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빛과 그림자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고, 또 그것을 빛을 통해 봤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나온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없었어.”
성공을 위해 바득바득 노력해 온 미술 비평가 동호는 낯선 번호로 온 연락을 받는다. 전화를 건 사람은 특유의 신랄한 비평과 독설로 한국 조각 예술계를 좌지우지하며 조각가들에게는 저주를, 재벌들에게는 인기를 샀던 강지돈이었다. 동호에게는 스승 격인 그가 10년 전 별다른 이유 없이 자취를 감춘 사건은 이후 수많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동호는 갑작스러운 지돈의 연락에 놀라워하면서도 그를 만나기 위해 외진 시골로 찾아간다. 어두컴컴한 오두막 안에서 만난 지돈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게 늙고 거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동호를 당혹스럽게 한 건 지돈의 눈이 있었던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의안이었다.
「촉감전(觸感展)」은 한 감각을 쓸 수 없을 때 비로소 깨어나는 또 다른 감각, 예술을 향한 열망이라는 익숙한 테마가 그려진다. 전개 역시 예상을 그리 벗어나지는 않으나, 차분하면서도 생생한 문장과 분위기가 어느덧 지돈이란 인물이 품은 광기 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작품을 읽다 보면 우리가 매일 밤 겪는 감각, 어둠 속에서 청각과 촉각에 집중하게 되는 그 감각이 두려워지면서도 한편으로 어서 다시 체험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된다. 짧은 악몽을 꾼 듯한 느낌을 주는 의외로 산뜻한 결말 역시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