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하그리아 왕국>의 10월 17일 연재분인 하그리아 왕국 51-3: 소흐랍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다루고 있다. 연재 중인 작품인 만큼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나, 디테일한 부분은 제외하고 큰 틀에서 리뷰를 쓴다. 무려 90회까지 연재 분량을 차근차근 따라오면서 나는 3가지에 감탄했고, 3가지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느꼈다.
첫째. 드래곤, 정령사 대신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차용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나는 고대에 한 무리를 이끈 이들은 ‘샤먼’이었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회가 문명화되기 이전의 인간들은 자연을 두려워했고, 자연의 신들을 모셨으며, 때로는 자연의 뜻을 따라 ‘제사’를 지냈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샤먼적인 능력’을 하그리아 왕국의 여왕 샤흐라자드에게 주었다.
그녀의 뛰어난 전투 능력, 야수의 심장을 가지고 나아가는 ‘추진력’ 외에 그녀의 정복전쟁에 부스터를 달아준 것은 다름 아닌 ‘정령’들이었다. 정령들이 원하는 바를 적당히 들어주되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힘을 쓰며 정령과 여왕은 서로 이용했다. 그것은 분명 ‘재능’이며 ‘축복’이었다.
그런 한편, 저주이기도 했다. 그녀의 몸에 깃드는 모든 정령들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존재는 아니었기 때문에. 정령이 몸에 깃드는 순간, 그녀의 몸은 변이되었고 그녀의 정신은 잠들어 버렸다. 그녀가 사랑하는 존재를 그녀가 잠든 사이에 그녀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할 수 있는 존재도 그들 중에 있었으니까.
정령은 단일한 존재가 아니며, 하나의 ‘그룹’을 이루었다. 그 정령들은 하그리아와 이웃한 왕국에도 강림하며, 자신들을 느끼고 받아들이며 동시에 이루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있는 자들과 ‘계약’을 맺었다. 샤흐라자드는 억울하게 죽은 아비와 가족들의 복수를 하기 위하여 스스로 ‘역적’이 되었고, 왕좌에 올랐다. 그 대가로 혹독한 신병을 앓으며 일평생 정신이 ‘산산이’ 부서졌다. 정령들을 잠재우기 위해 그녀는 끝없이 남자와 몸을 섞었다.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하나인 성욕, 그 욕정을 정령은 인간의 몸에 강림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다. 육신이 없는 존재는 감정을 세밀하게 느낄 수 없으며, 무미한 삶을 살아갈 따름이니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건 정령은 인간을 경시하고, 마구 이용하려 들면서, 동시에 부러워 한다는 거였다. 인간의 몸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것도 무료한 영생과도 같은 고요의 상태에서 벗어나 ‘오욕’을 느끼고자 하는 열망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른다.
하그리아 왕국이라는 가상의 왕국과 그 주변 국으로 이뤄진 대륙, 그 대륙에 뿌리내린 왕족과 귀족, 여타 인물들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구태여 말하지 않겠다. 이 리뷰에서 나는 하그리아 왕국의 샤흐라자드 여왕 일가에 주목할 생각이다. 여왕에게는 세 명의 아이가 있으나, 여왕과 같이 ‘정령’이 반응하는 몸을 타고난 자는 2왕자 이스카 뿐이다.
여왕이 가장 아끼는 남편인 근위대장 타흐마탄(두 사람은 정복전쟁 당시 전우였다, 정확히는 용병이던 타흐마탄이 샤흐라자드의 카리스마에 복종했다고 보는 게 옳을지도)의 소생이자, 그녀가 원해서 낳은 유일한 아들이어서인지도 모른다. 이스카는 왕좌에 관심이 없어서 스스로 신분이 천한 이를 아내로 맞았지만, 16세에 어머니에 의하여 그 아내가 독살 당한 뒤에 ‘정령’이 강림하는 사건을 겪는다.
샤흐라자드 여왕이 가족이 다 몰살 당한 뒤에 도피 생활을 하다가 ‘죽음’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 불새의 꿈을 꾸고, 정령이 강림하는 사건을 겪었던 것처럼 이스카 역시 ‘아내의 비극적 상실’ 이후에 정령을 몸에 받아들이게 된 걸 보면, 불새의 꿈을 꾸며 신내림을 받는 ‘마술사’로 깨어나기 위해서는 ‘지독한 상실’이 필요한 지도 모른다.
샤흐라자드 여왕은 이스카를 가엽게 여기면서 동시에 ‘군주’의 시선으로 아들을 바라본다. 불새의 꿈을 꾸는 자는 <신의 총애>를 받는 자이면서 동시에, <일평생 정령과 몸을 나누며 고통 받는, 언제 괴물이 될지 모르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스스로 바로 ‘서야 하는 셈’이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드래곤, 정령, 마법, 마공을 다루는 자가 겪는 고통이나 번뇌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일반적인 판타지물에서 정령사나 흑마법사, 백마법사로 표현되던 것이 이 소설에서는 신내림을 받는 ‘무당'(정령과 악령 각각이 저마다 맞는 자와 계약을 맺는다)으로 표현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 이 차이는 꽤 크다. 특히나 정령이 몸에 강림해서 그 몸이 기이하게 뒤틀린다던가, 괴랄할 만큼 강렬한 힘을 뿜어낸다던가, 그 힘을 숨기기 위해 애쓰는 장면이 나온다던가 하는 데서 이미 ‘액티브한 재미’가 생기고, 묘사 장면도 흥미로워지기 때문이다.
다만 본 소설에서는 마술사와 무당으로 표현되는 명사가 뒤섞여서 나오고, 신병과 신내림과 같은 표현과 정령이 들어온다는 표현이 함께 사용되면서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내용 흐름상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신병/신내림/무당과 정령/마술사/악령의 표현은 무드가 다르다고 생각돼서 표현적인 측면에서 하나가 선택되거나, 이 소설만의 ‘색다른 명칭’이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디테일하고 방대한 설정으로 판타지 세계가 ‘잘’ 그려진다.
판타지 소설에 있어서 정말 중대한 점은 이 세계가 ‘실존하는 현실’처럼 느껴져야 한다는 데 있다. 현대 판타지의 경우에도 현대물인데 판타지적 요소가 등장해서, 그 ‘요소’가 설득력 있지 않으면 모든 세계관이 무너지는 판에 본격 판타지는 더하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가상의 세계에, 가상의 왕국, 가상의 인물, 게다가 이름도 낯설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90화까지 읽어보면서 나는 작가가 이 방대한 설정과 세계관을 확립하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거라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감탄했다. 공지로 올라온 글들만 봐도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화폐라던가 사용하는 도구, 의복, 계급과 왕국간의 관계, 대륙의 정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생각하고 쓴 게 느껴져서 읽으면서 즐거웠다. 샤먼적인 세계관도 이 ‘판타지 세계’의 설정이 디테일하지 않았다면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계급과 직업, 왕국간의 관계와 저마다의 ‘이권 다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읽는 재미를 살려주었다. 워낙 내용이 많다 보니 쓰면서 헷갈릴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했다. 더불어서 거대하고 잘 짜인 세계관이라도 이 세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방식이 미흡하면 살아남기 어려운데 이 소설은 ‘외전’이란 요소를 적재 적소에 잘 이용하고 있단 생각도 들었다. 다소 설명이 너무 많을 때도 있지만, 흥미롭게 읽어볼 만한 구간이 있어서 좋았다.
셋째. 회차별로 개개인의 ‘인물’ 이야기를 배치하여 ‘입체적’으로 소설을 읽게 한다.
샤흐라자드 여왕과 세 아들, 그 아들의 아버지와 여왕과 몸을 섞은 다른 애첩, 여왕의 며느리 등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회차별로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 인물들이 각각 ‘저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그들 각각이 겪는 사건에 대한 서술 외 내면적인 독백도 꽤 등장하기 때문에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여러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모인 ‘하그리아 왕국’이 정말 ‘실존’하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다만 이렇게 분산하여 서술할 경우의 아쉬운 점과 다소 구성상 미흡하다 느껴졌던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아래 ‘아쉬운 점’ 3가지에서 이어나가겠다.
첫째.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없다.
이 소설은 ‘하그리아 왕국’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을 취한다. 샤흐라자드 여왕의 뒤를 이어서 어떤 왕자가 ‘왕이 될 것인가’라는 큰 줄기의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긴 하지만, 이 ‘이야기’에 주목되어 있지 않다는 소리다. 샤흐라자드 여왕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시각에서 현재, 과거가 뒤섞여서 서술되고 있고, 각자가 저 나름의 이야기를 하기에 어느 순간 왕위쟁탈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진다. 더군다나 여왕이 ‘아직 살아 있어서’ 그 이야기는 더더욱 ‘중요도’에서 밀린다.
그렇다 할지라도 독자의 입장에선 ‘따라갈 만한 대상’이 필요하다. 주요한 사건이 되었건, 주요 인물이 되었건. 90회까지 다 읽어 본 나의 견해로 말하자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하그리아 왕국’ 그 자체다. 그러나, ‘왕국’이 주연이라고 볼 수 없는 게, 왕국 외 다른 이야기들도 많다. 왕국을 이루기 이전에 대륙에 대한 역사나 정령, 악령의 이야기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와있어서다.
어느 순간 이야기를 읽다가 독자의 입장에서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징징거릴까?”라는 말이 불쑥 떠올랐다. 실제로 내면서술이 많다보니까 여러 인물들이 저 나름대로의 고충을 토로하는 형태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느낌이다. 각자의 사정은 알겠지만, ‘무언가’ 손에 잡히는 사건이나 메인 서사가 없다.
메인 플롯의 줄기가 없는 상태로 여러 인물의 입으로 끝없이 이런저런 이야기가 서술되다 보니 하그리아 왕국이란 이런 곳인데 우린 이렇게 고통을 겪었고, 행복했고, 앞으로 이렇게 살길 바라… 라고 끝없이 설명하는 ‘장’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개개의 스토리는 흥미롭지만, 그래도 ‘중심점’을 잡고 있는 인물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인물들에게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나는 이스카와 샤흐라자드 여왕, 두 인물의 이야기가 좋았다. 둘 다 같은 운명을 타고났으나 성격적으로 다르다. 이 인물의 ‘서사’를 보다 더 중점적으로 보여주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이스카의 아내가 죽고 얼마 뒤 샤흐라자드 여왕이 죽으면서 ‘대혼란의 사태’에 빠진 하그리아 왕국에서 이 소설이 시작되어도 좋겠다. 이렇게 된다면 주인공은 이스카다. 왕좌에 대한 욕심도 없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으나 아내는 죽었고, 어머니도 죽었다. 상실을 달랠 틈도 없이 정령이 몸으로 엄습해 오고, 우애를 나눴던 형제들과 칼을 겨누며 싸워야 한다. 정령을 다루는 힘도 부족한데, 살기 위해서는 내 형제의 등에 칼을 꽂아야 한다. 이러한 ‘백 그라운드’가 마련된 순간 독자는 이스카에게 이입하게 된다.
소설을 특히 장편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이러한 독자의 감정적 이입’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소설은 흥미로우나 ‘주인공’이라 부를 만한 이는 없다. ‘주인공’에게 갑작스런 ‘사건’이 발생하면서 스토리가 시작된다는 걸 고려한다면, 아직까지 ‘메인 스토리’도 시작되지 않았다.
둘째.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순간, 메인 서사는 무엇인가 의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조금 더 이어가자면 나는 이 소설을 전체 다 읽는 동안 다소 혼란스러웠다. 내가 파악한 메인 서사를 떠올려본다면, 1장은 하그리아 왕국의 ‘왕위 쟁탈’이다. 세 왕자 중에 누굴 왕으로 세워야 할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2왕자의 아내가 독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억울함을 밝히고자 하는 와중에 2왕자의 몸에 ‘정령’이 강림하는 사건을 왕궁의 일원 그리고 신하들이 모조리 함께 ‘목격’한다. 2왕자는 단숨에 후계자로 떠오른다.
2장은 비어 있는 하그리아 왕국의 ‘왕좌’이다. 마땅히, 싸워야 할 세 왕자는 싸우지 않는다. 여왕은 아직 살아 있고, 2왕자는 왕궁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 일평생 정령에게 몸을 빼앗기고, 서로 이용해 먹으면서 살아온 여왕은 산산하게 부서진 정신 상태로 자꾸만 무너져내린다. 여기까지가 90화를 보는 동안 진행된 내용이다. 나머지 대륙의 정사에 대한 이야기는 서브 플롯에 해당된다. 메인 서사가 진행될 시간이 ‘서브 플롯’이 다채롭게 진행되다 보니 이 이야기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다.
하그리아 왕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나긴 에피소드 형태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다. 방대한 세계관과 샤머니즘적 터치, 그리고 몰입하게 하는 문장력과 묘사가 흥미롭지만 이것은 거대한 ‘백그라운드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아쉬웠다. 소설의 ‘본편’이라기 보다는 ‘별도’로 제공되는 왕국과 대륙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이 전체 내용이 다 쓰여지고 난 뒤에 인물과 사건을 골라서 이야기를 쓴다면 ‘시리즈물’로 발전할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내용이 쓰여져서, 흥미롭게 발전할 여지는 정말 많지만 이 자체로는 아직 아쉬웠다.
셋째. 소제목과 내용이 불일치하면서 구성에서 약간 혼란이 있다.
다른 리뷰에서도 이야기 되었던 내용인데 소제목에 적혀 있는 이름과 내용에 나오는 이야기가 다를 때가 종종 있었다. 이를 테면 아르샨의 이름이 소제목에 적혀 있어서 아르샨의 입장인가 하고 들어가서 보면 이스카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뒷부분에 나오거나 하는 식이다. 맥락상, 흐름상 어떠한 이야기인가는 알 수 있었지만 이게 반복되다 보니 중간에는 약간 혼란을 겪을 때도 있었다.
소설의 여러 등장인물들의 ‘시선’에 따라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이 에피소드들이 모여서 하나의 연재되는 소설을 이루는 형태인 만큼 이러한 구성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와 현업으로 바쁜 와중에 출퇴근길에 틈틈이, 시간 날 때면 앉아서 쭉 읽으면서도 흥미롭다 느끼고 몰입할 만큼 이 소설의 세계관이 좋았다. 판타지에 샤머니즘을 접목한 케이스가 (내가 알기로는) 흔치 않아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또한 그 세계관을 뒷받침할 만큼 설정과 인물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많은 공력을 들였다는 게 느껴져서 또 한 명의 작가이기도 한 입장에서 반성하기도 했다.
이렇듯 방대하고 복잡한 세계관을 ‘이해 가능한 형태’로 구현해내고, 장편으로 연재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노력의 시간이 너무 잘 느껴져서 리뷰를 쓰면서도 조심스럽다. 허나 바로 그렇기에 아쉬운 부분은 ‘아쉽다’라고 소리를 내어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아쉬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하그리아 왕국>이라는 장편이 완성되고 난 뒤에, 이 세계관과 인물을 활용해서 시리즈물로 이야기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여러 인물 중에서 가장 ‘스토리화’ 할 만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고르고 조금 더 ‘극적인 사건’의 한 복판에 놓이게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세계관과 설정, 캐릭터와 메인/서브 서사가 탄탄하게 어우러진 작품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이 소설은 궁중암투물로 소개되고 있지만 실은 그보다 ‘더 큰’ 그리고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판타지에 평소 관심 많은 사람, 판타지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싶은 사람, 인물들의 이야기에 한껏 빠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 스윽 1화부터 정주행을 시작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