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규칙과 세계관, 또 조금은 어려운 이름과 관계성 때문에 판타지보다는 더 현실 자체에 가까운 작품을 많이 읽은 편입니다. 그래서 판타지 장르라고 하면 <해리포터> 이외에 쉽게 떠올리지 못할 만큼 저에겐 낯선 편인데, <랑다>가 브릿G 메인 화면에서 인기 작품 중 하나로 분류되어 있는 걸 보고 오랜만에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에 시작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와…” 소리가 나더라고요.
일단 주인공 요나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이 얽히면서 판이 뒤집히고 또 뒤집히는 그 전개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계속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야 재미있는 이런 암투 소재의 작품은 때때로 반전을 주겠다는 의지가 과해 무리수로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최소한 지금까지 연재된 ‘눈동자(2)’ 편까지는 그 맥락이 전부 이해가 되더라고요. 왜 이 캐릭터가 여기서 등장하게 되고, 왜 여기서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쓰셨는지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전개였습니다. 워낙 그 흐름이 부드러워서, <랑다>가 이미 출간하셨던 작품을 브릿G에 다시 연재하시는 건가 하고 한번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완성도가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요나’를 주인공으로 해서 흘러가게 되는데 그 요나가 이미 상위급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동안 제가 본 판타지(물론 말씀드렸던 것처럼 소수이긴 했지만)는 대체로 성장 서사를 많이 다루다 보니, 주인공이 계급으로 치면 대체로 하~중 정도 위치에 있을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미 이야기의 시작부터 상위급에 있으면서 최상위급과의 대립 느낌으로 가다 보니, 이게 또 새롭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미 든든한 동료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은 아무래도 독자가 함께 따라가면서 응원하기는 어려운 캐릭터라 생각해 주인공으로 부적합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랑다>를 읽으면서 이런 주인공도 열렬한 응원까진 아니더라도 같이 숨죽이고 따라가며 계속 지켜보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요나라는 캐릭터 자체의 매력도 확실하고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여러 세밀한 표현이나 꼼꼼한 배경 설정도 정말 좋았지만 중간중간 한국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신 게 또 인상적이더라고요. 예를 들면, 멋진 라틴어 주문 같은 걸로 처리하셨을 수도 있는 부분을 “바람결에 휘도는 이슬비처럼.” 같은 한국어로 표현하신 부분이라거나 ‘안개부엉이 숲’, ‘짙은눈썹산맥’ 등 한국어로 된 장소명을 만드신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숲과 산맥의 모습이나, 이 주문을 썼을 때 어떤 장면이겠구나 이런 게 잘 그려지더라고요. ‘희붐한 하늘’ 같은 표현도 저런 예쁜 단어를 어떻게 공부하셨을까 싶게 인상 깊었습니다.
스크롤을 계속해서 넘길 정도로 진짜 재미있었습니다. 상당히 공을 많이 들이고 계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앞으로 <랑다> 마무리까지 지금처럼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 작가님의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점도 남깁니다. 공지만으로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빨리 완쾌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