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최북단에 위치한 만년설 지대, 도무지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존재하는 마을이 있다. 좀처럼 이방인이 찾지 않는다는 이 마을에 이르게 된 한 여행자는, 온통 낯설고 미심쩍은 주민들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다. 스스로 잠을 경계하는 마을, 그 누구도 깊이 잠들 수 없는 마을. 바로, 깊이 잠든 그 순간 인간의 꿈을 먹고 몸을 잠식해 살아가는 ‘눈꿈벌레’ 때문이다.
늘 불침번을 서며 토막잠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사연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척박한 환경을 일구어 마을의 터를 다진 곳에 찾아온 ‘눈꿈벌레’라는 이 불청객은 개척민들을 잔혹한 비극으로 이끌었고, 마땅한 선택의 여지가 없던 사람들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 걸터앉은 채 잠을 쪼개며 살아가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매일 서로의 삶을 지켜내고 있었다.
<어느 여행자의 이야기 – 눈꿈벌레>는 몽환적이고 음울한 설원을 배경으로 죽음과 벗삼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비극을 다루는 작품이다. 다소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눈꿈벌레’라는 미지의 존재가 가로막고 선 삶의 경계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떨어져나온 존재들을 담담히 비춘다. 꿈을 잃고 몸을 빼앗겨 생의 의지를 강탈당한 채 더 이상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게 된 존재들. 그리고 차마 그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사람들. 서로의 삶을 구성했던 추억들… 그렇기에 회복이나 치유를 기약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도 몇몇은 ‘먹힌 사람들’의 존재를 함부로 지우지 못한다. 이름, 기억, 추억, 미래, 꿈 등 인간의 삶과 관계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작가는 애잔한 비극의 방식으로 능숙하게 다뤄낸다.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다’는 저 <고도를 기다리며>의 유명한 문장처럼, 어쩌면 삶과 죽음은 친밀하다 못해 동시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삶과 죽음의 틈바구니에서 치열하게 버텨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애잔하게 빛난다. 비극의 틈새를 관조하는 담백한 환상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