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제목만으로 충분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모자라
귀신이라는 신재생 에너지에 피실험자를 모집하고 귀신 인권 시위까지 벌어지는 세상이라니.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작품 흐름에 매우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이야기’ 라는 문장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가 필요한 21세기에 귀신이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은 참으로 놀랍다.
귀신이라는 초자연적인 존재와 친환경 에너지 연구소라는 과학과의 만남이라니.
부적으로 귀신을 가두고 ‘한’ 이라는 정서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이 매우 기발하다.
이 작품에서 공감 갔던 부분은 주인공의 말투와 행동이었다.
사실, 10분에 15만원이라는 고액 아르바이트를 거절할 사람은 있을 리가 없겠지만
매우 수상하고 이상한 이 실험으로 나에게 어떤 결과가 초래 되는지 알지 못한 채
높은 시급만 보고 덥석 문 주인공의 모습이 고액 알바에 중독된 소수의 청년들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재밌고 색다르다는 느낌만으로 작품을 보다 한 문장에서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귀신도 당신의 가족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반복해서 볼 때 대수롭지 않았던 요새는 귀신이 부족해져서 문제네요. 라는 문장도.
나는 이 작품 속 귀신을 어떤 존재로만 보고 있었던 걸까.
영화 속 무섭고 소름끼치는 귀신의 존재도
고통스러운 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일 수 있고 어떤 살인사건 속 피해자일 수도 있으며
결국은 나의 핏줄이고 조상인 가족들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 끼치면서도 마음이 아리다.
귀신들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가해 파장을 살펴보게 하고
부족한 귀신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잡아 죽이는 상황까지 온 참혹한 결말 속에서
친환경 에너지 연구소가 진정으로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또한 에어컨과 냉장고에서 들리던 목소리는 귀신일까 아님 주인공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망상일까.
명함 속 실험으로 인한 부작용은 사측에서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이 참 가소롭게 느껴진다.
‘귀신’ 이라는 자원이 환경오염이 없을지는 몰라도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희생당하는 자원이라면
단 한 명의 국민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나의 자원이 된 귀신의 슬픔은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