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법 시대의 미국, 악마는 하얀 두건을 쓰고 나타난다!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증오’의 본질을 파고든 대체역사 판타지
네뷸러 상·로커스 상·영국환상문학상 수상
인종 차별의 대명사로서 악명 높은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 즉 KKK단의 배후에 초자연적이고 사악한 존재가 도사리고 있다면 어떨까? 매년 유수의 장르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고 있는 작가 P. 젤리 클라크의 대표작 『링 샤우트』는 금주법 시대인 1920년대의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불온한 마법에 의해 재조직된 KKK단에 침투한 괴물을 퇴치하는 흑인 여성 사냥꾼들의 활약을 그린다. 역사학자인 클라크는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 「국가의 탄생」(1915)이 KKK단을 미화했을 뿐 아니라 한때 몰락했던 이 백인우월단체가 되살아나는 데 영향을 끼친 사실을 과감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비틀고 러브크래프트식 공포를 가미한다. 이에 맞서는 힘으로서, 노예제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흑인 문화의 전통 의식 ‘링 샤우트’와 아프리카 민담의 신비로운 세계 역시 흥미롭게 묘사된다. 액션 넘치는 활극 속에 역사적 사실과 환상적 요소를 영리하게 결합시키며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출간 이후 휴고 상, 세계환상문학상, 셜리 잭슨 상 등에 오르고 네뷸러 상, 로커스 상, 영국환상문학상을 석권했으며, 현재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 역시 진행 중이다.
토머스 딕슨의 아버지는 최초의 클랜에 들어가 그 흑마술을 가르쳤다. 토머스 딕슨은 주문을 쓰듯이 책을 썼다. 독자들의 영혼을 악령에게 넘기고 클랜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D. W. 그리피스가 다음 일을 맡았다. 딕슨과 짜고서 그 책을 새로운 마법, 즉 영화로 만든 것이다._본문에서
“클랜의 증가, 괴물의 대응력, 조직적인 공격에 저 영화 개봉까지.
여기에 지적인 배후가 있다면? 난 있다고 믿거든.
그러면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야.”
뛰어난 기교로 당대 비평과 흥행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던 무성영화 「국가의 탄생」은 남북전쟁 시기에 결성된 1세대 클랜 일원이었던 노예주의 아들 토머스 딕슨이 쓴 백인우월주의 사상의 저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링 샤우트』는 이 영화에 사악한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으며 증오를 전파하는 매개체라는 도발적인 상상력을 선보이며, 쿠 클럭스 클랜에 소속된 자들 역시 흑마술 의식을 통해 이 세상에 온 이 세계로 소환된 괴물 ‘쿠 클럭스’과 이들을 추종하는 인간들인 ‘클랜’으로 구분하여 그려 낸다.
쿠 클럭스는 평소에는 인간들 사이에 위장한 채로 숨어 지내지만 이들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이들이 몇몇 있었으니, 주인공 마리즈 부드로가 그중 한 사람이다. 2세대 클랜이 결성된 해에 쿠 클럭스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던 마리즈는, 겉으로는 농장을 운영하지만 사실은 마법의 힘이 깃든 밀주를 유통하는 저항 세력의 주축인 진 할머니의 부름을 듣고 조지아주 메이컨을 거점을 옮겨 괴물 사냥꾼으로 성장해 왔다. 7년이 흘러 「국가의 탄생」이 재개봉 소식이 들려오는 1922년. 마리즈는 남장을 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돌아온 코델리아와 뛰어난 저격수 세이디와 함께, 독립기념일을 맞아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려던 쿠 클럭스 클랜과 맞선다. 그러나 성공적인 소탕 작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즈의 꿈에 ‘도살자 클라이드’라 자칭하는 남성이 등장하며 곧 닥쳐올 폭풍을 예고한다.
증오에 맞서 생존과 자유를 부르짖는 외침
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종교 문화나 블루스와 재즈 같은 음악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링 샤우트(Ring Shout)는 노래와 외침을 곁들여 단체로 발을 구르며 원을 형성해 춤추는 전통 의식이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미국 남부 노예들의 숭배 행위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그 내용은 순수하게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기보다 먼 과거의 아프리카 대륙 시절의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작가는 구전과 관습으로 전해지며 공동체를 단단하게 결속시켰던 이 문화를 작품 속에서 증오에 맞서는 원동력으로 묘사한다. 거기에 더해 아프리카의 민담과 전설 속의 존재들을 소환해 풍부한 상상력을 곁들인다. 추장과 왕의 영혼이 속박된 고대의 힘이 깃든 검을 주인공에게 선사하는 영령들, 밤이면 노예들을 잡아가 해부한다고 알려진 민담 속 유령인 줄 알았지만 사실 무한한 힘을 지닌 신적 존재 등이 영웅과 괴물이 대립하는 스릴 넘치는 전개 속에 녹아들어 서사를 풍성하게 한다. 경장편 분량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고 나면 새로운 시각의 역사 강의를 한 편 본 듯한 성취감을, 그리고 주류 문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역사와 존재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샤우트 의식은 노예제 시절에 생긴 관습이다. 하지만 윌 아저씨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보다 더 역사가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 윌 아저씨는 이런 샤우트에 가장 큰 힘이 있다고 한다. 노예 시절에서 살아남고, 자유를 위해 기도하고, 그 악행을 끝내 달라고 하느님을 부르는 샤우트에.
내 검이 유령처럼 희미하게 손에 나타나는 게 느껴진다. 절반은 이 세상에, 절반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머릿속의 노래가 시작되고 여러 추장과 왕이 울부짖는 가운데, 그들이 팔아먹은 자들이 나뭇잎 모양의 검에 밀려들고, 과거의 신들이 깨어나 샤우트에 맞추어 몸을 흔든다._본문에서
1922년의 조지아주 메이컨, 흑마술이 깃든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국가의 탄생」과 비밀 의식에 의해 소환된 ‘쿠 클럭스’가 기승을 부리며 악의 힘을 전파한 지도 칠 년이 지났다. 참혹한 비극에서 살아남은 마리즈는 이를 처단하기 위해 사냥에 나선다. 죽은 이들의 피와 혼이 서린 ‘노래하는 검’을 들고서.
1장 — 9
2장 — 35
3장 — 71
4장 — 105
5장 — 125
6장 — 145
7장 — 164
8장 — 186
9장 — 215
에필로그 — 236
감사의 말 — 245
본명은 덱스터 가브리엘로, 1971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텍사스 주립 대학에 진학해 사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스토니브룩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거쳐 코네티컷 대학 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1년 P. 젤리 클라크라는 필명으로 단편을 기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필명의 젤리(Djèlí)는 서아프리카의 이야기꾼이자 역사가, 시인에서 유래했다. 2016년 판타지 중편 『카이로의 죽은 진(A Dead Djinn in Cairo)』을 장르 전문 출판사인 토르에서 출간한 이후, 마찬가지로 마법이 존재하는 대체역사 세계관 속의 이집트를 기반으로 한 중편 『칸 엘칼릴리의 천사(The Angel of Khan el-Khalili)』와 『트램 015의 유령(Haunting of Tram Car 015)』을 출간하며 ‘연금술부’ 혹은 ‘데드 진 유니버스’ 시리즈로 불리는 세계를 구축해 냈다. 2018년에는 단편 「조지 워싱턴의 틀니 아홉 개에 관한 숨겨진 역사(The Secret Lives of the Nine Negro Teeth of George Washington)」로 네뷸러 상과 로커스 상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본작 『링 샤우트』로 네뷸러 상, 로커스 상, 영국환상문학상 최우수 경장편상을 석권하고 휴고 상, 세계환상문학상, 셜리 잭슨 상 등에 오르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2022년에는 첫 장편소설인 『진의 주인(A Master of Djinn)』으로 네뷸러 상, 로커스 상, 이그나이트 상, 콤턴 크룩 상을 수상했다. 현재 뉴잉글랜드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하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