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동안 한 자리에 앉아서 다른 누군가의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을 경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즐거움에 우리는 스크린 속이나 빼곡한 글의 숲으로 빠져들게 된다. 특히나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운명적인 만남이나 영화 같은 사랑을 다룬 이야기는 그런 즐거움의 중심에 서있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너무 흔하기에 식상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또 그만큼 소중한 것이기에 계속해서 이야기되고 찾게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을 다룬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지금, 흔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또 다른 특별함이 느껴지는 <내 남자의 이야기>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내 남자의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또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도 않는 일이기에 우리가 그저 상상하고 꿈을 꾸게 되는 운명적 사랑의 이야기를 보다 구체화시켜서 그려낸다. 무엇보다도 <내 남자의 이야기>에서 누구나 꿈꾸는 그런 사랑의 감정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시작이 영화 속 한 장면을 옮겨놓은 것만 같은 남녀의 만남이었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줄에 널린 사리 천이 펄럭이는 아름다우면서도 뭔가 비밀에 휩싸인 것 같은 공간에서의 첫 만남인데, 이미 서로가 서로를 알아차리는 그런 운명적인 순간이기도 했으니까.
알지 못하는 곳을 동경하던 소녀의 호기심이 성장하여 세상의 이곳저곳을 떠도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나’는 인도의 아그라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첫눈에 빠지는 사랑, 뭐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만 표현하기에는 다소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그런 만남이다. 그 이상의 왠지 익숙하고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이랄까?! 첫 만남에서 나는 그에게 빠져들게 되고, 그의 전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아주 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오랜 그의 삶의 이야기를…….
그 이야기는, 자신의 삶이 무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마냥 부러워할 무한의 삶을 그는 결코 축복이 아니라고, 삶이 무한하기에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외면하고픈 삶의 무게라고 말한다. 무한한 삶과 유한한 삶의 차이에 대한 오랜 고민을 이야기 한다고나 할까. 그런 그가 다시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전에는 결코 찾을 수 없었던 삶의 의미, 존재의 이유를 찾아 나서게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삶의 의미, 혹은 존재의 이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이다.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혐오와 환멸을 느끼게 되고, 인간 자체가 이기와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그에 대한 연민조차도 가지지 않게 되는 과정들이 반복적으로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간들의 이기와 탐욕을 중화시키고 불완전한 인간에게 균형을 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중한 무엇은 바로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린다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남자의 이야기>를 읽은 지 좀 되었지만, 뒤늦게나마 이렇게 리뷰랍시고 글을 쓰게 되는 이유가 바로 오랜 삶, 오랜 고민의 결과가 사랑이라는 사실이 더없이 좋았기에,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난 세상의 모든 것 중에서 사랑이 최고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 삶에 무엇보다도 돈이 많았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권력이나 명예도 있었으면 하는 지극히 세속적이라고 할 만한, 지극히 속물적인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속에서 이런 사랑이야기가 위로가 되고, 또 나름의 위안이 된다는 사실이 그저 한없이 좋게만 다가왔다. 이런 따뜻함이랄까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들이 머릿속에, 아니 가슴 속에 각인이 된 것만 같다.
내가 사는 이 짧은 삶이 누군가의 오랜 삶에 비춰보면서 얼마나 보잘것없고 초라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무한에 가까운 삶의 이야기를 엿보면서 이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저 평범한 혹은 조금은 색다른 사랑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삶 전체를 관통하는 고민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에 더없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 <내 남자의 이야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