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메인 호텔 404호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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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이 터진 편지봉투를 손에 들고 침대에 누웠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일 이 방을 예약했다는 사람에 대해 프론트에 더 자세히 물어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하필 이 시기에, 또 하필 내가 이 호텔에 왔을 때 404호를 찾는 또다른 사람이 있다니.

혹시 후안일까? 나는 편지 봉투 발송인란에 적힌 그의 이름을 빤히 쳐다보다가, 안에 든 편지지를 꺼내 펼쳤다.

십 수 번은 읽었던, 필기체로 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내게 편지를 쓸 때 마다 적는 상투적이면서도 다정한 인삿말이었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에게.

 

몇 번이나 읽었던 편지인 만큼, 읽어가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근황과 이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는 간단한 이야기. 차라리 수상한 내용이라도 있으면 그를 찾는데 도움이 되었겠건만, 안타깝게도 일상적인 내용 뿐이었다. 다만 편지 말미의 내용이 내 눈에 걸렸다.

 

M시에서 볼 일을 마치면 난 이곳을 떠날 생각이야. 다음 도시에 도착하는대로 자네에게 편지를 부치겠지만, 한 편으로는 그럴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자네도 알지 않나. 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거.

더이상 연락을 못 기다릴 만큼 내가 그리워진다면 자네가 나를 보러 와도 되겠지. 이 외딴 도시에서 내가 머무는 곳은 정해져 있으니, 분명 우리는 금방 만날 수 있을걸세.

 

PS. 혹시라도 우리가 엇갈릴 때를 생각해 자네가 나를 찾는 데 도움을 줄 만한 것을 동봉하네.

혼자 있을 때 읽게.

 

아쉬움을 가득 담아, 자네의 오랜 친구 후안이.

 

내가 후안을 찾을 수 있는 것.

나는 이전에 편지를 받았을 때 따로 빼 두었던, 다른 봉투를 집었다. 겉 봉투와 대비되는 검은 편지 봉투. 손으로 봉투의 입을 투박하게 찢고, 나는 그 안에 든 종이를 꺼냈다.

타이핑한 글이 인쇄된 한 장 짜리 A4 용지였다. 언제나 수기로 편지를 쓰는 후안의 성격에 맞지 않는 물건이었다.

 

내 요청에 따라 호텔 방에 들어간 후에 편지를 열어봤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네. 그만큼 보안이 필수적인 사안이라네.

아마 호텔에 오래 있을 필요는 없을 거야. 13일부터는 내가 404호를 비롯해 전 객실을 예약해버렸으니 말일세.

그렇다네, 친구. 우리가 추진하던 사이비 교주 암살을 시행할 날이 다가오고 있어. 그 호텔 방 중 하나에서 저격을 할 계획이지.

그때까지 몸 간수 잘 하고 있게나.

혹시라도 낯선 사람과는 일절 대화를 나누지 않았길 바라네.

 

똑똑.

내가 편지를 다 읽자마자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모른 체 하자, 다시 한 번 노크 소리가 세 번 들렸다. 방금 전보다 살짝 짜증이 난 게 문 너머로 느껴졌다. 잠시 고민한 나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좋은 저녁입니다, 세뇨르.”

문 밖에 서 있던 자는 뜻밖에도 시내의 바에서 만났던 바텐더였다. 멋진 콧수염을 가진 그는 바에서 벌써 퇴근을 한 건지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요?”

“손님, 외상은 못된 짓입니다만.”

바텐더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더니 내 방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문을 닫더니 가짜 수염을 떼어냈다. 중후한 인상은 어디 가고, 수염을 뗀 그의 얼굴은 조금은 야비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분명 값을 치르고 나왔습니다.”

나는 여행 가방을 열어둔 곳으로 뒷걸음질쳤다.

“팁과 함께 잔 아래 깔아뒀을 텐데요.”

“술 말고. 다른 거 말입니다.”

바텐더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릎을 굽히며 가방 안에 손을 뻗는 것을 본 그가 말했다.

“총을 쏘시게요? 권장드리고 싶지 않군요. 오늘 밤 내내 그걸 쓸 일이 많을테니.”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내게 그가 말했다.

“정보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바텐더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정보를 빌미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보통 둘 중 하나다. 내부고발자, 혹은 스파이.

나는 그를 한 번 떠봤다.

“글쎄. 저에게 당신의 정보가 필요할까요?”

“손님. 바에서도 말씀드렸을텐데요. 다들 외지인을 싫어한다고.”

수염을 땐 상태로 미소를 짓는 그는 정중하게 압박해왔다.

“그러면 왜 제게 정보를 주려는 거죠?”

나는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물었다. 침묵이 감돌았다. 바텐더는 미소를 잃어버렸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말할 만큼 서로 긴밀한 관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좋아요. 이유는 넘어가죠.”

조용하고 건조한 공기에 소리와 수분을 공급해 환기시킨 것은 나의 타액이었다. 어쨌든 정보가 절실한 것은 이쪽이었다. 저 사람이 누구든 약간의 수상한 정도는 감수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텐더는 직업에 걸맞게 내 말로 촉촉해진 분위기에 제 타액을 섞어 새로운 칵테일로 만들었다.

“현명한 판단입니다. 금요일,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당신은 그 검은 편지 안의 글을 쓴 장본인과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당신이 밤새 이 좁은 방 안에만 있기로 한다 하더라도요.”

차분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당신이 그를 죽여주십시오.”

검은 편지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나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그를 한 번 떠봤다.

“나에 대해 무얼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지만, 난 목표도, 보상도 확실치 않은 의뢰는 안 받습니다.”

“목표는 금방 알게 되겠죠. 당신이 그를 죽이지 않으면 그가 당신을 죽일테니. 그리고 보상은…”

바텐더는 내 기색을 살피며 숨을 한 번 골랐다.

“당신의 목숨입니다.”

험악한 내용과 달리 아이에게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듯 담담하게 바텐더가 말했다.

“그를 죽이지 않으면 당신이 죽고, 죽이면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목숨 이외에 당신이 얻고 싶어하는 정보도 마찬가지 입니다. 죽이겠다면 얻을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없습니다.”

지독한 협박이었다.

하지만, 정보의 대가가 후안의 암살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현재로서는 눈 앞의 저 바텐더만이 후안의 정보를 찾을 유일한 단서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텐더는 만족스럽게 나를 마주보고 뒤돌아 방문을 열었다.

“내일까지 외상 값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군요. 몸 간수 잘 하십시오.”

붙잡을 새도 없이 문이 닫혔다. 난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두리번거렸다.

복도에 인기척은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도,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도르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문이 닫히자마자 바텐더가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귀신에 홀린듯한 기분이었다. 난 손바닥으로 스스로의 뺨을 때려 정신을 다잡았다.

이미 암살의뢰는 받았고, 목표물이 후안인 이상 그를 죽이든 죽이지 않든 내가 무사하려면 나름의 대책이 필요했다.

가령 도주로같은 대책이.

일단 주위를 둘러볼까?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도망치기도 쉬울 것이었다.

운이 좋다면 굳이 후안을 암살할 필요 없이 그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더 나아가 이미 이곳에 와 있는지도 모를 친구와 만날 수도 있었다.

내 눈앞에 있는 길은 진실과 거짓을 추려내는 것 뿐이다.

후안의 편지, 그리고 바텐더의 말들 중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편지의 일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했다.

 

지배인은 졸고 있다가 계단을 따라 내려온 나를 발견하곤 눈을 비비며 물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까 물어보지 못한 게 있습니다.”

“무엇이죠?”

“숙박 연장 말입니다. 404호가 안된다면 다른 방을 이용하고 싶은데 말이죠”

“죄송합니다. 내일은 방이 다 찼습니다.”

“혹시 같은 사람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습니까?”

나는 지배인에게 지폐를 건내며 물었다. 눈치를 보던 지배인은 지폐를 챙겼다. 적어도 여기서 총을 쓸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안심했다.

“네. 카스트로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예약되었습니다.”

카스트로? 후안이 아니라?

“그렇군요 혹시 지금 4층에 숙박하고 있는 사람들의 숙박부를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왜 확인하려는 거지요?”

침을 삼키며 묻는 지배인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호텔에 장난을 친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누군지 한번 찾아보려 합니다.”

다시 그에게 질문하며, 나는 지갑에서 두장을 꺼내려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세장을 꺼냈다.

“당신 탐정이오?”

“그런 일을 할때도 있지요.”

“…기다리시오. 명단을 가져올테니.”

세장을 챙긴 지배인은 돌아섰다.

지배인이 숙박객 명단을 가져올 동안, 나는 데스크에 몸을 기대고 서서 텅 빈 한밤의 호텔 로비 풍경을 보았다.

호텔 측에서 붙인 것처럼 보이는, [숙박객들을 위한 안내문] 이라는 문구가 쓰인 전단지가 한쪽 벽에 붙은 게 눈에 들어왔다.

 

다음 화> https://britg.kr/threadnovel/120918/

호스트 코멘트

로―메인 호텔 404호는 계속 이어집니다.
3화 스레드를 세우기 전, 스낵 느낌의 스레드를 하나 세울 예정입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주인공의 미스터리한 호텔 숙박기를 어디 한 번 계속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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