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 정윤은 유폐되었다. 그가 머리를 깎고 불공을 드리는 암자에 왕후 효가 회임을 기원하는 불공을 드리러 온다. 그가 백 일의 치성 동안 기대하는 것은 하늘의 기적은 아니다. 정윤에게도 왕족의 피가 흐르고, 왕족이라는 증표가 남아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처음부터 그럴 용도로 챙겨진 것이 정윤의 생명이므로. 한편, 효가 회임하지 못한다면 그의 호위무사인 유비자는 효를 베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가 그럴 수 있을까. 왕과 세자라는 자리를 두고 권력과 성이 복잡하게 얽히는 배경을 뒤로 한 채, 세 사람의 감정은 청명하고 단아하기 짝이 없다.
『사슴이 해금을 혀거를 드로라』는 제목이 되는 청산별곡은 물론이고, 정석가와 동동, 만전춘 등 현재 남아 있는 고려 가요를 인용, 변형하여 작품 곳곳에 인용한 실험적인 문체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형태의 개성도 또렷하지만, 고려 가요는 민생의 삶과 정서를 실감나게 담아 낸 속요가 대부분인만큼 작중 내용 역시 파격적이고 흥미롭다. 출가당한 왕자인 효와 왕의 아이를 잉태해야만 하는 왕후 효, 그리고 그를 감시하는 호위무사인 유비자의 기이하면서도 아련한 삼각관계가 비현실적인 문체로 펼쳐진다.