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무인인 민우는 집안을 믿고 주먹질을 하며 으쓱대는 아이로, 체격이 작은 정석이를 아이들의 묵인 하에 괴롭힌다. 그날도 다짜고짜 정석이에게 폭행을 가하는 민우를 말리던 나는, 정석이가 내뱉는 욕설에 데자뷔처럼 오싹한 기분을 느낀다. 사실 「폐가」를 관통하는 이야기 자체는 상당히 전형적이다. 학교에 하나쯤은 꼭 있을 법한 엄석대(아니, 그 정도 정치력은 없으려나?) 같은 캐릭터인 민우, 그런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약골 정석이, 소시민적인 정의감을 품고 있는 나, 그리고 단짝 친구인 선욱이. 함께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나란히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게 된 네 친구지만, 선욱이와 나를 제외하면 이 넷의 관계를 친구로 정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군다나 민우의 가방이나 사물함, 신발장 등에서 죽은 동물들의 사체가 나오기 시작하고 급기야 심각한 구타 끝에 정석이가 등교 거부를 하게 된 이후로는. 나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누군가가 그렸던 그림 한 장을 떠올린다. 온통 새까만 바탕에 보라색 원 두 개와 갈색 원 두 개만 그려져 있던 그림을.
그것이 초등학교 시절 한 학급에서 함께 수학했던 누군가의 그림이고, 그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유령집에서 괴물이 되어 버린 아이일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이 가능하지만, 이야기가 결말까지 치달으며 괴물의 정체를 알게 될 때 느껴지는 충격은 스릴러의 정석과도 같다. 다만 괴물이 그렸던 그 동그라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 그가 괴물이 될 수밖에 없던 그 사연에서 시원함보다는 씁쓸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의 시점에서만 진행되는 이야기는 사건의 결말이 밝혀지고 난 후에 3인칭으로 전환되어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나열하고 이로써 독자는 좀 더 명확하게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게 되는데, 갑작스럽게 시점이 바뀐 이야기들이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졌다. 1인칭 시점에서 전할 수 있는 이야기들만 전하고 여운을 남기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결말이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