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단편집 「개인의 자격」 중 단편 <러디 도>를 읽고 난 감상입니다.
왜 다들 육성을 쓰는 건지. 원격 챗으로 대화하지 않는 이곳 분위기는 내겐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이 작품을 요약하자면,
[미래, 기계 몸이 일반화된 사회, 어쩌면 너무나도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자신의 팔이 고장 난 것을 알게 되고 수리 불가인 상황, 비용 부담으로 인해 같은 브랜드의 중고 팔 매입을 위해 일종의 낙후 지역에 위치한 중고 신체 거래소로 향하는데, 이때 만나게 되는 한 노인과의 작은 사건과 두 사람이 나누었던 이야기의 기억]
이라 축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의 분류를 함부로 특정짓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지만, 이 단편은 필자가 사랑해 마지않는 장르인 사이버펑크라 단언하고 싶다.
사이버펑크물을 잘 아시는 다수의 분께서는 지루한 설명일 수 있겠지만 잘 모르실 소수의 분들을 위해 부언하고 싶다. 짧게, 정말 짧게 해볼테니 용서하시라.
사이버펑크를 대표 혹은 아?!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블레이드러너,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매트릭스를 예로 든다면- 훅 이해가 되지 않으실까? 물론 소설이 영화화 되거나 원작이 만화거나, 처음 시작부터 시나리오였다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 세계관만 들여다 보자면 공통적인 특징이 몇 있다. (예로 든 세 작품이 아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건 아니다. 사이버펑크라 분류할 때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로 2, 3가지만 해당되어도 그쪽이 아닌가 추측될 뿐이다. 또 위 예시작들을 쓰레기!라 말할 극좌께서도 계실지 모르겠다.)
미래, 다소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첨단의 고층 빌딩과 대비되는 슬럼가, 네트워크와 기계공학을 비롯한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기반 사회, 국가나 세계를 장악한 거대 세력과 그 반대 세력, 공공연한 마약과 퇴폐 수준의 성관념 등…이 그렇다.
그러면, 저 위 줄거리를 다시 보자. 그러한가? 아 죄송하다. 너무 축약해 놓아서 그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단편의 축약임에는 분명하다. 어떤 미래적인 요소들을 빼고 보면 그냥 영락없는 ‘드라마’가 아닌가?
다시 말씀드리고 싶다. 위 사이버펑크물을 규정 짓는 특징에서 ‘개인적으로 그런 것 같다고 생각되는’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빼먹었다. 혹자는 사이버펑크물에 녹아있는 빈부격차와 사회 저항을 말하기도 하지만, 사이버펑크 물에도 다양한 하위 혹은 스펙트럼이 존재하지만, 바로 ‘인간‘에 대한 고찰이 그것이다.
완벽할 것만 같은 미래 속에 상존하는 불완전함, 그 중에도 극단적으로 대비해, 인간성 그 자체에 대한 향수야 말로 사이버펑크를 규정짓는 특징이며 매력적이게 하는 요소라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뭔가 스펙터클한 전투씬이나 음모 따위를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사이버펑크 스토리라 단언하고 싶다.
주인공의 시작은 정말 평범한, 직장인에게 일어난 작은 사건 – 자신의 인공 팔이 반복해서 오작동을 일으킨다는 – (것)에서 부터다.
대뜸 칭찬을 전하고자 한다. 작가의, 작위적인 느낌없이 개그 코드까지 살짝 버무려 이야기를 진행-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몇몇 장면에 대한 묘사 역시 그려지듯 전개되어 마치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하여 거의 끝까지 흥미를 유지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아주 작은 부분에서 ‘설명’이 긴 부분이 있어 조금 아주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필자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지순한 풀어냄이었다.
(이하는 혹 필자의 윗글을 보고 음? 이런 게 있었어? 하고 이 작품에 대한 흥미가 동하신 분이라면, 먼저 작품을 읽고 보시길 권한다. 귀하의 상상력, 감상을 저해할 요소 내지는 스포가 있기 때문이다.)
감히 풀이해 본다. 이 작품 전체를 꿰고 있는 주제는 ‘불편함’이다. 물론 작가님한테 들은 게 아니라 망고 필자의 느낌이라, 작가님이 전하고자 하셨던 것과는 다를 수 있다. 필자가 꽂힌 곁가지일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그냥, 필자에게는 그게 마음을 동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주인공은 일상을 깨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찾은 곳에서 자신을 더, 매우 불편하게하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불편함과 더불어 노인은 그의 파트너 이야기를 한다. 불편함을 스스로 감내하고 6, 70년을 지내고 있다고 말하는 그이는 분명 불편함을 버릴 수 있었을 걸로 짐작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그것을 거부한 극단적인 사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레트로 열풍이란게 불긴 했다. 옛 것, 보통사람들은 낡은 구닥다리라 할 만한 것들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 향수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불편하지만 그리운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이를 공감하면서도 완전히 따르지는 않는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막상 그날이 닥치면 또 죽자고 수술하려 할 거야 나는. 그이한테는 미안한 일이지.”
‘더 나은 삶’ 이야말로 아무리 비천한 데 있는 존재일지라도 가지려하는 인간 본연의 추구일 것이다. 주인공 역시 불편함을 해소하고 더 나은 삶을 살려고 하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다만 두 사람은 티셔츠 한 장을 매개로 같은 것을 공유한다. 한 사람은 스포츠 스타였던 이의 한 때를 추억하는 이로, 또 한 사람은 오랜시간 바로 그이의 곁을 지켰을 사람으로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없다. 무의미하다. 단지 사람은 살아갈 뿐이다.
1. “안 비켜!” 라는 대사를 시작으로, 쌍따옴표가 시작된다. 드디어 육성이 등장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 전 장면들의 대화라고 할만한 부분들에서는 모두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네트워크 상의 메시지를 주고 받는 형식이다. (어? 그랬나? 하고 뒤늦게 알아채고 다시 보았다.)
그게 극대화 되는 지점은 단연 주인공의 심한 말더듬이다. 그는 노인에게 심한 소리를 들으면서도 네트워크에 접속해 대화하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자신의 말더듬이가 수치스럽거나 불편해서인지 아니면 그전에 하던 습관에 익숙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주인공이 원래 생활하던 거주지에서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는 점에서 한 사람의 장애 때문이 아닌, 사회 단위에서 육성 지양?을 알 수 있다. 육성을 쓰는 것은 불편하고 효율적이지 않은 것이고 접속을 통한 메시지 전달이야 말로 평범하고 세련된 것이라 여기는 설정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로인해 주인공이 경험하게 되는 것들에 더 극단적인 대비를 느끼게 한다. 흥미롭고 좋은 설정이라 생각된다.
2. 주인공의 직업- 그의 말더듬으로 인해 정확한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쇼쿡? 퍼포먼서? 하여간 로봇이 만든 요리를, 접시 따위에 보기좋게 담고 플래이팅해서 내는 역할이다. 사실 따지자면 그런 플래이팅 역시 로봇이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생존,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을 안배하기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쓸쓸하기까지 한데, 펑크라는 장르에 맛을 더한- 소소한 양념이 되는 것 같다. 또 작가는 주인공의 직업 또한 초반에 드러내지 않고 후반부에, 노인과의 대화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도록 해 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배치가 의도적인 것이었다면, 영리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3. 까닥까닥 반복적으로 오작동을 일으키는 팔을 두고, 습관적으로 관자놀이를 짚다가 얻어 맞는다든지, 볏 달린 장닭 꼴이 되는 장면은 실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데, 피식 웃게 만드는 개그 코드면서 억지스럽지 않다. 흔히 사이버펑크(아, 작가님은 이 장르 아니다 하실지도 모른다)는 어두운 분위기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로인한 피로감을 상쇄시켜주는 느낌이고, 재미있었다. 사실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묘사하는 장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 이 작품은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를 어둡게 가져가고 있지는 않다. 물론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지점 역시도.
이어 정말 사소하지만 옥에 티같은 아쉬운 부분을 꼰스럽게 말해본다.
1. 전철에서 내린 주인공이 ‘신역사에선 찾을 수 없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을 보고 횡재를 부르며 냉큼 올라탄다는 서술이 있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지역에, ‘신역사에는 없는’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에는 부연이 필요해 보인다.
‘신역사(새로운 역사)’?- 문맥으로 보면 이전 지역을 말하는 게 맞나? 아니면 이 빈곤한 지역에서도 상대적인 신역사가 있다는 말인가? 설마 ‘신’이 새로운 이라는 게 아니라? … 같이 쓸데없는 생각만 길어졌다)
단지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과 노인의 만남을 위한 장치(주인공이 엘리베이터 문을 막고 있다가 봉변을 당한다)로서만 기능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라 배려차원에서 있는 것이고, 그 이전 신도시에서는 다들 좋은 기계몸을 가지고 있으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할지라도, 그렇다면 거기선 계단을 쓰는 것인가 한다면 넌센스가 된다. 따라서 굳이 ‘신역사에선 없다는 서술’은 불필요할 뿐더러 분명 빈부격차 사회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는 만큼, 갸우뚱하게되는 지점이다.
2. 주인공이 자기 팔의 고장을 인지하고는 ‘고작해야 베어링 하나 바꾸면 될 거라 예상했던 나는-‘이라고 생각하는 서술이 있다. 주인공이 기계 공학적 기초지식이 전무해서, 몰라서 그리 생각했다는 설정이라시면 음… 하게 되겠지만 일단 최소한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읭? 하게 될 소지가 크다. 베어링은 주로 회전(물론 직선운동에서도)운동하는 장치의 내외부에서 축을 지지하거나 하중 방향에 따라 마찰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의 경우 지속적인 오작동(반복 운동)이니만큼 오히려 신호를 제어하는 쪽 문제일거라 생각하는게 더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나 같은 독자는… 저 베어링 이란 부품 언급에 쓸데없는 딴지마인드가 작동해버리는 것이다. 정말 사소한 이런 것에 신경을 빼앗기는 나 스스로가 저주스럽다.
나는 그 사람에게 팔 값 대신 M.J.도의 싸인을 부탁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작품의 끝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던 주인공을 그린다. 줄기세포 관절 배양 수술도 받고, 전뇌 쪽 시술?도 하는 그냥 그 미래의 세상, 그게 당연한 것인 삶을 살아가는 이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문득 떠오른 노인에 대한 기억, 그것으로 이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 맞춰지며 끝이 난다.
박진감 넘치는 전투씬 같은 건 없다. 그러나 세계관이 느껴지고, 그 사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주제를 담았다. 필자에게도 오래 지나도 생각나는 작품들이 있다. 각 장르별로 최소 서 너 작품씩은 있다. 그 중 하나에 은근히 부비고 들어올 만한 수준높은 SF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다. 말이 길었다. 죄송하다. 강한 추천을 담아 두서없는 잡설을 이만 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