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낡은 범용 인조인간 생성기가 어떠한 이유로 일시적으로 재작동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태어났다. 과거에 군사용으로 만들어졌을 범용 인조인간의 형체인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혼돈 속에서 어쩌다 태어나 있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검역소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생성 오류로 인한 ‘불량품’으로서 폐기 대상임을 통보받는다. 실제로 생성기 오작동으로 인해 신경계와 근골격계에 문제가 발생해 균형조차 맞지 않는 몸이었지만, 그는 ‘어차피 태어났으니 그저 죽을 때까지 다만 살아갈 뿐이라고’ 되뇌며 지상으로 나가는 출하장 터널로 향한다. 빛에 익숙해지기 위해 한참을 기다린 후 나아간 세상에서 그가 마주한 첫 번째 풍경은 바로, 사멸한 지 오래된 문명의 낡은 자취가 가득한 세상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쿵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 그는 네빌 슈트의 『해변에서』를 인용하면서, 고요한 파멸을 맞이한 지역의 풍경을 응시한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풍경들」은 서술자이자 관찰자로서 등장하는 불량품 범용 인조인간인 ‘나’를 주인공으로, 그가 태어난 행성의 풍경들과 계속해 마주해 나아가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사실 이것이 실재적 여정인지, 인조인간의 인지적 상상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다만 그는 말한다. ‘내 내면 속이든 어디든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계속해서 새로운 풍경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 마주하는 풍경을 대하는 ‘나’의 사색과 더불어 문학적 인용이 한데 뒤섞이는데,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정보까지 욱여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성경부터 용비어천가, 윤동주와 신동엽의 시까지 넘나드는 다채로운 문학과 노랫말 등이 풍경과 어우러져 등장한다. 「풍경들」은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연재라는 형식에서 피어나는 분절된 호흡은 물론, 그 반대로 빽빽하게 정렬된 문장의 배치까지 작품의 형식이 결정짓는 고유한 분위기와 개성이 가득한 작품이다.
*본작은 2023년 황금드래곤문학상 예심 및 출판 계약 검토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추천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타사 계약 등의 제안이 있을 경우, 브릿G의 1:1 문의를 통해 미리 알려주십시오. 별도의 작품 검토 등을 거쳐 회신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