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중심 서사, 시점 공모(비평)

대상작품: 뱀파 가족이 이사 오면 생기는 일 (작가: 그레이 드비, 작품정보)
리뷰어: 사피엔스, 2시간 전, 조회 17

이미 여러 작가님들이 이 작품에 리뷰를 달아주셨는데, 저는 이미 작품 댓글에도 제 의견을 달았지만, 다른 독자 혹은 리뷰를 보며 작품을 분석하실 분들을 위해 제 리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가득 포함돼 있으니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이 작품은 아동/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와 스토리라고 생각합니다. 뱀파이어와 주인공 소녀의 자아 찾기라는 면에서요. 자신이 뱀파이어인 줄 알았던 소녀가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 배후에는 인간의 생명권을 존중하는 뱀파이어 할머니가 있었다, 라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줄거리입니다. 물론 은우의 러브 스토리도 한 스푼 들어가 있죠.

사실 에밀리아와 은우의 로맨스는 그리 참신하거나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이런 종류의 러브 스토리는 많이 보아왔으니까요.(소설 첫 장면에서 ‘렛미인’과 ‘뱀파이어 다이어리’가 자동으로 떠오르더군요) 제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에밀리아 가족의 구성과 역사입니다. 제목에서 추측컨대 저는 당연히 팀, 엠마, 에밀리아 모두 뱀파이어일 줄 알았습니다. 근데 아니더군요. 뱀파이어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인간들이라…그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들의 ‘주인님’인 마고는 왜 그들을 내버려두는 걸까? 마고가 치매에 걸렸다는 설정도 저는 흥미로웠습니다. 보통 뱀파이어는 병들거나 늙지 않는 것으로 나오니까요. 거기다 마고와 스트리고이의 관계도 저는 흥미로웠습니다. 뒤에 등장한, 국밥집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며느리를 자처한 뱀파이어 헌터라는 캐릭터도 흥미로웠고요.

문제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각 캐릭터는 각자의 이야기를 소설 하나로 풀어도 될 만큼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도 그 점을 의식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각자의 사연을 각자의 시점에서 꽤나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풀어놓으셨으니까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작가님이 주인공으로 설정한 은우와 에밀리아의 분량이 대폭 줄어든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이 하는 일도 적습니다. 소설은 ‘주인공이 역경을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소설에는 반드시 주인공이 있어야 하고 그를 힘들게 하는 문제가 있어야 하며 주인공은 그것을 해결하든지 애를 쓰다 포기하든지 하면서 뭔가 변화를 겪어야 합니다. 주인공, 문제, 변화, 이것이 소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은우의 관점에서 봅시다. 은우가 가진 문제는 뭘까요? 에밀리아를 좋아하지만 사랑받지 못한다는 점 정도일까요? 그러한 고난을 겪으며 은우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에밀리아의 사랑?

에밀리아는 어떨까요? 그녀가 맞닥뜨린 문제는? 따분한 시골 생활에 더하여 할머니가 이상해졌다는 점? 그러한 고난을 겪으며 에밀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뱀파이어가 아니었다는 진실?

그런데 이 두 이야기가 소설을 끌고 가는 동력이 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 소설을 끌고 가는 동력은 도리어 어른들의 과거입니다. 엠마와 팀과 마고의 인연, 엠마와 팀과 스트리고리의 악연, 마고와 스트리고리의 악연, 선지국밥 할머니의 정체, 그녀의 며느리를 자처하는 여인의 정체 등등.

이것은 대서사시를 표방하는 작품에서는 허용되는 방식입니다. ‘반지의 제왕’이나 ‘삼국지’, ‘얼음과 불의 노래’ 같은 작품들이요. 등장인물이 많고 각자의 사연이 재미있고 그래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모습을 그리는…

하지만 이 작품은 대서사시로 보기에는 분량이 짧습니다. 여러 등장인물로부터 각각 공감을 얻어내려면 여러 시점을 오가는 일도 필요하지만 우선은 각 캐릭터에 충분한 분량을 할애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또 대서사시로 보기에는 각 캐릭터에 충분한 분량이 할애돼 있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애매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거기다 그러한 서술 방식을 유지하다 보니 이 작품은 시점이 너무 여기저기로 건너뛰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그러다 보니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여 있어서 화자의 목소리가 너무 두드러지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서술을 읽다 보면 이것이 그 장면 시점 캐릭터의 생각인지 화자의 생각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고, 심지어 화자의 생각임을 대놓고 써 놓은 부분도 많습니다. 한 장면 내에서 시점이 왔다갔다 한다는 문제가 있고요.

작법서를 읽어보면 하나같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바로 시점 넘나들기, 일명 머리 넘나들기 입니다. 한 장면 내에서 둘 이상의 시점을 왔다갔다 하면서 서술하는 거죠. 이렇게 되면 독자는 이게 누구의 심리/생각인지 혼란스럽고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작가님께 제안드리는 것이 타겟 독자층을 정하라는 것입니다.(이건 댓글에서 미처 말씀을 못 드려서 여기서 말씀드립니다)

저는 청소년 소설을 두 편 출간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성인 소설도 독자층을 연령대, 성별로 나누듯이 청소년 소설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크게는 유아용, 아동용, 청소년용으로 나뉘고 아동용은 저학년과 고학년, 청소년용 소설도 중학생과 고등학생으로 나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며 타겟 연령대가 조금 애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들이 6학년이니 초등 고학년을 타겟으로 하는 것이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렇게 보기에는 어른들이 하는 짓이 좀 너무 무섭고 어둡달까요? 손녀를 괴롭힌 어른의 목을 졸라 죽이려 하는 것, 어린 소년 소녀의 피를 빨려 하고 늑대를 시켜 쫓게 하고, 그 늑대를 물리치는 방식, 후에 스트리고이가 찾아와 에밀리아와 은우에게 하는 짓 등등이요.

청소년 소설은 청소년 독자가 얼마나 재미있게 읽는가도 중요하지만, 작가님께서 출판사 투고를 목적으로 하신다 하여 드리는 말씀인데, 일차적으로 편집자와 그 책을 사 줄 학부모의 검열을 통과해야 합니다. 따라서 너무 무섭거나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경우 감점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과는 별도로요. 일례로 저는 ‘진격의 거인’을 너무나 재밌게 보았지만 아직 초등학생인 제 아이에게는 아직 못 보게 하고 있습니다. 신체 훼손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와서요. 물론 그걸 본 초등학생도 많지만 과연 그들이 그 신체 훼손 장면을 어른처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받아들일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저 재밌어 보이면 뒷 생각 안 하고 따라하는 게 아이들이라서요.

본 작품의 경우 그 정도로 잔인하다는 건 아니지만 만약 제 초등 자녀가 보겠다고 하면 조금 망설여질 것 같습니다. 따라서 차라리 주인공을 중고등학생 정도로 설정하시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아니면 어른들의 어두운 과거를 이렇게 자세히 풀지 말고 축약해서 보여주든가요. 도서관에서 아동용, 청소년용 소설을 여러 권 읽어보시면 어느 정도 수위로 써야 하는지 감이 오실 듯합니다. 저는 고등학생을 타겟으로 한 작품에서도 편집자가 어느 캐릭터가 한 욕설을 삭제해 달라고 해서 요즘 애들 말의 반이 욕인데 이걸 다 지워달라고 한다고?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두 캐릭터의 키스를 암시하는 장면도 수정해 달라고 해서 편집자가 요즘 십대 모르시네 한 적도 있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수긍이 가더라고요. 그 소설의 구매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면요. 청소년 소설은 구매자와 독자가 분리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점 감안하시고 타겟 독자층을 정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자, 그럼 타겟 연령층을 정하셨다면 그 다음에 드리고 싶은 제안은 댓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주인공을 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은우와 에밀리아 투톱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마지막화까지 다 읽어본 저의 소감은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분량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소설 내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뭔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은우와 에밀리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어른들의 사정에 치여서입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사연을 축약하고 은우와 에밀리아를 투톱으로 다시금 내세워야 하는가? 저는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주인공은 한 명이어야 합니다. 독자들이 가장 흥미를 보이고 공감하고 응원할 수 있는 사람으로요. 그래서 드리는 제안이 에밀리아를 주인공으로 하는 것입니다. 소설이 ‘주인공이 문제를 겪고 변화하는 이야기’라고 할 때, 은우와 에밀리아 둘 중에 더 심각한 문제를 겪고 더 많이 변화한 사람은 에밀리아입니다.

하지만 에밀리아를 주인공으로 해서 시점을 에밀리아의 것으로 통일한다 하더라도 어른들의 과거를 에밀리아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이야기를 회고록 방식으로 수정하면 해결될 거라 생각합니다.

소설의 첫 장면, 이때는 시점이 은우여도 상관 없습니다, 고등학생 혹은 성인이 된 은우와 낯선 여자를 만납니다. 에밀리아라는 이름의 그 외국 여자는 은우를 아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은우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이로 인해 둘은 갈등을 빚게 되고 에밀리아는 은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 두 사람의 잊혀진 과거를 들려 줍니다.

그 다음 장면은 에밀리아가 시골로 이사가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현재 작품의 이야기대로 진행됩니다. 에밀리아가 시골 생활에서 느끼는 염증, 은우에 대한 오해, 변한 할머니를 보며 느낀 충격, 이후에 찾아온 빌런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은우, 하지만 은우를 지키기 위해 다시 이사가는 가족들. 이때 이야기의 주도권은 에밀리아가 쥐고 있어야 합니다. 현재처럼 이 사람 저 사람의 과거에 휩쓸리는 피해자 같은 모습이 아니라요. 아예 처음부터 할머니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에밀리아가 그걸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어도 좋겠죠.

그 후 에필로그에서 은우는 에밀리야의 이야기를 다 듣고 뭔가 반응을 보일 겁니다. 잊었던 기억을 되찾든가, 에밀리아를 미친 여자 취급하든가. 에밀리아는 그로 인해 또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거고요.

이렇게 쓰면 과거 이야기를 들려줄 때 어른들의 과거도 에밀리아의 시점에서 들려줄 수 있습니다. 다 큰 후 에밀리아는 어른들의 사정을 알게 됐을 테니까요. 어릴 당시에는 몰랐겠지만요. 그렇게 되면 현재처럼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시점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화자 개입처럼 보이는 문장들은 에밀리아의 생각/심리로 보여 마치 무성 영화의 변사가 들려주는 것 같은 지금의 올드한 분위기도 바꿀 수 있고요.

그런 뒤에 드리고 싶은 제안은 다른 여러분들이 말씀하셨듯 제목을 바꾸시는 게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목은 독자의 상상을 너무 납작하게 눌러버립니다. 첫 장면을 읽기도 전에 주인공의 정체를 밝혀버리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얘는 누군데? 그래서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데? 그래서 얘들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하는 궁금증이 생겨야 독자들이 글을 읽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목은 좀 더 은유적으로 바꿔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다 읽고 나서 아 그래서 제목이 이렇구나, 하는 것으로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제안은 문장 부호를 남발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읽다 보면 대사에서 !!, !!!, !?, ?! 같은 부호들을 보게 되는데요. 서술 부분에서도 !가 자주 쓰이고요. 독자는 어떤 묘사와 서술을 읽으면 자연스레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당신은 이때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해, 하면서 문장 부호를 굳이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도리어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독자의 공감을 저해하게 됩니다. 같은 생각으로, 독자가 느낄 감정을 서술문에서 굳이 표현하는 걸 자주 보게 되었는데 그 부분도 전부 지우는 게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군더더기로 느껴집니다.

아, 몇 개만만 더요. 선지국밥 할머니의 정체가 다소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느껴지는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이미 그 전에 등장하긴 했지만 단순히 치매 할머니 정도로만 묘사가 되어서요. 마지막 싸움 장면에서 그 할머니와 개가 갑자기 나와서 신기한 일을 벌이는 그 모습이 좀 개연성이 떨어지는 듯합니다. 뭔가 그 부분을 보면서 독자들이 아, 그랬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미리 복선으로 넣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에밀리아 가족이 왜 굳이 한국에 왔는지도 설명이 안 된 것 같고요. 지금으로써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이사를 왔구나, 하는 정도로 느껴집니다. 또한 마고가 왜 그토록 인간을 지키려고 하는지도 작중에서 잘 설명이 안 되는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차라리 스트리고이에게 더 공감이 갈 정도예요. 따라서 그 부분도 좀 더 독자가 납득할 수 있게 묘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긴 리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쓴소리만 드려서 죄송하네요. 하지만 저는 팀과 엠마와 스트리고이와 마고의 이야기가 정말 재밌었습니다. 나잉과 국밥 할머니도요. 스트리고이가 쓴 기생충 설정도 참신했고요. 음, 지금 든 생각. 은우를 에필로그에서 오컬트 마니아로 설정하셨으니 아예 은우와 에밀리아의 미래를 그쪽으로 설정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헌터 같은 것으로요. 그러면 후속담도 예고하면서 회고담의 어른들 과거도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겠죠. 아무튼 소설 잘 다듬으시고 투고 성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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