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데믹 솔져

서력 2032년. 인간들의 언데드화는 세계를 강타한 제 3의 판데믹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춰 섰고 혼란에 빠졌지만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삶은 제약된 형태로나마 계속되고 있었다.

 

그건 좀비 바이러스의 다음과 같은 성질 때문이었다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투해도 좀비로 변이할 확률은 6퍼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멈추었다. 좀비로 변하지 않더라도 94%의 몸에서 바이러스가 사멸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통스런 죽음과 그보다 끔찍한 부활은 사람들을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이 택한 최선은 고립이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고립된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삶은 현대인에 어울리지 않았다. 수도도, 전기도, 연료도 얻을 수 없엇다. 문명의 이기는 고철이 되었고 삶은 순식간에 비참했다. 고립은 판데믹 한가운데보다 더한 고통을 주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고립된 사람들은 군대를 만들었다.

 

이 군대는 여러모로 특별했다.

 

우선 그들은 ‘감염자’로 구성되었다.

 

두 번째로 그들에게 근대적 무기는 허용되지 않았다.

 

감염자들에 의한 역공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열병기는 확진받지 않은 인간들로 구성된 별도의 ‘자경단’에게만 제공되었다.

 

명색이 ‘군대’인 사람들이 보유할 수 있는 무기는 검, 화살, 창, 방패, 군마가 전부였다.

 

예측할 수 없는 세상, 습격해오는 시체들, 그 속으로 원시적 무기를 든 채 걸어들어가야 하는 불안감. 그러나 그것 뿐만이라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이 새로운 군대에게 가장 끔찍한 공포는 방금 전까지 목숨을 맡기던 전우가 한 순간에 살아있는 시체로 변해버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어느 순간 의식을 잃고 사람의 생살만을 탐하는 괴물로 변해버릴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오늘도 두려움을 안고 좀비를 소탕하고 자원을 탐색하고 외부의 적을 방어한다.

 

이렇게 버티다보면 언젠가 치료제가 개발될 것이라는, 기약없는 희망만을 안고서.

 

“전 감염되지 않았어요!”

 

절규 소리에 지우는 잠에서 깨어났다.

 

경계 근무 도중 졸았나 보다.

 

소대장한테 들켰으면 ‘미끼 부대’에 처박혔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지금 부대로 ‘전입’해오는 신병들한테는 절대로 그렇지 않겠지만.

 

철조망이 씌워진 트럭에 닭들처럼 갇혀 있는 신병들은 다들 아직 사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몰골은 각양각색이었다.

 

절망한 얼굴로 울부짖는 사람이 있었다.

 

“뭔가 잘못된거에요, 전산 착오라고요! 난 아직 멀었어요.”

“일동 하차! 실시!!”

“저기요? 전 아직 여기 올 사람이 아니라구요!”

울부짓는 그를 향해 책임자인 듯한 교관이 뚜벅 뚜벅 다가와 그 앞에 섰다. 이글거리는 그의 눈은 190 가까운 큰 키의 철모 아래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가차없이 울부짓는 그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서서히 그의 발이 지면을 떠나고 있었으며 교관이 말했다.

“전산착오, 그럴지도… 전선에서 전산착오는 의미없다. 착오란 물렸나 안물렸나에 달렸다.

 

교관은잡은 멱살을 놓아버렸고 그는 지면에서 멀어진 만큼의 중력으로 바닥에 동댕이 쳐졌다. 그러나 다시 기어와 교관의 발목을 잡으며 말했다.
“누군가 저를 일부러 이곳으로 보냈어요. 전 대체복무 중인 연구원입니다. 바이러스 침투 경로와 변종 연구 중이었습니다. 제가 여기 있다는 건 누군가 연구를 중단했다는 겁니다.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확인좀 해주세요. 제발요!!”

“일동 앞으로!!”

교관은 뒤로 돌아 뚜벅뚜벅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발목을 감싸쥐던 그는 그만 튕겨나가 길바닥에 나뒹굴며 먼지에 휩쌓였다.

 

‘와. 그래도 썰이 제법 구체적이네.’

 

‘보통 저런 모습이 일반적인데’

 

지우의 시선이 향한 곳에 또 다른 신병이 아예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엄마아! 엄마아!”

 

아가 그 대체복무중인 연구원이라는 사람보다 적어도 10살은 더 많아보이는 뚱뚱한 남자는 척 봐도 촌스러워보이는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저 셔츠는 엄마가 사준 걸까? 딱 그럴 법하다고 지우는 생각했다.

 

목책을 따라 연결된 가시 철조망 울타리에 매달려 있는 푯말에 퇴색한 붉은 글씨가 보인다.

 

‘감염자 수용소. 접근 금지.’

그렇다. 이 곳은 공식적으로는 군 부대도 아니다.
‘수용소’다.

 

근무를 끝내고 내무반 – 공식적으로는 감방 – 에 들어오니 현건우 병장이 이불을 덮어쓰고 있었다.

 

열에 들뜬 그의 벌건 피부를 보는 순간 지우는 긴장한 채 허리춤의 반월도를 부여잡았다.

 

“아니야. 이 지지배야. 쿨럭.”

 

오한이 나는지 현건우 병장이 이불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냥 감기라고. 콜록.”

 

지우는 선선히 손을 칼에서 떼고 입고 있던 야상을 벗어 건우에게 던져주었다.

 

“조심하십시오. 현뱀. 여기서는 약도 못 구하는데. 감기도 큰일입니다.”

 

그 때 내무반 문이 열리며 처음 보는 인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아까 신병들이었다.

 

모두 이미 환복을 마친 상태였다.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검은색의 군복은 그들의 탁 풀린 눈동자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야, 우선 얘네 좀 씻겨라. 냄새가 작살이다. 쿨럭! 쿨럭! 커억!”

 

건우 병장이 마른 기침을 심하게 하더니 피를 토해냈다. 몸까지 부르르 떨자 신병들은 기겁하면서 반대쪽 벽으로 우르르 붙었다.

 

“뭐. 이 새끼들아. 꼽냐? 별 같지도 않은 것들이.”

 

“쉬십시오. 한뱀. 얘들 씻기고 오겠습니다.”

 

지우는 신병들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저….아가씨….”

넋이 나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따라오던 신병들 중 유일하게 지우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아까 그 신병이었다. 자칭 연구원. 누군가 자신을 일부러 이곳으로 보냈다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주장하던 신병.

 

“아가씨?”

지우가 대놓고 눈을 부릅떴지만 놀랍게도 음모론 신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전 지금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백신..백신 개발이 코 앞에 있었다구요. 이 지옥을 곧 끝낼 수 있었단 말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연구소로 돌려보내주세요. 저한테 한 달만 더 시간을 주면…”

 

그 때 요란한 꽹가리 소리가 들렸다.

 

“젠장! 판데믹이다!”

언데드 출현. 그것도 하필이면 갓 들어온 신병들과 있을 때.

실로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상황이 발생한 건 제 6 내무반이었다.

 

방 내부는 습한 핏기로 가득했다. 서너 명 정도는 공포에 경직되어 옅어진 호흡으로 정신을 놓지 않으려 했다.

 

6 내무반은 전투와 감염으로 인한 극심한 병력 손실 때문에 오늘 가장 많은 신병을 받은 곳이다.

 

신병들로부터 발병한 것일까 아니면 기존의 병사들이 발병한 것일까.

 

확실한 사실은 눈 앞의 문 너머에 사람의 살을 먹어치우려고 드는 괴물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삶은 여유를 주지 않았다. 언제나 그러했다. 그 빌어먹을 잡놈이 보여주는 빈틈이란 바늘구멍 같은 것이었고, 살아남을 자들은 낙타 같은 짐덩이를 이끌고 그 틈을 돌파해 내는 자들이었다.

물론, 내가 그랬다.

“강은국! 강은국 이 새끼 어디갔어!”
“일병 강은국!”
“유진이, 성호, 주현이 찾아다 먼저 가 있어. 절대 덤비지 말고! 움직여!”

강은국은 엉덩이를 발로 걷어 차인 것처럼 튀어나갔다. 시키는 것만 잘하는 놈이니 제 목숨 붙들고 있을 줄은 알겠지.

다만 그런 기지를 신병들에게 바랄 수는 없었다.

 

경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진지 외부에서 발생한 상황에 대한 것과 내부에서 발생한 상황에 대한 것.

외부 상황이야 일상적인 것으로, 저기 벌벌 떨며 서 있는 신병들조차 조치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다. 초소에 서서 활줄만 당기면 되는 일을 못한다면 세상은 죽어 마땅한 자라고 말하며 자기 말을 지킬 것이다.

다만 내부 상황의 경우 척 들어도 알겠지만 복잡하다. ‘위험분자’로 구성되었다는 이유로 열병기를 지급받을 수 없는 우리들에게 난전이란 결코 달갑지 않았다.

 

최선의 대처란 나무 문짝 같은 방패를 겹겹이 세우고, 그 틈바구니에서 비죽이 튀어나온 창을 쑤셔대는 것.

고대 스파르타의 밀집대형 비슷한 것이지만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전술치고는 생각보다 어렵다.

창을 놓치고 얼타는 녀석이야 봐줄만 한 수준이지만, 좀비의 공격에 방패를 놓치고 넘어지거나 도망치는 녀석이 생기는 날에는 6내무반 반장이 왜 그토록 인원 충원에 소리를 높였는지 알 수 있다.

당연히 신병들을 환대하기 좋은 자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시간을 버리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이 긴 생각을 1초만에 정리한 후 지우는 자신이 이끌고 온 신병에게 접근하는 언데드의 머리를 쳐 날렸다.

 

신병 2명은 얼떨떨한 얼굴로 자신의 눈 앞에서 날아가는 언데드(불과 몇 분 전 자신들과 똑같은 차를 타고 병영으로 들어왔던)의 얼굴과 검광조차 보이지 않았던 지우의 사슬낫을 바라보았다.

 

사슬낫이라고 해도 일반 농가에서 쓰는 낫에 어딘가의 소화전에서 빼온 고무 호스를 단단하게 매듭지은 것에 불과했다.

 

그 엉성한 무기가 예비동작도 없이 불가사의한 방향으로 휘며 코 앞까지 다가왔던 언데드의 볼과 턱을 갈라놓는 광경은 신병들에게 그야말로 신기 그 자체였다.

 

“정신들 차려!”

여러모로 얼이 빠져 있는 신병들에게 지우는 소리를 질렀다.

 

“뜯어진 문짝 들어! 저걸 방패로 쓰라고!”

막 들어온 신병들한테 공격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게 판단한 지우였다.

 

그 때 누군가 지우의 허리를 부둥켜 안았다.

 

들고 있던 무기가 사슬낫이었던 건 정말 다행이었다.

 

손도끼나 하다못해 단검이었다면 그대로 자신의 허리를 부둥켜 안은 놈을 턱부터 머리로까지 쪼개버렸을 것이다.

 

그 불행한 운명을 방금 회피한 자칭 연구원 신병은 아주 비장한 얼굴로 지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부둥켜 안은 채로.

 

“훌륭하십니다! 이대로 저를 계속 보호해주십시오!”

 

신병, 다른 말로 ‘감염자’들에게 종말 이전의 군대처럼 개념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정상적인 사고 방식에 비추어봐도 도를 넘은 것 같았다.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은 건 둘째치고 지우는 그의 선임이었다.

 

“인류를 구할 때까지 저는 죽어서는 안 됩니다!”

 

신병 때문에 어이가 팔린 사이 언데드들은 어느새 지우의 코 앞까지 와 있었다.

 

지우는 정신 나간 신병의 겨드랑이를 푹 찔렀고 심장까지 충격을 받았는지 신병은 그대로 폭 바닥에 쓰러졌다.

 

언데드들은 여전히 흉측하게 입을 벌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전까지는 인간이었고 전우였다는 사실을 지우는 잊으려고 애썼다. 그런 감상은 전투에, 무엇보다 생존에 불필요하다.

 

지우는 긴 목재 파편을 하나 집어 콜록 거리는 신병에게 다가오려는 언데드들을 밀어냈다.

 

언데드들은 괴상한 신음소리와 함께 미는 대로 밀려났고 곧 공간이 생겼다.

 

“삼초 안에 문짝 치켜들고 여기로 여기로 모인다! 도망가는 놈은 언데드보다 내 손에 먼저 죽을 줄 알아!”
좀 전 현란한 사슬낫 솜씨가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얼어붙었던 지우의 신병들은 굼뜨나마 지시한 대로 움직여주었다.

 

그리고 언데드들은 신병들이 만든 어설픈 방진조차 뚫지 못했다. 판데믹이 발생한 6 내무반이 베테랑은 적고 신병은 많은 구역이어서 다행이다. 지우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때 괴성이 울렸다. 다른 언데드들의 ‘으으’하는 수준의 울음소리와는 차원이 다르게 크고 날카로웠다.

 

반대편으로부터 언데드들이 픽픽 쓰러지며 지우들 쪽으로 물살이 갈라지듯 길이 생기고 있었다. 신병들 중에는 지원군이 온 줄 알고 기뻐서 입을 헤벌쭉 벌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지우는 알고 있다. 저것은 결코 지원군이 아니다.

 

그리고 가장 앞열의 언데드들이 우르르 넘어지고 그것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신병들도 알게 되었다.

 

자신들 같은 초짜가 문짝 같은 허접한 무기로도 쉽게 밀어버릴 수 있었던 놈들과는 완전히 다른 놈이 왔다는 것을

 

언데드들을 밀어버리고 나타난 그 놈은 무엇보다, 조용했다.

 

으어, 으어어 신음소리를 흘리는 다른 언데드들과는 달리 입을 꾹 담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키는 다른 언데드들의 두 배 정도고 목부터 어깨까지의 넓이와 두께는 적어도 네 배가 넘어보인다. 지우는 그 언데드의 가슴을 보았다. 붉은 실로 조잡하게 만든 명찰이 보인다. 아주 익숙한 이름으로 6 내무반에서도 손꼽히는 베테랑이었다.

 

언데드의 강함은 생전의 강함에 비례한다.

 

전투 경험이 많고 숙련된 군인이 언데드로 변하면 그건 신병이 언데드로 변했을 때의 공포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것들은 통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일부러 팔관절을 뽑아 도리깨처럼 휘둘러 방패 겸 문짝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턱을 뜯어 던져 찰나에 우위를 점했다.

 

베테랑은 눈구멍을 후벼 문짝 너머로 뭔갈 던졌다. 바닥을 내려다본 신입은 기겁했다. 찰나의 순간에 반응한 사람은 지우 뿐이었다. 속근의 폭발적 팽창으로 도약 한번에 방진을 넘고 잭나이프를 휘둘렀다.

 

방패를 든 신병들은 넘어졌고 던져진 턱뼈에 맞지 않으려고 대열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물러나려는 신병들이 있었다. 방진이 무너졌다. 틈새로 언데드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후퇴! 전원 이 곳에서 나가라!”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진입 명령 따위 의미가 없다, 라고 생각한 지우는 소리 높여 외쳤다.

 

그 때 눈 앞에서 톱니 모양으로 경화된 손날이 날아온다. 거대 언데드였다. 우우 하며 휘젓는 평범한 언데드들의 손짓과는 완전히 달랐다. 빠르고 절도가 있었다.

 

최단거리로 직진해 얼굴로 날아오는 언데드의 손아귀. 권투의 잽 그 제차였다. 지우는 그 팔을 팔뚝부터 베어냈다.

 

이어 언데드가 목 언저리를 보호하기 위해 치켜드는 다른 쪽 팔을 베어냈다.

‘죄송합니다.’

눈 바로 앞에 보이는 명찰을 향해 짧게 사죄를 하고 세 번째 참격으로 목을 베어냈다.

 

그 몇 초 안되는 순간 신병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그 거대한 언데드의 목이 그들 발 밑으로 굴러가는 동안 멍하니 낫을 고쳐쥐는 지우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뭐해, 어서 나가라니까!”

지우가 소리치고 여러모로 넋이 나가 있던 신병들이 엎어지고 뒤쳐지며 밖으로 몰려나가는 동안 거대 언데드가 3마리 더 들어왔다. 물론 평범한 언데드들도 건재한 채. 서서히 거리를 좁혀들어오고 있었다.

 

지우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상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 언데드 3마리 중 두 마리 정도가 어쩐지 생김새가 눈에 익어서다. 6 내무반의 고참이 언데드로 변해버린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었을 무렵 부대 내 어딘가에서 아니면 전장에서 만났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선 사슬낫을 횡으로 한바퀴 돌렸다. 포위망을 좁혀오던 보통 언데드들의 눈알이 터져나갔다. 언데드드라고 해서 혀나 귀로 앞을 보지는 않는다. 순식간에 시야를 상실한 언데드들은 발이 엉키며 와르르 넘어졌다. 거대 언데드들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허공에서 두 번째 회전을 준비하던 지우의 사슬낫은 다음 순간 틀림없이 거대 언데드들의 눈알을 도려냈을 것이다.

“오오….”

뜬금없는 감탄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지만 않았더라면. 언데드가 감탄사를 내뱉을 리 없다. 그러므로 지금 지우의 뒤에 있는 건 틀림없이 인간이다.

 

“굉장해요!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저를 지켜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연구원이었다는 신병이었다. 다나까가 아닌 건 그렇다치고 다 도망치는데 혼자 남아 있는 병신미는 무엇인지 지우는 말문이 턱 막혀왔다.

 

그러나 소리 질러 꾸짖을 여유도 없었다. 거대 언데드는 영점이 어긋난 사슬낫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잡아당겼다.

 

지우가 날아가려던 순간 그 멍청한 신병을 잡아챌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둘은 거대 언데드에 의해 날아가 내무반의 창문을 박살내고 지반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으윽….”

거대 언데드가 둘을 다른 언데드들 사이에 패대기쳤다면 끔찍한 죽음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역시 2급 언데드의 지능은 그리 높지 않군요.”

몸을 추스리자마자 신병을 박살내버리려고 했던 지우는 그 말을 듣고 멈추었다.

“2급이라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언데드의 등급은 그 강함에 따라 3종류로 나뉜다.

3급. 전투 경험이 거의 없는 ‘일반인’이 변이한 경우. 숫자가 가장 많지만 전투 능력은 거의 없고 일대일로 처치하기 용이.

 

그리고 2급. 소대에서 고참이 언데드로 변이할 경우 아주 용이하게 2급 언데드가 된다. 몸집이 3급의 2배에 달하며 타격, 회피 등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어 평범한 병사가 이 언데드와 마주치면 죽음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 지식은 인간들의 도시에는 전혀 전해져 있지 않다. 언데드들을 등급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감염자’들의 군대 뿐. 그런데 지금 막 군대에 합류한 신병이 어떻게 2급 언데드니 뭐니 하는 말을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

 

“너, 그런 말은 어디서 주워들었어?”

“앞을 보세요! 어디에 한 눈을 파는 거야…억!”

아주 자연스럽게 신병의 턱을 걷어차면서 그가 말한 대로 지우는 전방을 주시했다.

 

소형의 3급 언데드들은 아직도 우왕좌왕 내무반 건물 안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다. 그러나 대형의 2급 언데드들은 지우와 신병이 아직 살아있음을 눈치채고 거대한 몸을 날렸다. 건물 벽이 부서지고 지우와 신병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2급 언데드들이 날아와 착지했다.

 

하나, 둘, 셋,…..일곱, 여덟.

내부에서 봤던 숫자보다 훨씬 늘어나 있었다.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언데드들은 무는 것으로 감염시키지 않는다. 대신 한 번 판데믹이 폭발하면 같은 장소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인간들이 언데드로 바뀌어 간다.

 

“뭐하세요! 당장 무기를 찾아 드세요!”

지아의 뒤에서 목놓아 외치던 신병은 이번에는 이마를 팔꿈치로 찍혀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한 번 다나까 안 써봐라. 그리고 무기는 필요 없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우와 신병의 머리 위로 화살의 비가 쏟아졌다.

사람 키만한 화살도 있고 불화살도 있다.

지우는 알고 있었다.

조금 전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일련의 화살비는 범고래를 피해 날아오르는 날치떼와 같이 요동쳤다. 이윽고 표적에 다다른 날치떼는 몸을 비틀어 목표물을 뚫고 날아갔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3급 언데드들이 괴성을 지르며 쓰러져갔다.

그러나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은 쉽사리 당해주지 않았다. 2급 언데드들은 육중한 체격에 걸맞지 않은 속도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투사체를 피해 지그재그로 회피기동을 하기 시작했다. 지능이 아닌 본능에 기반한 움직임이었다.

 

멀리 날아간 불화살들은 다행히 표적에 적중했다. 언데드들로 가득찬 6내무반 건물이 화염에 휩싸였다.

 

빛 때문일까 열 때문일까. 2급 언데드들은 전진하다 말고 잠시 뒤로 돌아 불타는 건물을 돌아보았다. 마치 뭔가를 알아보는 것 같아 대단히 섬뜩한 동작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 괴물들이 자신과 같은 ‘감염자’였으며 전우였다는 엿 같은 기분에 지우는 치를 떨었다.

 

지우는 보다 강렬한 소음이 나길 내심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툭, 그 소리는 주변 언데드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깔끔한 살인이었다.

 

‘이런 씨-‘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온갖 욕설과 고함이 난무한 진부한 비난이었다. 이제서야 그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 분노로 빛나는 눈알을, 증오로 뒤덮힌 눈알을 본 지우는 입꼬리를 느슨히 올렸다. 사슬낫은 망가지지 않았다.

 

2급 언데드들의 시선이 다시 지우와 신병에게로 돌아왔다. 놈들이 돌진할 자세를 취했다. 몇몇은 복서처럼 두 주먹을 눈높이로 들어올렸다. 힘도 의지도 없이 축 늘어진 채 걷는 3급과는 완전히 다른 자세다.

“크어…..”

소름 끼치는 신음소리만 아니었다면 평범한 인간 전사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순간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 망치가 날아오고 있었다. 허공을 가른 둔기는 2급 언데드의 위방 자세의 손을 박살내고 목을 터트렸다.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어딜, 이 개자식들이!”

선두에 선 남자는 말이 큰지 아니면 그가 더 큰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덩치가 컸다. 그 덩치로 폭풍처럼 휘두르는 망치가 2급 언데드 두 마리의 상반신을 순식간에 박살냈다.

 

“자기야, 내가 왔다!”

말 위의 남자가 우렁차게 외치는 순간 지우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안도해야 할지 대놓고 짜증을 내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남자가 잠깐 지우에게 한 눈을 판 사이 2급 언데드 중 하나가 허공을 가르는 망치를 낮은 자세로 피해 남자의 말에게 달려 들었다.

“히히힝!”

“젠장! 2급들은 이래서 골치 아파!”

만화 같은 대사와 함께 남자는 낙마해버렸다.

 

남은 2급은 다섯. 셋은 남자에게 달려들고 둘은 지우와 신병에게 달려들었다.
사슬낫은 아까 창문으로 내동댕이칠 때 잃어버렸다.
무기도 없는 상태에서 신장이 2배 가까운 괴물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
신병은 벌써부터 꺄아악 비명을 지르고 야단이었다.

 

2급 언데드는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오른쪽 스트레이트부터 뻗어왔고 특이하게 그 다음에 왼손으로 잽을 날렸다.
그런게 그 이상한 자세가 낯익었다.
언젠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선을 헤쳐나왔던 적이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언데드가 언데드로 변하기 전, 인간이었던 시절에.
지우는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피하고 언데드의 품 속으로 파고 들었다.

 

소설이나 영화와는 달리 언데드한테 물려도 언데드가 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그래서 더 끔찍하지만, 어쨌든 지금 지우는 아무 망설임 없이 언데드의 맨살이 드러난 허리를 그의 힘과 무게를 역으로 이용해 힘껏 메쳐버렸다.

 

“무기도 없이 맨 손으로 어쩌겠다는 거예요! 절 보호해주셔야죠! 아, 이제 인류는 끝났어!”

연구원 신병은 계속 징징 거렸지만 지우는 침착하게 다른 2급 언데드가 휘두른 정권을 피해 민첩한 스탭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그 언데드들이 스스로에게 위협이 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잠시 뒤에 밝혀졌다. 아까 그 남자의 망치가 날아와 지우 앞의 2급 언데드의 척수를 부러뜨렸던 것이다.

“어딜, 감히 누구한테! 이놈들이!”

남자가 검붉은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 뛰어오더니 그 자리의 2급 언데드 중 하나는 사타구니를, 다른 하나는 관자놀이를 망치로 부숴버렸다.
상황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뭡니까, 저건. 괴물..?”

지우의 명령에 따라 내무반에서 도망쳤던 신병들이 옹기종기 모여들고 있었다. 지금 망치로 2급 언데드들을 때려부수는 남자가 수습해서 데리고 와준 것이다. 무조건 도망치려던 신병들도 자기 상반신만한 망치를 보자마자 겁에 질려서 ‘따라와’라는 말에 거역하지 못했다.

“끝나고 오시면 인사드려라. 소대장님이시다.”

지우는 신병들에게 알려주었다.

 

“소대장님이요?”

신병들은 입을 모아 놀랐다가 바로 지우에게 사타구니와 정강이들을 차례로 얻어맞고 말았다.

“다나까만 쓰라니까 아직도 정신 못차리지.”

그 와중에 연구원 신병은 다른 신병들과 달리 한 번이 아니라 계속 얻어맞고 있었다. 아까 했던 고문관 짓에 대한 처벌이었다.

 

“억. 아악! 왜 저만 계속 때려요!”

‘요’ 자에 대한 대가로 뺨을 얻어 맞는 사이 ‘소대장’은 2급 언데드들을 모두 처리했다.

“괜찮아? 우리 이쁜 상병 윤지우.”

“상병 윤지우.”

지우는 소대장을 향해 경례를 붙였다. 상급자에 대한 예의 뿐 아니라 자신의 병사들을 구해준 감사까지 담겨 있었다.

 

“후임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대장님.”

“어, 얘네들이 오늘 새로 온 얘들이냐?”

신병들을 살펴본 소대장이 껄껄 웃었다.

“너희가 언데드가 되면 고통없이 죽여주마! 반대는 불가능하겠지만! 하하하!”

 

도저히 웃을 수 없는 농담에 신병들은 어색하게 움찔거릴 뿐이었다.

“소대장님이 언데드가 되면 누가 처리합니까?”

“그야 우리 이쁜 지우가 처리하겠지, 하하하!”

호탕한 대답에 앞으로 나아가 소대장의 가슴을 퉁, 친 건 지우가 아니었다.

 

“훌륭합니다! 당신 정도라면 저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인류를 위해 잘 부탁드립니다!”

소대장은 해맑게 웃으며 연구원 신병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이 병신은 뭐야?”

그러다 지우가 연구원 신병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걸 보고 껄껄 웃으며 그 신병의 이마를 때렸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얻어맞은 신병은 구겨버린 종이 같은 모양새로 바닥에 엎어졌다.

 

“저희 신병입니다. 이름은…아직 모릅니다.”

“얘가 좀 이상하다 야. 고문관 같은데 조심해라. 야. 그래도 언데드로 변해도 딱히 무섭지는 않아서 좋겠다. 나하고는 다르게. ”

소대장은 발끝으로 엎어진 채 꿈틀거리는 연구원 신병을 툭툭 걷어찼다.

 

“슬프게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 소대장님.”

“왜. 왜 떨어? 우리 지우. 걱정 마. 언데드가 돼도 우리 지우는 절대 공격 안 할게.”

소대장과 지우가 주고 받는 말을 들은 순간 신병들은 전부 소대장의 거대한 몸뚱이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그 눈길은 박살이 난 채 지면에 흩어져 있는 언데드들의 시신으로 향했다.

 

이 언데드들도 바로 얼마전까지 사람이었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추방당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자신들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흉측하게 뒤틀린 언데드로 변해 누군가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실감이 그제서야 강하게 찾아온 모양이었다.

 

“이제 실감들이 좀 나나? 너희들이 나를 죽이게 될지도 모르고 반대로 내가 너희들을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 너희는 이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감염’ 되었기 때문에.”

신병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에이. 너무 겁준다. 우리 지우. 우리가 언데드로 변하면 쟤네가 어떻게 죽여.”

그러더니 신병들을 향해 속삭이는 척 했다.

 

“그러니까 자는 걸 몰래 덮쳐. 알았지?”

신병들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몰라 어버버 거렸다.

유일하게 힘차게 대답해온 신병은

“그건 걱정 마시오.”

역시나 ‘그 녀석’ 연구원이었다.

 

“내가 돌아가 백신을 개발하면 그 공포도 모두 끝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두 주먹이 함께 나갔다.

하나는 지우의 것, 다른 하나는 소대장의 것.

지우는 눈을 치떴고 소대장은 헤실 웃고 있다는 점이 달랐지만 둘 다 아주 세게 때렸다.

 

“하하하. 아주 골 때리는 친구야. 안 그래?”

“뭘 웃으십니까. 고문관 하나 들어왔는데.”

“어차피 우리 다 잠재적인 고문관인데. 언제 언데드로 변할지 모르니까. 다른 게 있다면 얘네는 못 싸우고 우리는 잘 싸운다는 정도?”

맞는 말이었기에 지우는 입을 다물었다.

소대장은 주머니를 뒤져 초코파이를 하나 꺼내 쓰러진 연구원 신병에게 쥐어주었다.

 

“먹고 정신 좀 차리게 친구.”

달콤한 걸 먹는걸로 돌아올 정신 머리가 아닌 것 같다고 지우가 한 마디 하려는 순간 자동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우도 소대장도 긴장한 채 몸을 굳혔다. 오히려 풀어져서 웅성거리는 건 뭘 모르는 신병들 뿐이었다.

 

신병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연료’와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건 그들을 추방한 ‘비감염자’들 뿐이었다.

지프 한 대가 멈추더니 곧 개틀링 기관총이 신병과 지우, 소대장을 겨누었다.

“물러서라.”

 

“오케이. 오케이. 알았다고.”

소대장이 과장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며 지우의 손을 잡고 뒷걸음질 쳤다.

신병들도 눈치 빠른 일부는 지우와 소대장을 따라 순순히 시키는 대로 뒤로 물러섰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저, 저는 진짜 감염되지 않았어요!”

신병들 중 그렇게 외치며 지프로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프에서 풍겨오는 기름과 기계의 냄새는 그들이 여기로 오기 전 살고 있던 장소에서 익히 맡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호소하면, 운이 좋으면 다시 그들이 살던 ‘비감염자’들의 도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생겨난 듯 했다.

 

“부탁이예요! 제발 재검을 받게 해주세요! 그러면..윽!”

텅. 터텅. 묵직한 총성과 함께 앞서 뒤던 신병들이 푹 고꾸라졌다.

앞서 흉악한 언데드들의 습격에서도 살아남았던 이들인데 너무나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그것도 대구경 탄에 관통당해 머리 부분이 흔적도 없이 날아간 채로.

 

“으…으어…”

신병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물러섰다. 언데드 앞에서도 지리지 않았던 오줌으로 바지를 축축하게 적신 사람도 있었다.

당연한 일일까. 언데드라면 몰라도 같은 인간에게, 그것도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같은 공간에서 같이 살았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총알로 거부당한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이봐. 총질은 삼가하지? 우리도 인원 없어”

 

소대장이었다.

그는 총알 따위 두렵지 않다는 듯 거대한 체구로 개틀링 기관총 앞을 가로 막았다.

손에 든 망치는 언제든지 집어던질 준비를 한 채였다.

상관이 나서는 사이 지우는 살아남은 신병들을 수습하여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 쏜다.”

건조한 기계음이 지프로부터 들려왔다. 저 차를 운전하고 있을 ‘비 감염자’들은 아예 얼굴조차 내비추려고 하지 않았다.

“왜? 아까 얘들처럼 나도 쏴봐?”

못 쏜다. 세상의 반 이상이 멈춰버린 지금 총알도 아껴야 할 것이다. 방금 쏜 것만으로도 오늘 써야 할 분량은 다 쓴 것이다.

 

지우는 가만히 소대장의 넓은 등을 바라보았다.

그가 지금 총구와 병사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건 과연 의협심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자살충동에서 나온 것일까.

아마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어느 순간 예고도 전조도 없이 언데드로 변해서 누군가를 해치기 전 차라리 총알에 맞아 뒈지고 싶다.

소대장은 그 정도로 담백한 생각을 해낼 수 있는 사나이였다.

 

“뭐해? 쏴보라니까?”

“당장 물러서라.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뭐? 으으윽!”

소대장이 갑자기 가슴을 잡고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크어어억”

지프의 시동이 걸리며 급하게 요동쳤다.

눈 앞의 인간이 언데드로 변하는 것 같은데 더 이상의 총알은 쓸 수 없다.

지프로 깔아뭉개면 그만이겠지만 총을 쓰지 않고 싸워본 경험이 거의 없는 ‘비감염자’들에게 그런 융통성은 발휘되지 않았다.

“소대장님.”

지우가 침착하게 상관을 말렸다.

 

“놔봐. 자기야.”

“그러지 마십시오.”

소대장이 언데드로 변하는 건가 싶어 멀찌감치 뒤로 도망가 있던 신병들은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내가 우리 자기 때문에 참는다. 앞으로 조심해.”

 

지프에서는 처음의 경고 이후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묘한 대치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비감염자’들이 먼저 지프의 방향을 돌렸다.

“진짜 언데드가 될까봐 무서웠던 모양이지?”

소대장은 으스대더니 몸을 돌려 잔뜩 얼어있던 신병들에게 다가왔다.

 

“봤지? 이제 너희는 절대 너희가 왔던 곳으로 못 돌아가. 우리가 놔줘도 거기 가면 살해당할 거다. ‘감염자’라고.”

으스대는 태도에 비해 소대장의 말투는 진지했고 내용은 무거웠다.
신병들에게는 더 이상 공포도 당황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풍겨져오는 냄새는 지독한 괴로움 뿐이었다.

지우는 마음이 아팠다. 나도 저랬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상병님.”

복귀하는 길에 신병 중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다들 잔뜩 얼어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지우도 굳이 입을 열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유일하게 소리를 내는 건 연구원 신병이었는데 계획이 어쩌고 유전자가 어쩌고 항체가 어쩌고 도저히 모를 소리 뿐이어서 대단히 기분 나빴다. 어느새 같은 신병들도 그를 슬슬 피하고 있었다.

“왜?”

 

“정말, 저희도 아까 그렇게…되는 겁니까?”

‘아까 그렇게’가 언데드를 의미한다는 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됩니다.”

대답을 한 건 지우가 아니라 그 원수 같은 연구원 신병이었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이상…그러려면 빨리 돌아가서 연구를 진척시켜야 하는데…아, 아까 그 언데드 시체도 가져올 수 있었으면…”

 

이제 신병들조차 이 자식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느냐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연구원 신병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이 간만헤 환히 펴질 수 있도록 지우는 연구원 신병의 등짝을 걷어찼다. 정확하게 요추를 뒷굽으로 걷어차자 연구원 신병은 또 픽 쓰러졌다.

저렇게 철푸덕 할 정도로는 안 때렸는데, 맞을 짓도 잘하지만 맞는 것도 찰지게 잘 한다고 지아는 생각했다.

 

“아마도….”

끙끙거리는 연구원 신병을 옆에 두고 지우는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똑같은 질문을 여러번 받았었다. 처음에는 희망찬 대답을 해줬었다. 언데드로 변하기 전에 백신이 개발 될거라고. 우리를 구하러 와줄 거라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그런 거짓 희망이 더 잔인하다는 걸 깨달았다.

“다들 열심히 기도해라.”

 

그렇게 말해줬을 때는 방금 전 판데믹보다 끔찍한 상황은 오늘 더 이상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내무반에 들어간 순간 신병들에게는 무섭고 지우에게는 비참한 상황과 마주쳐야 했다.

“한 뱀…..”

 

한건우 병장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것만이라면 감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도 눈병에 걸렸다고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파충류의 비늘처럼 변하기 시작한 팔과 얼굴의 피부는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한건우 병장, 지우의 분대장은 언데드로 변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지우를 향해 말했다.

“하필 너니”

 

“한뱀……”

“아프지 않게 끝내줄 수 있어?”

한건우 병장은 생활관의 오물투성이 바닥으로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었다.

“…..네.”

 

“….정말 죽기 싫은데….”

“네. 압니다. 한뱀.”

“이렇게 되다가..너하고..쟤들도 공격하겠지?”

이제 푸른 비늘은 얼굴로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한쪽 눈알은 흰자위가 사라지며 축축한 검은색으로 덮혀가고 있었다.

“네.”

“그래도…”

한건우 병장은 유언을 끝맺지 못했다. 지우가 관물대에 녾여 있던 그의 검을 집어 그 목을 베어냈다

 

텅..

건조한 소리와 함께 한건우 병장의 목이 데구르르 떨어져나와 신병들 발치로 굴러갔다.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이었다.

더 오싹하게도 목까지 침식해들어온 언데드화 때문에 피가 전혀 나지 않았다.

잘린 목의 단면은 이미 변이해버린 다른 피부들과 마찬가지로 번들거리는 비늘로 덮혀있을 뿐이었다.

“언데드는 목을 완전히 베어버려야 죽는다.”

 

지아는 담담하게 신병들에게 설명했다.

그들이 앞으로 무엇을 마주하게 될 것인지 알아두었으면 했다.

“그리고 아까 질문 말인데. 맞다. 나도, 너희들도 언데드로 변하게 될 거다. 더 거지 같은 건 그게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지. 그리고 최악은…”

지아는 한건우 병장의 목을 가르켰다.

“내가 너희에게 혹은 너희가 나에게 이렇게 해주어야 한다”

 

신병들 중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몇 명 저 몸뚱이 들고 따라나와. 태운다.”

지우는 한건우 병장의 머리를 쥐면서 지시했다. 신병들안 아주 순순하게 우왕좌왕하는 기색도 없이 한건우 병장의 시신을 들었다.

‘서서히 마음이 죽어가는군’

다들 그렇게 되는 거야, 라고 지우는 단념했다. 지금가지 몇 번이고 그랬던 것처럼.

 

그 때 지우는 신병 중 한 명의 움직임이 조금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언제 언데드로 변할지 모르는 감염자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들은 그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너, 잠깐 거기 서봐.”

움찔 하며 멈춰선 신병은, 그 고문관이었다.

자기를 연구원이라고 소개한 그 골칫덩어리는 한건우 병장의 머리를 품에 꼭 안고 있었다.

 

“그걸 어쩌려고..?”

물론 묻어주라고 명령을 한 건 지아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연구원 신병이 못 미더웠다.
연구원 신병은 사람의 머리를 든 채 뜸을 들였다.

“대답 안 해?”

“가져가서 쪼개 보려고 합니다.”

“뭘 해?”

“어디서 도끼 같은 걸 찾아서 머리를 쪼개고 뇌수를 보려고 합니다.”

거짓말은 또 절대 못하는 놈이었다.

 

“뭐가 어째? 이 자식아.”

“저는 이 사람의 뇌를 봐야 합니다. 제가 개발했던 치료제 이론을 검증하려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언데드의 뇌를 봐야..”

“….너희는 일단 하던 일 서둘러라.”

지우는 신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병장님 머리도 들고가고.”

지우는 신병들이 떠나간 후 그 연구원 신병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너, 고문관인 건 이해한다 쳐도, 방금 한 뱀이 괴로워하면서 죽어가는 거 못봤냐? 아무리 오늘 처음 본, 그것도 언데드가 되려던 사람이라고 해도, 그 죽은 머리를 쪼개보겠다? 너 그게 같은 감염자끼리 할 소리야?”

연구원 신병은 가만히 맞더니 찢어진 입에서 피를 흘리며

“괜찮습니다. 분이 풀릴 때까지 더 때리십시오. 구세주는 핍박받는 법입니다.”

 

진짜로 턱을 짓이기려다가 지우는 겨우 참았다.

“너 당장 그 머리에서 손 떼!”

“싫습니다!”

사타구니를 걷어차이고 나서야 연구원 신병은 한건우 병장의 목을 놓았다.

데굴데굴 구르는 옛 전우의 목을 집어든 후 지우는 으르렁 거렸다.

“너 행동 잘해. 나한테 찍혔어. 앞으로 지켜본다.”

 

그 말이 우습게도 지우는 바로 시체를 안장하기 위해 연구원 신병을 내버려두고 떠났다.

비감염자들이 사는 안전지대에서 왔다고 해도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 죽어나가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라 신병들은 제법 요령껏 한건우 병장의 시신을 매장하고 있었다.

몸을 땅 속에 넣은 후 지우가 잘린 머리를 그 몸 위에 얹었다.

그리고 창을 심장에 꽂으려했다.

 

그러나 창은 심장에 꽂히지 못한 채 허공에서 부르르 떨었다.

한건우 병장하고는 친하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이였다.

야산에서 언데드 군단에게 고립된 적도 있었고 몰래 비감염자들의 도시로 들어가려다가 기관총 세례를 받은 적도 있었다.

부모는 사태 초기에 죽었고 동생이 하나 있다. 정글도를 잘 다뤘다.

이런 생각이 자꾸 났다.

 

그날 밤, 지우는 조용히 누워 있었다.

다른 신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밤이 깊어가는데 다들 잠이 드는 기색이 없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무서운 것이다. 긴장한 것이다.

많이 겪어온 광경이지만 지우도 같이 잠을 못 이루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있었다면 전우를, 그것도 언데드로 변하기 전 죽여버렸던 때 정도였다.

꼭 오늘처럼.

 

아까도 창이 좀처럼 꼽히지 않았다.

첫 일격은 제대로 꼽히지도 않고 창대만 뚝 부러졌다.

신병들 앞에서 무슨 망신이냐 싶어 두 번째로 받아든 창을 다시 한 번 심장에 꽂으려 했다.

언데드는 목만 베어내도 충분하지만 드라큘라를 매장하는 행위와 비슷한 이 의식은 병사들을 어느 정도 안심시켜준다.

일종의 퇴마 의식이다. 생략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일격도 제대로 심장을 궤뚫지는 못했다.

살은 파고 들었으나 갈비뼈에서 막혔다.

창 끝은 볼 수 없었지만 지우는 알 수 있었다.

뽑아낸 후 까득 입을 깨물고 지우는 다시 한 번 날 끝을 위로 세워들었다.

주위의 흙, 공기까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내리치려던 손은 누군가의 두터운 손에 잡혔다.

“내가 할게”

 

소대장이었다.

“목도 네가 베었지? 얘들 안 시키고.”

“…어떻게 아십니까?”

“절단면 깨끗한 거 봐.”

소대장은 지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뭐든지 다 네가 짊어질 필요 없어.”

 

소대장은 지우의 손으로부터 창을 받아들고 구덩이 속의 시신에게 내려갔다.

“한 병장아. 다음에는 한참 뒤에 이런 데 말고 아주 좋은데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라.”

그리고 거의 틈도 주지 않고 푹, 한건우 병장의 가슴에 창을 찍어넣었다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소대장이 지우를 돌아보았다.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편 지우는 소대장이 뭐라고 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날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아직도 한건우 병장을 묻는 장소에 있고 그 때 못들었던 소대장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해버렸다.

“일어나! 당장!”

두 번째 고함이 귀에 닿았을 때야 지우는 고참답게 재빨리 애검을 뽑아들었다. 신병들은 아직 잠에서 덜 깨 있었다.

“탈영이다!”

 

소대장의 두꺼운 입술이 어둠 속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탈의?”

“탈의가 아니라 탈영! 인원 파악부터 해봐!”

어제 한건우 병장이 죽은 이후 지우가 분대장이다. 지우는 내무반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한 명, 한 명 부족했다. 신병이 들어오고 겨우 하루인데 누가 없어졌는지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인상이 강했으니까.

 

“그 연구원인가 뭔가 하는 자식이 없습니다…”

이빨을 까득 깨무는 지우에게 소대장이 다른 소식을 알려주었다.

“말도 한 마리 없어졌다. 그리고 식량도 엄청 많이. 지금 난리도 아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우를 보았다.

“대대장님이나 중대장님이 네 부대원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걸 아시면….”

지우는 그것보다 말과 식량이 걱정이었다

 

외부로 추방된 감염자들에게 그 둘은 큰 의미를 지닌다.

막 들어온 놈이, 그것도 약간 돈 것 같은 놈이 어떻게 말을 훔쳐서 도망갔는지 모르겠다.

간부들만 쓸 수 있도록 고참들이 엄중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을 텐데

“거기다 걔, 병장들한테 이상한 약이 든 물을 먹인 모양이야. 다들 걔 죽여버리겠다고 난리다.”

그 의문은 소대장이 풀어주었다.

 

“일단 우리 자기는 그 자식이 어디로 갔는지 단서라도 좀 모아놔봐.”

“단서가 어디서 나옵니까!”

“뭐 남기고 가든 아니면 같은 신참들한테 떠들고 갔든 있겠지! 하여튼 빨리! 난 중대장님한테 가볼테니!’

소대장이 폭풍처럼 떠나가버린 후 지우는 신병들을 돌아보았다.

몇몇은 겁에 질려 있었고 또 몇몇은 아주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동요할 필요 없어.”

오늘부터 분대장이 된 지우가 신병들에게 말했다.

“그 놈 관물대가 어디지?”

관물대라고 해봤자 버려진 도시에서 주워진 벤치를 개조한 흉물이다.

신병들의 손짓에 따라 그 연구원의 건물대로 향하던 중 지우는 갑자기 선언했다.

“그리고 이 참에 그 놈처럼 도망쳐볼까, 생각하는 놈. 내 검에 절대 자비가 없다. 명심해.”

 

지우의 서슬퍼런 말에 신병들이 움찔하는 게 눈에 보였다.

보아하니 오묘한 표정을 지었던 신병들은 전부 탈영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번 기수들은 시작부터 꼬이네.’

하필 내가 분대장일 때, 라고 중얼거리며 지우는 연구원의 관물대를 헤집었다.

그래봤자 침대를 뒤집어 엎고 발로 걷어차 조각낸 것 뿐이지만.

 

없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전입온지 하루 밖에 안되었는데 뭔가 남긴게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하겠지만 그래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우는 철저한 수색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맨손으로 관물대를 철제 연결 부위까지 박살냈다.

주변에 모인 신병들이 겁에 질려 꼼짝도 못하고 보고 있는 사이 연구원 신병의 관물대는 말 그대로 오체분시되었다.

 

지우의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다.

‘진정해. 흥분하지 마. 집중해.’

그렇게 스무번쯤 되뇌었을 때 잘려나간 관물대조각이 눈에 띄었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127:26E 36:20N

관물대로 만들기 이전부터, 판데믹 이전부터 있었던 글자일 수도 있었으나 그럴 가능성은 적었다.

칼로 파낸 글자는 지나치게 하얗고 아직도 톱밥이 떨어지고 있었다.

 

새겨진 지 얼마 안되었다.

그 연구원이라는 놈이 남긴 것이다.

이 글자가 새겨진 곳에 그 놈이 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동시에 지우는 위화감을 느꼈다.

‘이 놈은 왜 자기가 있는 곳을 일부러 글자로 남긴 거지?’

그냥 멍청한 고문관이라는 게 첫 인상이었는데 갑자기 지우 기억 속의 그 놈 얼굴이 이상하게 뒤틀렸다.

음흉하고 음침한 무언가로

 

“저….고참님.”

‘분대장님’이라고 고쳐줄 정신도 없었다.

“이제 우리는 뭘 하는 겁니까?”

내가 물어보고 싶다, 라고 지우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선택지는 원래 두 가지였다.

하나는 탈영병을 추적하는 것.

두번째는 버려두고 떠돌다 죽게 내버려두는 것.

그런데 첫 번째 선택지는 애초에 사라졌다.

그 놈이 식량과 말을 훔치는 바람에.

 

“….그래. 네 말대로다. 식량 때문에라도 쫓아가야하지.”

중대장은 대대장과 함께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중대장은 23살, 대대장은 18살이다.

참고로 지우의 나이가 30살, 그녀 옆에 선 소대장은 중대장과 동갑이다.

어린 상사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게 만들자 죄책감이 더 강해졌다.

“그래서, 그 놈이 이 기호가 가리키는 곳에 있다?”

 

“예.”

“너 많이 배웠지? 이게 뭐 같냐?”

대대장이 중대장에게 물었다. 사태가 일어나기 전 중대장은 대학생, 대대장은 고등학생이었다.

“위도하고 경도네요.”

“위도하고 경도? 그럼 이게 좌표, 뭐 이런 거라고? 그럼 여기는 어딘데?”

“그건 지도를 봐야 알죠.”

대대장이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참 묘하게 돌아간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지우는 이 부대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함 때문에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지우의 분대원 때문에, 그녀가 분대장인 동안 탈영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그들은 주둔지를 벗어나

언데드와, 감염자들을 증오하는 도시로 뒤덮힌 저 멸망한 황야를 헤매게 된 것이다.

 

‘이거 정말 최악이네.’

자신들의 미간을 겨눈 기관총을 보면서 지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다 나 때문이라 이거지.’

하지만 지우를 쳐다보는 건 신병들 뿐이었고, 거기다 그게 지우를 책망하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지우가 새로운 분대장이라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실제로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의 눈은 오로지 도시의 벽을 향하고 잇을 뿐이다.

 

“정말 너무하네. 들여보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입을 거나 먹을 걸 달라는 것도 아니야. 그냥 종이 쪼가리 한 장 달라는 건데.”

“쟤네들 저러는게 어디 하루 이틀이니.”

마지막 희망인지 대대장이 대표로 도시를 둘러싼 토벽으로 다가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탈영병이 발생했습니다! 그 놈을 잡아야 해서 그러니까 지도 한장만 부타드립니다!”

 

도시의 장벽으로부터는 아무 말도 없었다.

“감염자들하고는 말도 섞기 싫다는 겁니다.”

중대장과 소대장이 똑같은 말로 비죽거렸다.

“지도를 내주기 싫으면 이것 하나만 말해주십시오!”

대대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북위 36도, 동경 127도가 어디인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만 좀 알려주십시오!”

그래도 답이 없었다.

 

“어떻게 합니까? 안 열어주는데?”

“여기 말고 다른 도시로 가?”

“위치 정확하게 아시는 곳 있습니까?”

“없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도를 얻으러 온 것 아닙니까.”

남은 수단은 하나밖에 없군.

지우는 대대장과 중대장의 표정을 보면서 그 의도를 눈치챘다.

동물가죽을 꼬아만든 밧줄을 손에 쥐었다.

오늘밤, 부대는 도시 안으로 잠입한다

 

해가 지고도 한참 후 사방이 어둠으로 한치 앞도 안 보이게 된 후에야 부대는 움직였다.

정확하게는 소대장과 지우만 움직였다.

“자기야. 이건 정말 병영 비리야. 안 그러냐?”

“소대장님. 그러다 들킵니다.”

부대는 한참 떨어진 장소에서 대기 중이었다.

지우와 소대장이 먼저 도시로 잠입해 문을 열고 소란을 벌이면 내응해 오기로 되어 있었다.

 

“걔급이 깡패도 아니고 우리보다 훨씬 어린 것들이. 총알 맞을 장소에 어른들을 보내?”

“조용히 좀 하십시오. 소대장님. 어둠 속에서는 우리가 훨씬 유리합니다.”

도시는 내부 발전기를 이용해 ‘조명’이라는 걸 유지할 수 있다.

황야에서 부싯돌로 만든 횃불에 의지하는 감염자들에 비하면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어둠에 익숙하지 않다

 

도시 내부로 숨어들어 도둑질 – 이제까지 그 주요 목적은 식량 이었다 – 하려는 시도도 전부 밤에 이루어졌다.

지우 내 부대에서만 백번이 넘는 시도 중 성공한 건 딱 한 번 뿐이었지만.

도시에서 구해온 눅눅한 건빵을 너무 행복하게 먹을 때만 하더라도 고작 ‘지도’를 구하려고 다시 이곳을 넘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기가 앞장서야겠다”

 

“네.”

“걱정마. 총탄이 날아오면 내가 고기 방패가 딱 되어줄게.”

“네.”

“자기야. 대답은 좀 성의를 담아서.”

소대장의 말을 다 듣지 않고 지우는 도시의 담을 기어올랐다.

흙이 군데군데 섞인 시멘트 담벽은 장소만 잘 찾으면 단검이 들어간다.

찍어넣은 단검을 쥔 손에 힘을 넣어 체조선수처럼 몸을 거꾸로 세운다.

그대로 다음 단검을 찍는다.

 

그리고 다음 단검을 찍은 손에 힘을 주어, 그것을 축으로 먼저 찍은 단검을 빼며 회전해 올라간다.

그런식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도시의 성벽을 올라간다.

중간에 충분히 무른 부위를 찾지 못하면 몸을 거꾸로 세운 채로 계속 단검 찍을 장소를 더듬어 찾아야 한다.

“신기하다. 신기해.”

적어도 지금 감탄하고 있는 소대장의 몸집으로는 절대 못할 재주다.

 

얼마 전 도시 안으로 몰래 들어갈 때도 지우는 이렇게 들어갔다.

‘섹시해-‘라는 소대장의 헛소리가 작게 들려올 정도로 올라왔을 때 성벽의 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우는 바로 몸을 굳히고 동작을 멈췄다.

‘….?’

지우는 의아했다.

방금 긴장한 것은 총기로 무장한 도시의 수비대를 경계해서였다. 그런데 성벽 위에는 단 한명의 경비도 없었다

 

평소라면 라이플을 쥔 경비병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성벽 위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비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도시 내부도 어딘지 이상했다.

필수시설에만 불이 켜져 전체적으로 어두운 건 전과 마찬가지였지만 그 때는 느껴보지 못한 정체모를 오싹함이 느껴졌다.

‘기분이 왜 이러지?’

그 때 소대장이 아래서 외쳤다.

“자기야! 빨리 줄 내려줘!”

 

“조용히 좀 하십시오!”

꺼림칙한 기분으로 아래의 소대장을 향해 가지고 갔던 밧줄을 내려주었다.

이곳저곳에서 적당히 주운 쓰레기, 이를테면 아무데서나 불쑥 튀어나오는 종량제 봉투나 버린 이불이나 옷가지 같은 걸 꼭꼭 뭉쳐 만든 허접한 밧줄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소대장의 저 거대한 근육덩어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으나

“곧 간다!”

 

키가 크고 근육이 많고 운동신경이 많은 사람에게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지우와 다르게 한 번에 엄청난 높이를 뛰어올라 10번 만에 도시의 성벽 위까지 올라왔다.

‘쿵’소리와 함께 발을 디디자마자 밧줄이 뚝 끊어진 아슬아슬한 광경은 덤이고

“어? 자기야. 여기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지우와 똑같은 걸 느꼈는지 소대장이 허리춤의 손도끼를 쥐었다.

 

“일단 조용히 내려가지 말입니다.”

성벽을 타고 내려가는 사이에도 경비 병력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얘네 다 어디 간거냐?”

“저도 모릅니다.”

“자기는 한 번 와봤잖아?”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위험하긴 했어도 무섭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소름끼치게 두려웠다.

천하무적의 소대장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정적은 성벽 아래로 내려와 도시로 진입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자기야. 나 무섭다.”

“거짓말 마십시오.”

“아니, 여기서 언데드로 변해버리면 이 조용한데서 나 혼자 울부짖고 난리칠 거 아니야. 얼마나 쪽팔리겠어.”

그런 얘기였군, 지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 전에 우리 자기가 날 꼭 죽여야 해.”

“저도 같이 변할지 모르지 말입니다.”

 

만약 지우의 말대로 된다면 도시의 비감염자들에게는 정말 최악의 일이다.

갑자기 2급 이상의(소대장과 지우 정도의 베테랑 전사들이라면 2급 이상의 고위험 언데드로 변이할 것이다.) 언데드가 출현하는 것이니까.

화기로 제압은 가능하겠지만 그 때까지 몇 명이 죽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지우와 소대장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죄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면 애초에 도시 안으로 잠입할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아무리 급하다 해도 지도 같은 종이 쪼가리 하나 얻으려고.

감염자들을 도시 밖으로 내밀고 죽거나 말거나 나 몰라라 하는 비감염자들, 툭하면 자신들에게 총기를 겨누는 그들이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미워하는 비감염자들을 좀 보고 싶었다.

 

그들이 나타나 비명을 지르며 총기를 겨누고 비상 신호를 울려 도시를 깨우면 적막이 주는 끔찍한 기분도 어느 정도 가실 것 같다.

소대장도 어느새 말을 잃었다.

도로를 따라 중심부의 거대한 고딕 양식 석조 건축물로 다가서는 동안 그들은 내내 긴장해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시청. 비감염자들의 지도부가 있는 곳이다. 거기라면 지도를 구할 수 있다.

 

“아무 일도 없었으면 진짜 좋겠다.”

소대장이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호랑이도 말하면 온다일까 아니면 입살이 보살인 걸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끔찍한 괴성이 온 도시에 울려퍼졌다.

그 소리를 듣자 지우는 허리춤의 손도끼를 소대장은 가지고 온 돼지뼈 자르는 칼을 꺼내들었다.

과민반응이 아니다.

그들에게 익숙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언데드지?”

“네.”

“몇급 같아? 자기.”

“2급, 최소한 규격 외 3급.”

“2급이 저런 멍청한 소리를 질러?”

“무리를 불러들이는 거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본 적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우의 말이 맞았다. 괴성이 끝남과 동시에 방금 전까지 아무 것도 없던 도로 곳곳에서 수상한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 충격은 발 밑으로부터 왔다.

소대장이 서 있던 보도 밑을 부수며 검은 인영이 뛰쳐나왔다.

소대장은 재빨리 칼의 방향을 바꿔잡으며 공중에서 한 바퀴 돈 후 거리를 벌렸다.

지면을 맨손으로 부수고 나온 시점에서 이미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대로 언데드였다.

지우의 2배정도 되는 키에 축 늘어뜨린 팔.

 

굼뜨게 보이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자기야, 몇 급 같아? 난 3급.”

“2급일 수도 있습니다. 방심하지 마십시오.”

2급 언데드라면 공격 직전의 자세일 수도 있다.

“제가 다른 놈들을 맡겠습니다. 저 큰 놈만 부탁드립니다.”

“와, 우리 자기 치사하게 약해보이는 놈들만.”

“체급 별입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지우는 예비동작 없이 공격했다

 

손도끼가 날아가 그들을 둘러싸려던 언데드 중 하나의 눈을 맞추었다.

도끼가 날아오는 걸 보고도 손을 올리는 방어 동작이 없다.

‘3급이다.’

지우는 뛰어올라 그 언데드의 머리에서 손도끼를 뽑아 회수했다.

“우으어어으어.”

언데드는 지우를 잡으려 했지만 눈이 도려내졌기 대문에 손은 아둥바둥 허공만 휘젓는다.

언데드도 감각 기관은 마찬가지다.

 

눈이 없어지면 시야를 잃는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목이 통째로 머리에서 잘려나간 후에도 입은 지우를 물려고 바둥거린다는 점이랄까.

지우는 잘라낸 머리통을 접근하는 다른 언데드를 향해 차냈다.

역시나 막으려는 시도조차 없이 멍하니 머리통을 맞고 휘청인다.

이것도 3급이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아무래도 이 근방은 전부 3급 뿐인 듯 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목을 벤다.

크어어어, 괴성과 함께 언데드의 손이 지우를 잡으려고 한다.

그 손아귀를 희롱하듯 따돌리고 위로 올려친 도끼로 턱째로 부숴버린다.

1초 사이 2마리.

이런 식으로 베고, 부수고, 던지고, 잡아서 잘라버린다.

몇분이나 지났을까 지우 반경 몇 미터 내 살아있는 언데드들이 없다.

판데믹 솔저 중에서도 고참. 그 힘이다

 

그 사이 소대장은 아직 그 덩치 큰 언데드와 싸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쪽은 지우가 쓰러뜨린 놈들과 달리 2급인 듯 하다.

“어욱! 씨!”

짜증을 울리며 소대장은 언데드가 내려친 더블 엑스 핸들을 피한다.

레슬링 기술인 이 타격기는 원래 로프에서 내려꽂는 기술이지만

언데드와 소대장의 덩치 차이가 워낙 커 기립자세로 해도 똑같은 효과가 나온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빠르고 강한 일격을 허리를 눕히며 피한 소대장도 대단하다.

그 상태에서 한손의 돼지뼈 자르는 칼로 언데드의 복부를 세로로 갈라버리려고 한 것도 대단했고.

그렇기 때문에 언데드가 바로 풋워크로 거리를 둬서 그 일격이 허사가 된 건 정말 안타까웠다.

“아, 짜증나. 역시 2급은 골치 아파.”

언데드는 소대장의 주위를 천천히 돈다.

 

팔은 금방이라도 소대장을 움켜쥐려는 자세로 앞으로 내밀고 있다.

절도를 갖춘 모양새는 주위 언데드들의 힘없이 늘어뜨린 손과는 완전히 다르다.

잡히는 순간 효율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생명을 꺽어버릴 수 있는 손이다.

이 2급 언데드도 언제, 어딘가에서는 판데믹 솔저였을 것이다.

 

언데드의 강함은 생전 그 인간의 강함에 비례하니까.

2급 정도의 위험성을 지니려면 틀림없이 상당한 고참병이었을 것이다.

소대장, 그리고 지우와 동병상련의 정을 나눌 수 있을.

그런 생각을 하는 지우와 달리 소대장은 전혀 감상에
빠지지 않았다.

이빨을 훤히 드러낸 입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어디를 찢어줄까’이다.

 

언데드가 갑자기 몸을 거의 지면에 붙일 정도의 낮은 자세로 돌진해올 때도 소대장은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소대장은 발을 들어 휘두른 언데드의 팔을 피했으나 언데드는 바로 몸을 솟구치며 소대장의 허리에 달라붙었다.

언데드가 이빨로 허리를 찢어놓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소대장은 킥킥킥 웃더니 돌덩이 같은 주먹으로 언데드의 후두부를 두들겼다.

 

“네가 잡으면 어쩔 건데? 어? 어쩔 거냐고?”

두들겼다고 해도 다섯방 정도.

소대장은 잔주먹질은 창피하다고 안 하는 주의다.

그런데 그 다섯방에 언데드는 입이 뭉개지고 안와가 주저앉고 달걀이 깨지듯 우직 두개골이 부서진다.

함께 싸우다 저 주먹이 옆을 스쳐지나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때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던 것을 지우는 기억한다.

 

얼굴이 곤죽이되는 바람에 눈 앞의 인간을 잡아먹는게 불가능해진 2급 언데드의 허리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 쓰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급 언데드가 그렇게 쉬울리가 없었다.

허리는 기울어지면서도 소대장의 허리를 붙든 손은 점점 더 세게 조여지고 있었다.

또 다른 레슬링 기술.

허리를 잡고 머리를 바닥에 내리직는 파워-밤이다.

 

언데드의 허리가 휘어졌다.

이성을 상실한 괴물의 동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연했다.

소대장은 허리에 언데드의 팔에 허리가 감긴 채로 공중에 붕 떴다.

아름다운 조각상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 지우는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곧 언데드의 몸이 활처럼 굽어지며 소대장의 몸이 땅으로 내리찍혔다.

정확하게 뒤통수가 단단한 바닥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최소한 목뼈가 부러지거나

아니면 뒤통수가 깨져 뇌출혈이 일어나거나.

언데드에게 생각이 있을리 없지만 만약 할 수 있다면 방금 기술로 그걸 유도했으리라 생각한다.

소대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래도 주의는 깊은 건지(아니, 의미없는 반복행동인지도 모른다) 같은 자세로 두 번, 세 번 파워밤을 반복했다.

소대장의 머리는 총 4번 지면에 찍혔다.

 

소대장의 몸이 굳어진 채 움직임을 멈추자 그제서야 언데드는 그 허리에 둘렀던 팔을 풀었다.

기술이 들어갔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인간의 살을 뜯고 싶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걸까.

어찌되었건 그건 오판이라고, 지우는 알아듣지도 못할 언데드를 비웃었다.

언데드가 그 팔을 푼 순간 소대장이 방금 전 경직된 자세가 거짓말 같이 벌떡 일어났다.

 

“아씨. 무진장 아프네. 어쨌건 넌 죽었어.”

트집 잡고 싶은 게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머리를 지표면에 거꾸로 메다꽂히고 나서도 어째서 그렇게 멀쩡한지

아프다면서 왜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는지

언데드를 어떻게 ‘죽이겠다’는 것인지.

하지만 지우는 그 모든 질문을 고이 접어 가슴에 담아두었다.

소대장은 ‘그런’ 전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뒷머리 한 번 툭툭 털어버리더니 바로 언데드에게 달려들었다.

언데드도 소대장이 너무 멀쩡한게 신기한지. 어리둥절하게 선 채 반응하지 못했다.

반응이 없는건 아까 소대장의 주먹에 얼굴이 터져 눈도 귀도 뭉개진 바람에 그런 것일테지만 아무튼 그렇게 보였다.

“너만 메칠 줄 아냐? 어?”

소대장이 자기가 당했던 것처럼 2급 언데드의 허리를 잡았다.

 

“똑같은 건 나도 할 수 있어!”

언데드는 다리로 소대장의 사타구니를 찼다.

남자의 급소 부분.

눈이 뭉개져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단 한 방에 정확하게 가격했다는 점에서 과연 2급이라고 언데드를 칭찬해줄만 했다.

다만 효과가 전혀 없다는 점이 (언데드에게는) 문제였지만.

소대장은 자기보다 머리 두개 만큼 큰 언데드를 번쩍 들더니 땅에 찍었다

 

소대장이 붙잡고 있는 건 언데드의 다리 언저리.

그걸 잡고 마치 옷에서 먼지 털듯 몇 번이고 온 힘을 다해 내려치고 있었다.

‘저걸 똑같다고 하기에는 뭐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지우는 소대장이 펼치는 무위를 감상했다.

발목이 잡힌 채 수십번 내려 찍히는데는 기술이고 뭐고 아무 의미가 없다.

얼마 되지 않아 2급 언데드는 걸레짝으로 변했다.

 

“소대장님. 이제 그만 자리를 떠야 겠습니다.”

“뭐야, 막 신나는 참인데…어?”

이제 상반신에는 거의 척수 뼈 밖에 남지 않은 2급 언데드를 움켜쥐고 있던 소대장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소대장이 2급을 족치는 사이 3급들이 그들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핏 보이는 숫자로만 백은 넘는다.

“뭐야, 이 도시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저도 궁급합니다.”

지우가 맞장구 쳤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멀쩡했다.

빈틈 하나 없으니까 암벽 타기 같은 쇼를 하며 넘어온 것 아닌가.

그런데 정작 내부로 들어와보니 언데드로 뒤덮여 있다.

도시에서 뭔가 착오가 생겨 감염자가 추방당하지 않고 섞여드는 일이 생겼다라는 가능성도 제로는 아니다.

하지만 2급 언데드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급 정도 되려면 언데드의 모체가 되는 인간이 상당한 육체적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즉, 도시의 성벽에 보호되며 총, 포 같은 냉병기에 의존하는 비감염자들은 2급 언데드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2급 언데드를보면 지우나 소대장 같은 사람들은 한 때 자신들과 똑같은 추방자 출신 판데믹 솔저였을 거라고 동병상련을 느낀다.

 

결국 2급 언데드는 도시 안에서 생겨난 게 아니라 도시 외부에서 들어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면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회귀한다.

저렇게 성벽이 굳건한데 도대체 어디로?

“자기야. 일단 빨리 챙기기로 한 것만 챙겨 튀자.”

지우는 소대장에게 절대적으로 공감했다.

“길을 여시지 말입니다. 엄호하겠습니다.”

“왜 자기가 지시를 내리는 거야?”

 

소대장은 투덜 거리면서도 지우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다 해줬다.

일방 통행 표시가 있는 도로를 따라 질주하며

“야, 역시 아스팔트 도로는 뛰기가 쉽구나”

으르르 멋도 모르고 다가왔던 3급 언데드 두 마리의 다리를 한 쪽씩 잡아챘다.

그 후 그 두 마리를 철퇴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주위 언데드들의 머리가 소대장이 휘두르는 언데드의 몸통에 맞았다.

 

펑.펑. 아무리 언데드라고 해도 사람의 두개골이 그렇게 쉽게 터져나가는 광경에 지우는 살짝 현실감각이 없어졌다.

현실 감각이 없는 채로 소대장의 발밑으로 기어오는 언데드의 얼굴을 가로로 도려내고 소대장의 옆구리를 깨물려는 언데드의 발목을 베어내 무너뜨린다.

한번에 다섯, 여섯 마리씩.

이렇게 둘은 대로를 질주하여 강을 건너는 대교까지 건넜다.

 

“자기야.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 같은데?”

언데드 하나를 가로로 든 채 질주, 다리의 언데드들을 펑펑 밀어 강물로 떨어뜨리며 소대장은 그렇게 외쳤다.

지우도 동감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어떻게 도시 안에 이렇게 많은 언데드들이 있단 말인가?

동시 감염이 발발했더라도 화기를 이용한 즉각적인 구속과 격리가 가능한 곳이 도시다.

 

지금 소대장과 지우의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

사람은 단 한명도 눈에 띄지 않고 언데드들로 뒤덮인 공간이 구현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도시를 통제, 지배하는 곳의 전면적인 마비

감염자와 비감염자의 비율이 적어도 1:10 되는 대규모 집단 동시 발병.

그런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아무튼 지금 우리가 가는 곳에 답이 있지 말입니다.”

 

그들이 달리는 곳은 시청이었다.

도서관으로 가야 지도를 구하는게 빠르겠지만 문제는 도서관이 도시의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반면 시청은 시의 중심부를 향해 달리기만 하면 된다.

그 곳에 가면 도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답도 나올 것이다.

“대대장, 중대장도 지금쯤 들어왔겠지? 자기야?”

“아마 그렇겠지 말입니다. 걱정되십니까?”

 

“자기라면 모를까 그 친구들 걱정을 왜 하니?”

어깨로 언데드들을 밀쳐서 가드레일에 박아버리며 소대장이 웃었다.

철제 가드레일이 언데드들의 척추와 함께 기역자로 접혔다.

“약하디 약한 우리 자기라면 모를까.”

맞는 말이라 지우는 반박하지 못했다.

자신이 언데드 한 마리를 몸, 머리, 다리, 팔로 해체하는 사이 소대장은 다섯 마리를 부순 것이다

 

대대장과 중대장이라면 지금쯤 누가 가장 먼저 대교를 통과하나 내기를 하면서 소대장보다 한참 앞서 달리고 있을 것이다.

중대장의 일본도와 대대장의 미늘창이 떠올랐다.

두 사람까지 데리고 왔다가는 놓고 온 신병들이 모두 도주할까봐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사방을 둘러싼 언데드들을 보니 그깟 신병들 다 포기하고서라도 두 명을 데리고 왔어야 했다.

 

하지만 한 번에 수십 마리씩 처리해버리는 소대장은 그렇게 생각이 좀 다른 모양이었다.

“그런데 너무 쉽다.”

소대장이 일부러 자신에게 페이스를 맞춰주는 듯 해서 지우는 조금 분했다.

“자기야. 너무 순조롭지 않아?”

“소대장님이라 그렇지 말입니다. 저는 죽을 맛입니다.”

어느새 군복이 피로 푹 젖어 있다.

소대장 보는 앞에서 속이 비춰보일라.

 

3급들만 상대하다보니 긴장감이 풀어진 것일까, 쓸데없는 걱정만 들었다.

한 마리는 눈, 한 마리는 다리 힘줄, 한 마리는 목, 한 마리는 정수리, 한 마리는 윗턱과 아랫턱 사이.

다섯 마리를 검격 한 번으로 베어버린 걸 마지막으로 지우도 대교의 끝에 도착했다.

소대장은 한 발 앞서 도착해 입 안에 들어간 피를 퉤퉤 뱉어내고 있었다.

어쩐지 분했다

 

자신이 죽을 힘을 다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도 소대장은 조깅하는 기분으로 달려올 수 있다.

성별의 차이인가, 체격의 차이인가, 기술의 차이인가.

어느 쪽이든 혹 소대장이 갑자기 언데드로 변해버렸을 때는 지우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왜 멈춰계십니까? 지치셨지 말입니다?”

공연히 날이 선 목소리로 물어봤으나 소대장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젠장, 자기야, 이게 뭐냐?”

지우는 소대장의 물음에 그대로 몸이 굳었다.

질문 그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그 어조에 도사려 있는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지우는 단 한 번도 소대장에게서 이런 음색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지우는 소대장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그들의 눈 앞에는 목적지인 시청 건물이 있었다.

 

주변에 3급 언데드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와 다를 게 없다.

문제는 문 앞을 가로 막고 있는 2체의 언데드.

다른 언데드들의 두 배는 되는 크기에 그 썩은 몸에 휘감고 있는 분위기가 다르다.

2급이다. 2급 언데드는 지금까지 몇 번 보아왔다.

하지만 그 중 저런 자세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일렬로 섰다

 

고개는 똑바로 발 끝은 딱 맞췄다.

“자기야, 저런 거 본 적 있냐?”

마치 지우와 소대장을 맞이하는 듯한 자세.

“…한 번도 없습니다.”

지우는 그렇게 대답했다.

급수에 따른 전투력의 차이는 있어도 언데드는 기본적으로 이성을 상실한 괴물이다.

인간을 보면 무조건 죽이기 위해 달려든다.

저런 예식 같은 자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눈 앞에 서 있던 두 마리의 2급 중 한 마리가 지우와 소대장이 접근하자 고개를 들었다.

회색으로 변한 피부에서 흰자만 남은 눈동자가 빛을 발한다.

그 2급은 울지조차 않고 조용히 우두둑우두둑 주먹을 풀었다.

지우와 소대장은 꼼짝 못하고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그 사이 3급 언데드들이 지우와 소대장 주위로 모여들었다

 

지우가 무기를 뽑아들 준비를 할 때였다.

우우우우우

눈 앞의 2급 언데드 두 마리 중 하나가 늑대가 울부지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3급 언데드들이 일제히 발을 딱 멈췄다.

“자기야. 이게 도대체 뭐냐고.”

소대장이 물어봤지만 지우도 대답할 수 없었다.

2급,3급은 전투력을 기준으로 나눈 것일 뿐 언데드들 사이에 상하 관계는 없다.

 

그런데 지금 3급 언데드들이 2급 언데드의 울음에 복종하듯 진군을 멈췄다.

흡사 인간처럼.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검을 힘을 주어 쥐면서도 당장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때였다.

“자기야. 저게 뭔 지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야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냐”

 

소대장의 말대로였다.

언데드인 이상 쓰러뜨려야 했다.

그러나 지우가 검을 돌려잡는 순간 소대장이 그 어깨를 툭 쳐 제지했다.

어찌나 힘이 센지 딱 한 번 가볍게 쳤는데 순식간에 잡은 자세가 풀릴 정도였다.

“아니, 아니, 자기야. 그 할 일 말고. 우리는 지도를 구하러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하잖아.”

소대장이 그렇게 말하며 웃옷을 벗었다.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까 자기는 먼저 가.”

지우는 오만상알 찌푸린 채 소대장을 쳐다보았다.

“알아. 알아. 밥맛이었지. 하지만 진심이야. 내가 저 둘을 잡는 동안 저 안으로 들어가서 지도를 구하라고.”

“웃옷은 왜 벗으신 건데요?”

“제대로 힘 쓰면 열나잖아. 덥잖아.”

그렇다는 말은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은 딱히 힘을 쓴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소대장의 벗은 몸에는 바위를 닮은 근육이 울퉁불퉁하게 달려 있었다.

그 동안 저 몸에 스치기만 해도 바스라지고 터져나갔던 언데드들의 모습이 단번에 납득이 가는 몸매였다.

“소대장님이 싸우다가 언데드로 변해버리면 그야말로 최악이지 말입니다.”

감염자들은 언제든 언데드로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하물며 그것이 2급이상이 보장된 판데믹 솔저라면.

 

그 변이는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세 마리의 2급 언데드가 지우를 쫓아오게 될 것이다.

중대장과 대대장과 합류하지 않는 이상(이것도 그들이 언데드로 변이하지 않았다는 전제 아래) 지우에게 승산은 없다.

‘아니, 내가 지도를 찾으러 가다가 언데드로 변해버리면?’

반대로 소대장이 3명의 2급 언데드를 상대해야 한다.

“그건 자기도 마찬가지잖아.”

 

소대장이 마침 그 점을 지적했다.

“누가 가든 마찬가지라면 자기가 낫지. 난 뭐 찾고 이런 거 잘 못하잖아. 스피드도 좀 느리고.”

소대장은 주먹을 탕탕 부딪치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그와 동시에 2급 언데드 둘도 똑같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정확하게 합이 맞았다. 아마 둘이 연계도 가능할 것이다.

“..나도 솔직히 남고 싶지 않아”

 

그 순간 2급 언데드들이 움직였다.

하나는 소대장 쪽으로 다른 하나는 지우 쪽으로.

마치 둘이 무슨 작당을 하고 있는지 다 파악했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본 지우는 소대장이 맞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지우가 가장 먼저 정면의 시청 건물을 향해 달렸다.

다음으로 지우 쪽의 2급 언데드가 뛰었다.

그 다음으로 소대장이 그 언데드를 향해 뛴다.

 

마지막 언데드는 소대장의 등을 향해 뛴다.

지우가 시청의 담벼락을 단 두 번의 도약만으로 훌쩍 뛰어넘은 순간 2급 언데드의 주먹이 방금 전 지우가 발을 디뎠던 곳에 꽂혔다.

그리고 그게 마치 진군의 북소리라도 되는 듯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3급 언데드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지우는 담 너머에서 무시무시한 포효 소리가 메아리 치는 걸 들었다.

 

저것이 언데드의 소리인지 아니면 소대장의 소리인지 알 수 없다.

곧이어 들린 쿵, 소리. 소대장과 언데드 중 어느쪽일까.

지우는 무기를 고쳐잡고 시청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현관을 넘자마자 3급 언데드들이 사방에서 창문을 개고 쏟아져 들어왔다.

지우를 쫓아온 놈들이다.

그 놈들 외에도 시청 로비를 배회하던 3급들도 지우를 쳐다보았다.

 

“후-우”

지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여분의 무기를 버렸다.

베어링으로 만든 철퇴와 대못으로 만든 표창이 큰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속도전이다.’

목표는 최상층 바로 아래 있는 시립 도서관.

거기라면 지도가 있을 것이다.

최단 시간, 최단루트로 도달한다.

다음으로 텐트를 기워 만든 판데믹 솔저의 군복을 벗었다.

 

천을 대충 중요 부위에 둘둘 감은 속옷도 전부 벗었다.

언데드가 옷을 잡아채 움직임이 멎는 일 따위 없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알몸이 된 지우는 조용히 칼을 역수로 쥐었다.

사방에서 언데드들이 몰려들고 있다.

보기에 2급은 없어보인다.

그 썪은 눈들이 전부 나체가 된 지우를 주시하고 있다.

이런 때는 상대가 언데드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여 들던 언데드들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바로 눈 앞에 있던 먹잇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우를 다시 포착한 건 그녀가 겨우 몇 초전까지 서 있던 장소에서 500미터 가까이 떨어진 계단으로 뛰어올랐을 때였다.

그녀의 질주와 멀리뛰기. 그건 만약 판데믹이 오지 않고 세계가 제정상이었다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다투었을 수준이었다.

 

지우는 언데드들의 머리를 밟고 도약해간다.

계단을 언데드들이 꽉 채우고 있으니 대신 언데드들을 계단 삼아 밟고 올라간다.

언데드들이 자기 머리 위의 지우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손이 소리조차 나지 않는 검격에 베어져 아래로 떨어져내린다.

간신히 잡을 뻔했던 몇몇 썩은 손도 미끈거리는 맨살을 제대로 움켜쥐지 못한다.

 

1층. 2층. 3층. 4층.

순식간에 지우는 경로의 절반에 도달한다.

목표는 8층.

움직이는 동안 참고 있던 숨이 한계에 도달했다.

지우는 이번에는 도약 후 다음 언데드의 머리를 밟지 않고 착지했다.

지우가 계단 발코니를 디딤과 동시에 옆의 언데드들이 허물어져 내린다.

지우가 착지하며 발목을, 혹은 정강이를, 혹은 무릎을 벤 것이다.

 

다리를 잃은 채로 언데드들은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지우에게 다가온다.

드디어 먹잇감이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기쁨일까.

그것보다 뇌가 파괴되지 않는 이상 인간의 피와 살을 계속 탐하는 끔찍한 본능 덕이겠지만

어쨌건 그들은 이번에도 소원을 성취하지 못했다.

겨우 5초로 숨을 모은 지우가 다시 솟아올랐던 것이다.

언데드들이 공중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바로 몇 초 후 그 손들이 아래로 후두둑 떨어졌다.

자신을 움켜쥐려던 언데드들을 모두 베어버린 지우는 다시 한 번 착지했다.

이번에는 숨을 고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목표했던 곳에 도달한 것이다.

8층 시립 도서관 입구.

지우는 열린 문을 향해 한 바퀴 굴러서 들어갔다.

그리고 발로 걷어차 문을 닫은 후 바로 검을 가로로 던졌다.

 

검은 그대로 문에 빗장처럼 박혔다.

덜컹덜컹

끔찍한 언데드의 울음 소리와 함께 문이 진동했다.

2급이라면 한 방에 부술 문짝도 3급은 그러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아랫층의 언데드까지 모여들면 그 체중만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이다.

그 사이 지우는 이 도서실에서 지도를 찾고 덤으로 걸칠 것도 좀 찾아서 탈출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도서실의 문이 닫힐 때부터 그 계획은 글렀다는 것을 알았다.

공기가 불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을 향하는 분명한 살기를 감지하고 지우는 고개를 돌렸다.

한 때 소장 도서를 검색하는 컴퓨터들이 놓여있었던 곳에 언데드 한 마리가 서 있었다.

키는 2급은 물론 3급 언데드 중에서도 작은 편이다.

여자인 지우와 덩치가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언데드에 비해 한참 작은 그 덩치에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중후한 위압감이 흐르고 있다.

지우는 숨을 죽였다.

‘1급….’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실조차 머리에서 잊혀졌다.

다음 한 발자국을 잘못 딛는 순간 바로 죽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상대가 먼저 행동해야 한다.

언데드와 지우. 둘 다 그런 태도였던 듯 했다.

 

최초의 대치에서 패배는 지우의 몫이었다.

긴장감 속에 아주 잠깐 자세가 흐트러졌다.

지우의 발뒷꿈치가 움직인 순간 언데드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도서실의 책장 2개가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박일 사이 지우의 몸을 향해 날라왔다.

책이 가득 꽂힌 책장은 0.1톤이 가볍게 넘어간다.

거기에 붙은 가속도. 직격할 경우 목뼈는 가볍게 부러진다.

 

지우가 피하는 것이 단 1초만 늦었더라면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지우가 옆으로 구름과 동시에 방금 전까지 그녀의 머리가 있던 곳을 책장이 잔상이 남을 정도의 빠르기로 통과한다.

무사히 피했으나 지우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연이어 공중 제비를 돈다.

이번에는 그녀의 몸이 있던 자리를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철조각이 통과해 지나간다.

 

도서실에 있는 모든 집기들이 지우의 몸을 노리고 날아든다.

이 조화를 부리는 건 말할 것도 없이 언데드.

창백한 손가락이 도망치는 지우를 향해 까딱거린다.

지우는 뛰고 구르면서 그 언데드를 바라보았다.

신체는 얼핏 보기에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얼굴에 눈도, 코도, 귀도, 입도 없다.

마치 밀가루 반죽을 씌운 듯 하얀 얼굴이다.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던 고개가 지우가 옆으로 크게 구른 순간 비로소 움직였다.

지우의 몸을 따라서.

그리고 하얀 반죽 같던 얼굴에 비로소 색이 생겼다.

입 부근이 좌우로 쫙 갈라지면서 검붉은 입안이 보인다.

입꼬리는 양쪽 귀로 한 껏 치켜 올라가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묘한 미소와 함께 손가락이 지우를 따라 서서히 움직였다.

 

정확하게 그 손을 따라서 사물들이 흉기가 되어 공중을 날아온다.

초능력.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염력.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능력이었다.

괴상하게 생긴 것 빼고 특별한 점이 없는 눈 앞의 언데드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쳐야 하는 1급으로 만들어준 힘.

정신없이 피하던 지우는 공중에서 반신을 굽힌 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의자를 잡는다.

 

그리고 그 의자를 날려보낸 쪽으로 되돌려 집어던졌다.

똑바로 날아가던 의자는 언데드 바로 앞에서 뚝 멈췄다.

꼭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뜬 채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언데드는 지우의 반항이 귀엽다는 듯 씨익 찢어진 입꼬리를 올리더니 고개를 까딱 저었다.

그러자 의자가 뜬 채로 여기저기 뒤틀리더니 끔찍한 소리와 함께 부서져 내렸다.

 

‘상대가 안 되겠는데….’

지우는 숨을 고르면서 직감했다.

언데드의 몸집이 크지 않으니 접근전으로 가면 해치울 수도 있겠다는 계산을 했었다.

그러나 방금 그 공격이 막히는 것을 보니 접근전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근거리까지 들어간다고 쳐도 저 염력의 방어막이 다시 작동한다면 지우의 몸도 산산이 부서진 의자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이것이 1급 언데드다.

지우도 지금까지 이야기로만 들었을 뿐 한 번도 대적해본 적은 없는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한 언데드

3급이 평범한 인간에 해당하고 2급이 강한 인간에 해당한다면 1급은 초능력자다.

초현실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2급과는 달리 변이 조건도 불명.

지우 부대에서 유일하게 1급과 조우했던 건 대대장 뿐이었다.

 

그 때 대대장의 부대는 근방에서 가장 컸다고 한다.

소대장이 4명, 중대장이 3명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 지금의 소대장과 중대장 각 한명씩을 빼고 모두 잃었다고 한다.

1급 언데드 단 하나에게.

대대장은 지우가 팬데믹 솔저 중 두각을 나타내자, 즉 간부 후보로 눈여겨볼 때부터 항상 당부했다.

1급과는 싸우지 말라고.

만나면 절대로 도망치라고

 

뚜렷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이대로 탈출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곳에 온 목적인 지도는 어떡할까.

‘지도, 지도, 지도……’

눈앞의 언데드는 입꼬리를 양껏 그러모으며, 허공에서 넘실거리는 물건들을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마치 독 안에 든 쥐를 골리는 것처럼 느긋하게 손을 휘저었다.

 

도대체 저 괴물을 상대로 뭘 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 책장 사이로 지도가 보였다.

단순한 액자에 넣어진 지도가 데스크 뒤, 벽돌로 꾸며진 벽면에 장식처럼 걸려있었다.

 

목적했던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침착한 편인 그녀였지만 심장 박동 소리가 다소 빨라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우는 계획을 세워야했다.

저걸 어떻게 손에 넣어야 할까.

그 때 지금까지 흘려보내던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쿵,쿵,쿵,쿵

계단을 올라온 3급 언데드들이 닫힌 도서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계획이 떠올랐다. 꽤나 그럴싸 했다

 

지우가 움직이는 순간 다시 한 번 그녀의 몸보다 훨씬 큰 책장이 날아왔다.

육중한 책장이 허공을 가르며 등 한가운데를 노리고 육박해오는 소리가 귓가로 똑똑히 들려왔다.

엎드려 피할 수 있었지만 지우는 계속 달렸다.

아슬아슬해질 때까지 달렸다.

어느 정도 아슬아슬하냐면 책장이 도서실 문에 부딪칠 정도 아슬아슬하게. 멈추려고 해도 이미 늦었을정도로

 

그리고 성공했다.

도서실 입구의 닫힌 문에서 세 발자국 앞, 날아오는 책장의 모서리와 지우의 등이 겨우 손가락 세 개 정도의 간격만 남겨두었을 때

지우는 그 자리에서 두 다리를 좌우로 있는 힘껏 찢으며 지면을 향해 납작 엎드렸다.

그녀가 의도했던 대로 이제 와서 책장의 방향을 바꾸거나 낙하시키려고 해도 이미 한참 늦었다.

우지끈. 책장이 부딪쳤다

 

지우가 어설프게 막아놓았던

언데드들의 돌진으로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던 닫힌 도서실 입구가 활짝 열렸다.

문이 부서지고 언데드들이 들어왔다.

‘이제부터.’

지우는 몸을 굴렸다.

‘이판 사판이다.’

그리고 언데드들 사이로 들어갔다.

썩은 냄새와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피부로 느껴졌다.

그들의 손이 덮쳐올 때마다 아슬아슬한 자세로 피해나간다

 

그렇게 구르고 피하고 뛰면서 지우는 3급 언데드들 속에 섞여 들었다.

그리고 서서히 그들 틈에서 나아갔다.

펑, 소리가 났다.

지우가 예상한 대로 주위에 있던 3급 언데드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1급의 공격.

하지만 3급 언데드들은 날아가버린 숫자를 금새 메울만큼 쏟아져들어온다.

1급과 서로 싸우지도 않지만 공격을 피할 지능도 없다.

 

혼란한 틈 속에서 뻗어오는 손을 피해가며 지우는 때를 기다렸다.

언데드가 밀려들어 데스크까지 고기 방패로써 길을 만들어준다면, 비교적 쉽게 지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급 언데드는 꾸물거리며 도서실을 메워가는 3급들을 보면서 화라도 내는 것인지 줄지어 세워진 책장을 들어 올렸다.

쿠극, 콰그그그극.

 

3급 언데드들은 이제 지우를 공격하는 포식자이기도 하지만

지우 대신 공격을 맞아주는 고기 방패이기도 하고

지우의 모습을 감춰주는 가림막이기도 하다.

1급 언데드는 서서히 성질이 급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날아오는 물건들의 정확성이 떨어진 대신 난폭함과 강도가 올라갔다.

3급들 사이에 섞여 그 공격을 피한 채로 얼마나 전진했을까.

 

드디어 지우의 손이 원하던 것에 닿았다.

지도.

잠깐 고개를 들어 확인한다.

종말 이전이긴 하지만 도로와 지형, 지명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 지도가 권역별로 몇 개씩이나 있다.

손이 가는 대로 집었다.

주머니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옷은 전부 벗어버린 채다.

지도를 확인하고 줍는 사이 3급들에게 물릴 뻔했으나 운좋게 피했다.

 

1급은 성이 난 듯 했다.

괴기한 얼굴에서는 표정을 읽을 수 없고

그나마도 3급들 사이에 섞인 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염력으로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3급 언데드들이 조금씩 난폭하게, 그리고 조금씩 더 많이 당하고 있다.

지우는 3급들 사이에서 창 까지의 거리를 쟀다.

‘아까와 똑같은 방법으로 여기서 빠져나간다.’

계획을 세웠다.

 

도서실 창문까지의 거리는 대략 열 여덟 발자국

혼자서 뛴다면 8초

20 킬로그램짜리 하나를 데리고 뛴다면 20초.

40킬로그램짜리로 둘을 데리고 뛴다면 1분.

계산은 마쳤다.

지우는 언데드의 공격을 피하면서 바로 옆에 있던 여자 언데드의 멱살을 잡았다.

다른 손으로 틈새에 섞여 있던 어린이 언데드를 잡아챘다.

그리고 힘을 쥐고 뛰었다.

 

여자와 어린이라 해도 꽤나 무거웠다.

거기에 각각 한팔로 잡고 있으니.

대신 두 놈이 물어뜯고 할퀴어도 큰 타격은 오지 않는다.

지우는 두 언데드를 데리고 3급의 포위망에서 이탈했다.

있는 힘을 다해 창문으로 뛰기 시작한다.

1급 언데드 앞에 노출되었다.

1급이 ‘드디어’라며 웃는게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공기를 가르는 불길한 소리.

 

이번에는 책상이었다.

30명은 족히 앉을 법한 길고 육중한 책상.

각오를 하고 세운 계획이었지만 지우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제대로 맞는다면 뼈 부러지는 건 기본이고’

내장까지 파열될 것이다.

이 세계에서 그 정도의 부상은 바로 죽음으로 직결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반사적으로 어린 언데드를 방패처럼 들어올렸다.

 

어린 언데드가 들어올려진 채 캬아 소리를 냈다.

아주 순간이었다.

책상이 어린 언데드의 머리에 직격하고 그 뇌가 쪼개 직전의 극히 한 순간.

지우는 힘을 뺀 채 엄습해오는 육중한 무게감에 몸을 맡겼다.

몸이 붕 뜬 후 창문으로 날아간다.

이윽고 유리창이 깨지고 지우는 창 바깥으로 떨어져내렸다.

추락. 이대로 가면 등뼈가 부러질 것이다.

 

지우가 하필 언데드 두 마리를 잡아온 것은 바로 이 상황을 대비해서였다.

지우는 추락하는 사이 재빨리 여자 언데드를 자신의 밑으로 깔았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다른쪽 언데드, 즉 어린이 언데드를 발로 차 그 반동으로 육중한 책상의 낙하 궤도로부터 벗어난다.

와장창. 여자 언데드의 등뼈가 박살나는 소리와 책장이 부서지는 소리. 둘다 지면에 직격했다

 

책상은 지우의 바로 손가락 두 개 옆에 떨어져 부서졌다.

그 파편이 지우의 알몸에 직격했다.

부서진 책장 아래서는 궤도에서 벗어날 때 놓아버린 여자 언데드가 깔려 몸은 완전히 부서진 채 유일하게 형체가 남은 팔만을 마구 휘젓고 있다.

어린 언데드는 지우 밑에 깔려 있다.

지우가 일어난 후에도 사납게 버둥거리기만 한다.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지우를 위에 받힌 채로 지상에 떨어지는 바람에 등뼈가 완전히 작살난 것이다.

아마 어린 언데드를 밑에 깔지 않았더라면 지우의 등이 대신 작살났을 것이다.

지우는 일어났다.

지도는 손 안에 있다.

이제 소대장하고 합류해서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여기서 일어난 일은 부대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지?

 

그 때 머리 위에서 무서운 소리가 들렸다.

쳐다보니 시청 건물 외벽이 통째로 박살나 허공으로 튕겨져 나왔다.

안 쪽에서 강한 힘으로 타격을 받은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된 후 떨어져 내리지 않고, 중력의 법칙에 역행한 채 공중에 떠 있었다.

‘설마.’

불길한 예깜은 항상 맞는 법이다.

지우가 떨어졌던 층, 지금 박살이 난 그 곳에서.

 

불길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1급 언데드였다.

그 손이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염력으로 공중에 고정되어 있던 각종 파편들이 지우를 향해 낙하해내렸다.

철근과 벽돌과 목재의 호우.

지반을 박살내며 구덩이를 만들 정도의 속도와 힘으로 땅에 내려 꽂힌다.

뛰고 구르며 피하는 지우의 동작이 단 1초라도 늦었다면 그녀의 뼈와 살이 박살났을 정도다.

 

1급의 연이은 손짓.

거의 본능적으로 피하는 지우를 향해 시청 건물 안의 구조물들이 차례로 날아온다.

여기서 1급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웃고 있으리라.

도망치는 개미와 그걸 밟아죽이려는 아이, 그 자체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벽의 박살난 구멍으로 3급 언데드들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떨어진 대부분은 등과 다리가 부러졌다

 

물론 그 상태에서도 언데드는 언데드다.

스멀스멀 기어서 지우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1급 언데드. 낙하해오는 구조물들.

머리 아래는 3급 언데드. 뻗어오는 손, 이빨.

일단 지금은 여기서 벗어나야 했다.

지우도 언데드로 변하지 않았을 뿐 엄연한 ‘감염자’ 판데믹 솔저다.

혹시 모를 변이가 있기 전 지도를 부대로 전달해야 한다.

 

지우는 뛰었다.

시청 정문을 향해.

그러나 그 순간 낙하해 박살났던 구조물 조각들과

추락해 박살난 몸으로 버둥거리던 3급 언데들이 붕 날아온다.

지우의 머리 위를 넘어와 정확하게 그 진로를 가로막았다.

지우는 올려다보았다.

역시나 1급 언데드였다.

박살난 외벽에 선 채 한 손을 올려 지우 쪽을 가르키고 있었다.

‘너, 꽤 웃기네’

 

지우도 씨익 웃어 보였다.

자신을 죽이려 드는 1급도 마찬가지로 웃고 있을 거라 믿으며.

지우는 방향을 바꾸며 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정문으로 나가려고 애썼다.

가끔 교란하여 1급이 날려보낸 구조물들이 지우를 향해 기어오는 3급들을 깔아뭉개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힘으로 날아오는 장애물들을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앞에 나무와 석재 조각들이 쌓이며 진로를 가로막는다.

뒤에서는 3급 언데드들이 기어온다.

시청의 정문까지 겨우 30미터 남짓.

그러나 그 좁은 거리가 도무지 좁혀지지 않았다.

지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1급 언데드는 여전히 위에서 지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던 건 끝내고 가.’

그것은 그렇게 말한다.

느껴졌다. 지우는 이를 악물었다.

 

‘까불고 있어.’

보통 사람들이 발병하면 3급.

무술에 숙련된 사람들이 발병하면 2급이 된다.

2급과 3급에 비해 1급 언데드는 어떻게 탄생하는지 밝혀진 바가 없다.

그저 2급이 1000명 이상 사람을 죽거나 잡아먹으면 1급이 된다더라, 같은 풍문이 있을 뿐이다.

그만큼 1급은 숫자가 적고 알려진 바도 적다.

따라서 함부로 공격할 수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며 잠시 멈췄던 것이 화근이었다.

1급이 입만 존재하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본 순간 지우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1급 앞에서 움직이는 걸 멈추다니.

그러다 이미 때는 늦어 머리 위로부터 육중한 피아노가 날아왔다.

피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그 건반 하나하나까지 눈에 보이는 거리였다.

‘늦었어.’

눈을 감는다.

 

그 때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 위를 가로질렀다.

쾅.

굉음이 머리 위에서 울려퍼졌다.

동시에 낙하해오던 피아노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육중한 착지음과 함께 거구가 지우의 눈 앞에 내려앉았다.

순간 2급 언데드라고 생각했지만

“소대장님!”

“그래. 나다. 뭐 좀 걸쳐라. 보기 민망하다.”

지우의 몸 위로 군복 상의가 떨어져내렸다.

 

반벌거숭이가 된 소대장은 지우한테서 완전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혹시 지우의 벗은 몸을 보게 될까 필사적으로 조심하는 것 같았다.

소대장의 몸은 가죽을 벗겨낸 가축 같이 온통 벌건 피로 덮여 있다.

본인이 다친 것도 있고 언데드의 피를 뒤집어 쓴 것도 있으리라.

2급을 두 마리나 상대했기 때문이다.

지우는 그의 옷으로 몸을 가리며 물었다.

 

“두 마리 다 처리하신 겁니까?”

“아니.”

소대장의 대답은 간결하고 솔직했다.

“그냥 목숨만 건져서 도망친 거지.”

그리고 속 터졌다.

쿠웅. 쿵. 쿠웅.

시간 차이를 거의 두지 않고 지상에 떨어진 가구들이 박살났다.

시청에 들어오기 전 마주쳤던 2급들이 지우와 소대장 바로 뒤에 와 있다.

그리고 그 놈들을 따라온 3급 언데드들이 있다

 

“…한 마리도 처리 못하신 겁니까?”

배은망덕하다는 걸 자각하면서도 지우의 입에서 볼멘 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2급 두 놈이 힘을 합쳐 달려드는데 어쩔 도리가 없더라. 개미 같이 몰려드는 3급 놈들만 없었어도 어떻게든 했을 텐데. 미안하다.”

목숨을 구해주고 알몸까지 가려줬는데 ‘미안하다’라고 말하면 지우 쪽이 얼굴을 들기 힘든 상황이 된다

 

“미안하다는 말씀 하지 마십시오. 저는 지도 다 챙겨서 도망 나왔습니다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은근히 먹이려는 말 같기도 하다만, 뭐, 알아줘서 고맙다.”

소대장은 뭔가 해보려는 듯 주먹을 팡팡 부딪쳤다.

“자, 그러면 빨리 정리하고 도망치자.”

지우도 일어섰다.

둘의 몸은 이상하게 붉었다. 몸에서 돋아난 비늘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두 명의 판데믹 솔져는 물론 출정했던 부대 전체가 그 후 소식이 끊겼다.

“올 때가 지났는데…”

‘고문관’으로 찍혔던 탈영병만이 자신의 언데드 군단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정체는 사실, 언데드들의 창조주.

“너무 기대를 걸었나. 괜찮아. 다른 놈들을 찾자.”

그는 또 시도할 것이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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