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5막 경성 로맨스 ‘무대 위에서’ 이달의큐레이션

대상작품: <아 빛이여 빛이여> 외 3개 작품
큐레이터: 장아미, 22년 8월, 조회 172

한켠, 장아미, 전효원(오메르타), 빅토리아(Victoria), 그리고 김이삭(한정우기), 다섯 명의 작가들이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같은 설정’을 공유해 ‘함께 쓰기’를 했습니다.

각 이야기들은 극단 ‘유월회’와 양복점 ‘보헤미안’을 중심무대로 서대문 형무소와 경부선 기차, 미래극장, 다방 카카듀, 조선호텔 대식당, 카페 트로이카와 미모사, 반도호텔 커피숍 등 여러 무대를 오갑니다.

의문하고 이별하고 기뻐하고 좌절하고, 그 무대 위에서는 어떤 사랑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5인5막 경성 로맨스 지금 시작합니다.

 

 

1막. 한켠 <아 빛이여 빛이여>_비극

“나는 무대 위의 너. 너는 무대 뒤의 나.”

신극 운동을 하기 위해 동경 유학파 청년들이 창단한 신생 극단 유월회는 독립투사를 ‘폭탄 현행범’이라고 쓰는 친일 어용 신문인 ‘제국일보’에서 투자를 받기로 한다. 항일 무력 독립운동 단체인 ‘열혈단’은 제국일보 사주를 처단하기 위해 극단에 두 명의 단원을 보낸다.

서로 다른 임무를 맡고 서로 다른 타겟을 노리는 열혈단원 비아와 송혜화. 송혜화는 배우로, 비아는 무대장치 및 조명 담당으로 유월회에 잠입하고, 유월회의 첫 공연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리는데….

 

1장 나를 왜, 너를 왜

등장인물 

비아 유월회의 조명, 무대장치 담당·열혈단 단원

막이 오르면 창문도 변소도 없고 몸 하나 누이지도 못하는 어둡고 좁고 갑갑한 네모난 먹방 안에 심장이 있던 자리가 비어 있는 비아가 홀로 우뚝 서 있다. 비아가 입술을 맞닿았다가 떼며 대사를 낭송하기 시작한다.

비아 : 이것은 관객 없는 방백. 혼자 연기하는 2인극. 둘이 하는 모노드라마. 혜화와 나의 1인 2역과 2인 1역. 비명과 신음으로 가득 찬 무언극. 

양복점 보헤미안의 탈의실이 한 바퀴 돌자 스케치 아래 자금이 들어 있던 내 브리프 케이스는 똑같이 생긴 브리프 케이스로 교환되고. 브리프 케이스를 열자 들어 있는 한 자루 권총. 그리고 필적을 가늠할 수 없게 왼손으로 끄적인 쪽지. ‘밀정이 유월회에 잠입. 처단하라.’ 쪽지를 천천히 씹어 삼키고. 다시 브리프 케이스를 잠그고 탈의실 밖으로 나오면.

언제 의거에 목숨을 바칠지 모르니 혜화와 하루하루를 탕진하며 살아. 미래가 없으니 저축이 없고 결혼이 없으니 연애에 충실하게. 우리의 생활은 서랍 속의 술 베개 밑의 총. 나를 구해줘 죽여줘. 나를 왜 죽였어. 너를 왜 죽였어. 왜 죽여야만 했어. 왜 죽이지 않을 수는 없었어. 왜 너는 안 죽었어. 왜 나는 아직 안 죽었어.

 

 

2막. 장아미 <보헤미안>_환상극

“나는 비로소 그 이름이 내 것임을 알았다.”

지설하는 양복점 보헤미안의 주인으로 사십대 초반의 여자다. 맞춤양복을 주로 취급하고 있지만 때로 극단 유월회에서 무대의상 일을 의뢰받기도 한다. 어느 날 유월회에 소속된 배우인 박서진이 보헤미안을 찾아 다음 공연에서 입을 프록코트를 수선해주기를 부탁한다.

 

3장 어느 봄날

등장인물

지설하 보헤미안의 주인

박도진 유월회의 극작가·박서진과 형제

무대 정중앙에 설치된 창문에서 빛이 쏟아진다. 박도진은 수첩을 펼쳐 든 채로 의자에 앉아 있다. 재봉틀 앞에 엎드려 있던 지설하가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몸을 일으키더니 뭔가를 잘못 본 사람처럼 눈을 깜빡인다.

지설하 : …은호 씨? 당신이 어떻게.

박도진 : (수첩을 덮곤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찾으시는 분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극단에서 나왔습니다. 많이 피곤하셨나 봅니다.

지설하 : (당황해하며) 죄송해요. 제가 깜빡 잠들어버려서.

지설하가 허둥거리며 일어나 극단에서 주문한 의상을 내어준다.

박도진 : (모자챙에 손을 댄 채로) 그럼 이만.

박도진이 이를 받아들고 무대에서 퇴장한다. 뒤돌아선 지설하는 작업대 귀퉁이에서 라일락 한 송이와 함께 작게 접힌 쪽지를 발견한다. 쪽지를 펼치는 지설하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감돈다.

 

수록곡

1. 윤백단 <신 아리랑> 🎵

2. 본 드 리스 <더 맨 아이 러브>(The Man I Love) 🎵

3. 안기영 <내 고향을 리별하고> 📻

 

 

3막. 전효원(오메르타) <좋아하는 척>_희극

“사실 그 사람 좀 재수없어요.”

극단 유월회의 조연 배우 서희수는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투자자로 나선 친일파 재력가 집안의 아들 정엽과 가깝게 지내며 안정적인 투자를 이끌어내는 한편 그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진심을 확인하려 한다.

 

4장 다방 카카듀

등장인물

서희수 유월회의 조연 배우

정엽 제국일보 전 사장의 아들

다방 카카듀 내부 중앙 테이블에 정엽이 혼자 앉아 일본어 제목이 크게 적힌 표지의 책을 읽고 있다. 주변 테이블의 사람들이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서로 수군댄다. 무대 왼편에서 서희수가 고동색 브리프 케이스를 들고 입장한다.

서희수 :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나요?

정엽 : (일어나 서희수의 의자를 빼주며) 어서 오세요.

서희수가 자리에 앉자 정엽도 테이블을 돌아 착석한다.

정엽 : 정엽입니다.

서희수 : 네?

정엽 : 미스타 정이라고 부르시기 전에 말씀드린 겁니다. 미스타 정이라는 호칭이 너무 싫어서요. 동경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그놈의 정상, 정상 소리에 두드러기가 가실 날이 없었답니다. (과장되게 몸서리친다.)

주변 사람들이 다시 서로 수군댄다.

서희수 : (콧등을 찡그리며 방백으로) 친일파 아니랄까 봐 일본 유학 생활 자랑이신가. 이렇게 티를 낼 거면 일본인이 운영하는 다방에서 만날 일이지, 왜 하필 카카듀란 말인가. 이 다방은 항일운동가들의 비밀 접선 장소로 유명한데. 벌써 몇몇 손님들이 자기를 주시하는 눈초리가 느껴지지도 않나.

 

수록곡

조세핀 베이커 <제 두 자무르>(J’ai Deux Amours) 🎙

 

 

4막. 빅토리아(Victoria) <설탕과 장갑>_첩보극

“왜 하필 저입니까?”

통영 출신인 김상희는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경성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다. 김상희는 친구 이재옥의 연인인 정호진이 계속 신경 쓰인다. 김상희에 대한 정호진의 마음은 모호하기만 하고, 김상희는 그 모호함을 끝낼 결심을 한다.

 

5장 반도호텔 커피숍

등장인물

김상희 이화여전 졸업 후 가정교사로 일함

타이거 열혈단 단원

양복점 보헤미안에 라즈지가 들어 있는 중국 냄비를 가져다 준 김상희. 배경은 반도호텔 커피숍으로 바뀐다. 경성부청이 마주보이는 자리에 타이거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김상희가 타이거의 맞은편에 앉는다.

타이거 : 앉아요. 오늘도 고생했어요. 

김상희 : 별 말씀을. 

타이거 : 원래 이 임무는 당신에게 지정된 게 아니었어요. 

김상희 : (인상을 찌푸리며) 그럼요? 

그 순간 경성부청 건물에서 커다란 소리가 쾅 하고 울린다. 카페의 손님들이 전부 비명을 지른다. 부청 2층의 한 창문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밖으로 뛰어 나온 사람들과 지나가다 멈춰 선 사람들, 그리고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오는 경찰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김상희 : 저게 뭐죠? 

타이거 : 보헤미안에 가져다 준 중국 냄비에요. 

김상희 : 안에 라즈지가 들어 있던? 

타이거 : 네. 큰 임무를 맡겼는데, 다행히 성공했군요. (김상희의 잔에 자신의 커피잔을 부딪히며) 건배합시다. 참, 총은 절 주시죠.

김상희 : (비단 보자기에 싼 총을 내밀며) 다시 반납인가요?

타이거 : (총을 브리프케이스에 넣으며) 네. 아직은 총을 휴대할 단계가 아니에요.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적당히 눈치를 봐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요. 

 

수록곡

1.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Cello Suite No.1 in G major BMW.1007-Prélude) 🎻

2. 타르티니 <악마의 트릴 소나타>(Sonata “Il Trillo del Diavolo”) 🎻

3. 드뷔시 <물에 잠긴 성당>(La Cathédral Engloutie) 🎹

4.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Piano Concerto No. 3, D minor op.30🎹

5. 조세핀 베이커 <제 두 자무르>(J’ai Deux Amours) 🎵

6.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1번>(Piano Sonata C major op. 1) 🎹 

 

 

그.리.고,

5막. 김이삭(한정우기) <- 커밍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