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동경하는 노년의 한국인 남성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이름은 ‘철’이고, 우주로의 확장 이민을 추진하는 기업 ‘TRAST’의 환경 관리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철이 그곳에서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건물 청소인데, 확장 이민으로 인구가 줄어가는 지구에는 이전만큼 청소할 거리가 많지 않죠. 회장조차 떠나버린 꼭대기 층의 드넓은 회장실을 주인공이 혼자 말없이 청소하는 장면은, 무의미로 가득한 우주 속에서 한 가닥 의미를 찾아 헤매는 외로운 우주선을 연상시킵니다.
사람들은 확장 이민 우주선을 발사하는 센터를 ‘고슴도치’라고 부릅니다. 고슴도치 가시처럼 빽빽하게 줄지어 선 우주선들의 모습이 고슴도치의 등을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죠. 세계 각지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우주선을 발사할 정도로 확장 이민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지구가 황폐해졌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모성을 떠나 운명을 새로이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지구를 떠날 수 있는 건 물론 아니죠. 이 세계에서도 이민선 탑승권은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분배된 듯합니다. 다행히도 수용 인원은 좀 넉넉했던 것 같고요. 중요한 건 이 탑승권에 대한 주인공의 결정입니다.
철은 30년간 꾸준히 TRAST에서 근무한 대가로 얻은 이민선 탑승권을 손자에게 넘기고 자신은 지구에 남기로 결심합니다. 우주를 향한 꿈을 이루기 위해 한때 가족까지 버린 인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주로의 확장 이민을 눈앞에 두고 오랜 꿈을 반납하게 되죠. 철이 그토록 동경하던 우주를 포기한 이유는 바로 죄악감입니다. 사람들이 ‘에고 트레저디(ego tragedy)’라 부르는 이민선 간 충돌 사고에서 잊고 지냈던 가족이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그는 삶과 꿈, 그리고 우주의 의미를 재정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재정립된 가치관은 이야기의 초점화자가 확장 이민이라는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맞닿아 있어요. 화자는 확장 이민을 ‘스페이스 드림(space dream)’이 아닌 ‘스페이스 런(space run)’으로 바라보거든요. 새로운 운명의 개척을 표방하는 서부 시대적 정신으로 멋지게 포장됐지만, 본질은 도피에 가깝다는 겁니다. 도대체 무엇으로부터의 도피일까요.
도입부에 철은 손자뻘의 ‘기호’와 대화를 나누고, 결말부에는 TRAST 회장의 AI와 대화를 나눕니다. 두 대화 장면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쓰이는 소품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전자호흡기예요. 이 세계의 인물들은 지구에서 호흡할 때조차 기기의 보조를 받아야 합니다. 호흡할 수 없는 지구는 더 이상 생명의 터전일 수 없죠. 사람들이 떠나는 건 꿈을 개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길이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철이 사고를 겪은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손자에게 자신의 탑승권을 넘긴 건, 떠밀려 도피 여행에 나서기보다 온전히 제 의지로 가치 있는 선택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겁니다. 그 선택은 한때 우주를 열망했던 자신처럼 선명한 꿈으로 세계를 채워나갈 다음 세대를 향해 열려 있고요. 이야기의 결말에서 철은 자신의 꿈을 실어 보낸 이민선이 떠오르는 광경을 말없이 응시합니다. ‘고슴도치 가시는 어디를 향하는가’. 좋은 제목에 어울리는 좋은 결말입니다.
다음 세대가 살아갈 우주 어느 한 자락에 대한 희망을 품은 채로 꺼져가는 지구에 남기를 택한 노인의 모습에서, 릴리 브룩스 돌턴의 『굿모닝 미드나이트』가 떠오르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