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제목으로 쓰인 호더는 아마도 영문 ‘hoarder’에서 듯을 가져오신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에 ‘애니멀 호더’ 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호더는 뜻 그대로 ‘모으는 사람’ 입니다. 애니멀 호더가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된 까닭은 그들이 여러 동물을 집착적으로 모은 후 대부분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애완’ 이라는 이름을 붙여 여러 동물을 데리고 사는데 실제로 그들은 애완을 위해 태어난 동물을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세심하게 그들을 살피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렷을 적에 우표라던가 LP 판 같은 것들을 모아본 적이 있습니다. 친구가 적은 아이가 정 붙이기 쉬운 취미다 보니 수집 그 자체에 의미를 두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모아서 쌓인 것들을 보면 그게 잡동사니건 돈 좀 되는 물건이던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호더가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감정도 결국 차곡차곡 쌓이면서 그에 따른 심리 상태와 행동의 변화를 이끌게 되니까요. 작품 전체에 상대방 모르게 내면에 수많은 감정을 블록 쌓기 하듯 채워가는 심리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도빈은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아랑 이라는 직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랑 또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여러 정황을 느낀 도빈은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아랑의 물건에 손을 대게 됩니다. 그 후 갑자기 아랑이 회사에서 사라지면서 도빈의 마음 속 혼란은 점점 더 커지게 되는데… 대체 아랑은 왜 자취를 감춘 걸까요? 아랑은 도빈이 모르는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었던 걸까요?
이 작품은 전형적인 미스터리의 형식을 갖춘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후의 반전이나 범인의 정체를 궁금해 하며 글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합니다. 누군가에 대한 호감이 감정의 교류로 발전하지 못하고 내 안에 계속 쌓여만 가는 과정과 그렇게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이 어떻게 되는 지가 아주 스릴 넘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범죄 물도 아니고 살인마가 등장하지도 않지만, 이 작품은 왠지 스릴이 넘칩니다. 그만큼 작품 속 문장들이 살아 숨 쉬는 느낌을 주면서 계속 다음 문장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작품의 결말 또한 매우 흥미롭습니다. 작품에서 도빈은 사실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망상 속 세상을 그럴 듯 하게 꾸미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세상은 예기치 못하게 외부에 노출되었을 경우에도 자신을 파멸로 이끌겠지만, 자신의 내부에서 점점 크기를 키우다 보면 결국 연약한 자신의 껍질을 뚫고 거대한 괴수처럼 진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전 이 작품의 결말이 도빈이 자신의 내부에 있던 망상에게 잡아먹힌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해 봅니다. 사실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할 수 있는 결말인데 제가 마음에 드는 해석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해석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범인이 A 일 수도, B 일 수도 있다는 식의 열린 결말이 아닙니다. 독자가 생각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결말이 모두가 그럴 듯 하게 맞추어지도록 작품 내 상황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런 결말은 글을 몇 번이고 더 읽어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리뷰를 위한 일독을 합쳐 세 번 이상 읽은 것 같습니다. 다시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을 또 읽는 건 언제가 즐거운 경험입니다.
이 작품의 주제는 결국 ‘스토킹’ 입니다. 어떻게 표현하려 해도 결국 상대가 느끼기엔 그건 스토킹이죠. 하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거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주위의 평가를 정당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결말은 항상 파국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미묘하고 어려운 주제인 것이 사실입니다. 스릴러 장르의 주제로 이만한 것이 없지만 그만큼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직접적이고 잔인한 묘사나 설정 없이도 아주 재미있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시종일관 보여줍니다. 공포도 마찬가지고 결국 스릴러 장르 문학의 묘미는 표현의 수위보다는 공포나 불안 같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들을 잘 건드릴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호더]가 바로 그런 작품의 좋은 예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빈틈없이 재미있습니다. 브릿G 독자 여러분들께도 권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