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꾸지 않아도 돼’는 꽤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설정들 때문입니다. 세계가 경오년 핵전쟁으로 망하고, 산삼 대신 로봇을 줍고 다니는 ‘심마니’ 들. 전쟁 전의 로봇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고귀한 혈통의 증명이 된 귀족들. 그리고 사람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외모와 지능을 가진 로봇들까지. 이외에도 지금 여기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소설은 읽다 보면 ‘이런 설정이?’ 라는 생각이 들며 미소가 지어지는 것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야기가 서로 면밀하게 이어진다는 느낌 없이 반복적으로 설정만 제시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야기 내에서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은 ‘스카이로열캐슬’ 아파트에서 숨어 있던 로봇을 발견하는 것과, 그 로봇의 사연을 알게 되는 것, 그리고 로봇에게 안식을 주는 것 뿐입니다. 그렇게 소설은 짧은 이야기를 마치고 끝나 버립니다. 물론 이 소설은 단편이므로, 길이가 짧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소설 내에서 실질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야기가 좋다거나, 혹은 나쁘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단순히 아직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 자체가 펼쳐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유리창 너머의 도서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히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유리창 너머에 있는데, 저는 단순히 창 너머에 있는 책들만 보면서 흥미로울 거라는 상상만 할 수 있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이 소설에서 제시되는 거의 모든 설정들이 더 충분히 전개될 수 있는 힘,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망해버린 세상,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로봇, 로봇을 착취해서 컨텐츠를 만들어내려던 전쟁 이전의 사람들, 그리고 꺼져 있는 동안 악몽을 꾸는 인간들까지. ( 개인적으로 꿈을 꾸는 로봇이라는 설정이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
단지 이런 설정을 가진 책들이 아직 충분히 펼쳐지지 않았을 뿐인 거죠. 저는 나중에라도, 이 소설에서 제시된 이야기들이 펼쳐진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