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이 보낸 마지막 편지의 주소를 따라, 나는 M시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 열차가 정거장에 들어섰다. 늦은 오후도 지난 시간이라, 사람들은 저마다 지친 몸을 누일 곳을 찾아 빠른 걸음으로 기차역을 떠나가고 있었다.
내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이 지역의 지도를 확인했다. 로―메인 호텔은 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짐이라고는 내가 걸친 옷과 작은 서류가방 뿐이니, 걸어서 가볼 만 했다. 호텔 주변의 지리도 익힐 겸, 친구의 소식을 아는 사람도 찾을 겸.
직업의 특성상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고 살아온 나에게 후안은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유유상종인 건지 그 또한 나만큼 메마른 삶을 살았고, 그래서 우린 더욱 서로에 의지했던 것 같다. M시는 후안과 내가 마지막으로 술잔을 기울였던 곳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바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바텐더는 멋드러진 콧수염에 쿠바억양을 쓰는 남자였는데, 다행히 아직 날 기억하고 있었다. 혹시나 최근에 후안을 보지 않았을까 싶어 물어보니 그는 이상한 대답을 했다.
“그런 사람은 기억에 없는데요. ”
그럴리가. 나는 후안의 특징을 다시 설명했지만, 바텐더는 농담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는 손으로 내 앞에 라임 가니쉬를 얹은 럼 샷글라스를 내려놓으며 그가 말했다.
“이 도시에서 여행객의 신분으로 오래 머무는 건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어째서죠?”
술을 한 모금 홀짝이며 내가 물었다.
“이곳 사람들은 외지인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으니까요. 연고가 없는 사람에겐 더욱 그렇고.”
바텐더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바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구석자리에서 무어라 쑥덕거리며 나를 보던 남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금방 내 시선을 피해 눈을 돌렸지만, 기분이 상하기엔 충분했다. 남은 술을 입안에 탁 털어넣고 라임을 입에 무는 내게 바텐더는 이해를 구했다.
“그 사고 이후 다들 이렇게 쌀쌀맞아졌죠. 기억하시나요? 2년 전 손님께서 저희 바에 방문할 무렵 일어났던…….”
사건? 무슨 사건을 말하는 걸까. 바텐더의 눈을 마주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에 지난 번 후안의 집에 묵었을 때 이 도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아마도 사이비 종교 광신자들의 집단 자살사건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날 한시에 죽었고, 그중엔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크게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나도 죽음과 멀지 않은 곳에 머무르고 있지만, 여자와 아이들이 얽히는 건 정말 내키지 않는게 사실이다. 내가 신사나 박애주의자라서가 아니다. 그저 내키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여자와 아이들이 얽히는 일은 보통 돈이 되질 않는다.
바텐더와 주변 사람들이 눈빛이 불편해진 나는 팁을 후하게 올려놓고 바를 나왔다. 로-메인 호텔은 바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올록볼록한 지평선을 따라 노을이 지고 있었다. 큰 불이라도 난 것처럼 도시 전체를 덮은 선명한 주홍빛 하늘 아래를 걸으며, 나는 이 차가운 도시가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광신도들, 무고한 아이들, 내 하나뿐인 친구, 나처럼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고 끊임없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흘러다니는 떠돌이들. 인적 없는 거리에 부는 쌀쌀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갔다. 윙윙 맴도는 바람소리는 누군가의 흐느낌처럼 들렸다.
호텔 정문에 도착했을 무렵, 도시의 네온간판에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노란색인지 주황색인지 말하기 힘든 네온관으로 쓰인 이름이 건물 벽에서 번쩍였다.
HOTEL RO MAINE
수수한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번득이는 알파벳들을 올려다보며,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 바로 맞은 편 데스크에 서 있던, 이곳의 지배인인 듯한 화려한 유니폼을 입은 노인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밝은 웃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환영합니다.”
“방을 좀 잡고 싶습니다.”
그리 말하며, 나는 노인의 등 뒤로 늘어진 열쇠걸이를 슬쩍 살폈다. 내가 찾으려 했던 건 404호 열쇠의 유무였다. 후안은 집을 사지않고 호텔에 장기투숙하며 지냈다. 그만의 징크스가 있다면 어느 호텔에 가던지 404호만을 고집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404호의 열쇠는 걸려있었다.
후안은 여기 묵고있지 않은 건가.
생각에 잠겨있던 내게 지배인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하시는 방이 있으신가요? 저희 호텔엔 비흡연자를 위한 방이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404호로 주시오.”
지배인은 선반에서 열쇠를 꺼내 데스크 위의 원목 트레이에 올려놓았다.
“체크아웃은 내일 오전 11시입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나는 열쇠를 집어들고 돌아섰다. 로비 한 켠의 엘리베이터로 가며, 난 손 안에서 서늘한 쇳조각을 이리저리 굴렸다. 열쇠 머리와 모서리를 둥글게 마감한 플라스틱 키링, 그리고 그것들을 한 몸으로 연결하는 작은 쇠고리가 거슬리지 않을 만큼 잘그락거렸다.
“4층으로 갑시다.”
얼굴에 솜털이 덜 빠진 앳된 얼굴의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층수를 말하자 그가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찰나, 문틈새로 누군가의 구두코가 쑥 들어왔다. 갑작스레 끼여든 발 때문에 덜컹거린 문이 다시 열렸다.
“4층 갑시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며, 신발의 주인이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말했다. 나는 곁눈질로 그의 외양을 살폈다.
그는 나나 후안과 비슷한 나잇대로 보였다.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 다만 입고 있는 소맷단이 약간 헤진 카키색 수트와 머리에 쓴 같은 색의 베레모 탓에 그는 본래의 나이보다 더 중후한 인상을 풍겼다. 직원이 가만히 서 있자 층수 버튼을 본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같은 층에 가시는군요.”
“예.”
“몇 호에 묵으십니까?”
나는 그의 눈을 마주봤다. 사무적이고 딱딱한 인상을 풍기는 그의 시선이 나를 안심시켰다. 이 자는 내게 관심이 없다.
“404호입니다. 선생님은 어디십니까?”
“저와 조금 먼 방이군요. 401호입니다.”
구식 엘리베이터는 느릿한 속도로 나와 그, 엘리베이터 보이를 위층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침묵을 잘 견디지 못하는 성격인지, 그가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이 호텔은 조식으로 나오는 커피가 꽤 맛있다고 하더군요. 예전에 이곳에 묵은 친구가 말해줬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그러곤 그가 내게 물었다.
“그 쪽은 이 도시에 처음 오셨습니까?”
아니요, 내가 무심코 그렇게 답하려던 찰나 도착을 알리는 종소리가 짧게 울리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4층의 바닥엔 진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내 질문의 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지, 그는 조금 급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 그의 방이 있는 복도 쪽으로 사라졌다.
푹신한 바닥 위를 걷자니 열차 안에서부터 쌓인 피로가 어깨를 점점 무겁게 짓누르는 게 느껴졌다. 404호는 왼쪽 복도에 있었다. 손잡이의 구식 자물쇠를 열쇠로 연 문 너머로 여느 호텔과 다를 바 없이 깔끔하고 사용감 없는 방 안이 보였다.
문을 닫은 나는 서류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친 채 침대 위에 바로 엎어졌다.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은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누워있자니 멍한 정신 속에 내가 이 도시에 온 목적이 떠올랐다. 그래. 후안. 그 친구를 찾아내는 덴 하루 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나는 후안에게서 받은 편지를 찾기 위해 서류가방을 열어 뒤지며, 한 손으로는 협탁 위에 놓인 호텔 내선 전화를 집어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로비에서 들었던 지배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숙박을 연장하고 싶습니다. 한 일주일 정도.”
“아.”
지배인이 짧게 탄식했다.
“죄송합니다만 손님. 404호는 다른 손님께서 내일부터 사용하겠다고 예약을 하셨습니다.”
호스트 코멘트
참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