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에서는 세 개의 다리를 가진 거대한 솥을 제왕의 표지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제를 지내 천자가 하늘을 대리하는 지상의 통치자라는 위엄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이 솥 – 구정九鼎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하그리아 왕국 이야기는 ‘여왕 샤흐라자드의 세 아들 중 누가 왕위를 잇느냐’가 메인 테마인 소설입니다. 독자가 이해하기 쉽고 몰입하기 쉬운 테마지요. 그러나 독자가 지루해지지 않게 만들려면 작가는 세 파벌 모두에게 왕위계승의 당위성을 주어야 합니다. 제가 특히 놀라웠던 점이 이 점입니다.
1왕자 아르샨의 경우, 재상인 아버지를 둔 여왕의 첫째 아들로서 본인 자신의 역량보다는 혈통과 혼인으로 맺어진 인맥이 계승 자격을 지지합니다. 특히 야심과 능력이 뒷받침되는 왕자비 파리사티스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지요.
2왕자 이스카는 본인 자신이 위대한 정복자라고 일컬어지던 외조부 루스탐과 비견될 수준의 천재입니다. 타흐마탄 장군의 아들이고, 타흐마탄 자신의 가문은 망하기는 했으나 잘 나가던 귀족 가문이었지요. 다만 이스카는 본인이 왕위에 뜻이 없었기 때문에 제멋대로 무희 누르자한과 결혼하여 처가의 지원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3왕자 스피타만은 북부속령의 총독인 소흐랍을 아버지로 두고 있지만, 그 아버지 소흐랍은 지금의 지위를 여왕의 남첩 노릇을 통해 얻었습니다. 소흐랍은 원래 하층민 출신이자 남창노릇을 했었다는 약점이 있지요. 다만 왕자 자신이 영리하고 야심만만하며 곧 결혼할 약혼녀 미르셀라의 처가 배경과 자신의 지략으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예정입니다.
저는 3왕자 스피타만이 가장 적절한 후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왕도 직업인데 기왕이면 제가 하고 싶다고 하는 능력있는 놈이 하는 편이 좋지 않겠냐? 하는 나이브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스카는 여러모로 신의(작가의) 총애를 쏟아 부은듯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본인이 너무 열의가 없거든요. 이런 애들은 그냥 풀이나 뜯으라고 방목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제 생각.
아마 읽으시는 분들도 저처럼 2왕자냐 3왕자냐 고민했지, 의외로 1왕자를 눈여겨보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무래도 독자는 능력과 마음가짐이 갖춰진 인물을 선호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작가는 39회차에 캄비세스 장군의 입을 빌어 1왕자를 지원합니다. 캄비세스 장군이 던지는 ‘반드시 모든 면에 있어 우월한 이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그 답변은 결국 읽는 독자로 하여금 ‘그래, 아르샨이라고 왕이 못 될 건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요.
결국 독자는 여기에서 작가가 내정해 둔 차기 왕의 정체를 알 수 없어 오리무중에 빠지지만, 이것은 이야기를 읽는 데에 흥미를 더해주는 즐거운 혼란입니다.
그래서 더욱 작가의 균형감각이 놀랍다고 느꼈습니다. 어느 다리 하나만 짧아도 솥은 서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세 왕자와 세 왕자비,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까지 하여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각자 개개인의 서사가 있고, 그것이 독자에게 혼란을 주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앞으로의 행보에 개연성을 줍니다.
게다가 ‘벌써?’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개가 빠르고 충격적입니다.
거의 버린 패로 보였던 인물이 중요한 사건의 핵심인물이 되지 않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등장했던 인물이 갑자기 죽어버리질 않나, 현 연재분에서는 여왕이 모종의 사건을 이유로 아예 1왕자와 2왕자에게 결투재판을 명해놓은 상태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아내의 일이 달려 있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지요. 이 이야기의 왕자들은 다들 자신의 반려를 사랑하거든요. 위험한 이벤트이니만큼, 하그리아 왕국의 모든 사람들도 여왕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 결투 재판에서 살아남은 승자가 다음 왕위 계승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과연 누가 하그리아 왕국의 왕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