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침대 위에 알이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을 놓고 여자는 사라지고, 남겨진 남자는 알을 부화하기 위해 알을 품는다. 혼자 알을 품던 남자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알게 된다. 남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알을 품고 자신들을 ‘펭귄’이라 부른다. 펭귄들의 숫자가 늘어나 방송이 되자, 알을 낳았던 여자가 돌아오거나 알을 낳고 도망치지 않는 여자도 늘어난다. 남자와 여자가 알을 함께 돌보는 집도 생기지만, 여자는 남자만큼 알에 애착을 갖지 않는다.
석 달이 되기 전 알 속은 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다. 석 달을 넘기자 알이 움직이고 여덟 달을 넘기자 알은 더 많이 움직인다. 알을 품던 남자들은 펭귄과 알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와 대립하며 괴한에게 펭귄이라는 이유로 폭행당하고 알도 부서진다. 열 달이 지나고 알에서 펭귄들의 아이가 태어난다. 알은 임신과 출산에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알에서 태어난 아이는 처음 본 사람만 따르고 육아는 남자의 일이 된다. 펭귄은 아브락사스로 불리게 되고 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작품에서 알을 깨고 나온 아이들의 신을 의미하는 아브락사스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떠올리게 한다. 수컷 펭귄이 알을 품듯 남성은 알을 품음으로써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또 탄생 후 처음 본 대상을 어미라고 생각하며 따라다니는 각인은 육아를 철저히 남성의 몫으로 돌린다. 사건에 대한 담담한 시선과 저항 없는 참여, 펭귄보다 알을 중심으로 하는 전개, 그리고 사람을 동물로 치환한 명칭은 남성이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도맡는 행동의 위화감을 감춘다. 서술 중심의 단조로운 전개와 거친 문장, 그리고 마무리가 못내 아쉽지만, 탄생과 양육의 과정에서 배제된 여성과 미스터리한 알의 정체는 또 다른 이야기를 통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