 말야. 그런데 이상했지, 그 학생이 타 동아리에 재가입한 이력이 없는 것은 물론 학교도 며칠씩 빠지고 있었다는 정황을 입수한 거야. 의심이 확신이 되자 선생님들은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판단했어. 다들 무언가 더 확실한 조치가 필요하다 여기셨지.
결국 그 학생은 상담실과 교무실에 차례로 호출을 받았어.
그런데 그 애와 이야기하고 나오는 선생님들마다,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너무 선명한 거야. 궁금해하며 문 앞을 기웃거리던 학생들에게 숨길 수도 없이 말이야.
촉새 같은 아이들은 말을 실어다 날랐지.
그 애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고.
전학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 애는 어딘가 정신 빠진 것처럼 기뻐했다고.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 뭐, 그건 본인만이 알겠지.
이제 다음 이야기는…. 뭐야, 어디 가?
아, 더 이상 듣기 싫다고? 처음에 그 패기넘치던 모습은 어디 갔어? 빨리 다시 앉아, 아직 할 얘기가 남았단 말야.
싫다고?
싫으면 어쩔건데?
네가 먼저 찾아왔으니 끝도 네가 봐야하지 않겠어?
그러게 누가 이 학교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애한테 부탁하래?
자, 이제 나머지 얘기를 마저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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