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망하게 되면
지상에 대한 애착이 강한 영혼의 경우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나의 일상생활 공간에 남아
나의 가족과 지인, 그리고 인연을 맺었던 이들을 지켜보며 살아간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편히 떠나지 못한 채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제발 떠나지 말라고 울면서 사정할까.
아님 난 괜찮으니까 이 세상에서의 일은 모두 잊고 편히 쉬라고 말할까.
반대로 내가 영혼이 되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지켜본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첫 마디를 건넬 수 있을까.
이 작품 속 고등학교 물리 교사는 업무를 마친 뒤 집에 가기 전 본 괴담게시판에서 짧은 글을 보게 된다.
이상한 호기심이 가득 차 문에 다가가 똑, 똑 두들겨 봤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다.
그 순간, 문이 열렸고 동료교사이자 옛 연인이 흥건히 젖은 몸으로 내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수학여행에서 학생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옛 연인과 죽은 애인이 살아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
과연 두 사람 사이의 남아있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구분’ 이다.
회색 바탕 안에 괴담 게시판 글과 날짜 및 시간, 댓글 개수까지 사실적으로 표시해 둔 덕분에
내가 괴담 게시판 속 글을 읽는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나에게 묻는 질문과 답하는 방식, 그리고 다른 글씨체로 마지막 옛 연인이 나에게 전하는 말을
이 작품 속 내용이 더욱 선명하게 이해되고 집중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엔 작품 속 괴담 게시판에 적혀있던
[밖에서 두들기지 않았는데 안에서 먼저 두들기면 ‘들어오세요.’ 라는 뜻이래.] 문구를 보고
단순히 학교에서 펼쳐지는 귀신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나의 예상을 깨기라도 하듯 반전이 숨겨져 있다.
그는 자신이 죽은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냐는 질문 3과 생존자 및 희생자 명단.
그걸 마주한 나는 어떠한 마음이 들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구나. 사람들의 행동이 무시가 아니라 날 알아보지 못했구나.’
내가 죽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면서도 넌 살아있어 다행이라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지 않았을까.
지상을 떠나지 못하는 영혼, 이 잔상은
안타까운 사고로 인해 내 남은 삶을 살지 못한 아쉬움과 거대한 그리움으로 만든 결과일까.
아님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한 미련이 만든 결과일까.
살아있는 사람에게 남은 이 잔상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9년 전, 안타까운 사건이 떠오르게 되는 이 작품을 나 또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매년 그 시기만 되면 마음이 울컥하고 그리운, 짭조름하면서도 선명한 소금의 잔상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