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적 오컬트 스릴러와 병맛 개그 사이 그 어딘가의 빙의물 감상

대상작품: 환몽(幻夢) (작가: 슬픈거북이,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15시간 전, 조회 17

안녕하세요, (자칭) 마녀 노르바입니다(…).

이번에 소재제공 이벤트 (공동)1위를 차지한 사람으로서, 제가 직접 던진 소재가 어떻게 요리되었는지 리뷰하러 왔습니다.

뭐… 리뷰까지 해야 이 소설의 메타적 완성 아니겠습니까.
참고로 저는 이 작품에 ‘등장인물’로도 잠깐 얼굴(?)을 비쳤으니, 이해관계자이자 등장인(?)이자 평가자라는 삼중 신분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소재 활용의 정석

“내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에 잠시 빙의했다”라는 지극히 광범위한 조건 하나로, 작가는 8개 장편과 42개 단편이라는 방대한 자기 세계관 창고를 통째로 무기화했습니다. 이정도면 조건이 꽤 헐렁하다 생각했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빙의는 했는데 어느 인물(?)인지조차 특정 못 하는 주인공’이라는 서스펜스로 탈바꿈시키셨더군요. 마감 직전 공동 1위라는 웃픈 해프닝으로 시작해서, 정체불명의 택배 – 수상한 약병 – 빙의 – 말(馬)로 각성이라는 전개까지, 소재 하나로 이렇게까지 우려먹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거기다 수상한 택배 상자, CCTV를 두리번거리는 장면, “노르바가 내 주소를 어떻게 알았지?”라는 의심은 정말 스릴러 문법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닉네임 하나만 아는 사이에서 실물 주소가 특정된다는 설정은,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소름 돋을 지점입니다. 여기까지는 장르가 미스터리·오컬트 스릴러라고 해도 믿을 만큼 진지… 하… 합니다.

 

2. 병맛 개그로의 전환

전차 경주를 준비하는 진지한 역사물 한복판에, 주인공이 발정기 문제로 거세당할 위기에 처한 수말이 되어 있는 장면은 정말이지… 오컬트와 병맛 사이 그 어디쯤에서 장르가 붕괴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인용하다가 바로 “…은 개뿔”로 격추시키는 톤 운영은, 진지함과 자학 개그를 오가는 이 작품의 정체성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지점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거기다 주인공이 자신이 쓴 장편들을 하나하나 소거법으로 짚어가며 “신단수? 이건 현대 한국이니 아니고. 은하철도? 패스.” 하는 부분은 정말이지 이 작가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자기 객관화 개그입니다.

 

3. 신고하려다 증거 인멸하는 서술자

불법 의약품 제조, 개인정보 무단 취득, 사람을 말로 만든 혐의까지 죄목을 줄줄이 읊어놓고 10초 만에 증거를 개수대에 흘려보내는 장면에서, 이 작가님은 애초에 위기를 위기로 소비할 생각이 없다는 게 확실해졌습니다. 공포보다 귀찮음이, 절규보다 생활감이 앞서는 서술자 캐릭터가 이 소설 특유의 병맛을 지탱하는 축입니다. 네, 뭐 재능이십니다.

 

4. 열린 결말이 아니라 열려버린 결말

문제는 마지막입니다. “횟수는 말 안 했는데요?”로 조건의 허점을 찌르며 다시 판을 벌이는 반전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반전의 방점을 찍은 게 다름 아닌 제 목소리였다는 사실이… ㅋ 이건 예상 못 했습니다. 조건을 낸 사람으로서, 저 대사는 마치 내가 직접 뒤통수를 후려친 것 같은 쾌감을 주면서… 동시에 저도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그 뒤통수를 맞은 건 주인공이지만(…).

마지막까지 저를 직접 등장시켜서 대사를 치게 하시다니… “까비.” …’등장人物’이 아니라 ‘등장人’으로 못박았어야 했는데…

소재만 제공했지 출연 계약서는 쓴 적이 없는데 말이죠(?).

 

다음에 이벤트 열리면 조건에 ‘소재제공자 본인 출연 금지’ 조항부터 넣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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