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를 하려는데 하수구에서 기어나온 달팽이가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냐며 느닷없이 묻기에, 나는 면도를 하는 동안 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반복해 들려준다. 영화관에서 겪은 자잘한 에피소드부터 스웨덴 연쇄 살인범의 실화를 들려주었더니, 달팽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처럼 ‘나’는 모든 사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령 영화를 보러 갔더니 ‘1초에 스물네 번 깜박일 생각’이라며 영화가 스스로 떠벌리는 식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어젯밤에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를 했던 일은 달팽이에게 들려주지 않는다.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를 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온화한 감수성이 담뿍 느껴지는 김이환 작가의 단편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는 이야기의 기원을 찾아나서는 일종의 모험담으로 읽힌다. 환상과 현실이 한데 섞여 전하는 이야기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옅은 원두커피 향이 묻어나고 우주가 몇 번이고 팽창을 반복하는 풍경이 눈에 비치는 것만 같다. 흔히 현실과 이야기가 서로를 모방한다는 말처럼 이야기와 현실 그리고 삶이 어떻게 태동하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알고 싶다면, 아기자기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이 여정에 함께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