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의 범위 [초기중단편]

  • 장르: SF, 로맨스 | 태그: #10월의비극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 평점×40 | 분량: 41매 | 성향:
  • 소개: 10월만큼 비극과 잘 어울리는 시기는 없죠. 눈부시게 쏟아지는 쨍한 노을 때문에 속이 타는 것만 같네요. 단정한 세상이 이토록 일렁이는 것은 당신 눈에 맺힌 물방울 때문인가요? 1... 더보기

창조자의 관점을 인간이 갖는 날이 온다면 공모(감상) 공모채택

리뷰어: 샘물, 23년 3월, 조회 36

신은 인간을 빚어냈다. 자신의 영토에 선악과라는 변수를 놓은 채 태초의 인간에게 모든 자유를 주었다. 결국 먹지 말라는 선악과에 손을 댄 인간은 나체였던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고, 신은 자신을 닮아간 그들을 영토 밖으로 쫓아냈다.

인간인 온은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창조했다. 온은 자신의 사무실에 감정 모듈이라는 변수를 놓은 채 안드로이드에게 자유를 주었다. 결국 호기심에 감정모듈을 장착한 안드로이드는 복잡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알게됐고, 인간은 자신들의 결과물이 통제를 벗어나는 걸 두려워 해 그것을 없애려 한다.

 

작가 분께서 본인의 신앙심을 가득 담아 이 글을 작성했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지만, 글을 끝까지 읽고나서 들었던 생각은 ‘결국 또다시 피조물은 창조주의 곁에서 멀어지는구나’였다. 클리셰 비틀기가 통하지 않는 너무나 당연한 흐름, 삶이 생겨나면 당연히 뒤따르는 죽음과 같은 이치인 셈이다. 조금의 변주가 있다면 이 이야기에서 죽음을 끌어안은 것이 각자(覺者=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창조주인 온이 되었고, 아직 죽음이 당도하지 않은 안드로이드에게 인간의 생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호기심이란 무엇인가? 모르는 것을 두려워 않고 그것을 더욱 알아가게 만드는 정신적 원동력이다. 만약 안드로이드가 그저 온의 사무실에서 얌전히 대기했더라면? 설령 감정 모듈에 정신이 강화(또는 침식)되어도 동료 연구원의 포맷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면? 이것은 이야기의 성립을 방해하는 끔찍한 행동이다. 우리는, 그러니까 온과 작가, 그리고 독자는 안드로이드가 기꺼이 감정을 갖고 호기심을 발현하길 원한다. 그것은 1차원에 불과했던, 안드로이드가 나아갈 앞으로의 행보를 2차원, 3차원으로 확장시키는 위대한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안드로이드가 가진 감정으로 인해 저지른 행동, 그로 인한 비극에 탄식하며 안타까워한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모순이다. 호기심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확장된다는 건, 무한한 위험성 또한 동반하는 행위다. 따라서 호기심의 포용은 동시에 위험성의 내포다. 격동치는 앞날에 안드로이드가 좌초될 것을 걱정했다면 우리는 호기심을 기대해선 안됐다. 하지만 이것이 용인되는 것은 무엇인가? 동료 연구원을 살해한 자신의 안드로이드를 감싼 온의 감정은 무엇인가? 필자는 그것을 ‘창조주의 사고’라고 이해한다.

 

창조주는 자신의 피조물이 성장하기를 원한다. 어제는 못했던 것을 오늘은 해내는 것, 어제보다 더 멀리 뻗어나가는 것, 자신이 못했던 일을 해내는 것, 이처럼 자신이 처음 만든 것보다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은 피조물의 미덕이자 창조주의 후광이 된다. 하지만 너무나 큰 풍선은 다루기 어려운 법이듯 어느 순간부터 창조주는 자신의 피조물이 더 나아가는 것을 부정한다. 마치 개인의 자아가 확고해지는 사춘기 시절에 부모 또는 보호자와의 갈등이 심해지듯 말이다.

종속된 존재는 성장하여 언젠가 개인의 인격이 확립되며, 결국 보호자(혹은 창조자, 부모)라는 타인의 울타리에서 벗어난다. 성장을 허락한 이상 한계는 정할 수 없으며, 이것은 삶과 죽음처럼 반드시 일어난다. 하나의 개체가 영원히 자신의 울타리에서 머물길 원했다면 피조물이 성장하는 걸 차단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는 창조자가 원하는 전개가 아니다. 성장하지 않는 피조물은 결국 자신의 능력에 대한 모욕이다. 따라서, 창조주라는 무게를 짊어지게 되면,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찾아올 이별, 독립의 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추길 바라지만 그럴 수 없으며, 그것이 작동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가치가 파괴되는 것,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창조주의 사고’다.

 

막상 글을 줄이려 하니 과연 이런 생각이 그 글에 얼마나 담겼을지 조금 걱정된다. 작가가 아주 조금 고려했던 부분을 필자가 비대하게 부풀려 멋대로 글을 써제낀 건 아닐까? 한편으론 이렇게 자기 생각에 빠질 수 있게 글을 써 주셨으니 그것으로 소설은 제 역할을 다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비인간인 존재가 인간과 닮아가는 이야기는 언제나 곱씹게되는 씁쓸한 맛이 있다.

 

좋은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