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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감 넘치는 깔끔한 스릴러 비평

리뷰어: 뿡아, 3일전, 조회 23

지하도를 걷던 중 낯선 이로부터 걸려 온 전화, “지금부터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 뭐지? 바쁜데.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는 순간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리더니 돈 23만 원이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다시 걸려 온 전화. “움직이면 돈 나간다.” 한 걸음 움직이자 다시 위잉 울리는 휴대폰. 또 돈이 빠져나가네요. 움직이면 돈이 나간다니 이게 뭐하자는 짓일까요.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해야겠죠. 시간을 더 지체하다가는 면접에 늦을지도 모르는 위기일발의 상황. “벗어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지목해라. 그러면 돈도 돌려주겠다.” 음… 과연 누구를 골라야 할까요?

처음 읽었을 때는 9매 정도 되는 엽편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보니, 분량이 42매. 그만큼 속도감이 좋다는 거겠죠. 작가는 독자를 단숨에 이야기 속에 빠뜨리고, 서둘러 떠나버립니다. 여운과 감상은 남겨진 독자의 몫이 됩니다. 읽고 나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요. 주제 면에서 보자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작가님의 전작 <중립 판단>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짧은 분량과 속도감이 강점으로 작용합니다. 장르물로서의 오락성을 확실히 갖추면서도 메시지를 이야기 속에 녹여내어 작품성도 함께 챙깁니다. ‘짧은 글, 긴 여운’이란 말이 떠오르는군요. 이런 게, 잘 쓰인 짧은 소설이 주는 맛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