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남녀>를 읽다보면 평소 생각하던 보통의 미스터리 소설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것이다. 보통 생각하는 미스터리는 분위기 자체부터 어두우며, 그 속에는 잔인하거나 강렬한 뭔가가 담겨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낙원남녀>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살인 사건과 살인 미수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무겁지 않으며 오히려 좀 더 밝은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살인사건이 중심에 있는 미스터리인데 밝고 경쾌한 느낌의 소설이라니, 이게 뭐냐 싶을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이게 바로 ‘코지 미스터리’라는 것이다.
‘아늑한’ 이나 ‘친밀한, 은밀한’ 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코지(cozy)’라는 단어의 어감을 통해서 ‘코지 미스터리’ 를 좀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코지 미스터리’란 아늑하고 친밀한, 그래서 우리 일상에 보다 가까운 상황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묘사는 배제한 채, 작은 동네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무엇보다 캐릭터에 많은 힘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뭐 이리 아는 척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혹시나 모르시는 분도 계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검색해서 주절주절…;;) 어두운 분위기에 한없이 진지하기보다는 젊은 남녀 주인공을 내세워 산뜻한 느낌을 내면서, 동네 산책하듯 도서관과 살인현장을 돌아다니는 모습이나 진도가 빨리빨리 나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정로도 지혜의 상황이나 감정의 전달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모습을 보면 <낙원남녀>는 그 무엇보다도 ‘코지 미스터리’의 특징에 충실한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창하게(?!) ‘코지 미스터리’ 를 불러와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했지만 정말하고 싶은 말은, <낙원남녀>가 그만큼 대중성을 갖춘 작품이라는 것이다. 누구라도 거리낌 없이 읽을 수 있으며, 미스터리적 요소로 인해 그 재미까지 충분히 보장되는, 그래서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 <낙원남녀>라는 것이다.
아무튼 요지는 이거예요. 멈춰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 상황을 바꾸기 위해선 자기 스스로가 움직여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연재 내용을 보면 이제야 본격적으로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 시점이라 리뷰라는 이름의 이 글을 써도 괜찮을까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멈춰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강마로의 말에 들었던 많은 생각들을 미흡하게나마 풀어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지만, 일상이란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 익숙해서 때로는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또 때로는 한없이 지루하고 재미없게만 느껴지는 것을 일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처음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덤덤한 것이 되어버리고, 때로는 아예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린다. 좋은 것만 그렇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고통도 그와 거의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고통에 길들여져 언젠가는 그 고통이라는 놈도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지혜의 삶처럼 말이다. 누가 그랬는지,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크나큰 상처를 입고 심지어 목숨도 위태로운 순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그녀의 일상은 고통이라는 놈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고통이라는 것이 일상이라는 이름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을까. 오랜 시간을 아파하고 또 아파하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최소한의 의지마저 잃어버렸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는 것도 사는 것이 아닌 게 되어버리고, 살지만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살아도 죽어있는, 그런 삶에 정말 다행스럽게도 강마로가 짠~하고 나타나 ‘멈춰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는 말로 고통으로 가득차 있는 그녀를 그 일상에서 꺼내버린다. 그녀도 그제야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이 시작이지만, 또 그 순간이 곧 끝이 될 것이고, 그래서 그 순간이 이 소설의 전체를 관통하는 전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제는 진짜 살아가라고, 멈춰 있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어서 움직이라고, 이 소설이 말하고 있는 것 같기에 말이다.
제목에도 ‘낙원’이 들어가고, 지혜가 사는 곳도 ‘낙원’ 아파트다. 시작이야 어쨌든 지금은 그 낙원이라는 말과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져있다. 괴로움이나 고통 없이 즐거운 곳이 될 것이라 믿었던 공간이 괴롭고 고통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낙원의 원래 뜻으로 가기위해 지혜와 마로는 첫발을 내딛었고, 우리는 편하게 그 걸음걸음을 즐기면 될 것 같다. 이미 그들은 가장 근본적인 정답을 찾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고난도 있을 것이고 미처 마주하지 못했던 보다 큰 고통도 있겠지만, 그만큼의 또 다른 설렘이나 즐거움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낙원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렇게 믿고 살아갈만한 세상이 소설 속에서, 그리고 지금 우리의 현실 속에서 그려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