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매카시즘의 광풍 속 과학 연구의 딜레마를 탐구했다면, 이 흥미로운 SF 단편 「아홉 단어」는 의식구조학이라는 가상의 학문에 매료된 연구자들이 개발한 언어 무기로 인해 발생한 비슷한 윤리적 책임을 고찰한다. 전 인류를 위협하는 살상 무기로서의 언어를 연구한다는 발상과 그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지는 작품으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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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구조학이라는 가상의 학문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
2023년 8월 2차 편집부 추천작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신경과학과 심리학 사이의 간극을 메꾸는 의식구조학이라는 학문에 매료되어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게 된 나는 인간의 의식을 붕괴할 수 있는 조건을 다룬 연구 논문을 발표한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 논문을 본 국방부에서 막대한 연구비 지원을 조건으로 접촉을 해 오면서, 나는 방위고등연구계획국 소속으로 의식구조학을 이용해 인간의 정신을 공격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게 된다. 의식구조학은 실용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에는 아직 숙성되지 않은 학문이었지만, 국방부가 요구한 주제에 흥미를 느끼게 된 나는 연구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 특정한 개념을 이해시킴으로써 인간의 의식을 공격할 수 있는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합류한 컴퓨터 전문가 콜린과 함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언어 요소인 의미소에 접근할 수 있는 ‘글’의 형식에 착안해 무기로서의 언어를 뜻하는 ‘공격문’ 개발에 성공한다. 당국은 잠재적인 적들이 의식구조학에 손을 대기 전에 이 공격문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기를 요구하며, 여러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새로운 연구팀을 꾸린다. 고된 연구 끝에 이윽고 두 번째 공격문의 형태가 완성되자, 이 무기의 효과를 체감한 당국은 이들의 보안 등급을 순식간에 격상시키며 사막 한가운데로 연구실을 이주시킨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어냈는지를 깨닫게 된다. 마치, 로스앨러모스의 핵물리학자들처럼.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펜하이머의 전기 영화가 국내에서도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화제를 이어 가고 있는 요즘 더없이 읽기 좋은 작품일 듯한 「아홉 단어」를 추천작으로 선정하였다. 작중에서도 실제 맨하탄 프로젝트를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듯이, 무기를 막고자 시작한 연구가 무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구자들의 딜레마와 사회 윤리적 책임에 대한 일화를 그리는 SF소설이기 때문이다. 트리니티 실험 성공 후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오펜하이머가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를 언급하며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는 말을 남긴 것은 이제 너무도 유명한 일화일 것이다.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듦으로써 스스로를 멸종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된 인류의 이율배반적인 숙명을 고찰하게 만드는 이 이야기의 일독을 권한다.
*본작은 제6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예심 및 출판 계약 검토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추천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타사 계약 등의 제안이 있을 경우, 브릿G의 1:1 문의를 통해 미리 알려주십시오. 별도의 작품 검토 등을 거쳐 회신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