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리뷰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과 해석이며 진정현 작가님이 의도한 바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사전에 말하고 싶다. 또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받아들여주신다면 감사하겠다.
필자의 리뷰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제목에 꽤나 집착하는 걸 아실 것이다. 자신의 작품은 그렇지 못해 반성하게 되지만 각설하고 다른 작가님들이라면 작품의 얼굴인 제목에 의미를 두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인 ‘유서 혹은 참회록’은 본 작품을 일곱 자로 줄이라고 하면 읽은 사람 대부분이 이렇게 줄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작가님이 정한 제목은 심플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본 작품은 제목을 따라 자살을 앞둔 사람의 유서처럼 혹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의 참회록처럼 읽힌다. 어느 쪽이든 본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현’은 자신이 맞이할 미래는 ‘죽음’밖에 없다고 본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기에 그의 고백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이를 바꿔 말하면 본 작품은 독자가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공개된 댓글에서도 볼 수 있듯 몰입해서 읽었다는 평이 대다수이다. 이것은 필자만이 느낀 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줄거리는 따로 첨부하지 않겠다. 유서 혹은 참회록만큼 본 작품을 설명하는 단어는 없기도 하고 내용보다는 이미지가 강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예고한대로 작품에 대해 필자 멋대로 해석해보겠다.
작품에 중요하고 인상 깊은 구절을 묻는다면 ‘검정은 아름답다’를 꼽고 싶다. 독일어로도 쓰여 있어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그만큼 작가님에게도 꽤나 중요한 구절이다고 생각하는데 본 작품이 이 구절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감히 추측해본다. 그렇다면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작품을 관통하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자.
필자는 현을 어느 연구소에서 버려진 실험체라고 가정했다. 실험체에게 연민을 느낀 누군가가 그를 풀어주었든 실험체 스스로 도망을 쳤든 알 수 없지만 그는 인정 많은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된다.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고 인간답게—원래의 모습과 다른 존재로 키워진다. 어느날, 현의 왼쪽은 깨어나게 되고 ‘검정은 아름답다’는 다소 아리송한 문구를 남긴다.
필자는 이 구절을 두고 한참 생각했다. 왜 하필 ‘검정은 아름답다’ 일까.
작품에서 왼쪽이 남긴 구절 말고 딱히 검정이 언급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니크한 의미가 있을 터. 고민 끝에 필자는 현의 왼쪽이 남긴 ‘검정은 아름답다’에서 검정을 숨길 수 없는 본능으로 해석했다.
보통 검정은 나쁜 것을 의미한다. 음양에서 음은 검정으로 표현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음흉한 내막을 비유할 때 ‘흑’막이라고 표현한다. 전통적인 이미지 때문에 대중문화에서도 종종 악을 상징하는 색깔로 사용한다. 그럼 검정과 본능이 무슨 상관이냐. 보통 본능은 나쁜 것이라고 여긴다. 규칙을 깨고 제멋대로 폭주하는 이미지를 가진다. (이건 필자 개인이 가진 이미지이므로 다른 분들은 다를 수 있겠다.)
이처럼 검정과 본능이 서로 같은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으로 미루어 검정을 본능과 연결시켰다.
필자가 말한 꼭지점을 이으면 ‘검정=나쁜 것=본능’으로 연결된다.
여기에 하나 더 개인적인 해석에 힘을 더하자면 ‘검정은 아름답다’를 ‘왼쪽’이 썼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왼쪽은 옳다의 반대 의미를 가진다. ‘옳다’와 ‘right’를 보면 알 수 있다. 즉, ‘왼쪽=옳지 못한 부분=나쁜 부분’이 ‘검정=나쁜 것=본능’이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현이 가진 ‘악’이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헛소리를 하는 걸까.
우리는 다양한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법을 만들고 그것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간다. 사회가 안전하게 굴러가기 위해선 규칙을 지켜야 하지만 과하게 몰개성화 하기도 한다.
위에 필자가 찍은 도식(검정=본능=왼쪽=나쁨)과 이것을 작품으로 가져와보자.
‘왼쪽=본능=원래 자신이 타고난 모습’은 ‘현=다른 존재가 되려는 자신, 혹은 그렇게 되야만 하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다. ‘검정=본래의 너’는 아름답다고.
하지만 작품에서 검정은 아름답지 않다. 괴물같은 모습(이 부분은 작가님의 묘사력을 볼 수 있는 부분!)에 겁을 먹는다. 그러니 현은 검정이 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본래의 모습이더라도 겉보기가 징그러우면 꺼리게 된다. 본래의 자신이 무섭고 본능으로 지배당하는 게 두렵다. 그렇기에 현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그러들려고 한다.
현은 사람들에게 검은색으로 뒤덮이더라도 부디 버티고 살아남으라고 한다. 필자가 그린 도식대로라면 본능대로 살지 말라는 경고가 되겠다. 하지만 본능이 나쁘냐고 한다면 잘 모르겠다. 사람들 속에서 모난 돌이 되지 않으려고 개성을 죽이고 언젠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본능을 꾹꾹 누르면서 사는 게 맞냐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회 법률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해하는 본능을 살리라는 건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과 똑같은 모습이 되려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남들처럼 되려고 자기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본래 가지고 있는 검정을 부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는 건 어떠냐는 것이다.
검정은 아름다우니까.
사실 필자의 해석에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또한 필자는 작가님에게 작품에 대해 물었기 때문에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조금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놓는 대신 필자의 해석을 남기는 이유는 그만큼 본 작품이 내포한 강렬한 힘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본 리뷰를 읽고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이 사람은 이런 해석을 내놓았을까 궁금하고 작품까지 닿는다면 리뷰를 남기는 보람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생각할 게 있고 해석할 여지도 많은 작품이라 생각하니 많이 읽어주시길 바라며 리뷰를 마치겠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작가님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런 해석도 있겠구나,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