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화제를 모으며 종영했던 추리 드라마 ‘비밀의 숲’을 기억하는가?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면면이 의심스럽고, 단순해보였던 살인강도 사건의 실마리는 좀처럼 찾아지지 않았으며, 얽히고설킨 관계들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 시종일관 보는 이들의 관심을 붙들었다. 여기, 이처럼 추리소설에서 선보이는 모든 장기들을 한데 응축시킨 작품이 있다.
작품의 제목인 ‘팸(Fam)’은 가출 청소년들끼리 모여 사는 그룹을 말하는 은어다. 제목에 걸맞게 도입부터 건우와 미애라는 가출 청소년 커플이 등장하는데, 그 시작은 이렇다.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밤길을 달리던 그들은, 길 한가운데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오토바이 때문에 경찰에 신고할 수 없던 건우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남자를 태워 병원에 데려다 주고 돌아왔으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겠다던 미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건우는 과거 자신의 변호를 맡아줬던 국선변호사 ‘고명호’에게 연락하고, 칼에 맞아 중태 위기에 처했던 남자는 다음 날 병원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전직 판사 출신인 도진기 작가가 각종 시리즈에서 활약하는 어둠의 변호사 ‘고진’을 만들었다면, 본 작품의 작가는 철저히 배타적이고 누구와도 사적인 친분을 만들지 않는 냉철한 성미의 소유자인 이혼 전문 변호사 ‘고명호’를 만들었다. 세상에 협상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신념으로 일관하는 그의 활약을 보고 있노라면, 거침없이 판을 뒤집는 전개에 절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작가는 경찰이나 조직 간의 알력 다툼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간단한 묘사만으로도 특정 캐릭터의 입체감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또한 변호사, 검찰, 경찰이 한데 등장하는 만큼 법정 지식과 사법 체계를 다루는 솜씨도 무척 매끄럽다.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탓에 다소 전형성을 띠거나 부수적인 역할에 머무르는 인물들의 쓰임(특히 여성 캐릭터)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얼기설기 타래로 엮여 하나로 모여드는 사건의 진실과 빠르게 교차되는 시점은 긴박감을 더하며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간단한 추천평으로 압축하기에는 가출청소년들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 개연성이 부족해보일 수 있겠으나, 익숙한 소재 사이에서 참신한 스릴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솜씨는 마지막까지 빛을 발한다. 완결된 본 연재작의 에필로그까지 읽고 나면, 제목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