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을 읽고나니 이 작품을 아니 읽을 수 없더군요. 세상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불가에 입적하는 안드로이드의 이야기라니!
제가 지금까지 허다하게 안드로이드를 다룬 이야기를 읽어왔지만 이런 설정은 또 처음인지라 납자루 님의 ‘봄이 지나가면’을 향한 솟구치는 호기심을 억누르기 어려웠습니다.
안드로이드 SJ4-548K2는 사람과 똑같은 안드로이드로(밀어버릴 수 있는 머리카락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군용이었다가 소용이 다하여 민간에게 불하되고 그것을 사들인 주인의 명령으로 지금은 스님인 주인 어머니의 소유물이 되기 위해 그가 있는 암자로 찾아갑니다. 하지만 스님은 노예로 부리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과 똑같은 독립적이며 인격적인 존재로 대합니다. 이것은 스님이 안드로이드를 ‘손님’으로 칭하는 것에서 잘 나타나 있죠.
스님의 구도 모습을 보면서 비합리적이라 생각한 안드로이드는 그런 일의 의미를 스님에게 묻는데 스님은 거꾸로 안드로이드에게 ‘자네는 질문이 없는가?’ 반문합니다. 그러자 안드로이드는 자신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져 왜 그리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몸 안의 기계 부족이 망가지면 어떻게 될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질문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런 안드로이드에게 스님은 ‘너의 질문은 왜 나는 질문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가다’라고 일러주고 그것을 찾으라는 뜻에서였는지 ‘선재’란 이름을 지어줍니다.
중국 무협 영화를 보면, 스님이 대화를 하면서 말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선재’입니다. 쉽게 말해 ‘그 말이 옳다’라는 뜻이죠. 아마도 안드로이드가 결국은 대답을 찾게 될 거라는 걸 스님이 이름으로 알려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이 단편은 전반과 후반으로 나눌 수 있을 듯 합니다.
전반이 이렇게 안드로이드가 구도의 스승이라 할만한 스님을 만나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후반은 스님이 안드로이드에게 말한, 자신에게 질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네요. 네, 스님이 지어준 이름처럼 그는 결국 자신의 질문을 찾는 것이죠. 그것도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개척 행성에서 말이죠.
이런 과정이 마치 김기덕의 영화 제목인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처럼 봄에서 시작하여 다시 봄으로, 그렇게 사계절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가 결국엔 득도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에는 과연 영혼이란 없는 것인가?’ 혹은 ‘영적인 깨달음이란 인간에게만 가능한 것인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죠. 단편 마지막에 돈오점수 하듯 안드로이드가 깨닫는 장면의 묘사가 재밌습니다.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각성을 모방하고 있거든요. 거기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인간 제자 사미승(아마도 이 사미승을 여성으로 설정한 것은 여성이었던 스님과 연결시켜 그 스님이 말하는 대로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스승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보입니다.)과 나뭇잎을 손에 들고서 주고 받는 미소는 염화시중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아마도 깨달음이란 마치 햇살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내리듯이, 존재를 가리지 않는다는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작품이 작가의 어떤 측은지심의 산물은 아닐까도 생각됩니다. 단서가 있는데요, 그것은 안드로이드가 스님에게 했던 다음과 같은 말 때문입니다.
저는 오리온좌 근처에서 불타는 강습정들을 보았습니다. 게이트 옆 암흑 속에서 빛나는 C 빔들도요. 그것은 놀랍지만, 슬픈 광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시간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요.
이것은 사실 리들리 스콧의 유명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룻거 하우거가 분한 안드로이드가 죽기 전에 ‘블레이드 러너’인 해리스 포드에게 유언처럼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하게 되더군요. 이 단편의 안드로이드는 사실 룻거 하우거가 분한 안드로이드를 모델로 만들어졌으며, 원래의 이야기에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창조주까지 찾아왔건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는 룻거 하우거의 안드로이드를 위로하기 위하여 이렇게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고 확장하는 존재로 만들어주었다고 말이죠. 제 상상이 과연 들어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작가의 그런 마음까지 느껴져 더욱 재밌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이야기를 발전시켜 장편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