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귤 작가의 소설은 다정하다.
그의 소설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다정하고 아름답지만 분명하고 매력 있다. 마치 우주처럼.
끝없이 뻗어가는 우주를 배경으로 이토록 따뜻하며 짧은 단편을 써낼 수 있는 청귤 작가가 궁금해져 그의 단편 수 개를 읽어내려갔다.
<마지막 일기>는 그중 내가 처음 읽은 작품이다. 이후의 소설 역시 마음에 남지만 <마지막 일기>가 에서 그려지는 인간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주와 좀비, 그리고 역시 이기적인 인간. 청귤 작가의 글에 정이 많아서인지 소설 <마지막 일기>에서 보이는 인간의 이기심 역시 날카롭거나 강렬한 색은 아니다. 하지만 강한 인간중심성에서 출발한 그 마음은 우주에 부유하며 다른 행성, 별, 우주에 아주 심각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다름 아닌 바이러스의 모양으로.
지구에서 무심하게 출발한 바이러스는 온 우주에 퍼진다.
이 작품에서 인간은 철저히 이기적이다. 자신들의 공간인 지구(사실 우주에서 보자면 ‘공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크기이지만)가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좀비 바이러스를 우주로 보낸다.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기에 비용과 기타의 여건을 돌아볼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좀비를 우주로 보내는 과정에서 인간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지구의 인간들 중 아무도 이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속 우주에는 다른 생명체가 존재한다.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듯, 우주는 “아름다운 만큼 광활하고 그보다 더 신비로운 곳”이다. 우주 가득 퍼진 좀비 바이러스는 인간이 ‘당연히’ 없다고 가정한 생명체를 죽이기 시작한다. 좀비는 지구가 아닌 ‘우주’적 규모로 퍼져나간다. 웜홀을 통로로 삼은 바이러스들은 우주 곳곳에 스며들고 병들어 죽어가는 생명이 생겨난다. 행성에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그 행성이 죽는다. 이 끔찍한 죽음의 릴레이에서 오직 ‘백신’만이 우주를 구할 수 있다. 이기적인 인간이 뿌려버린 기이한 바이러스를 해치울 방법은 그뿐이다.
이 지점에서, 화자는 시선을 우주에서 거두고 자신에게 돌린다. 화자가 있는 우주선 바깥은 온통 이기심뿐이다. 그리고 화자는 이타심을 가지고 우주에 나온, 어쩌면 유일한 인간이다. 그는 백신을 개발했고 자신의 몸을 매개 삼아 우주에 백신을 뿌릴 것을 계획한다.
“내가 사랑하는 우주가, 언제까지나 살아있기를 바라며”라고 일기를 맺는 화자의 결심은 확고하다. 사실 우리가 이 일기를 읽고 있는 시점에서 화자의 우주선은 이미 웜홀에 들어가 우주에 흩뿌려진 상태다. 모두가 “사이좋게” 우주에 존재했으면 하는 화자의 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니, 화자의 존재로 이미 다정함은 완성되었다. 여러 인간의 합의로 우주에 퍼진 지독한 좀비 바이러스를, 날카로움보다 강한 따뜻함으로 감싸는 화자를 어떤 감정으로 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 문단을 읽으며 나는 총체적 감정의 오류를 느꼈다. 다정할 수 없는 세계에서 필사적으로 다정한 이를 본다면 이런 느낌이 드는구나. 나의 얕고 부족한 글로 감히 그 느낌을 온전히 적을 수 없을 것 같다.
화자에 대하여
사회의 이기심은 개인이 희석하기에 너무 단단하다. 그리고 대체로, 개인이 사회의 이기심에 도전하는 일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의 화자(또는 주인공)는 터무니없음에 도전한다. 그리고 그의 도전에는 놀랍게도 가능성이 보인다. 지구에서 불가능한 일이 우주에서는 가능하다. 그것이 작가가 우주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정되고 ‘중력’에 속박된 작은 행성의 생물들. 짧은 생을 살며 지구의 공간조차 다 알지 못하고 가는 인간의 이기심은 우주에서 보았을 때 하찮다. 그래서 우주는 종종 인간의 편협함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우주를 생각하는’ 일은 지구의 일들을 민망하도록 작게 만들기 때문이다.
청귤 작가는 우주를 ‘생각’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로 ‘가는’ 인물을 내세운다. 지구에서 우주를 떠올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주로 간 화자는 ‘지구’를 보지 않는다. 지구는 너무 이기적이고 작고, 쓸데없는 곳에 열을 올려 뜨거운 행성이기에. 대신 화자는 ‘우주’를 본다. 이기적인 작은 행성에서 시작된 재앙을 목도한다. 그리고 그 우주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어쩌면 이 소설의 화자는 (적어도 우주의 존재들에게) 최초이자 최후의 ‘다정한’ 인간이다. 그렇기에 화자의 희생은 더욱 읽는 사람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다. ‘다정’의 멸종이 일어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타적 인간의 마지막 일기. 그것은 지구가 아닌 우주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화자는 냉동 상태의 ‘미감염자’들에게 쓰는 편지를 ‘사랑하는’ 우주의 ‘사이좋을’ 사람들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마친다. 그리고 웜홀을 통과한 이타심이 부친 편지는 우주를 돌고 돌아 드디어 우리에게 닿았다.
우리는 어떠한가. 평화로운 우주를 위해 희생한 화자에게 무엇이라고 답할 수 있는가. 인간은, 그리고 우리는 주변의 사람을 사랑하는가. 우주에 존재할 생명,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을 진심으로 아끼는가. 무모한 결정으로 우주를 망하게 할 정도의, 이기심이라는 큰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우주에서 온 짧고 따뜻한 이 편지는 우리가 ‘사랑’과 ‘사이’를 아끼는 존재이기를 바라고 있다. 언젠가 정말 좀비 바이러스가 지구에 창궐한다면, 우리는 이 짧은 편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화자의 다정(多情)이야말로 우주를 치유할 수 있는 마지막 백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