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악사의 비극적인 여정이 그려지는 서글프고도 아름다운 단편 「황금 비파」를 다시 추천하여 본다. 재앙을 불러일으켰다고 지탄 받으며 물속으로 던져진 악사가 쓸모없다고 부모에게서 버려지거나 끔찍한 일을 당하여 스스로 몸을 던지는 등, 자신처럼 뭍에서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여성들과 연대하여 시련을 극복해 내는 과정이 유려한 문장으로 그려진다.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이기에 씁쓸한 여운과 큰 울림을 남기며 ‘여성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황금 비파
다시 보는 베스트 추천작
묵직하고 차가운 슬픔이 감도는 영웅 서사
2017년 6월 첫째 주 편집부 추천작
자유를 갈구하는 여성 영웅의 이야기를 그린 핏빛 설화
돈을 벌기 위해 부유한 재상의 잔칫집에 비파를 연주하러 가던 한 악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배를 타던 도중 순식간에 비와 바람이 불자, 배에 탄 사람들은 날씨가 험해진 게 비파 연주 탓이라면서 악사를 호수에 빠뜨려 버린다. 놀랍게도 악사는 주술의 힘으로 인해 익사하지 않고 호수 밑에 다다른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오래되고 사악한 물고기의 정령이 ‘호수의 왕’으로 불리우며 뭍에서 버려진 여자들을 시녀로 부리고 있었다. 악사의 연주에 만족하여 그녀를 신부로 맞이하려 한 호수의 왕은 그녀의 비파 현이 끊어지자 황금 비파를 쓰도록 강요한다.
이 작품은 상인이자 모험가이며, 현악기를 연주하는 사드코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담긴 러시아 설화 「사드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사드코」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워 섣부르게 단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황금 비파」는 원전이 되는 설화에서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험 대신 비극적 서사에 초점을 맞추며 주제 의식을 녹여낸 것으로 보인다. 이름이 나오지 않는 「황금 비파」의 악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련을 겪는 여성이 등장하는 한국의 민담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리고 끝내 승리하지만 주류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마는 영웅을 그려낸 작품 후반부에서는 민담에서 느낄 수 없는 쾌감과 잔잔한 감동, 비애감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