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시점 등을 기준으로 이야기는 모두 21개의 토막으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초반에는 주인공의 특성과 심리를 보이는 장면을 주로 펼쳤다면, 종장에 이르면서는 주변 환경이나 얽힌 전사를 풀어내는 일과 그로 인한 사건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공모에 부치는 작가님의 말씀에서는 확장하였으면 좋을 부분과 궁금한 부분을 남겨 주셨는데요. 개인적인 감상에 이어 이런 부분을 섞어 얘기하고자 합니다. 감상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앞서 이야기하자면,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스팀펑크에 대해서
저는 스팀펑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나, 반도체를 위시한 전기·전자적인 방법보다 증기와 톱니바퀴를 활용한 구동 방식이 나름의 멋이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 과정이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고, 투박하기도 한 움직임이 되레 시원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이야기에는 흡혈귀와 함께 증기로 작동하는 각종 장치와 설비가 등장합니다. 마음에 닿았던 지점은 아리가 기계 장치에 대한 동경을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흡혈귀라는 정체성과 연결하여, 뻗을 수 있는 지점이 있으리라 생각했고 여러 상상을 품게 해주었거든요. 이는 감상의 3번째 부분에서 더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있었는데요. 간이 탐지기는 이야기 안에서의 효과보다는 스팀 펑크라는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효과만을 내었다고 생각합니다. 톱니 바퀴가 돌아가는 모양이 묘사되지만, 기능은 전자적 또는 화학적인 부분이 연상되고 밝혀내는 지점 또한 제한적입니다. 혈흔이나 흔적에 대한 집착으로 이치고가 시각 또는 촉각으로 혈흔이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아내는 게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또한 의체는 이치고와 천호성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는데요. 아무래도 위력을 드러내는 장면이 의체와 의체가 맞붙는 상황이었기에 효과성에서 아쉬운 지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아리와 조선의 귀물이 선천적인 신체능력과 본능으로 움직인다면, 순사 등 일제의 진압세력은 의체를 통한 능력을 보일 수 있겠다고 상상했어요. 그런 지점에서 초반에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아리와 이치고가 짧은 육탄전을 벌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의체의 물리적인 위력과, 위협을 피하는 아리의 본능적인 능력을 함께 보이면서요.
이어서 스팀펑크와 연결하여 상상했던 지점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한 가지는 기계장치를 동경하는 아리의 성질입니다. 저는 아리가 기계장치를 통해 일종의 자유를 바라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나름의 규칙과 동력원, 설계를 통해 작동하는 모습을 보며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자신을 고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여겼거든요. 사견이지만, 천호성이 아리를 거둔 것도 의체를 통해 아리의 흡혈 본능을 억누르려는 시도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선과 스팀펑크, 흡혈귀는 영상으로 그려내기에는 어색한 지점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글로 풀어낸 이야기 안에서는 상상으로 그려낸 풍경과 함께 즐거운 감상을 할 수 있었어요.
2. 시점에 대해서
이야기는 100매 안팎의 분량 안에서 여러 인물을 쫓아갑니다. 처음에는 분명 아리를 찍고 있던 카메라가 어느새 이치고, 천호성, 쿄코를 비추지요. 그런 과정에서 사건이나 표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일방적 설명으로 정리한 부분들이 있지 않았을까 걱정입니다.
천호성이 귀물을 사냥하던 시절, 이치고가 남편을 잃고 순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이야기의 중요한 영향을 주는 사건들입니다. 그러나 대화나 표정, 행동 등으로 보여지지 못하고 설명으로 마무리되었다 보니 인물들의 감정에 이입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글은 영화에 비해 시각적, 청각적 정보가 부족하다고 여겨지지만 저는 그보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의자가 끌리는 따위의 소리만 들리지만 글로 표현하면 그 사이 직원의 인생과 주문한 고객의 생각, 의도, 재산과 취미까지 모든 걸 담을 수 있지요.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때로 글이 주는 정보는 과도하기도 합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다수 매체가 자극적인 정보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고도 하지만, 어쩌면 글이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자극적으로 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으나, 저는 일부 설명들이 과도한 정보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일을 묻는 쿄코에게 이치고가 자신의 의체를 만지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거나, 천호성이 사냥꾼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아리의 눈치를 살피고 입을 닫는 것으로도 얼마간 감정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이르면 녀석, 꼬맹이와 같은 표현들이 간혹 등장하는데요. 카메라가 대상을 자주 옮기는 과정에서 찍는 인물의 목소리가 서술에까지 들어간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3. 흡혈에 대해서
주인공 아리는 첫 등장부터 피에 대한 갈망을 보입니다. 작품 소개에도 드러나듯, 이야기는 흡혈귀와 흡혈에 대해 감추지 않는데요.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인식이 뚜렷하지 않은 듯 보이나, 주요 인물들 사이에서는 귀물로서의 흡혈귀에 대한 인식도 분명 존재합니다.
여기서 저는 피가 중요하지 않고 흡혈이라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죽은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 있기도 했고요. 픽션 속 흡혈의 원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어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적혈구의 유무를 따지기도 했지요. 그리고 저는 아리의 흡혈이 이성과 본능 사이의 충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아리는 늘 고민하고, 인내하지만 결국 본능에게 패배하고 맙니다. 죄책감은 가지지만 다른 방법은 찾지 못해 결국 사람의 피를 빨고 그 시체를 처리하고 말지요. 그래서 저는 아리가 스팀펑크에 동경하는 마음을 품었나 생각했어요. 통제가 가능한 것으로 보이니까요. 그러나 자동인형들이 쿄코를 달래지 못한 것을 보면, 아마 스팀펑크로도 아리의 본능은 잠들지 않았을 것 같네요.
그래서 저는 이야기가 장편이 된다면, 머리와 몸 사이에서 아리가 마음을 찾았으면 했습니다. 이성으로도 본능으로도 내적 평화를 얻지 못한 아리가 끝내 마음을 통해 흡혈에서 자유로워지는 결말을 상상했어요.
덧붙여, 이야기에서 아리는 꽤 뛰어난 회복력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랬기에 자신의 손목을 그어 피를 삼키는 행위를 계속할 수 있었겠지요. 다만, 이 상처를 가지고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만 상처를 내던 아리가 흡혈을 오랫동안 참았고 그 흔적을 쿄코가 발견하여 의심을 품는 과정 따위로요.
남기고 보니 두서 없이 쓴 것만 같아 민망합니다. 분명하게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즐겼어요. 장편화하는 과정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좋은 이야기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