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파티에서 일어난 일

핼러윈 파티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건 재미있고 기발한 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내가 아닌 핼러윈 파티에 불려 온 유령들 중 하나가 의심받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도난 사건이 발생하면 산타클로스가 의심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두 번째 이유는 파티에 불려 온 늙은 영혼들이 갓 죽은 싱싱한 영혼을 어떻게 대하는지 관찰할 기회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 옛날 농담처럼 돌던 얘기 중에 ‘살인을 할 거면 핼러윈 데이에 하라. 피투성이가 되어 거리로 나가도 사람들은 실감 나는 분장이라며 오히려 칭찬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정도 말이 있을 정도면 핼러윈 데이에 살인을 저지르는 것만큼 기발한 일도 없다는 소리겠지. 그래서 나는 한번 진짜로 저질러보려 한다. 대상은 나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혀 학창시절 내내 악몽을 선사한 A. 그놈을 죽이기 위해 나는 계획을 세웠다. 무려 내 학창 시절 친구들을 모조리 초대한 핼러윈 파티를 여는 계획 말이다!

 

“오, 제발. 어설픈 농담은 그만둬.” 내 제안을 들은 B가 말했다.

 

“말이 안 될 건 없잖아?” 나는 대꾸했다.

 

“핼러윈은 삶과 죽음조차 실체를 가장하는 날이잖아. 오늘 A가 살해당해도, 사람들은 사람이 저지른 건지, 강령술사가 불러온 셜록 홈즈의 유령이 저지른 건지 잠깐은 혼란스러울걸? 그 빈틈을 노리는 거야.”

 

“셜록 홈즈는 가공의 인물이네. 실존인물이 아니야.” C가 점잖게 대꾸했다.

 

“알게 뭐람.” 나는 대답했다.

 

“흥미로운걸? 그래서, 계획이 있나?” D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도 놀랄 계획이 있지.”

 

내 자신감 있는 모습에 B와 C, 그리고 D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한심하긴! 이 녀석들이 진실로 지난날 나와 같은 괴롭힘을 당하던 이들이 맞는가 싶었다. 그들은 내게 이 일은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부디 계획에 우리를 끼워 넣지 말라며 자리를 떴다. 멍청한 것들. 어찌 이 즐거운 파티를 마다할 생각을 하는 건지. 나는 그들에게 계획을 이야기하는 걸 포기한 채 빙그레 웃었다.

 

사람들이 핼러윈 데이에 구멍을 뚫어 놓은 커다란 호박과 사탕을 떠올린다면, 난 팔뚝만 한 식칼을 들고 새하얀 가면 속의 안광을 번뜩이는 마이클 마이어스를 떠올린다. 사람들이 유쾌한 저세상 구경을 즐길 때 난 내 인생을 갉아먹은 그놈에게 진정한 지옥을 보여줄 셈이다.

 

바로 마이클 마이어스를 이용해서 말이다.

 

준비는 다 되어 있다. 마이클의 역할은 동네의 좀 모자란 녀석인 M이 맡아줄 것이다. 그에겐 그저 핼러윈 데이의 장난 정도로 여기도록 오랜 시간 세뇌해 두었다. M은 내가 자신을 파티에 끼워준다는 것만으로 상당히 흥분되어 있었다.

 

종이 여덟 번 울렸다. 불이 꺼졌다.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졌다. 상황을 미리 알고 있던 나조차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잠시 후 펼쳐질 광경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누군가 뭔가를 건네주어서 잡고 있으려니 마음이 놓였다. 마침내 불이 켜졌다. 홀 한가운데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A가 아니라 M이었다. 그리고 나는 M의 피가 묻은 칼을 들고 있었다.

 

나는 자칫하면 살인자로 몰려 현행범으로 체포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수년 만에 갑작스러운 초대장을 받은 A가 뭔가 낌새를 알아차렸던 걸까?

 

하지만 은밀하게 잠입시킨 M이 파티에 온다는 것은 아무도 알 수 없었을 텐데……? 설마 그 멍청이 자식이 어디 떠벌리고 다니기라도 했던 것일까?

 

“M?”

 

A가 사색이 되어 전화기를 들었다. 신고를 하려는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얼른 그를 저지했다.

 

“네가 M을 죽인 거야?”

 

“아니야! 아까 누가 내게 이걸 건네서 잡았을 뿐이라고!”

 

그래, 나는 그저 누군가 건네준 것을 받아 들었을 뿐이었다.

 

“그걸 어떻게 믿으라는 거지? 피 묻은 칼을 네가 들고 있는데? 죽이고서 도망치려다 못 간 거 아니야?”

 

“아냐 이건…… 내 말을 좀 들어봐.”

 

난 A가 돌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A에게 다가갔고, 그는 음료가 쌓여 있는 테이블까지 뒷걸음질을 쳤다. 그곳엔 누군가가 소품으로 썼던 얼음송곳이 놓여 있었다. A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집어 들었고, 하필 그때 내가 그를 덮쳤다.

 

의사를 부르는 누군가의 외침을 들으며 나는 쓰러졌다. 어렴풋이 보이는 천장의 조명과 옆구리의 스산함에 눈을 찡그리며 나는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눈 앞이 어두워졌다. 누군가 내 몸 여기저기를 만졌다. 의사인가?

 

“이런 세상에.”

 

D의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D는 의사였다.

 

D가 속삭였다.

 

“유령도 놀랄 계획이 있다면서?”

 

갑자기 아차 싶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D에게 작게 답했다.

 

“실패했지.”

 

“오! 그래? 자신만만해하더니, 성공하지 못 했단 말이야?”

 

“A는? 아니, 파티는 망했으니 전부 다 가버렸겠지? 신고를 막았던 내가 기절했으니 경찰도 왔겠군.”

 

“아니, A는 가지 않았어. 경찰도 오지 않았고.”

 

D의 말에 나는 의아해졌다.

 

“본인은 체포되기 싫었나 보지. 어쨌든 널 찔렀으니.”

 

결국 핼러윈 유령이 날 찾아온 것일까? A가 피 묻은 얼음송곳을 든 채 덜덜 떨고 있는 게 보였다. 그때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리며 M이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여전히 가면을 쓴 채. 나는 D에게 외쳤다.

 

“보여? M이야. 아까 분명 숨이 멎었다고 했잖아?”

 

“정신 차려. 출혈이 심해 헛것이 보이는 거야.”

 

M이 말했다.

 

– 원한 게 복수지? 대신 대가는 네 목숨 어때?

 

‘뭐라고?’

 

나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M은 죽은 게 아니었나? 저건 M이 맞는 건가? 마이클 마이어스의 가면을 뒤집어쓴 다른 누구인가? 질문이 이어지면서 혼란이 가중되었지만, 그가 건넨 제안만큼은 명확하게 이해했다.

 

“좋아. 저 A를 확실히 죽여! 그리고 나서 날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

 

M은 내 제안에 답변하는 대신 발걸음을 A에게 돌렸다. A는 팔이 심히 떨리고 있는 와중에도 송곳 끝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시각적으로 구체화 된, 음침한 죽음 – M – 이 본인에게 다가오고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다. 한 발짝, 두 발짝, 어느새 A의 떨리는 송곳 끝에 M의 옷가지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A는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잠깐만 기다려.”

 

다급하게 소리친 A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오늘은 핼러윈이야. 죽은 자가 산자 틈에 섞이는 날이며 누구나 즐겁고 유쾌해야 할 날이야. M 너는 네 자신의 의지로 저 머저리의 말을 듣고 있는 거냐? 그게 네 즐거움이야?! 아직까지는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잖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고.”

 

A는 M에게 말하면서도 시선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가가던 M이 말했다.

 

– A, 대화를 할 때는 똑바로 보고 말해야지.

 

그리고 곧바로 D가 이어 말했다.

 

“A, 얘는 환자야. 정신적 충격으로 지금 현실을 분간하지 못 하는 거라고. 장단을 맞춰주면 안 돼.”

 

D는 M을 못 보는지 그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M이 정말로 유령이 되어 돌아온 건가?

 

지혈은 한 상태지만, 피가 부족한지 내 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웠다. 그럼에도 생각해야 했다. 왜 나와 A에게 보이는 M이 D와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가?

 

‘잠깐, 보이는 것은 나와 A뿐인 게 맞을까?’

 

M이 죽기 전 연관된 이들에게만 보인다면? 나는 그에게 사주했고, A는 눈치가 빨라 이 음모의 낌새를 알아챘을 수 있다. 그럼 M 살해자도 그가 보일까?

 

“D, 내가 제정신인지 아닌지 확인해 줄 수 있겠나?”

 

“어떻게 말인가? 다른 사람이 나와 함께 미쳤다고 말해 주면 되나?”

 

“지금 이 방에서 겁에 질려 있는 사람을 말해주게. 마치 유령인 M을 보고 있는 것처럼.”

 

D는 내심 귀찮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장단을 맞춰주겠단 배려심인지 D는 모두의 얼굴을 스윽 훑어봤다.

 

“이봐 B, 자네 괜찮나? C는 어디 갔지?”

 

“괜찮을 리가 없지 않나. 난 지금 시체와 살인자와 한 방에 있다고.”

 

B는 창백한 낯빛으로 대꾸하며 나와 D를 바라보고, 그리고 뒤이어 A를 쏘아보았다.

 

겉보기에 B가 M을 인식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C는 2층으로 올라갔다네. 왜냐하면…….”

 

B가 진저리를 치며 위층을 가리킨 순간, 천장에서 우당탕 소리가 둔탁하게 터져 나왔다.

 

“무슨 소리지?”

 

“잠깐, 넌 움직이지 마! D 너도! 2층은 내가 살펴보고 오겠어.”

 

B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나와 D를 동시에 가리키고는 방을 나갔다. 이제 방에 남겨진 사람 중에서 M이 보이지 않는 건 D뿐이다. 그리고 M은 A 바로 앞에 멈춰 서 있었다.

 

“뭐하는 거야. 얼른 죽여버려!”

 

“이봐, 좀 진정해.”

 

D는 그리 말하곤 고개를 돌렸다.

 

“진정할 수 있겠어?” A는 소리쳤다. D는 비웃음을 흘렸다.

 

“A 널 제압하는 건 쉬워. 만약 저 녀석이 멀쩡했다면 2대 1이었겠지만.” D는 날 흘끗 보았다.

 

“이 방엔 저 녀석과 A, 그리고 나. 이렇게 셋뿐이잖아?”

 

난 소리쳤다.

 

“살인자! M이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척을 하다니!”

 

D가 날 보았다.

 

“무슨 소리야? 이 방엔 셋뿐이야.”

 

“뭐?”

 

그때였다.

 

M이, 아니, M의 유령이 쓰러졌다.

 

– ……뭐야?

 

그 말만 남긴 M은 안개처럼 사라졌다.

 

– 계획대로.

 

그 뒤에는 호박 머리 유령이 서 있었다. 그는 날 보고 웃었다.

 

– 핼러윈 파티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건 재미있고 기발한 일이야. 유령이 유령을 죽이는 거라도.

 

그리고 호박은 스르르 M의 몸에 들어갔다.

 

“으으…….“

 

M이, 아니, 호박이 신음했다.

호스트 코멘트

이 파티에 과연 살아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요? 핼러윈 맞이 스레드소설 이벤트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여자


후원자

환상괴담 샘물 조나단그리고 익명의 후원자 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