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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해당 작품의 15회차(약 1100매) 분량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내용과 퇴고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평가라는 것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목차
1.『소설의 모양도 가지각색인 세상….』
2.『??? : 마치 만화를 읽는 듯한 느낌이 특징입니다』
3.『타인의 시선에서 조롱되는 여성(女性)』
4.『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모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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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설의 모양도 가지각색인 세상….』
관습적으로 우리 사회는 ‘소설’이라는 매체의 형태가 무척 단순하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농담조로 언급되는 ‘하얀 것은 종이고 까만 것은 글자다’라는 말처럼, 소설의 정의는 보통 ‘글과 문장’을 바탕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전제됩니다.
글을 쓰는 작가들 입장에서 ‘소설은 형태가 단순하다’는 말은 일종의 도전처럼 받아들여져 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경쟁상대가 만화 및 영화와 같은 시각적 매체였기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수많은 시도들이 이뤄져 왔죠. 문장, 언어, 소재 등 다양한 요소에서 변주를 주는 것은 아주 작은 시도였고, 우리가 익숙하던 소설의 형태를 극도로 단순화시키거나, 혹은 지독할 정도로 복잡하게 부풀려놓는 시도들도 다양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현재 웹이라는 매체로 이동하며 서술과 대사를 단순화시킨 ‘웹소설’의 형태 또한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주가 이뤄질지를 기대하면,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소설이라는 매체가 겪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고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이번에 읽은 <변방의 수렵단장.> 또한 우리가 익숙한 소설의 형태에서부터 변주를 시도한 여느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수렵단의 단장 ‘맥스웰’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카호트니’라는 도시로 좌천당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야기로, 그곳에 만난 다양한 인물들과 어울리며 눈앞에 다가오는 사건들을 하나둘씩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재치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미리 고백하자면, 이 작품이 분량만큼이나 커다란 인상을 주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설정들은 이미 판타지라는 장르가 차용할 수 있는 대부분을 소재를 해석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 또한 힘의 논리로 대표되는 호승심으로 해결될 수 상투적인 이야기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변방의 수렵단장.>이라는 작품이 작가님이 바라는 이야기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 감상문에서는 개인적으로 느꼈던 ‘작가님이 쓰고 싶은 글’에 관해서 의견을 확인해보고, 더 나아가 ‘작가님이 쓰고 싶은 글을 어떻게 완성시키는가?’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문해력이 떨어지는 일개 독자가 적어내리는 감상에 불과합니다. 무겁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앞으로 작가님이 받고 흘려보내게 될 수백 가지 의견 중 하나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 마치 만화를 읽는 듯한 느낌이 특징입니다』
개인적인 경험담으로 포문을 열자면, 대학생 시절 공들여 썼던 시나리오 몇 편이 입상하면서 이곳저곳에서 함께 손을 맞춰보자는 제의가 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중에서 게임제작에 참여하며 글을 썼던 경험이야말로, 지금도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간지러운 기분을 자극하는 원동력 중 하나입니다.
수많은 매체에서 ‘글쓰기’가 활용되곤 하지만, 일단 ‘게임’이라 매체로 한정시키면 그 글쓰기의 형태가 무척 어지러워진다는 감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전형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는 만화 및 영화에 비해,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글’을 보여주는 상황이 무척 비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일러스트를 활용한 2D게임인지, 인물들에 따라 카메라 각도가 달라지는 3D게임인지, 대사에 목소리가 삽입되는지, 목소리 여부에 따라 대사가 말풍선에 삽입되는지 자막으로 삽입되는지 등…. 형태가 결정되면 호흡을 맞추기 위해 없던 대사를 중간에 삽입하거나, 일부러 대사를 줄이고 합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침묵을 표시하는 대사에 말줄임표를 과도하게 길게 넣는 건 이미 정해진 약속이었습니다.
독후감에 굳이 게임을 거론해 이야기를 흐린 이유는, 이 <변방의 수렵단장.>이 추구하고 있는 대사의 호흡이 ‘게임’에서 지문을 삽입하는 호흡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화해서 말하자면 ‘화면에 캐릭터를 고정시켜놓고 버튼을 눌러서 지문을 넘기는 방식’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예시를 들자면….
이런 식이나
이런 식의 대화를 구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도 해당 소설의 대사문은 게임 지문을 입력하는 방식과 무척 비슷합니다. 대사와 대사가 이어지는 사이를 또 다른 인물의 짧은 맞장구로 호흡을 맞춰주는 방식이나, 인물의 속내를 괄호를 열어서 처리하는 방식, 심지어 마침표 개수로 한 대사 안에서 호흡을 조절하는 방식은 거의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이 대사들이 ‘게임 제작에 쓰일 시나리오’였다면 두말 할 것 없이 합격점을 내렸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읽는 내내 대사와 대사를 잇는 호흡에서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 했습니다. 버튼을 누르면서 대사를 넘겨야하는 플레이 방식을 떠올리면, 중간마다 엉성하게라도 반응을 해주는 조연들을 역할을 보며 경험에서 나오는 감각이 있다고 느낀 편이었습니다. 과도한 말줄임표의 사용도 실제로 대사를 읊는 캐릭터의 모습을 떠올리면 오히려 캐릭터들의 목소리를 상상하고 구현하려는 작가님의 노력을 납득하는 편이었습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화면을 보고 플레이에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의 영역에서 요구하는 감각입니다. 본격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작가님은 이 작품을 ‘게임’으로 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작가님이 이 소설로 구현하고자하는 형태는, 작가님이 스스로 올려둔 소개문에 담겨 있었습니다.
지문과 나레이션 보다는 인물들의 대화를 집중적으로 서술해 마치 만화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 (작가소개中)
이 작가소개문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지문’과 ‘나래이션’을 동일한 선상에서 놓고 배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나리오의 구성을 살필 때 둘의 역할이 크게 구분된다는 것을 떠올리면, 마치 작가님은 ‘대사 이외의 것을 전부 배제 혹은 축소하겠다’는 듯한 인상으로 다가오기까지 합니다.
이중 ‘만화를 읽는 듯한 느낌’이라는 표현은 소제목으로 인용할 정도로, 제가 눈여겨본 표현 중 하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읽는 감각’과 ‘만화를 읽는 감각’이 크게 구분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작가님은 이 작품을 ‘소설’이 아닌 ‘만화’로 받아들이는 감각을 상정했다는 말이 됩니다.
2-1.만화처럼 읽는 소설?
문득 떠올려보면 ‘소설을 못 읽겠어서 만화를 본다’는 사람은 봤어도, ‘만화를 못 보겠어서 소설을 읽는다’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곧 소설이 주는 경험이 만화가 주는 경험을 흡수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어쩌면 만화를 읽는 감각이 글을 읽고 상상하는 감각보다 접근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간극을 해소해보려는 노력은 숱하게 있었으나, 저로서는 회의적인 의견을 제시할 뿐입니다. 과거 ‘라이트노벨’이라는 장르로 제시했던 형태 또한 소설의 형태에 일러스트를 삽입하는, 즉 그림이 줄어든 만화를 읽는 감각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만화처럼 읽는 소설’이라는 형태가 조금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현재 웹소설의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인지 또한 확신이 없습니다. 결국 그것은 읽기 쉬운 소설이지, 만화는 아니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에서 작가님이 규정하고 있는 ‘만화’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바로는, 작가님이 이 작품에서 구현하고 싶은 것은 ‘서술을 크게 줄이고 대사로 공백을 채워 만화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정말 ‘만화를 읽는 감각’과 비슷한지는 이견이 있겠으나, 어찌되었든 작가님 본인은 그것이 ‘만화’라고 여기는 셈입니다.
어떻게 보면, ‘만화’라는 매체를 무척 단순하게 정의했다는 느낌으로도 다가옵니다. 만화에는 문장으로 제시되는 ‘지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미 ‘그림’이라는 도구로 서술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굳이 문장으로 구성되는 서술을 제시하는 것이 불필요할 테니까요.
2-2.소설로 구현되는 만화?
그런데 <변방의 수렵단장.>에서 제시되는 ‘만화처럼 읽는 감각’은 이 정의를 무척 표면적으로 가져온 듯한 인상으로 다가옵니다. ‘지문’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표면적인 개념만을 가져와 소설 자체에서 지문을 간략화 했고, 말풍선으로 대표되는 인물의 장면들을 ‘대사’라는 한 가지 개념으로 치환하여 그에 집중하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작품이 만화였다면 그림으로 제시되는 인물의 표정과 행동 따위를 이미지로 가져올 수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시도가 없습니다. 필요한 만큼 서술을 두고 있으나 시나리오에서 활용될 법한 지시문에 가까운 수준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만화에서 이미지로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공백을 ‘대사’로만 채워 넣는 강박만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만화였다면 장면을 머릿속에 담아두었을 법한 장면들도, 이 ‘소설’에서는 그저 말풍선만 둥둥 떠다니는 듯한 감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이 작품은 소설로서 ‘이미지’가 잡히지 않습니다. 결국 소설이 글을 읽고 상상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매체라면, 마땅히 그 이미지를 그려줄 수 있는 바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것들을 ‘만화처럼 쉽게 읽혀야한다’는 강박에 의해 배제되고 있습니다.
물론 만화처럼 쉽게 읽히는 것은 훌륭한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소설을 읽는 감각’이 아닐뿐더러, 작가님이 구현하고 싶던 ‘만화를 읽는 감각’조차 될 수 없다면? 지금 이 소설은 무엇을 구현하고 있을까요? 만약 이 작품이 ‘인물 : 대사’식의 시나리오성 글쓰기를 추구하지 않고 표면적으로라도 ‘소설’의 형태를 추구하고 있다면, 마땅히 그에 걸맞은 경험을 줄 수 있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현재 이 형태로 작가님이 바라는 ‘만화처럼 읽는 소설’을 구현하고 싶다면, 의외로 방법은 간단합니다. 대사 그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생동감이 넘치면 됩니다. 대사 한 줄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 목소리와 행동이 떠오를 정도로 구어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런 형태로도 소설은 기능할 수 있습니다.
먼저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아직은 이 소설이 그런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로서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대사의 톤이 건조했고, 작품 내에서 구사하고 있는 어휘조차 인물 간의 특성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연령대에 따라 웃음소리(?)가 구분되는 정도의 시도는 있지만, 마냥 웃고만 있을 수 없는 인물들의 사정을 떠올리면 여의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가독성에 영향을 주는 비문들과 오타들은 덤입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이런 시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2천매가 넘는 분량을 써내려가며 작가님이 보여주신 열정을 생각하면, 그저 방법을 고민할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에 관한 의견은 차차 후술하겠습니다.
3.『타인의 시선에서 조롱되는 여성(女性)』
누구나 한 번쯤은 ‘남성이 그리는 여성’과 ‘여성이 그리는 남성’에 대해 고민해보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성별이라는 격차는 경험적으로 완벽한 해소가 불가능하기에, 나와 다른 성별을 가진 인물을 창조해낸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리스크를 안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때는 보통 다음과 같은 방법을 활용하곤 합니다.
첫째, 세간에서 제시되고 있는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오거나
둘째, 인물의 성별적인 특성을 모두 제거하거나
사실 작가님의 성별을 모르는 저로서는, 이런 특징을 분석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변방의 수렵단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여성(女性)에 대한 조형 방식은, 단순히 인물을 그리는 것 이상으로 작품의 방향 자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전형적인 ‘남성의 시선으로 해석된 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조금 오래된 남성향 창작물에서 활용되던 여성의 이미지를 빌려오고 있는 것에 가깝죠. 단순히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맥스웰’이라는 여성을 사건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것만 봐도, 이 작품의 시선은 ‘맥스웰’을 통해 관찰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 ‘맥스웰’ 개인의 시선에서 해석되는 사건의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대부분은 ‘맥스웰’이라는 캐릭터의 인물적인 조형에서 비롯됩니다. 흔히 소설적 인물의 조형이라는 개념을 설명할 때, 다음과 같은 요소를 고려하게 됩니다.
첫째, 이 인물은 누구인가?
둘째, 이 인물은 어떤 목표가 있는가?
셋째, 이 인물은 그 목표를 향해 무엇을 시도하는가?
즉, 어떤 인물을 조형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욕구라고 해석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맥스웰’이라는 인물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표면적인 특징에 불과합니다. 근육이 많다, 가슴이 크다, 죄를 지어서 좌천을 왔다, 힘이 수컷 못지않게 좋다 등…. 분명 ‘맥스웰’이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설정은 준비되어 있지만, 막상 이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욕구적인 면은 거의 작동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 ‘맥스웰’이라는 인물에 대한 조형은 대부분 주변 인물들의 반응으로 이뤄집니다. 주변인물이 어디로 가자고 제안하면 그에 맞춰 움직이거나, 그녀의 공적에 감탄하며 힘을 강조하고, 누군가 몸과 외모를 칭찬하는 대사를 자주 반복하며 그녀가 외형적으로 얼마나 훌륭한지 강조합니다. 특히 그중에서 ‘가슴’을 지적하며 장난을 치는 대사는 생각보다 여러 번 반복되는 감이 있는데, 몇 가지 대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야… 우리 맥스~ 몸이 한층 더 우락부락 한데? 보기 좋아~”
“그리고 이거! 응? 이거… 어!!! 이… 커다란 흉물!! 이게 사람 가슴이야?!! 불공평해… 히이잉… 나도 이렇게 커다랬으면…”
“헤헤헤… 이 근육! 가슴! 직장까지 완벽한데~ 왜! 아무도~ 우리 맥스를 데려가지 않을까~”
물론 발췌한 대사들은 작중의 인물이 취기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내뱉은 개그성 발언인 것을 감안해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이 대사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야말로 앞서 말했던 남성의 시선에서 다루는 여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한 구절을 보탤만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남성향 장르의 창작물에서 여성의 가슴이 크다작다를 논하며 개그소재로 삼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소재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한해서는 그런 관습적으로 쓰이는 개그요소조차 크게 다가올 정도로, 해당 인물에 내적인 바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장 발췌된 대사들조차도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불쾌할 수 있는 유머로 해석될 여지가 있을 정도로, 작중에서 ‘맥스웰’이라는 인물을 다루는 시선 자체가 사춘기 소년이 할 법한 치기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작품은 ‘맥스웰과 주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극을 열심히 움직이는 데에 비해, ‘맥스웰’이라는 인물의 시선에서 보이는 해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혹여 ‘그냥 찌찌 얘기 하는 게 불편해서 트집 잡는 거 아니냐?’라고 하신다면…….
…… 네, 맞아요. 솔직히 저한테는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는 무언가가 있어요.
어쨌든 제 개인적으로 ‘맥스웰’은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역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남자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근육이 많은 여성이라는 표면적인 특징도 썩 나쁘지 않으며, 가는 곳마다 신망을 얻을 정도(왜 그렇게 인상이 좋은지는 확신이 없습니다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다는 묘사도 그녀가 극의 중심에 서야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다만 그녀가 남성과 같은 신체적인 능력이 있다 뿐이지, 결국 여성이라는 바탕이 고려될 필요가 있습니다. 성별은 인물을 구성하는 가장 큰 특징입니다. 가치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고에서 성별이 주는 격차는 어마어마하며, 그것은 곧 인물이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여지를 주게 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여성’이라는 소재가 쓰이는 방식은, 앞서 말한 불편한 조롱성 유머 정도가 전부입니다. 인물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무기가 주변인의 시선에서 장난감처럼 다뤄지는 현상은 썩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무엇이든 아직 표면적인 설정에 불과합니다. 물리적으로 그녀의 활약이야 분량이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작품을 읽고 떠오르는 것들이, 어떤 질 낮은 유머들과 그와 함께 히히덕거리는 여주인공이라면, 작품을 쓰며 들인 공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맥스웰’이라는 인물을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어떤 행동을 하고, 왜 그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들이 그녀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원리가 필요합니다. 그 작은 시작을 떼었을 때, 이 작품을 덮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한층 선명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4.『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모양’인가요?』
저는 이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부터,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소설의 형태와 작가님이 쓰고 싶은 소설의 형태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이 소설을 강제로 재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말줄임표의 사용? 대사가 중점적인 소설? 만화처럼 읽을 수 있는 소설?
전부 좋습니다. 그것이 작가님이 바라는 이야기의 형태에 부합한다면, 충분히 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작가님이 바라고 있는 소설의 형태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더 나은 형태로 구현하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짧게나마 한 명의 독자로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첫째, 대사 한 문장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늘려봅시다.
작가님 본인도 ‘대사를 중점적으로 리뷰해달라’고 하셨던 만큼, 본문의 대부분은 대사로 끌어나갑니다. 다만 그 대사들의 많은 부분에서 질이 낮다거나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대사가 비중은 큰데 반해 제공하는 정보가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많은 대사들은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추임새나, 혹은 필요한 정보들이 많은 대사들로 분산되어 있는 탓이 큽니다.
그렇다면 간단합니다. 대사 하나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충분하게 채워주면 됩니다. 현재 인물이 보고 있는, 느끼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극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소재들을 가능한 담아내면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상관폭행 및, 그의 부관 살해죄로 왔습니다.”
“상관폭행?”
“예.”
“허허… 수렵단의 상관이면 어지간한 대귀족 가문이 아니고서야….”
“맞습니다. 대귀족 가문 중 하나인… ‘하이넬’ 가문의 적자의 얼굴과 코를 제가 뭉개버렸거든요.”
“예.”
“흥미롭군… 이유를 물어도 되나?”
“자세히는 말씀드리지 못 하지만… 이제 추수가 시작 되는 시기에 와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잔치를 열 테니 가축들을 전부 징발하라고 하더군요.”
“망할놈들….”
“게다가 저희 수렵단이 그 명령을 거부하자 그의 부관이라는 남자는 제 동료와 부하 몇 명을 검으로 베기까지 했습니다. ‘천한 것들은 우리를 모시는 것이 영광인데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뭘 하냐!’라면서요.”
이런 길고 늘어지는 대사 흐름도 하나로 묶어줍시다.
“상관폭행 및, 그의 부관 살해죄로 왔습니다. 대귀족 ‘하이넬’ 가문의 적자의 얼굴과 코를 제가 뭉개버렸거든요.”
“이유를 물어도 되나?”
“추수시기에 잔치를 열 테니 가축들을 전부 징발하라고 하더군요. 거부하자 그의 부관이라는 남자가 제 동료와 부하들을 해쳤습니다.”
사실 이 작품이 물리적으로는 굉장히 무거운 분량을 자랑하지만, 대부분은 실속이 부족한 대사들이 전부입니다. 그중에서 작품 내적으로 정보 제공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대사들은 과감히 제거하거나, 혹은 다른 대사와 함께 축약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분량 또한 크게 줄어들 거라 생각합니다.
둘째, ‘맥스웰’이라는 주인공을 더 구체화합니다.
대사가 주를 이루는 본문에 비해, 막상 대사들이 가지는 목소리는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물들의 조형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다가오며, 인물 개개인의 목소리보다는 작품을 쓰고 있는 작가님의 목소리가 더 반영되고 있다는 의미로도 다가옵니다.
하지만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이 적은 편이 아닐뿐더러, 당장 해결해야하는 작품의 구조적 문제를 떠올리면, 모든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구체화하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작품의 중심에 놓아둘 ‘맥스웰’ 한 사람의 캐릭터만이라도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주변인과 구분되는 말투에서 찾을 수 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맥스웰’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특성에서 비롯될지도 모릅니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불편한 일을 겪고 좌천을 당한 인물입니다. 조금은 비뚤어질 수도 있고, 헤어진 가족들을 그리며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그 특성들을 떠올릴 때, 결국 ‘맥스웰’만이 할 수 있는 대사들이 궁리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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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저로서는 이 1만자 분량의 감상평이 옳은지에 대해 확신이 없는 편입니다. 이 <변방의 수렵단장.>이라는 소설이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결이 다른 것과 더불어, 작가님이 쓰고 싶은 소설의 형태 자체가 뚜렷하기에 ‘내 기준을 함부로 들이대로 괜찮은 걸까?’하는 불안감마저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어쩌면 저는 이 소설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 했을지도 모릅니다. 작가님이 의도하신 바 그대로 소설을 읽어내는 것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죠. 모든 것은 제가 갖고 있는 관점으로 이 소설을 함부로 재단하기를 꺼려했던 제 모자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2천자가 훌쩍 넘는 분량의 소설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역량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쉬운 글쓰기는 없습니다. 그것이 분량이 되었든, 내용이 되었든,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만드는 데는 수많은 고민을 거듭하기 마련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몇 가지 고민을 더 거쳐냈을 때 어떤 형태로 완성될지를 상상해보는 것은, 한 명의 독자로서 적지 않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언젠가 <변방의 수렵단장.>을 다시 펼쳐볼 날을 기대하면, 부족한 독후감을 마치겠습니다.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집필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공백포함 11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