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목줄이 내 목에 매여 있는 듯 환상통에 시달릴 때가 있다. 어느 날엔 손목이 날카로운 예기에 벤 것처럼 아프다. 지금 바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 어느 때에 있었던 것처럼 묵직한 통증으로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나는 그런 날이면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울고, 또 어느 날에는 진오귀굿이나 타살군웅굿, 씻김굿과 같은 한 판 굿을 유튜브에서 찾아서 듣는다. 눈을 감고 듣다 보면 두통도 좀 가시고 무언가를 읽거나 써내려 갈 힘이 생긴다. 바로 그래서 나는 한과 무속, 오컬트, 호러를 좋아하고 즐겨 읽으며 이따금 쓴다. 사설이 왜 이렇게 길어졌느냐… 이 소설 제목이 <목줄>이어서, 설명이 ‘피에 담긴 저주’ 딱 한 줄이어서 몹시도 끌렸단 말을 하고 싶어서다. 어떨 때는 그 끌림이 ‘망’으로 이어질 때도 있는데 이 소설에 있어서만은 ‘성공적’이었다.
분량이 506매로 엄청 길지도 짧지도 않은 경장편 분량인데 순식간에 다 읽었다. 본디 취향에 잘 맞으면 더 빠르게 읽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른 사람들도 한 번쯤 읽어봤음 좋겠단 마음을 담아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사실 간단하나, 그 안에 들어 있는 ’갈등 요소‘는 참 흥미롭다. 간단하게 소개 해 보겠다. 아주 오래도록 생을 이어온 흡혈귀가 하나 있다. 그 흡혈귀가 자신과 같은 저주 받은 종족을 만들어낼 약을 만들어냈고, 그 약을 먹은 자들은 ‘적응자’와 ‘부적응자’로 나뉘며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경찰공무원을 준비 중이던 태오가 여동생이 그 약을 먹고 앓아 눕게 되자 약의 ’진원지‘를 찾아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약을 보면 바로 떠오르는 게 ’마약‘이다. 처음에 등장할 때는 클럽 안에서 흡혈귀의 손에서 한 여자에게로 건네지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도입부에 묘사되는 흡혈귀의외양이 흥미로웠다. 한 구절만 소개해 보자면 <남자는 퇴폐적이면서도 성스러웠고, 아름답ㅂ지만 마치 창백한 좍상처럼 생명력이라곤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마치 난잡한 조명이 가르고 있는 이 클럽의 어둠과 한 몸인 양 녹ㄱ아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눈동자만은 화려한 어둠 속에서 누구보다 번득이고 있었다. 그눈 안에서 모든 걸 태워버릴 걸 알고도 빠져들게 만드는 위험한 불꽃이 일렁였다. 그는 언제든 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 만큼 희미했지만, 누구엑게나 눈에 띌 만큼 선명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였는데, 인간의 내면에 잔존하고 있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인간으로 형상화된 듯했다.
그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여자의 손을 잡아다가 제 옆에 앉힌다. 그러고는 보란 듯 술잔 안에 약을 넣고 나른하게 속삭인다.
”자, 이 술잔에 특별한 걸 넣었어. 싸구려 환각제나 그저 그런 마약 아니고 중독성도 없어. 그래도죄책감을 가진다면 이걸 넣은 건 나니까 넌 그냥 실수로 이 술잔을 든 것뿐이야. 근데 마시면 기분이 많이 좋아질 거야. 이건 네가 경험한 적 없는 뭔가를 줄 수 있거든. 아주 귀해서 원한다고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얻을 수 없을지도 몰라 마시든 안 마시든 그건 온전히 네 선택에 맡길게.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돼.“
이 말 속에도 이미 ‘어폐’가 존재한다. 죄책감은 자신에게 지우면 된다더니, 선택은 너의 몫이라는 말 말이다. 결국 먹기를 선택한 것은 너이기에 모든 대가는 네가 짊어지는 것이고, 나는 그저 너에게 선택지를 줄 따름이라는 이 말인 즉, 마셔서는 안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지금이 아니면 얻을 수 없다“라는 유혹에 몰입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여인은 엄청난 고양감을 느끼지만 곧 입고 있던 옷을 모조리 찢을 만큼 육신이 ‘괴물화’되어버리고, 엄청난 해방감과 함께 격렬하게 사람의 신체와 피를 탐하여 잔혹한 살육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바로 이것이 그 약을 먹었을 때 ‘부적응자’가 나타내는 반응이다. 적응자들은 외양적인 변화는 겪지 않으며 미칠 듯한 갈증과 함께 피를 갈망한다. 영생을 얻되 피를 찾고, 상처는 빠르게 낫지만 태양빛은 결코 마주할 수 없는 흡혈귀가 되는 것이다.
태오의 동생인 지안은 ‘뇌 영양제’라는 이름으로 약과 마주한다. 고 3에 학업 스트레스를 겪는 이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기에 그녀는 친구 하은과 함께 그 약을 먹어버리고 얼마 후 잠에서 깨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하은이 적응자로 깨어나 엄마의 피를 다 빨아 먹고 크나큰 충격에 빠지게 되는 것과 별개로 그녀의 몸 속에서는 치열한 다툼이 일어나 ‘잠든 신세’가 된 것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만큼 태오는 이 약에 대해 연구 중인 연구원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무속인으로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며 사는 경도와 함께 약의 진원지를 찾아나서기 시작한다. 이때 우연처럼 만난 것이 흡혈귀 은호다. 바로 그가 모든 일이 있게 한 원흉이라는 걸 모른 채 태오는 그 주위를 빙빙 돈다. 은호를 만나게 되는 것이나 그의 정체, 그를 둘러싼 추종자 무리가 드러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이해를 돕기 위해 리뷰에는 은호의 정체를 처음부터 다 보여주고 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보면 정보의 등장 순서나 타이밍을 고려하고 있어서 몰입감 있게 읽기 좋았다. 태오가 은호의 정체를 깨닫고 난 뒤에 두 사람이 서로를 이용하려고 하다가 부딪히는 지점이나 결말도 흥미로웠는데 이 뒷 내용들은 스포를 막기 위해 더 이상 전하지는 않겠다. 저주와도 같은 이 힘을 소설화하는 데 있어서 은호라는 존재가 매력적으로 그려져서 좋았다. 빌런이 큰 역할을 하는 콘텐츠에서는 빌런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김 새기 마련이어서다. 과거에는 백정이었고, 죽을 위기를 흡혈귀가 되면서 벗어났고, 그 뒤로 죽지 못하는 불사자의 신세로 외롭게 살아온 이 남자는 존재 자체가 민폐다. 피를 탐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태양 아래로 걸어가면 타 죽는다는 단연한 선택지가 있지만 그러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쉽게 미워하기도 어렵다. 너무도 ‘인간적인 존재‘여서다.
누군가는 인간을 이타적인 존재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기적인 존재라 생각한다. 개개인은 개개인의 세계가 있고, 일생 매 순간의 선택은 ’자기‘를 향한다. 타인을 향해 기꺼이 도움을 주는 이들은 사실 ’자아’가 넓어서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를 테면 나는 내 사람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인데 팀원, 가족, 친구라 생각되는 사람들의 일은 내 일처럼 생각하고 도와준다고 오지랖도 참 많이 부렸다. 타인을 몹시도 생각해서? 아니다. 그 사람들까지 무의식적으로 ‘나’라고 생각하는 게 크다. 그걸 깨달은 이후로 나는 그들이 청하지 않을 때 내가 먼저 나서서 내 방식의 도움을 주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도움을 준다는 것도 나의 마음이고 그 방식 역시 내 방식이어서 받는 사람이 딱히 좋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할 때 주는 것, 그게 진짜 이타일 수도 있단 생각을 요즈음 한다. 그 에너지를 나를 돌아보는 것에, 나를 사랑하는 것에 쓰는 게 장기적으로 더 이로울 것이다.
바로 그래서 ‘이기적’이란 말을 나는 나쁘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며, 자기 선에서 맞는 일이라면 뭐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타인을 해해선 안 되며 법망을 벗어나서도 안 된다. 사회적 기준은 지켜야 한다. 이것이 문명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지키기로 한 약속이어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은호는 죽어야 마땅한 존재다. 너무도 인간적인, 하지만 괴물로 너무도 오래 살아서 ‘인간’의 감각을 몹시도 느끼고 싶어하는 존재를 보며 나는 오래도록 스스로 던져 온 질문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고, 무엇으로 사는 가>를 던져 보았다.
이 소설의 마지막 화에서 작가는 태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인간으로 살아가길 거부하는 흡혈귀를 붙잡아 치료제를 주입하며 한 말이다.
“인간 세상에 녹아드는 방법이라면 너무 쉽잖아.”
“…뭔데 그게.”
“인간으로 살아가면 돼.”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인간의 삶. 망각을 무기 삼아서 살아가지면 죗값은 언제고 한 번은 치루고야 마는 인간 세상에서 태오는 경찰공무원 대신 흡혈귀 사냥꾼의 삶을 택한다. 죽이는 게 아니라, 치료제를 주사하는 방식으로 사냥하는… 흡혈귀로 벌였던 죗값을 살아서 치뤄야 할 테니 다른 의미의 죽음이긴 할 테지만, 죽이는 대신 ‘살리는 처형’이어서 맘에 들었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잘 읽었지만 말미에 아쉬운 걸 뽑으라면 무속이 필요했나 하는 것과 태오라는 인물이 다소 평면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무속, 샤먼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더 눈에 밟혔는데 부적이나 염주, 도목검 등이 삿된 것을 물리거나 심신을 안정케 하는 데 도움 돼서 아이템으로는 기능하지만 그 외의 기능은 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도사 철웅이 서포트 이상의 ‘무언가’를 하는 에피소드를 기대했던 터라 그럴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취향이다) 태오의 경우 의협심으로 불타는 면모를 많이 보이는데 그 와중에 내면에 도사리는 암흑을 마주한다거나 하는 부분이 나왔다면 더 몰두했을 거 같아 아쉬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쉬운 점일 뿐, 이 자체로도 정말 흥미롭게 잘 읽었다. 이 리뷰를 보며 궁금해 졌다면 스윽 첫 화를 클릭해 보도록. 정신 차려보면 단숨에 마지막 화를 읽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