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데릴이라는 한 인물이 내뱉는 대사로 다짜고짜 시작된다. 이윽고 폴이라는 또 다른 인물이 사진사라는 정보가 주어진다. 데릴이 직접 목도해 묘사한 광경과 폴의 사진 기록이라는 시각 정보가 교차되는 와중에 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모두 중요한 단서가 된다. 폴은 사진 기록으로 현재 상황을 추측해 보는 중인데 이들은 적어도 일주일 이상 폐쇄 공간에 갇힌 채 헤매고 있는 듯하다. 폴은 생존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도무지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한 구조물에 감탄하는 중인데, 데릴이 ‘도넛’이라고 부른 건축물은 벽에 어떤 틈 하나도 없이 비현실적으로 매끄러운 곡면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이들은 미지의 누군가로부터 주기적으로 랜덤한 종류의 식량을 공급받고 있기는 하다. 그렇게 미지의 탐사를 해 나가는 이들은 언젠가는 탈출구를 찾게 될 거라는 믿음으로 걷고, 먹고, 자는 일과를 반복하는 중이다.
「폐곡선」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가는 이 공간의 구조와 특성을 묘사하는 데 굉장한 공을 들이는데, 사실상 이 공간이 이야기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캐릭터는 일부 성격이나 취향 묘사를 제외하면 직업마저도 계획된 역할 부여로 느껴지고,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서사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다. 입체적이기보단 평면적이고 상황과 대사를 결합해 간결하게 서술하는 방식 또한 굉장히 기능적인 구성이라는 인상이다.
작중에서도 이들이 있는 장소가 ‘지구 자기장의 영향을 벗어난’ 곳이라고 묘사돼 있는 만큼 이곳이 지구의 영역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속도와 중력에 따라 시간 지연 현상이 발생하는 상대성 이론을 대입해 보면 이들이 있는 미지의 물체는 특정 위치에 따라 중력의 차이가 발생하는 기이한 구조를 지녔음을 깨닫게 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잘 모르겠다. 영화 「백룸」처럼 다짜고짜 발견된 리미널 스페이스 탐험인가 싶다가도 하나하나 드러나는 단서들을 엮다 보면 굉장히 공들인 과학적 설정으로 귀결되는 이야기 구조인데, 이 비균질적 시간 지연 현상을 이해하는 단서로 그저 「인터스텔라」나 「프로젝트 헤일메리」 정도를 대입해 볼 따름이다. 이 작품에 대해 상세한 비평을 남긴 담장 님은 “이과의 미학을 최대로 끌어올린 작품”이라고 평했는데, 작품에 대한 심화 해설과 더불어 다양한 장르로서의 분석과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 부분 역시 흥미로우니 리뷰까지 일독을 권한다.
※ 본작은 제9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예심 및 출판 계약 검토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추천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타사 계약 등의 제안이 있을 경우, 브릿G의 1:1 문의를 통해 미리 알려주십시오. 별도의 작품 검토 등을 거쳐 회신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