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 <우리의 밤>을 나는 퇴근길에 읽었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역시나 흔들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소설을 읽고 있자면 기묘한 경계를 밟고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이 세상인 듯, 이 세상이 아닌 듯 오묘한 여정의 한 가운데에 있다고 할까. 그래서 나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동안 노래를 들으며 창 밖을 보는 것도 좋지만, 영화나 소설 혹은 시를 보는 일을 즐긴다. 어째서 이 개똥철학 먼저 이야기하느냐 하면,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읽었을 때 더 좋았던 글이어서다.
SF 장르가 ‘마이너’에서 ‘대세’ 장르가 되기 시작한지도 꽤 되었다. 하드 SF는 내게 여전히 어렵지만, 소프트 SF는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이 소설 <우리의 밤>은 소프트 SF 장르에 해당하며, 우리와 아주 흡사한 ‘현실적인 배경’을 취하고 있다. 이 소설 안에서 SF적인 요소란 ‘단 하나’의 아이템이다. 다름 아닌, 스레드라는 기계다. 귀 뒤쪽에 툭 튀어나온 뼈를 통하여 해마에 직접 삽입하는 임플란트 방식과 바늘처럼 뾰족한 중계기를 귀 뒤에 꽂아 넣는 니들 방식이 있으며 사고 언어를 바로 전달할 수 있는 ‘기계 장치’다. 굳이 입으로 ‘발화’하지 않아도, 이 장치가 있으면 바로 서로의 생각과 사고 그리고 감정이 전달되니 이 소설 세계관에서는 ‘필수’ 아닌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주인공 지우는 스레드 시술을 받기 위하여 성실하게 공부했고, 높은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 선물로 스레드 시술을 허가해 주겠다던 부모님은 말을 바꾸었고, 실상 이 소설은 주인공 지우와 가족 간의 ‘다툼’을 주요 골자로 다루고 있다. 스레드 수술 하게 해줘 vs 왜 굳이 하려고 해 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만 들었을 때는 그놈의 스레드가 대체 뭔데, 별로 안 궁금한데… 그거 갖고 말다툼하는 게 뭐가 재밌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읽어보면 다르다. 갈등의 원인을 준 장치가 ‘스레드’라는 낯선 것일 뿐, 이것을 ‘아이폰’이나 ‘애플워치’ 등으로 바꾸면 우리가 이미 겪어본 종류의 갈등이니까. 허나 이 ‘스레드’란 장치는 우리가 익히 아는 디지털 장치와는 또 다른 개념이다. 이 소설은 바로 이 ‘다른 개념’을 잘 포착했다는 지점에서 차별성을 획득했다.
주인공 지우는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조금 더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서 스레드 시술을 염원했다. 허나 스레드라는 기계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감정적인, 비언어적인 표현과 말 그리고 생각을 모조리 들킨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머릿속에 잠깐 ‘아 죽고 싶다’ 혹은 ‘죽이고 싶다’라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스치고 지나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이 순간의 생각이 ‘나’란 사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은 190매의 분량을 할애해 낯선 기계 장치를 둘러싼 갈등과 화해를 통해 ‘언어 표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대화라는 건 일방적인 ‘발화’가 아닌, 쌍방 소통이니까.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굳이 해야할 때도 있고, 하고 싶은 말을 굳이 참아야 할 때가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에서 ‘스레드’라는 장치가 갖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을 장면화하여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누군가의 감정을 고스란히 마치 내 것처럼 느낀다는 게 좋기만 할 리가 없으니까. 그 단점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니 스르륵 읽어보도록.
지하철 안에서 흔들거리며, 마치 또 다른 ‘한국’으로 떠난 듯한 기분으로 가볍게 읽기 좋았지만 꼭 하나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스레드라는 기계에 대해 조금 더 보여줬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스레드나 안테나라는 기계가 소설 속 세계관에서 갖고 있는 입지라거나 ‘왜 필요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회적 합의 같은 것 말이다. 이를 테면 이 장치를 시술 받으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정작 회사 안에서는 스레드 시술을 받은 사람을 꺼리는 환경이라 사회적으로 이 장치가 얼마나 어떻게 받아 들여지고 있는지도 다소 모호했다. 또한, 스레드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주인공이 택한 ‘안테나’와 스레드의 차이도 다소 흐릿하게 그려져서 아쉬웠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성능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알았지만, 성능 이외의 부분이 궁금했다고 할까… 아마 분량이 조금 더 길어진다면 보여줄 여지가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소설 <분리된 기억의 세계>와 비슷한 구성이면 조금 더 많은 게 보여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최근에 읽은 소설인데 갑작스런 사고로 인하여 인류가 ‘장기기억’을 간직할 수 없게 된 사회를 보여준다. 장기 기억을 저장할 만한 외부 메모리 없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살게 되는 거다. 이 외부 메모리는 자그마한 반도체 칩으로 묘사되며 신체에 소켓을 만들어서 꽂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바로 이 설정을 구체화하면서 여러 인물을 통하여 기억 없는 사회를 보여주고, 그 장면과 에피소드가 모여서 세계가 구체화된다. 이 소설이 갖고 있는 핵심 아이템도 충분히 그렇게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아서 스레드나 안테나 기계에 대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그리고 각각의 인물이 겪는 사건 사고 혹은 이슈를 보여주면서 조금 더 소설 세계가 넓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이 소설 속 인물이 살아 있는 게 느껴져서 가능한 생각이다. 오랜만에 따스하게, 흥미롭게, 또 가볍지만 깊이 있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