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안 가요

작가

2017년 3월 셋째 주 편집부 추천작

귀신조차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웃픈 판타지 호러 로맨스

한때 결혼정보 업체에서 매기는 등급 기준이 인터넷에 나돈 적이 있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개인에 대한 외모, 학벌, 연봉 등등에 대한 상세한 기준을 넘어 부모의 재산내역까지도 점수화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타고난 흙수저답게 바닥점수를 기록했다.(물론 나머지 항목이 점수가 높았다는 뜻은 아니다.) 어쨌든 결혼 정보 회사를 통해서 매칭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이 뼈에 사무치게 냉정한 기준으로 나를 판가름한 후에 ‘급’에 따라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단편 「귀한 신부」는 바로 이 결혼 정보 회사를 통해서 ‘귀한 신부’ 후보를 만나게 되는 한 남자의 얘기다. 줄임말이 유행이니까 줄여서 ‘귀신’ 후보라고나 할까.(혼자만 웃는 아재 개그.)

아무튼 (본문 중 결혼 정보 회사 ‘만남’의 매니저가 하는 표현을 빌자면) ‘지방 삼류 대학을 나와서 별 볼 일 없는 외모에 수입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구현모는 C등급으로 분류되어 맞선을 보게 되지만 호구조사를 일삼는 상대의 반응에 자신이 C급이 아니라 ‘폐’급이 아닐까 자조만 하게 된다. 탈퇴비나 확실히 받자는 마음에 회원에서 탈퇴하러 간 자리에서 ‘만남’의 매니저는 ‘사랑과 영혼’이라는 서비스를 권하는데, 작명에 80년대 센스를 자랑하는 이곳에서 하는 일은 무려, 이승의 인간과 저승의 귀신의 러브라인을 이어주는 것이다! 더구나 저승의 귀신이 되면 살아생전의 등급이 A급이었어도 C급 이하로 떨어지게 되어서, 주인공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 자신의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찍어서 매칭 서비스를 받게 되는데…….

사실 추천글을 쓰면서도 조금 망설였던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작가분이 직접 쓴 작품 소개글 때문이었다. “외로운 알바생인 나는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매칭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이것이 작품 소개 내용인데, 사실 단편 「귀한 신부」는 유료로 공개된 글이다. 독자가 매력을 느껴서 구매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소개글이 지나치게 짧고, 내용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 사람이 아니라, 외계인? 사람이 아니라, 귀신? 이런 궁금증만 일으키는 것으로 충분하니 나는 상세 정보를 알려 주고 싶지 않다, 하는 마음으로 작가분이 굳이 이렇게 간단하게 쓴 걸까 싶기도 해서, 추천하며 어느 내용까지 언급해야 할지 망설임이 많았다. 말 나온 김에 이 자리를 빌어서 작가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유로로 단편을 올릴 때는 낚시까지는 아니어도 독자분들이 충분히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소개글을 써 주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 두 줄의 문장만으로 어떻게 이 단편의 매력을 다 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진심으로. 그래서 결국 작가분의 의도에 설혹 부합하지 않을진 몰라도, 이 글에서는 좀 더 정보를 살살 흘렸다. 독자분들이 이 웃픈 로맨스의 결말이 궁금해서 구매 버튼을 꼬옥 눌러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작품의 장르가 ‘로맨스’임을 감안할 때, 현모가 귀신 회원과 잘되길 빌어야 함이 당연하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은 복잡하기만 하다. 미모의 귀신과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며, 데이트는 또 어떻게 하고, 만약 사랑에 빠진다 한들 결혼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실제로 결혼 정보 회사를 통한 만남이란 것에 ‘적당한 상대’를 찾아 ‘결혼한다’가 아닌 ‘내 이상형’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라는 선택지가 있는지도 의문이긴 하고. 작가의 글에 빠져 후루룩 읽고 나서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것은, 결혼 정보 회사의 매니저가 한 말. “모든 게 사업 대상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실로 자본주의 시대의 연애에 걸맞은 표현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