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국수 면을 만드는 가업을 이어받겠다며 진학을 포기했던 고등학교 동창생 ‘송연’은 일부러 연락해 만난 ‘선미’에게 그간 자신이 경험했던 ‘면학기(麵學記)’를 들려준다. 그런데 오랜만에 재회한 두 친구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어딘지 모르게 심상찮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면을 공부하던 송연은 티베트에서 탄 기차에서 목적지를 놓쳐 우연히 고지대 오지 마을에 내리게 되었는데, 의외롭게도 그곳에서 한 서양인 여성을 만난다. 물리학자임을 밝힌 그녀는 송연의 면발 수행(?)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하필이면 이토록 외진 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자초지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연구란 바로, 차원을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시간’을 유체 형태로 나타내 물질로서 획득하고 이것을 실용화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시면」은 선, 면, 공간, 시공간으로 구분되는 차원의 개념을 쪼개고 조합해 독창적인 가설을 설립하고, 이를 두 친구의 우정으로 보다 깊이 담아내는 독특한 SF다. 개인의 삶을 조망하는 동시에, 선형적인 모양과 장수의 뜻을 모두 지닌 ‘국수’라는 최적의 소재를 통해 시간의 형태를 버무려 낸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작품 속에서도 언급되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 ‘시간의 꽃’이 있다면 어딘가엔 시간을 담은 국수인 ‘시면’도 있을지 모르는 법. 기본적인 설정 탓에 이야기의 호흡이 다소 길지만, 독자를 이해시키는 배려도 살뜰하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국의 국수를 음미한 것처럼 다채로운 감상으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