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ritg.kr/threadnovel/121060/ <이전 화
호텔 안으로 다시 들어오려는 건가. 나는 쓸모없어진 취객을 테이블에 버려두고 바 입구로 향했다. 저 노인이 어느 객실에 묵는지, 젊은 남자의 말대로 그가 4층 내 방에 들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가 후안을 찾을 실마리이자, 내가 죽일 목표이자, 12호 객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난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층수 표기는 변하지 않았다.
계단으로 올라오는 건가?
“손님.”
등 뒤에서 누군가 날 불렀다. 바텐더였다.
“계산을 안 하셨습니다만.”
나는 쓰러진 남자를 보고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저렇게 있어서야, 한참 뒤에나 깨어날 것 같았다. 그러니 저 사람이 대신 낼 겁니다-하고 말해도 안 믿을 거고.
내가 계산할 기미를 보이자, 바텐더는 얼른 지불할 가격을 말했다. 나는 대강 지폐 두 어 장 꺼내어 바텐더에게 넘겼다.
“나머지는 팁입니다.”
마음이 급해서 한 말이었지만, 바텐더는 돈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해져서는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십쇼!”
그 잠깐 사이에 노인은 사라져있었다.
어디로 간거지?
난 노인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창문 밖을 휙휙 둘려보았다.
“누굴 찾는가?”
순간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뒤를 돌았다.
“꽤 노골적으로 보던데. 혹시 할 말 이라도 있는건가?”
주름 진 눈매가 날카로이 빛나는 노인이 그곳에 있었다.
언제 들어온 거지? 엘레베이터를 타지 않는 한 후원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터였다. 노인이 지금 내 뒤에 있는 것은 이상했다.
애초에 후원에서 산책하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꺼림직한 노인이었다. 일단, 노인에게서 멀어져야 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래. 일단 떨어지고 나서, 노인이 왜 내 방에 들렸는지 조사해 가는 게 좋을테지.
“할 말이 있냐고 물었네만?”
노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만 취기 때문인지 빨리 쉬고 싶어서. 실례하겠습니다.”
엘레베이터는 내가 타고 온 이후 부터 쭉 13층에 있었기에, 나는 바로 엘레베이터의 버튼을 눌러 탑승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4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닫혀가는 엘레베이터 문 너머로 어쩐지 흉흉해 보이는 노인의 표정이 보였다.
곧
그리고 어째서인지
다
시
움직이는 입 모양이
보
게
벌레처럼 꿈틀꿈틀 움직여
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걸
세
노골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앨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난 그제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로비보이는 퇴근이라도 했는지 이 좁은 공간 안엔 나 혼자 뿐이었다. 벽에 붙은 전면거울에 내 행색이 비쳤다.
방금 전 겪은 당혹스러운 경험 탓일까, 거울 속에 비친 사람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눈 아래가 푹 꺼져 짙은 그림자가 져 있었다.
노인은 왜 내게 그렇게 말한 걸까. 막상 그 앞에서 벗어나자, 나는 노인이 정말 있었던 게 맞는지도 의심되었다. 하지만 분명 젊은 남자도 그를 보았다고 했으니 유령 따위는 아니었다.
생각을 다 정리하기 전, 4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복도 코너 벽 너머로 고양이 꼬리로 보이는 게 살랑이다 사라졌다. 내 방이 있는 쪽이었다.
난 입 안에 고이는 침을 삼키며 엘레베이터에서 나왔다. 혼란스러워서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휴식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남자가 그 기묘한 노인이 내 방에서 나왔다고 했으니, 방에서 머리를 식히면서 겸사겸사 무슨 단서가 있는 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지 몰랐다.
결정을 내린 난 거침없이 내 방으로 향했다.
혹시 그 노인이 내가 체크인 하기 전에 404호에 묵었던 사람이었나? 하지만 호텔에 다시 나타난 것을 보면, 아직 호텔이 있는 것인데, 왜 계속 404호에 묵지 않은 것이지?
열쇠를 꽂기 전에 문고리를 흔들어보았지만, 나가기 전 단단히 잠궈놓았던 문은 누군가 건든 흔적조차 없었다. 난 답을 내릴 수 없는 의문을 떠올리며 잠긴 문을 열었다.
그러나 잠궜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내 방은 엉망이 된 상태였다. 누군가 침입한 듯 창문은 깨져있었고,그가 방을 뒤진 것처럼 얼마 없는 물건이 전부 내던져 있었다
나는 오래 생각하는 걸 즐기지 않는 성격이라 침입자의 의도를 추측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꽤 비싼 대가를 주고 구입한 특수한 손전등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내 소지품엔 형광도료가 발라져 있어서 침입자의 손길이 닿은 곳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다.
무례한 침입자의 목적이 나인지 이 방인지는 손전등을 잠시 비춰보자 곧 알 수 있었다. 좀도둑의 소행으로 보이게 하려고 물건들을 뿌려놓았지만, 도둑은 보통 화장실 환기구를 드리이버까지 가져와서 열진 않는다. 내용물을 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누군가 이 방에 있는 뭔가를 찾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침입자는 내 소지품을 노린 게 아니었다. 이 방, 404호에 볼일이 있었던 거다.
흔적의 시작과 끝은 환기구로만 이어져 있었다.
쫓아가려고 해도 일반 손님인 내가 저런 곳으로 갔다가 무슨 변명을 해야하는가. 그리고 아직 호텔 내에서 볼 일이 끝난 것도 아니니, 바로 쫓아갈 수는 없었다.
거기다 혹시나 사라진 물건이 있나 확인도 해봐야 했으니까.
내 물건을 그냥 흐트러트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지, 가방 겉에 묻어 있던 도료가 일부 물건에도 묻어있었다.
개인정보가 적혀있을 만한 물건을 찾은 것 같았지만, 침입자에겐 아쉽게도 그런 중요 정보가 있는 것은 전부 내가 늘 소지하고 있었다.
하나만 빼고.
“없어졌군.”
편지 봉투가 보이지 않았다. 후안의 편지가 들어 있던.
난 품안에 손을 넣어 따로 빼 놓은 편지 내용물들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정갈하게 접힌 종이 편지지 몇 장의 감촉이 느껴졌다. 가지고 있길 잘했다.
그러나 이런 희미한 실마리로는 범인이 환기구 안의 물건과 속이 빈 편지 봉투만 가져간 이유를 전혀 추측할 수 없었다. 그는 봉투 속이 비었다는 걸 확인할 새도 없이 급하게 방을 뒤진 걸까? 그렇다면 상대는 아마추어였다.
아니면, 만일 그가 프로라면, 편지 봉투를 가져간 건 일종의 경고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 자는 후안의 소식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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