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긍심의 반환을 위하여 비평

대상작품: 반환 (작가: 김나령, 작품정보)
리뷰어: 벼룩, 20년 12월, 조회 18

도입부에서는 섬세한 시각적 묘사가 몰입도를 높이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노인과 왕 사이의 대화가 주는 긴장감이 점차 고조된다. 수수께기 대결에서는 나까지 마음을 졸이게 된다. 기본적으로 문장들이 촘촘해서 한번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그 흐름을 끝까지 타게 된다.

‘도깨비 일족’이라는 설정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현대식 정장을 입고 나타나서 방망이와 불을 다루는 왕이 대영박물관의 오만한 노인을 수수께끼 대결로 꺾고 도자기를 되찾아오는 과정 전반에서 이 소설이 문화재의 반환을 넘어 문화 혹은 역사의 반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현대식 정장을 입은 도깨비 왕처럼,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출신이나 문화권에 무관하게 서양식 옷을 입고 지낸다. 하지만 그런 옷을 입어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얼굴이나 몸짓, 말투 등을 이질적이라고 느끼고, 우리를 고정관념에 가두어 버린다. 주인공을 ‘한국인’이 아닌 ‘도깨비’로 설정한 것은 바로 그러한 고정관념과 정면으로 대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도깨비’라는 설정을 통해 소설은 약탈한 물건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사실상 ‘프릭 쇼(freak show)’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도자기들은 단지 도자기가 아니라 죽은 도깨비들이기도 한데, 노인은 살아있는 도깨비의 왕을 박물관에 전시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친다. 여기서 도깨비의 왕이 ‘여인’으로 설정되어 있기에, 소설은 그를 대하는 노인의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21세기에도 여전한 오리엔탈리즘과 옐로우 피버(yellow fever)도 프릭 쇼의 연장선이라고 고발하면서 주제의식을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여전히 자신들이 (심지어 상대의 문화권에 대해서조차)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박물관 관리인의 오만한 태도는 자기파괴적 결과를 낳는다. 약탈한 문화를 새겨넣고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인 것처럼 내어 온 찻잔에는 도깨비가 만든 독극물이 담겼고, 자신을 ‘문명’이라고 여긴 오만은 자신이 ‘야만’이라고 여긴 자에 의해 무너진다.

21세기의 대영박물관에서의 관리인과 도깨비의 대결이라는 설정은 타자화된 바로 그 존재들이 자신의 방망이와 불을 드러내야만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제국주의와 타자화, 약탈의 역사가 끝날 수 있다고 암시하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를 드러내고 역사를 되찾을 때, 자긍심 또한 ‘반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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