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한치 앞의 미래도 불투명한 시대에 읽은 근미래의 SF다. 여전히 하늘을 날지 않는 자동차는 땅에서의 자동 주행이 보편화 되고 워치에 자연어휘로 입력된 명령의 처리가 좀 더 정교화 된, 양손의 자유만 누릴 수 있는 시대. 손이 놀게 되는 시대는 지금과 어떻게 다른 모습을 띄울까. 기술의 발전은 빠르고도 더디게 나아가서 영상과 무대가 나뉘어져 영화는 영상기술과 예술만이 결합한 영역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영화는 이미 기획단계에서 캐릭터가 완성되니까요. 제작은 그걸 보다 완벽하게 만드는 일일 뿐이고요.”
“그렇지. 자의적으로 이게 더 나을것 같다, 아니다를 정할 일이 아니야. 내가 갑자기 죽어도 모나는 별 무리 없이 영화에 나를 아서로 등장시킬 테지. 얼굴과 목소리야 본을 뜨면 되고, 움직임은 더미로 연출하면 되니까. 아니면, 혹 본인 고집대로 다른 배우를 찾아 쓴다면 여태 찍은 영상들 중에 내가 나오는 부분만 그 놈으로 덮어쓰면 될 테니 더 쉬울 거고. 그것도 마음에 안 든다? 그럼 캐릭터 제작 때 미리 뽑아 놓았을 아서의 모델을 쓰면 될 일이지. 어떤 영화를 만들지는 진즉에 정해져 있으니까.”
-셀레나 앤더슨(4) 中
셀레나가 대배우로 일약하게 된 영화 <앤디미온>의 ‘미샤 L 맥클라인’은 거대한 우주함선의 선장이다. 50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모두의 마음속에 실존하는 여성 영웅. 50여년 전에 그린 미래는 인간이 우주를 날아다니는데 50년의 뒤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평지 속에서 부딪히며 논란과 갈등을 만들어낸다. 다만 그 사이 진보된 기술은 때로는 실존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든다.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인간이라는 말 속에서 RMLM과 LMLM 중 어느 쪽이 실존에 더 가까울까.
오래 전의 대배우 셀레나 앤더슨의 삶을 다큐멘터리식으로 재현하는 영화에 캐스팅된 케이시는 거칠고 현실성 있는 여성이다. 잊혀지지 않을 인물을 닮은 이는 그 닮음을 꺼려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쌓이는 장면 속에서 시나리오 속의 셀레나와 케이시가 오버랩 되는 장면들은 이야기를 하나로 모아주며 둘이 어떤 부분에서 닮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영화감독인 모나는 자기 목적과 표현이 분명한 인물이다. 타협없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명확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인물. 이 시대의 영화는 감독이 표현하고 싶은 세계를 완벽히 재현하는 매개체로 표현되는데, 최소 1시간 이상의 러닝타임으로 표출할 수 있을 만큼의 세계가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고, 또한 이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언어와 상상을 재현하는 재현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재미있는 점은 두 인물을 나타내는 키워드들은 모두 현실성에 가까운데, 둘 모두가 그리는 것은 이상에 가깝다는 점이다.
1로망. 케이시는 그 단어를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모나가 말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그건 간편식보다 번거롭고 망칠 수도 있는 요리를 굳이 하는 케이시나, 언제나 일정한 퀄리티로 즐길 수 있는 커피 브랜드들 대신 굳이 카페 피쿼드를 찾는 박이나, 50년 째 늙지도 죽지조 않는 완벽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넘치는 시대에 여전히 연극을 보고 또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감정이었다.
넷플릭스에 업로드 된 한국형 SF 영화 <승리호>에서 장 선장 역을 맡았던 배우 김태리는 승리호가 공개된 후의 보그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어릴 때 막연하게 미래를 생각하면 무서웠어요. 광활한 우주 속에 먼지 같은 존재가 나중에는 다 없어지겠지 싶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미래에는 인간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철학적인 질문을 더 많이 던져야 할 듯싶어요.” (출처:보그, 네이버 포스트)
기술이 진보된 사회에서의 인간성이란 이런 게 아닐까.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어떠한 영역을 잡아먹는 세상. 여전히 기술보다는 인간이 무섭고 인간은 범우주적인 문제보다는 당장 눈앞의 현실 속에서 인간과 부딫히며 갈등하고 고민하고 나아간다. 지금 그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근미래의 속에서.
“날 믿어. 언제나처럼.” 셀레나 앤더슨(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