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재 혹은 주제 중에는 인간이 신을 흉내내어 생명을 창조하는 일에 손을 댔을 때 벌어지는 파국이 있더라고요. 대표적인 작품이 그 유명한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있는데 소설의 주인공인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생명을 창조하는 실험을 하다가 괴물을 만들어내고 나중에는 괴물에게 원망을 받아 가족들을 그의 손에 잃은 뒤 복수를 위해 그를 쫓다가 결국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프랑켄슈타인>과 유사한 소재의 작품들은 대개 인간이 호기심과 탐구심 때문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 혹은 자신의 오만 때문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일을 벌이는 경우가 다수인데 처음 이런 종류의 작품들을 접했을 때에는 그 주제가 인간도 통제할 수 없는 과학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다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소설을 파고들어가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과학기술에 대한 공포보다는 원래 인간이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 기술 자체는 인간이 그것을 그만두든 파기하든 어떻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손에 쥔 인간이든 그것에 의해 태어난 인간이든 본질적으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데서 인간 자체가 더 두려운 상황이라고 해석되더라고요.
특히 이런 기술의 끝에서 태어난 것은 언제나 인간과 유사한 피조물이며, 그 피조물조차 인간과 다르지 않은 욕망과 희로애락을 갖춘 존재라는 점을 본다면 결국 인간은 인간을 통제할 수 없는 게 본질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고전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주인공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피조물을 괴물로만 취급하였기에 그의 분노를 산 것처럼요.
물론 이 <깊고 푸른 공허함>에서 태어난 복제인간은 그 심리가 자세하게 다뤄지지 않으므로 자기 창조주에게 어떤 심정을 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소설 속 화자가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통해 막연히 그것을 파악해야만 하는데 만약 소설 속에서 친구가 저지른 실수라고 한다면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과신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에 태어난 것도 인간이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미리 판단하지 않았다는 점일 거예요.
소설 속 친구는 자신은 육체를 만들어냈을 뿐 ‘영혼’은 주지 못했다고 주장은 한다지만 생존에 대한 욕망을 품었다는 점에서 그 복제인간이 완벽하게 감정이 없는 존재라 하기는 어려워요. 다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도덕이나 양심보다 욕망이 더 강하게 우선하는 존재일 수는 있을듯 하며 지나치게 빠른 성장은 제대로 된 사회성이나 그에 따른 책임을 일깨워주지도 못했을 겁니다.
재미있는 점은 복제인간이 막 태어나 아기 형태를 띄었을 무렵 창조주를 부모처럼 칭하고 거기에 친구 역시 한때나마 부성애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그런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는 점인데, 소설의 소재가 과학자와 복제인간의 갈등이긴 하지만은 이 부분은 묘하게도 부모라고 해서 자식들을 통제할 수 없는 현실성을 부여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